대회가 유회된만큼 환상도, 지도력의 실추도 유예되었다

사회적 대화 참여 건을 단일 안건으로 다룬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성원 미달로 유회되었다. 대의원대회 유회 이후에 투표를 무산시키기 위해 대회장을 이탈한 대의원들에 대해 빗발치는 비난이 일고 있다. 이러한 비난은 대회 유회를 시킨 것에 대한 비난이지만 실은 사회적 대화 참여가 무산된 것에 대한 비난이다. 대대 유회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개가 사회적 대화 참여를 원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회를 유회시킨 대의원들을 비난함으로써 사회적 대화 참여에 대한 열의와 기대를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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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들 망각을 하거나 대다수가 모를 법한 일이 있는데, 사실 이번 대의원대회 유회를 비난한다고 하면 퇴장전술보다 수십배 비난받을 일들이 민주노총 내에 있었다. 이미 28년 전의 일이다 보니 오늘날 사회적 대화에 대해 왜들 이렇게 민감한지 양경수위원장을 비롯해 잘 모르는 상당수 대의원들, 노동자들이 있기에 이 날을 다시 상기해보고자 한다.
1998년 2월 9일 제8차 임시 대의원대회에는 당시 민주노총 배석범 위원장 직무대행이 2월 6일 타결된 제1기 노사정위원회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사회협약’ 추인 건을 다룬 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제1기 노사정위원회에서 정리해고, 근로자파견제 도입을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수많은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관료적 지도부가 노동자들을 팔아먹는 배신적인 합의를 했다고 극렬하게 반발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들은 1997년 발발한 IMF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동자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굴복하여 이러한 합의를 했다.
이 합의에 대해 특히 부도사태를 맞아 대량 정리해고를 앞두고 있었던 한라중공업 노동자들은 격분하여 민주노총 사무실을 점거하고 유리창을 파손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 나타났던 당시 김영대부위원장은 분노한 한 조합원한테 따귀를 맞기도 했다.
그리고 문제의 2월 9일 성균관대학 유림회관에서 개최된 대의원대회 장소 앞 로비에는 민주노총 사무실을 점거했던 한라중공업 노동자들이 쇠파이프를 들고 서 있었다. 민주노총은 물론이고 노동운동 역사에서, 아니 세계 노동운동사에서도 있을까 말까 한 초유의 사건이었다.
다행히 쇠파이프 폭행 사건은 없었지만 이번 합의를 끌어냈던 사회적 대화 참가파들에 대해서는 모욕과 함께 대회장 후문으로 안내하고 반대파들에 대해서는 정문으로 안내했다.
대의원대회는 욕설과 고성, 야유와 함성이 오가며 격렬하게 진행됐다. 당시 대의원대회에서는 다시 초유의 일이 있었는데 이번 합의가 역사적 사안이니만큼 비밀무기명 투표가 아니라 책임 있게 공개 거수 투표를 하자는 한 대의원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공개 투표로 진행됐다. 결국 이 합의안은 반대 184표, 찬성 54표로 최종 부결되고 배석범 직대를 포함 제1기 상근 임원 전원이 총사퇴하고 총파업을 위한 비상대책위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비상대책위(위원장 단병호)는 총파업 동력이 없다며 불참을 강요하는 압력에 굴복하여 “총파업이 국민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국민들의 충정어린 걱정과 우려를 감안해 파업을 철회키로 했다”며 총파업을 철회했다. 그리고 1998년 2월 정부는 국회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정리 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를 입법화 했다.
이 양대 악법의 제정 이후 대량의 정리해고 사태가 있었고 비정규직이 대량으로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대의원대회 유회를 비난하는 입장에서 보면 대의원대회장 쇠파이프 사건은 난동 사태일 것이고 공개 투표 주장은 강압적인 폭력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런데 대의원대회 쇠파이프 사태가 난동이라면 정리해고, 파견법을 동의한 노조 간부들은 무엇이라고 불러야할까? 역사의 죄인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물론 노사정위원회가 아니더라도 정부가 정리해고제와 파견제를 일방적으로 입법화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노사정위원회라는 사회적 대화라는 기구를 통해 양대 악법을 도입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우선 이 기구 참여를 두고 노조 내부를 분열시켜 일사불란한 투쟁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관료화 되고 배신적인 노조 상층 지도부를 이 기구에 끌어들여 동의와 설득의 모양새를 취하여 노조 내부의 반발을 약화시켜 반노동자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합의주의다. 과거 군사독재 때는 사회적 합의나 사회적 대화 자체가 필요하지 않았다. 오직 일방적인 강행과 폭력일변도였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성장하고 이러한 일방적 강행과 폭력에 대한 반발이 늘어나자 이제 자본과 정권은 사회적 대화라는 장치를 통해 대화와 합의와 설득과 토론이라는 모양새를 취해 노동악법을 도입하려 했다. 이 기구에 한사코 참여하는 이들은 일방적인 반노동자적 악법 강행보다는 노조입장을 일부라도 관철시켜 최악 대신 차악이 낫다는 논리로 참여를 강변했다. 양보교섭의 논리다.
노사정합의를 할 때 참여 논리와 비대위가 파업 참여를 할 때 논리는 공히 “노조파업이 국민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다”라는 논리다. 이것이 바로 사회적 합의를 강행하게 하는 노조 지도부들의 세계관이었다.
