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계성에 유의하고 특수성에 주목하자!
전국노동자정치협회 편집위원장 백철현
한국은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했다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력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기계제대공업의 발전, 기술발전은 한국이 자본주의 발전의 지표이다. 이러한 지표로 볼 때 한국은 자본주의 사회, 그것도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이다.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성격을 규정한다.
다른 자본주의 사회와 다른 한국사회의 특수성은 무엇인가? 한국은 남북이 분단된 분단사회이며, 이 분단은 외세에 의해 강요되었다. 주지하듯 외세는 미국제국주의이다. 2025년은 미군강점 80년의 해이다.
한미동맹, 미군강점 사회는 이 사회의 분단모순을 깊게 한다. 미국의 대북적대 정책, 한국 강점은 근자만 보더라도 남북의 자주통일 열망의 산물인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선언을 파탄시키고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전환하게 만들었다.
한국이 자본주의 사회라는 사실은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을 깊게 하고 착취를 심화시키고 있다. 한국이 미국 지배라는 점은 한국의 분단모순을 심화시키고 있다. 양자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분단모순은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노조파괴, 저임금ㆍ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고, 노동자의 권리를 분쇄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을 적대화하고 악마화 하여 노동자들의 정치적 전망을 질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보안법을 내세운 정치적ㆍ계급적 노동운동에 종북몰이 공세를 가하여 경제주의, 조합주의로 몰아갔다.
분단모순은 북에 대한 태도와 분단문제에 대한 인식과 해결 방도를 두고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끊임없이 분열시켰다. 한국사회 자주파와 평등파의 분열도 상당부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통합진보당의 분열도 겉으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시작되었으나 실제로는 국회의석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의회주의적 갈등과 분열로 야기되었다. 그런데, 진보진영이 분열과 갈등의 책임을 다투는 과정에서 정치권력과 조중동, 심지어 경향, 한겨레까지 합세하여 종북몰이를 부추기고 이 공세에 편승하여 자신을 정당화 하고 세력을 확보하려 하였다.
미국의 한국지배는 트럼프 통상압력에서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있다.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미제 강점 사회에서 분단모순 이 둘은 한국사회의 근본모순이다. 그 사회가 지속되고 새로운 사회로 이행되지 않는 한 근본모순은 그대로 유지된다.
주지하듯 한국사회 성격 논쟁에서 마오쩌둥 《모순론》은 한국사회를 과학적, 역사적으로 인식하고 변혁전망을 찾는데 주요한 수단이었다. 《모순론》의 철학적 방법을 그대로 한국사회에 적용하면 한국사회 근본모순은 노자 간의 모순과 미제 지배 하의 분단모순이다. 마오쩌둥에 의하면 주요모순은 하나이나 근본모순은 사회성격에 따라 하나 이상이 될 수 있다.
주요모순은 정세에 따라 변할 수 있다. 윤석열 정권 시기 주요모순은 민주주의와 파쇼권력의 대결로 나타났다. 윤석열은 미국을 등에 업고 대북적대 정책, 전쟁책동의 돌격대 노릇을 하였다. 윤석열은 언론탄압, 간첩조작, 노조탄압에 몰두하였다. 이 정점에서 내란ㆍ외환 비상계엄을 내리고 국회를 장악하여 야당 주요 정치인들을 포함해 노동운동가, 민주인사들, 반정부적 민중에 대한 체포와 학살을 기도하였다.
파시스트 윤석열 정권을 끌어내리기 위해 광범위한 반파쇼 민주전선을 치는 것이 당시 주요모순이었다. 이 때에는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도 공동전선의 대상이었다. 정치적 주도성, 정치적 대안의 부재로 원하는 정치적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당시 주요모순의 해결은 민주주의 문제, 미국의 내정간섭과 전쟁책동, 노동자권리를 해결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정권퇴진 이후 주요모순은 노동자가 중심이 되어 주권을 지키고자 하는 민중과 시민 다수를 끌어들여 트럼프의 통상 공세에 맞서는 것이다. 이재명 정권과의 대립은 아직 전면적인 문제로 대두되지 못했다. 민주적 시민들이 정권을 지지하고 있고, 이재명 정권의 정치적 한계가 아직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정권이 굴종적으로 합의하면 정권과의 대립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적대적 남북관계는 변치 않고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정권의 근본한계를 드러나게 하고 정치적 반동성을 전면화 하게 될 것이다.
