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 그리고 자유주의자가 되었다!

남의 가정사에 일일이 개입하는 건 무례한 일이지만,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권정민 서울교대 교수, 교육언론 창, 2025.01.21.)는 글이 이미 가정사를 넘어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졌고, 지금 윤석열 내란과 탄핵 관련해 극우파쇼들이 난동을 피우며 윤석열을 복고시키고 극렬한 파쇼체제를 완성시키려는 시점이기 때문에 다뤄보려 한다.

특히 예전 같으면 광화문의 극우 노년층 정도로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지 모르나 다소 부풀려져 있다 하더라도 내란 초기와 다르게 극우의 기세가 올라가고 있으며, 더욱이 10대, 20대, 30대 청년 남성들 사이에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우려스럽다.

다만 극우파쇼 자체에 대해서는 여러 번 다뤘기에 이 보다는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극우파쇼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과연 자유주의는 극우파쇼와 대척점에 있는 이념인가? 자유주의는 극우파쇼의 대안인 진보적 사상인가?

위 글의 필자인 권정민 서울여대 교수는 그렇게 사고하는 것 같다.

권정민 교수는 아들을 진보적이고 인권 감수성이 높은 건강한 사회일원으로 키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했다고 주장한다.

어릴 때부터 매일 2-3시간 토론을 하고, 전 세계를 데리고 여행 다니며 다양한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고, 시사 문제를 아이와 이야기했다. 예술과 창의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클래식음악 공연, 발레공연, 뮤지컬공연, 국악공연, 미술관과 박물관을 섭렵했다. 아이가 유튜버를 하겠다고 해서 기술적 지원도 해주었다. 설문조사지 만든다고 하면 편향되지 않은 설문지 만드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해 주었다. 역사적 사건과 종교적 신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심지어 자연의 신비로움과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나 혼자 애 둘 데리고 바다로 산으로 협곡으로 사막으로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남편은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서 나 혼자 아들, 딸 데리고 전 세계를 다니며 교육시켰다. 학교 공부만 빼고 다 지원했다. 학교 공부는 지가 알아서 해야지.

그런데 이렇게 갖은 노력을 다해 아들을 키웠는데도 불구하고 극우 유트버 영상을 접하며 어느날 극우로 변신해 있어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주장한다. 권정민 교수는 아들과 깊은 토론을 통해 마침내 극우로부터 탈출시켰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어머니의 피나는 노력으로 극우 유투버 세계로부터 구출된 아들은 과연 무엇이 되었을까? 그 아들은 어머니와의 대화로 어느 정도 세계관을 주체적으로 내면화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필시 어머니의 세계관을 따라 자신의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인터뷰 중인 권정민 교수

그런데 과연 그 새로운 세계관은 진짜 진보적 사상이며 극우파쇼의 대체 사상이 될 수 있는가? 반대로 그 교수의 신념체계로부터 극우파쇼가 자라날 싹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권정민 교수는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비판이론을 기반으로 연구하는 학자다. 비판이론은 한마디로 권력을 비판적으로 보는 이론이다. 비판이론은 학문의 세계에서는 쿨하고 멋진 이론이지만 극우들에게는 빨갱이 이론, 극우 기독교들에게는 사탄의 이론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나는 빨갱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모태신앙의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그리고 북한에는 1도 관심 없는, 쇼핑과 K팝 아이돌을 사랑하는 자본주의의 노예이기도 하다.

비판이론은 자본주의의 끝판왕 나라인 미국에서 유학하는 동안 배웠다. 비판이론을 공부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를 더 오래오래 지속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나의 최애가 오래오래 마음 놓고 돈 벌 수 있으려면 팬덤인 우리 모두가 잘 살아야 하니까 자본주의가 오래오래 잘 작동해야 한다. 그러려면 비판이론처럼 자본주의의 구멍들을 메워줄 철학이 필요하다.

권정민 교수는 “비판이론을 얘기하는 이유는, 나는 소위 말하는 ‘깨어있는’,  ‘진보적인’ 교육학자라는 백그라운드를 설명하기 위해서다.”라고 한다.

권정민 교수는 비판이론의 소유자인 자신이 사회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라고 한다. 권정민 교수는 도리어 자신은 자본주의의 노예이며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작동되기를 열망하는 자유주의자다. 게다가 북에 대한 무관심, 실은 경멸이 심어 놓은 무관심으로 내면 깊숙히 적대감을 간직하고 있는 반북 자유주의다.

그녀가 자본주의의 영속성을 고대하는 이유는 자신이 누리는 자산계급으로서 부와 명성을 자본주의 사회가 가져다 주기 때문이며 자신이 최애인 자식들이 이를 세습하여 대대로 이 지위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팬덤, 즉 비슷한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이들이 잘 먹고 잘 사게 하는 착취자본주의 사회가 영속적으로 유지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주의 세계관을 가진 권정민 교수가 자본주의 착취사회를 철폐하기 위한 노동자ㆍ민중의 투쟁이 실질적으로 자본주의에 위협이 된다면 다양성과 관용, 민주적 가치, 인권으로 포장되어 내면 깊숙히 감춰져 있던 적대감이 노골적으로 표출되게 될 것이다.

