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탱고: 코끼리와 용은 한 무대를 공유할 수 있을까?
저자: 마유크 비스와스(Mayukh Biswas)
마유크 비스와스는 전 인도학생연맹 전국간사장, 현 인도공산당(맑스주의) 서벵골 주 위원회 위원, 자다브푸르 대학교 국제관계 연구원이다.
출처: 사회주의 중국의 벗
모디 정부는 “나마스테 트럼프”*에서 “하우디 모디”**에 이르기까지 트럼프를 아낌없이 칭송했다.
* ‘나마스테'(Namaste)는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전통적인 힌두 인사말로, 문자 그대로는 “당신에게 절합니다” 또는 “당신을 존경합니다”라는 뜻이다. 2020년 트럼프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에서는 “나마스테 트럼프”라는 이름으로 10만이 모이는 환영행사를 개최했다.(역주)
** “하우디”는 텍사스를 비롯한 미국 남서부 지역에서 흔히 쓰이는 비격식적이고 친근한 인사말로, “잘 지내세요?”라는 뜻이다.
2019년 9월 22일 텍사스 휴스턴에서 열리는 ‘하우디 모디(안녕 모디)! 함께하는 꿈, 밝은 미래’란 이날 행사에는 5만 명이 넘는 인도계 미국인이 참석하고 60명이 넘는 저명한 미국 의원도 참석하여 미국 역사상 외국 정부 수반을 환영하는 최대 규모의 행사 중 하나로 간주된다.(역주)
얼마 전까지 극단적 힌두트바 집단들은 트럼프의 생일을 축하하고 그의 승리를 위한 의식까지 수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인도 상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에서 값싼 석유를 구매한 데 대한 “징벌”로 적용된 이 수입 관세는 인도의 가죽, 섬유, IT, 농업 분야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며, 수백만 개의 일자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

집권 인도인민당(BJP)의 이념적 나침반인 국민봉사단(RSS)은 트럼프의 반이슬람 정책을 지지하며, 그의 분열적인 움직임이 그들의 공동체적 의제와 일치한다고 보았고, 트럼프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형제’라고 생각했다. 이제 모디는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 한편, 냉랭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쉬페이홍 중국 대사는 뉴델리를 지지하며 “한 치를 양보하면 한 자를 더 달라 한다.”며 트윗을 올렸다.
그는 미국이 어떻게 관세를 무기화하여 유엔과 세계무역기구 규칙을 위반하고 다른 국가들을 억압하며 세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지를 강조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이 좌파 노선으로 돌아섰다. 트럼프-모디의 동맹이었던 보우소나루는 패배한 반면, 좌파 노동조합 지도자 룰라 다 시우바는 대중 운동을 통해 대통령 자리를 되찾았다. 룰라는 이제 미국을 비판하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한편, 브라질의 전 좌파 대통령인 딜마 루세프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을 대체하는 브릭스 개발은행의 수장을 맡고 있다. 미국과 가까운 서방 강국들은 이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1990년, 소련이 붕괴되기 1년 전,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독일 통일을 승인하면 나토가 “동쪽으로 한 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늘날 나토는 우크라이나(비록 우크라이나는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나토에 의해 무기화됨)까지 이르러 러시아 국경 바로 앞에 도달하여 현재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나토는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설립되었지만, 소련이 붕괴된 후에도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를 폭격했다. 푸틴은 러시아가 미 국경 근처에 미사일을 배치한 적이 한 번도 없는 반면, 미국 무기들이 자기 문앞에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 때문에 러시아가 안보 보장을 요구하는 것이다.
500년 동안 포르투갈, 프랑스, 영국, 벨기에 같은 서방 강국들은 아프리카를 쥐어 짰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말리, 니제르, 부르키나파소와 같은 국가들이 옛 식민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미국이 “평화 유지”라는 이름 아래 금과 우라늄을 어떻게 약탈했는지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는 심지어 아프리카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은 끝났지만, 백인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 개혁에 대한 요구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서방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팔레스타인과 함께 하며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에 맞서고 있다. 이 용기에 트럼프와 그 일당은 격분하고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브릭스(BRICS,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가 그들의 강력한 동맹이다.