노동자들의 치열한 계급투쟁으로 노동자계급의 권리와 처지는 전반적으로 신장됐다. 그러나 노자 간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빈곤 문제와 불평등 심화 역시 자본의 착취와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 노동자의 자본에 대한 예속과 노예화의 증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실업문제 역시 “고용 없는 성장”, 즉 합리화, 자동화, 무인화 등으로 자본은 점점 더 규모가 커지고 성장하는데 노동자 고용은 줄어드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자본의 착취증가는 비정규직의 가파른 증가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비정규직은 예외적, 부차적 상황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일상적 상황이 되었다.
미제 지배 하의 분단모순은 사라졌는가? 한국자본주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한국사회에 대한 지배와 예속화는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한국사회 신식민성의 지표와 근거는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가?
가나의 국부로 평가받는 콰메 은크루마(Kwame Nkrumah)는 저서 《신식민주의:제국주의의 마지막 단계(Neo-Colonialism:The Last Stage of Imperialism)》에서 “신식민주의의 본질은 거기에 종속되어 있는 국가가 이론상으로 독립적이며 국제상의 주권국으로서의 모든 외적 장식물들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그 경제 체제, 따라서 그 정치적인 정책은 외부의 지시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적인 비동맹 기구에서도 신식민지의 성격을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정의하고 있다. 1960년 4월 서아프리카 가니 공화국에서 열린 제2차 아시아ㆍ아프리카 인민연대회의(코나클리 회의) 자료를 보면 신식민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5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그 민족이 전적으로 독립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1) 법령이 국민의 완전한 동의를 얻지 않았는데도 국민의 이름으로 제정되었을 때.
(2) 외국군대가 독립국으로 일컬어지는 나라의 영토에 주둔하거나 혹은 군사기지를 두고 있을 때.
(3) 어떤 나라가 식민주의 국가가 주도하는 공동체의 일원이거나 혹은 제국주의 국가와의 군사동맹에 참가하고 있을 때.
(4) 어떤 국민이 정치ㆍ군사ㆍ경제사회의 모든 계획을 실행함에 있어서 민족주권에 구비된 모든 기능을 스스로의 재량으로 완전히 행사하지 못할 때.
(5) 세계인권선언에서 정한 개인의 기본적 자유가 존중되고 있지 않을 때.(《신식민주의론》, 콜린 레이스 외 지음, 〈신식민주의에 관한 이론적 문제〉, 하부 하리호에土生張穗, 도서출판 한겨레)
이는 마치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 일반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한국사회를 염두에 두고 규정을 내린 듯하다.
국가보안법이 국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제정되고 인권이 유린당하며, 수십개 미군기지에 미군이 주둔해 있고, 미국이 주도하는 한미동맹ㆍ한미일동맹에 참가하고 있으며, 민족주권이 철저하게 결여된 한국의 모습은 외형상의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수다한 이 사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의 신식민지적 성격을 규정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 제목은 《자주통일 운동에서 노동자의 역할과 재벌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이다.
발제문 1은 근본모순 중 하나인 노자 간의 모순, 그것도 비정규직 문제라는 구분지가 서로 다른 모순으로, 신식민지와 분단모순을 해결한다고 하고 있다. 물론 근본모순이 모순의 서로 다른 측면이지만 서로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전적으로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2의 근본문제로 1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마오쩌둥은 《모순론》에서 “질적으로 서로 다른 모순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무산계급과 자산계급과의 모순은 사회주의 혁명의 방법으로 해결하며, 인민대중과 봉건제도와의 모순은 민주주의 혁명방법으로 해결하며, 식민지와 제국주의와의 모순은 민족혁명전쟁의 방법으로 해결”한다고 했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악법 철폐를 전면에 내세워 계급착취와 맞서 싸우고 궁극적으로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착취질서를 철폐할 때 해결 가능하다. 반면 한국사회의 신민지성과 제국주의가 낳은 분단문제는 반외세 민족단결로 가능하다. 이는 곧 반제 민족해방투쟁이다.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이 중대한 과제인 것은 분명하나 반제 민족해방투쟁과 분단된 민족의 통일 과제를 재벌과 비정규직 철폐투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한국운동의 지체는 자기 사업장만의, 자기 조합원만의 협소한 경제주의, 조합주의적 이해에 사로잡혀 정치화 되지 못한데 상당부분 원인이 있다. 이것이 노동자들의 전투정당 건설도 가로막고 지체시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 10월 3일(현지시간) 이탈리아의 최대 노동조합연맹인 이탈리아노총(CGIL) 주도로 팔레스타인 투쟁 연대와 가자지구 지원을 요구하며 200만 노동자들이 하루 정치 총파업을 전개했다.