권정민 교수는 “극단주의와 파시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편 중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토론 교육과 역사교육, 민주주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나도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부끄럽지만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중도 보수였다. 미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바뀐 것이다. 그들의 교육은 100% 토론 교육이었다. 그래서 교육은 중요하다.

“역사교육”을 강조하는 권정민 교수는 정작 분단과 미제국주의의 이남 강점 등 역사적 문제를 외면하고 “북한에는 1도 관심 없는” 반공적 몰역사적 태도를 거리낌없이 자랑하고, 인권과 인도주의를 내세워 다른 나라, 민족에 대한 침략과 살육과 약탈, 지배와 자국민에 대한 파쇼적 억압, 인종주의를 은폐하고자 내세우는 미국식 민주주의에 찬사를 보내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유학하며 권정민 교수는 제국주의 수괴 나라인 미국 자본주의가 관용성과 다양성으로 포장하여 미국의 파쇼지배ㆍ침략체제를 은폐함으로써 미국 사회의 영속적 발전과 지배에 복무하는 비판이론을 민주적인 다원주의 사상으로 적극 받아 들였다.

이로써 민주당이나 민주당 좌파의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에 한껏 도취돼 ‘식민지’노예의식을 가진 미국 숭배자가 되었다.

권정민 교수는 “극단주의와 파시즘”을 배격한다고 하는데 앞의 극단주의는 이른바 스탈린주의라는 조어로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현실 사회주의를 겨냥한다.

비판이론은 미국의 리버럴 자유주의 학문이다. 비판이론은 극우로부터 빨갱이 취급을 당하지만 실은 “자본주의의 구멍들을 메워줄 철학”으로 이를 통해 자본주의 첨예한 계급대립을 해소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영속화 하는 이론이다. 일종의 수정자본주의 이론이다.

케인즈주의도 경제학에서 이 역할을 수행했는데 케인즈주의는 반노동자 이론이고 반공주의다. 다만 극우들에 비해 보다 세련된 반공주의다.

프랑크푸르트 학파가 비판이론을 만들어냈다.

이 학파는 파시즘과 소련을 전체주의로 보고 둘 다 배격한다. 특히 스탈린에 대해 적대적이다. 그런데 스탈린을 지도자로 하는 소비에트가 2700만 인민들의 피의 희생을 통해 독일파시즘을 격퇴하고 일본 파시스트 군국주의자들을 격퇴시켰다.

역사적 진실이 이러한데도 이 양비론적 태도는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는 점점 더 수렴되고 포섭되는 반면에 맑스레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부정하고 정통 맑스레닌주의가 현실 사회주의를 낳았다면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그대로 유지함으로써 결국 반공주의의 일원이 되었다.

통칭하여 서유럽 맑스주의라고 부르는 지적 흐름은 “반공주의의 일종”(T.I. 오이저만,「맑스주의 철학성립사」 서론, 아침, 1988년)으로 인민대중의 진보적 역사적 발전과 결합하지 못하고 대개 현실과 괴리된 현학적이며 지식인적인 이론이다.

페리 앤더슨은 《서구 마르크스주의 읽기》에서 이러한 서구 이론에 대해 “밀교화(密敎化)”라고 표현할 정도로  사변적으로 변했다.

권정민 교수의 사례처럼,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적대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에 포섭되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영속화 되기를 바라는 인식은 위선적이거나 때때로 반동적일 수는 있어도 역사발전을 도모하는 진보적인 이념일 수는 없다.

지독한 자본주의 착취사회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가난한 노동자를 대물림하고 때로는 청소년ㆍ청년 노동자들이 참혹하게 일터에서 죽어가는데 반해, 이들이 가진 이념은 자식 교육을 위해 전 세계 곳곳을 다니고 “쇼핑을 사랑”하여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소비를 누리고 그 자식들도 그러한 삶을 대물림할 수 있는 자산계급의 이해에 복무한다.

그러면서 극우와는 다른 진보적이고 교양 있는 이념의 보유자로 자신을 포장함으로써 자신들의 위선을 무마한다.

결국 이를 종합해볼 때 자유주의 이념은 진보적 사상이 아니고 극우 파쇼의 대안이자 대체물도 될 수 없다. 반대로 바이마르 공화국의 사례처럼 무너져내리는 자본주의를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한 들보인 사민주의의 파탄으로부터 가장 극렬한 반동 히틀러 파시즘이 자라나고, 문재인의 파탄으로부터 가장 극렬한 파시스트 윤석열이 자라났듯이, 자유주의는 파시즘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물론 독일 파시즘의 대두에 맞서 사민당과 일시 제휴하여 투쟁할 수 있듯이 자유주의자들이 윤석열 정권의 내란에 맞서 투쟁하려 한다면 얼마든지 손잡을 수는 있다.

“내 아들을 극우 유튜버에서 구출해 왔다”고 하지만 자유주의자가 된 그녀의 아들이 진실로 진보적인 세계관을 가질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ㆍ인민대중과 호흡하며 역사발전에 복무하는 진보적인 사상으로 무장할 때만 온전하게 진보적으로 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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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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