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냉전》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그 실체적 진실에 접근한 역작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문화냉전》은 미국이 한국사회에 어떻게 미국식 민주주의를 내세운 프로파간다를 이식했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인식하려면 한 번은 읽으면 좋은 책인듯 하여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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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023458
『문화냉전: 미국의 공보선전과 주한미공보원 영화』는 한국전쟁 이후 분단국가 한국에서 문화외교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미국의 냉전적 공보정책이 한국의 사회문화 영역에서 작동하는 방식과 그 양상을 밝혀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자체 생산한 지부이기도 한 주한미공보원은 분단국가 한국에서 1950년대의 전후 무상원조와 1960년대 개발원조의 성과를 홍보하는 영화들을 제작해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모델로서 한국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주한미공보원이 영화를 통해 미국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한국 사회에 정착시키고 미국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한편 냉전 근대국가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기밀 해제된 미국의 방대한 문헌을 추적하며 꼼꼼하게 살핀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려실
제1부 문화냉전의 서막
제1장 전시정보국의 극동 지역 공보선전
크릴위원회의 해외영화부 / 국제영화부의 해외 공보선전
극동 지역 영화 지침과 중앙영화배급사의 설립
제2장 주한미공보국의 영화공작
적산극장 불하 문제와 「극장 및 흥행 취체령」 / 「활동사진의 취체」와 「영화의 허가」 / ‘장택상 고시’가 던진 파문 / 중앙영화배급사 조선 지부의 설립 / 중앙영화배급사 영화에 대한 반발 / 미군정의 중앙영화배급사 지원 / 입장세령 개정과 중앙영화배급사의 로비 / 미군정 공보부 영화과의 변천 / 주한미공보국 영화과의 공보 활동 / 5·10 총선거 선전영화
제3장 주한미공보원의 설립과 문화냉전의 서
스미스-문트 법의 제정 / 한국전쟁 이전 주한미공보원의 영화 프로그램 / 대한민국 정부의 공보영화
제2부 문화냉전과 주한미공보원 영화
제4장 한국전쟁기 주한미공보원의 영화공작
주한미공보원의 심리전 행동 / 미 육군부의 뉴스릴 / 일본 언론과 한국전쟁 뉴스릴 / 리지웨이와 진해영화제작소 / 전쟁 포로 영화공작 / 김기영의 주한미공보원 영화 <사랑의 병실> / 전쟁고아 구호사업과 주한미공보원 영화 / 운크라 영화 <고집>
제5장 미국해외공보처의 탄생과 상남 시대의 개막
굿바이 트루먼, 웰컴 아이젠하워 / 상남영화제작소: 주무기로서 주한미공보원 영화 / 미 국무부 국제공보처 프로그램의 긴축과 주한미공보원의 구조조정
제6장 냉전의 과학과 주한미공보원의 과학영화
미국의 핵전략과 ‘원자력의 평화 이용’ 캠페인 / 주한미공보원의 원자력 영화 / 아폴로 외교와 삼선 개헌
제7장 주한미공보원이 제작한 반공영화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적 / <주검의 상자>의 용공 논란 / 험프리 렌지 컬렉션과 4월혁명 / 케네디 정권기 주한미공보원의 유화정책 영화 / <탱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한라산>이 그린 4·3
제8장 우정과 예술이라는 신무기
아이젠하워 정권의 공공외교 / 음악, 공공외교의 새로운 언어 / 유리공예에 새겨진 민간협력 / 평화부대와 케네디의 개발원조 / 풀브라이트 프로그램 홍보영화 / 그들은 왜 주한미공보원을 습격했는가?