한국의 노동자들과 노조, 진보 정치세력들은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강조했던 것처럼,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을 부단하게 정치화, 급진화 시켜야 한다. 미제국주의에 맞서 전면적으로 투쟁하게 만들어야 한다. 미제의 대북 적대정책과 침략 군사훈련을 중단시키는데 투쟁을 집중시켜야 한다. 특히 트럼프의 난폭한 통상압력과 무도한 내정간섭에 맞서 반트럼프 투쟁을 반미투쟁으로 고조시켜야 한다. 민중의 분노를 반미반제 투쟁의 전면화와 대중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오늘날 실은 임단협 시기집중에 정치 총파업이라는 이름을 부쳐 총파업 정신이 유명무실해지고 있지만, 한국사회의 근본모순 해결을 위해 대북 적대정책 철회! 대북제재 중단! 한미군사훈련 중단! 한미동맹 해체!트럼프 통상 압력과 내정간섭 중단! 주둔비ㆍ국방비 인상 반대!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노동악법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 무상체제 및 민중복지를 내걸고 정치 총파업과 전면 가두투쟁을 전개할 수 있도록 부단히 선전, 교육, 조직화 해야 한다.
적대화된 남북관계를 뚫고 자주통일을 성취하는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노동자들이 분단문제 해결에 전면 나서야 한다.
한국사회 객관적 발전 수준만을 놓고 보면 사회주의 변혁의 단계다. 그러나 사회주의 변혁을 위해서는 그 조건이 성숙해야 한다. 주체역량이 마련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투쟁의 강화와 민주혁명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힘찬 지렛대 역할을 한다. 국가보안법 철폐와 반민주 악법의 철폐, 사상과 양심, 결사의 자유는 사회주의 변혁으로 나아가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이 땅을 80년이나 강점한 외국군을 축출하는 것은 사회주의 변혁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다. 종북몰이 공세와 혐북 이데올로기가 판치는 사회에서 북과의 자주적 교류와 통일은 사회주의 변혁로이다.
디미트로프는 반파쇼 통일전선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의 이행 혹은 접근의 형태를 찾아내”는데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는 레닌의 주장에 주목했다.
사회주의 변혁을 외친다고 사회주의가 실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 이행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사회변혁으로 가는 이행의 특수한 조건, 경로에 주목해야 한다.
분단모순이 근본모순 중 하나고 정세에 따라 주요모순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주요모순으로 간주하고 노동자계급의 문제를 부차화하고 통일 이후로 미룬 것은 또 다른 편향이다. 심지어 노사협조주의, 사회적 협조주의를 내세워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타락시키며 반노동악법을 도입한 것은 크나큰 정치적 과오다.
민주주의 없이 사회주의가 있을 수 없다. 맑스가 8시간 노동제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강조한 것처럼, 노동자들의 조직화, 권리 신장과 삶의 질의 확장은 역사적ㆍ정치적 문제로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한국재벌은 미국에 예속화 되면서 생존, 발전해 왔다. 미국의 원조와 자본투자는 한국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예속시키는 수단이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마샬플랜처럼, 한국이 반쏘 반중 반북의 전초기지라는 정치적 조건이 한국자본주의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발전은 반노동자ㆍ반민중적이며 한국사회 전반을 미제에 예속화 시키는 과정이었다.
일각에서는 반미자주가 한국자본주의의 자주적 발전과 한국 부르주아 계급의 독자성 추구와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우려를 표명한다. 하지만 이는 반미자주 운동에 기권하고 회피하는 명목에 불과하다.
한국자본과 특히 재벌은 미제의 지배 속에 반공주의 사회를 만들고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최대이윤을 축적하는가 하면 기술발전과 해외시장으로 나아가는 기회를 적극 마련하였다.
한국 재벌과 국민의힘, 민주 양당의 친외세 예속성은 이들의 뿌리 깊은 정치적 뿌리이자 정체성이다.
이재명 정권의 모습에서 다시금 확인하는 바처럼, 트럼프의 강도와 같은 통상압력에 진저리를 치고, 머리로는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강조하지만 친미 숭배적 뿌리와 정체성은 “굳건한 한미동맹”, “철통같은 한미동맹”이라는 불변의 이념에 사로잡혀 주권을 송두리 채 내어주는 것이 한국의 권력자들이고 한국의 자본과 재벌이다.
남북관계의 자주적 발전과 평화공존을 수없이 외치면서도 한미동맹을 숭배하며 대북적대 정책에 앞장서고 전쟁훈련에 매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주권 쟁취와 분단 척결, 자주통일은 오직 진보적인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담당하는 정치적 과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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