서방의 약소국 폭력은 전 세계적인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다른 국가들이 따르지 않으면 제재나 군사 공격을 가한다. 카다피가 석유 달러 도입을 거부한 탓에 리비아는 파괴되었다. 쿠바에 대한 60년 간의 봉쇄, 이란의 석유 판매 차단, 러시아산 석유를 구매한 인도를 위협하는 것 – 이 모든 것이 서방 패권주의의 예이다. 브릭스는 단순한 경제 블록이 아닐 뿐만 아니라, 진정한 글로벌 평등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코끼리와 용
브릭스 창립 회원국인 인도와 중국은 3,800km의 국경을 접하고 있고, 총 28억 8천만 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수천 년의 문명을 계승하고 있다. 기원전 200년경, 중국은 중앙아시아 부족들을 통해 인도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기원후 200년경에는 직접적인 교류가 시작되었다. 중국은 인도를 셴두(Sindhu에서 유래) 또는 티안주(Tianzhu, 천축)이라고 불렀다. 인도는 0과 십진법을 포함한 중요한 수학 개념을 세계에 전파했다. 바우다야나는 6세기에 π(파이)를 계산했다. 한편, 세리카(비단의 나라)로 알려진 중국은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 주판, 이항정리 수학이론을 개척했다. 플리니우스는 중국의 철이 로마에서 귀하게 여겨졌다고 기록했다. 2,000년 동안 중국의 생산 기술은 서방을 앞서나갔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 지폐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인도 아대륙에서 기원한 불교는 두 문명 사이의 유대를 심화시켰다. 아잔타와 둔황의 예술은 문화적 융합을 반영한다. 8세기에 인도 천문학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중국의 천문관을 이끌었다. 종교를 넘어, 교류는 인도 향신료, 진주와 중국 도자기, 종이, 비단 같은 상품과 과학(인도 수학, 천문학, 의학 지식) 및 기술을 포괄했다. 법현과 현장 같은 중국 순례자들은 불경을 구하러 왔고, 벵골 학자 아티샤 디판카라(Atisa Dipankara)는 중국에서 설법했다. 송나라 시대(기원후 1000–1300년) 동안 중국은 불교의 중심지였다.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미륵, 문수, 아미타불의 땅인 중국으로 여행했다. 몽골의 육로 침략으로 인해 해상 무역이 활발해졌고, 촐라와 라슈트라쿠타 제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영향은 케랄라의 자모린 선출 방식과 코친의 어망에서 아직도 볼 수 있다. 1440년에도 중국은 벵골-자운푸르 분쟁을 중재했다. 이 교류의 가장 유명한 상징은 실크로드였는데, 이는 단순히 비단과 향신료의 통로가 아니라 불교, 예술, 그리고 기술의 가교 역할을 했다.
두 나라 모두 유럽 식민주의 아래 고통받았다. 아편 전쟁은 문자 그대로 중국을 약탈했다. 이후 중국 공산당 지도자 주더(주덕)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네루의 도움을 요청했고, 인도 독립 운동가들은 의료 사절단을 파견했으며, 그 중 드와르카나트 코트니스(Dwarkanath Kotnis) 박사는 우정의 상징으로 남아있다(마오는 그를 “단결의 상징”이라고 불렀다). 1915년, 중국 공산당 공동 창립자인 천두슈(진독수)는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의 <기탄잘리>를 번역했는데, 이 중국어 번역본으로 타고르는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수 세기 동안 두 고대 이웃 국가는 정복이 아닌, 은밀하지만 강력한 무역과 사상의 길을 통해 갈등 없는 문화 교류를 이어갔다
반둥에서 브릭스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직후, 인도는 신생 중국에 우정을 제안했고, 이는 반둥 회의와 평화공존 5원칙(판차실라)* 채택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왜곡이 국경 충돌의 씨앗을 뿌렸다.
* 1954년 인도ㆍ중국의 협정으로 체결된 국제 외교관계의 기본 원칙으로 영토·주권의 상호존중, 상호불가침, 내정불간섭, 평등과 호혜, 평화적 공존을 의미한다.

인도공산당(맑스주의)은 항상 분쟁 해결과 수천 년 된 유대 강화를 위한 대화를 촉구해왔지만, 그들은 인도 부르주아지에 의해 “중국 대리인”으로 낙인찍었다. 한편, 중국 투자자들은 싱가포르를 통하거나 릴라이언스(Reliance)*와 같은 파트너십을 통해 인도의 규제를 우회한다.