제3부 냉전근대 한국을 영사하기
제9장 냉전 개발주의와 주한미공보원 영화
‘자조-원조’라는 도식과 재건의 드라마 / 반공주의로서 개발주의
제10장 냉전과 박애
냉전기 한센병 관리체제와 미국의 구라활동 / 주한미공보원의 구라영화 <황토길> / 냉전 박애주의의 한계
제11장 냉전 오리엔탈리즘
자유민주주의의 기표로서 댄스 / 부채춤은 어떻게 민속무용이 되었는가? / 주한미공보원 영화의 ‘아시아 문화’ 표상
제12장 주한미공보원이 남긴 것들
<나에게 물어봐!>는 왜 사장되었을까? / 주한미공보원 영화를 만든 한국인들 / <내 친구 헤이먼>의 귀화 / 미국학의 탄생: <미국문화센터와 지역사회>
책 속으로
“냉전에서 군대와 무기만큼이나 중요한 수단은 정보였다. 미소 양국은 이질적 지역들을 하나의 진영으로 묶어두고 장벽 너머 적의 동태를 감시하기 위해 선전과 첩보를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특히 미국 정부는 국가 이미지를 개선하고 우호적 국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고, 한국전쟁 이후 전 세계에 ‘미국의 정의’를 전파하기 위해 미국해외공보처(USIA)라는 방대한 조직을 구축했다.”
– 13쪽, 여는 글
“역사적으로 이차세계대전은 영화의 이용가치가 극대화된 전쟁이었다. 기술적으로 무성에서 토키로, 흑백에서 컬러로 나날이 진보했던 영화라는 뉴미디어는 라디오나 신문 같은 올드미디어보다 광범위하고 강력한 전파력을 증명했다. 항공정찰과 공중폭격에도 영화 기술이 도입됨으로써 영화는 사상전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근대 전쟁에 필요불가결한 무기가 되었다.”
– 25쪽, 제1장 전시정보국의 극동 지역 공보선전
“1945년 9월 9일 서울에 주둔한 미군이 가장 먼저 처리한 일 중 하나는 미디어 장악이었다. 15일에 서울중앙방송국(전 경성중앙방송국, JODK)을 비롯해 38도선 이남의 지방 방송국 10곳(부산, 이리, 대구, 광주, 목포, 마산, 대전, 춘천, 청주 방송국 및 강릉 이동방송중계소)을 접수한 미군은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를 9월 25일에, 『매일신보』를 10월 2일에 접수했다. 이어서 미군은 12월 6일에 발령한 미군정 법령 제33호 「조선 내에 있는 일본인 재산권 취득에 관한 건」에 근거해 38도선 이남의 극장을 접수했다.”
– 36~37쪽, 제1장 전시정보국의 극동 지역 공보선전
“영화인들이 해방에 품은 기대는 금방 사그라졌다. 제작 상황은 30년 전으로 후퇴한 것 같았다. 영화 기근을 버텨내기 위해 때 아닌 ‘키노드라마 운동’이 펼쳐졌고, <검사와 여선생>(1948)처럼 무성영화가 제작되기도 했다. <청춘의 십자로>(1934), <심청>(1937), <신개지>(1942) 등 흘러간 시절의 필름이 창고 밖에서 나와 국산 영화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더욱 부추기는 사이, 무려 일제 말기에 제작된 국책 선전영화까지 상영되어 물의를 빚었다.”
– 55쪽, 제2장 주한미공보국의 영화공작
“해외 공보선전을 뒷받침했던 스미스-문트 법에는 미국이 해외에 제공하는 정보를 미국 국내에 유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국내와 해외라는 이중 잣대로 공보선전을 전개하고 있었고 해외에 유포한 이른바 ‘미국의 진실’이 국내 정치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 조항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 때문에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인들은 미국해외공보처(USIA) 영화나 주한미공보원 영화를 원래의 형태대로는 볼 수 없었다.”
– 92쪽, 제3장 주한미공보원의 설립과 문화냉전의 서
“한국에서 주한미공보원이 문화냉전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했던 대표적 미디어는 미국문화연구소(USIS 지부)였다. 9대 도시에 설치된 미국문화연구소는 그 도시뿐만 아니라 도(道) 전체의 공보 책임을 맡았다. 미국문화연구소는 1만에서 2만에 이르는 주소록을 작성해 출판물을 우송하는 한편, 시민 일반에 출판물을 배포해 미국과 미국의 이념에 대해 알리고자 했다. 미국문화연구소는 반공 선전보다는 한국인이 미국과 민주주의에 우호적 감정을 갖게 하는 것을 일차적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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