이는 혁명적 노동운동이 약화되고 자본의 이해와 노동자의 이해가 일치할 수 있고 노사파트너쉽, 노사상생이 가능하다는 노자협조주의의 반노동자적 세계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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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사회적 대회 참여는 사사건건 내부 논란을 낳으며 노동운동의 세계관을 대립시킨 사안이 되었다.
당시에는 노무현 정권은 2004년 파견 업종과 기간 확대, 기간제 사용기간 확대 등 비정규법 개악을 추진했다. 민주노총은 9월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총파업을 결의했지만, 11월 2일 국무회의에서 비정규법 개악안이 의결됐다.
2005년 2월 1일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교섭 참여 건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 시도를 했다. 이에 대해 이번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심으로 대의원대회 단상을 점거하고 소화기를 난사하기도 하여 회의를 유회시켰다.
언론과 사회적 교섭 참여파들은 이들을 “좌익맹동주의”라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근로자파견제 이어 파견업종 확대와 기간제법은 비정규직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비정규직 사용 기한이 지난 시점을 앞두고 계약해지를 함으로써 정규직 전환을 회피하고 정리해고를 정당화 하는 수단이 되었다.
민주노총 김명환 위원장은 2018년 1월 31일 노동시간 연장과 휴일노동 중복할증을 없애려는 근로기준법 개악 추진 움직임을 막는다는 명목으로 중앙집행위 결의만으로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석해 “근기법 개악 중단요구와 함께 노사정대표자회의 정례화와 형식에 치우치거나 보여주기 식이 아닌 내실 있는 회의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이 도출됐다. 그러나 이 합의에 간접고용, 특수고용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취약계층 노동자 고용유지 집중대책 마련과 관련 ‘명시적인 해고 금지’ 조항이 없는 대신 휴업·휴직 및 임금 조정 협조 조항이 담겨 있었다. 이에 대해 기업들이 대량 해고나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고 “현금 주고 어음 받은 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2020년 7월 1일 이 합의에 반대하던 조합원들과 노동단체 회원들은 회의를 진행 중이던 김명환 위원장을 둘러싸고 총리 공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대타협 협약식을 무산시켰다.
이는 민주노총 위원장 감금 사태라고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결국 대의원 1311명 중 찬성 499명(38.27%) 805명(61.7%)로 합의안이 부결되고 김명환 위원장이 불신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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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가 왜 이렇게 번번이 노동자들의 일방적 후퇴와 양보를 강요하고 노동운동의 민감한 사안이 되었는지 알 수 있게 됐을 것이다.
쇠파이프 ‘난동’, 연단 점거, 소화기 난사, 위원장 감금…
이런 극단적인 사례에 비하면 이번 대의원들의 집단퇴장은 전술적으로 옳은 결정이었지는 논란이 있을지 몰라도 지극히 온건한 행동을 취한 것이다.
양경수 집행부도 이러한 굴욕과 양보, 분열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그동안은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양경수 집행부는 새로운 사회적 노조에 합의제 운영, 산별 참여 보장, 명칭 변경을 원칙으로 해서 참여하면 AI산업전환에 따른 노동자 참여 및 고용ㆍ노동권 보호, 불평등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사회적 교섭 참여 건을 단일안건으로 대의원대회에 부쳤다.
그러나 명칭 변경이야 그 동안에도 노사정위원회나 노사정대표회의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든 다양하게 명칭이 바뀌었기 때문에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의제 운영이나 산별 참여 보장 등은 정부와 자본이 보장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더욱이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 파견 업종 확대, 사무직 노동자 등에게 노동법의 근로시간과 임금적용을 제외시킨다는 ‘화이트 갈라 이그젬션(면제)’ 등 메가특구특별법 노동특례 입법화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AI산업전환에 따른 노동자 참여 및 고용ㆍ노동권 보호, 불평등 해소,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 등이 의제로 논의될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노조에 유리한 일부 사안이 논의된다 하더라도 경총 같은 자본가단체의 의제도 같이 올라올 것이다.
이번 대의원대회 유회에 대해 회의장을 이탈한 대의원들을 비난하는 이들은 사실 내심은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를 원하는 이들이다. 사회적 참여 입장을 대회 유회를 비난하는 것으로 정당화 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노총 대의원대회가 유회되지 않았다면 만장일치 요구부터 노동의제까지 양경수집행부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갔을 것이다. 만장일치 요구부터 산별 참여, 노동의제를 내거는 문제도 사전 합의한다는 게 불가능에 가까운 문제였다.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고 화려한 언변이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에게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도 없다. 메가특구특별법 노동특례 입법을 사회적 합의 기구에서 막아낼 수는 없다. 정부와 자본은 바로 그 목표를 위해 사회적 대화기구를 열고 민주노총의 참여를 독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대회를 유회했던 대의원들이 만약 정파적 욕심이 있었다면 안건 표결 강행으로 사회적 대화 참여 독배를 양경수 집행부가 들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의원대회가 유회되면서 사회적 교섭 기구에 대한 환상과 기대도 유예되었다. 양경수 집행부, 그리고 이 기조를 연장하는 집행부가 들어선다면 새 집행부의 지도력의 실추도 유예되었다.
이 유예된 시간 동안 투쟁태세와 결의를 갖춘다면 유회가 기회가 되겠지만 환상과 기대의 유예인지라 그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다시 우리는 죽어봐야 저승 맛을 알게 될 것인가? 경험은 역사의 전진에 이다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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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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