* 에너지, 석유화학, 소매, 통신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인도 최대의 재벌기업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Reliance Industries)(역주)
현대 중국은 블랙홀처럼 산업을 지배하며 세계 생산을 빨아들이고 있다. 인도 수출의 30%가 중국으로 향학다. 2020년 국경 충돌에도 불구하고, 무역은 증가했다(2020-21년 43%, 2021-22년 8.6% 각각). 2020년, 양자 무역은 880억 달러에 달했다. 중국 기업들은 스마트폰부터 인프라까지 인도에서 번창하고 있으며 인도 중앙은행도 중국은행을 승인했다. 정치적으로 국민봉사단(RSS)은 중국 제품 불매 운동을 호소하지만, 인도 인민당(BJP)은 무역 관계를 유지한다. 중국 기업들은 우타르프라데시주의 메루트와 구자라트주의 통일 동상(Statue of Unity) 터널을 건설한다.
현실은 인도와 중국이 글로벌 남부의 영향력 확대, 환경 위기 대응, 브릭스 강화, 서방의 압력에 공동으로 저항하는 등 많은 공통 이익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어떤 인도 정부도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국민봉사단은 자신들의 편협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공주의 증오를 필요로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디는 중국을 10번 이상 방문했고, 국민봉사단 지도자들도 종종 그곳을 순방한다.
한편 서방은 인도-중국 간의 긴장을 이용하여 인도를 쿼드(Quad, 글로벌 남부에 대한 제국주의적 통제의 도구)*로 밀어넣어 중국을 봉쇄하려고 한다.
* 쿼드는 미국, 인도, 일본, 호주 4개국으로 구성된 인도·태평양 안보 협의체(역주)
이것은 브릭스 내에서 모디의 신뢰성을 시험한다. 인도는 이스라엘로부터 페가수스 스파이웨어를 구입해 야당 지도자나 비평가들을 감시하고, 무기 수입을 러시아에서 이스라엘로 전환하며, 반이슬람 극단주의를 통해 시온주의자들과 유대 관계를 강화한다.
식민지 시대에는 인도양이 “영국의 호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그것은 냉전의 전장이 되었고,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당시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다. 오늘날, 미국은 인도양을 전략적으로 보고 해군을 배치하고 있다. 1976년, 영국은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디에고 가르시아호를 미국에 임대했다. 하지만 현재, 인도와 중국의 부상은 이 지역을 재편하고 있다. 인도에게는 페르시아만에서 말라카 해협까지의 해상 교통로가 매우 중요하고, 중국에게는 이 해상 교통로가 에너지와 무역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은 중국의 “진주 목걸이” 전략*과 일대일로(BRI)에 대항하고 브릭스를 약화시키기 위해 쿼드를 추진한다. 따라서 이제 이 지역은 세계적 강국들의 중심지이다.
* 중국 진주목걸이 전략(String of Pearls strategy)은 중국이 인도양을 중심으로 주요 항만들을 연결하여 영향력을 확장하는 전략으로, 항구들이 마치 진주목걸이처럼 늘어선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전략은 중국의 자원 공급로 확보와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하며, 파키스탄, 미얀마, 스리랑카 등 인도양 연안 국가들을 주요 거점으로 활용한다. 이 용어는 중국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정책이 아니라, 인도 등 서방 국가들이 중국의 팽창을 경고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이다.(역주)
협력의 필요성
중국 취안저우(泉州)의 한 불교 사원은 인도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말라바르에서 말라카까지 이르는 고대 해상 무역의 증거이다.
남인도와 중국 어느 곳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사자 모티프는 두 문화 모두에서 왕족을 상징하며, 스리랑카(싱할라어, “사자 민족”)와 싱가포르(“사자 도시”)에 영감을 주었다. 이는 사상이 무역을 통해 전파되고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사상이 무역과 함께 이동하며 진화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인도-중국 경제 관계는 변화하고 있다. 아시아의 두 최대 인구 대국은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 국경 문제 해결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줄일 것이며, 이러한 고대 문명들이 유럽 중심주의를 넘어 세계를 이끌게 할 것이다. 식민지주의의 “분할 통치”는 갈등만을 낳는다. 유럽의 부상 훨씬 이전부터 인도와 중국은 무역과 문화를 교류했다. 21세기에 이 협력은 세계 평화에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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