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었는가? ㅡ 윤석열의 내란은 포스트모더니즘 가상을 날려버렸다
윤석열이 일으킨 내란은 거대담론의 시대가 끝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가상의 이념을 산산조각 냈다.
윤석열이 인지부조화로 모더니즘의 세계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거대담론, 거대서사가 끝났다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가상을 날려버리고 모더니즘적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버린 것이다.
주지하듯 “포스트 모더니즘은 근대적 거대 서사(큰 이야기)에 대한 불신과 회의에서 출발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거대서사에 대한 부정은 “헤겔철학ㆍ마르크스주의 등 ‘총체성’을 주로 가치범주로 삼고 있는 근대의 지적 체계들을 말”하는 것으로, “모더니티의 지배적 가치인 이성ㆍ주체ㆍ진보로서의 역사를 배척한다. 리오타르는 거대 서사들의 총체성 추구 성향이 억압ㆍ강제ㆍ공포의 전체주의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성우제 기자, 늦게 찾은 ‘진품’ 포스트모더니즘 프랑스 두 거장 원전 국내 첫 번역 출간, 실체적 논의 새 장 열어, 시사저널 2006-05-03)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렇기 때문에 정치권력을 장악해 평등자유를 선포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비정치적으로 간주되곤 했던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새롭게 폭로하고 드러내는 방식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최원 철학자, 글로벌이슈 | 프랑스 68혁명 50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표면적 실패’ 뒤에도 혁명은 계속됐다, 신동아, 2018-06-13)고 주장한다.
윤석열은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쳤다. 윤석열은 대북 적대감으로 무장하고는 북한 주적론, 대북 선제타격론을 끊임없이 도발을 자행하고 미국을 등에 업고 역대급의 한미군사훈련으로 전쟁책동을 자행했다. 대북 전단살포를 비호하고 대북방송으로 북을 자극하고 급기야는 무인기를 평양상공에 보내 전쟁도발을 지속했다. 심지어 북이 대북전단살포에 맞대응하여 대남 전단을 살포하면 원점타격을 가하려고 기도했다.
윤석열의 대북전쟁도발은 대북용인 동시에 대남용이기도 했는데 윤석열은 국지전적 전쟁발발과 전쟁위기를 비상계엄의 근거로 삼아 내란을 정당화하려고 시도했다.
윤석열은 “짐이 곧 국가다”라는 신념 하에 정권에 비판적이고 반대하는 모든 세력들을 종북세력, 반국가 세력으로 간주하고 처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대우조선 하청노조, 화물연대, 건설노조의 투쟁에 대해 노조적대감으로 일관하며 노조자체를 말살하려 하고 노조법 1,2조 개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석열은 MBC 등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에 대한 통제와 탄압을 지속하면서 황색언론을 관리해 왔고 이는 KBS사장에 파우치 박장범을 임명하고 극우 이진숙을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석열은 미일한 전쟁동맹 체계를 유지, 강화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일제 식민 지배를 미화ㆍ정당화 하려는 미국의 강압을 따라 친일행보를 지속해 왔다.
윤석열의 친일 역사왜곡과 뉴라이트를 통한 역사전쟁은 과거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파쇼 통치를 강화하고 내란의 분위기를 조장하려 한 것이었다.
윤석열의 이러한 파쇼전체주의는 종북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는 비상계엄 선포 대국민담화와 “처단한다”로 끝나는 계엄 포고령에서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서방제국주의 프로파간다와 개입으로 쏘련 내에서도 후르시초프 사회주의 반역자에 의해 스탈린 악마화가 자행되었고 쏘련사회주의가 억압적인 공포체제라는 허구적 인식이 팽배해 졌다.
다원주의자들은 이러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이념공세에 영향을 받아 맑스주의가 진보사상으로 출발했으나 “거대 서사들의 총체성 추구 성향이 억압ㆍ강제ㆍ공포의 전체주의를 정당화한다고 비판”한다.
이들의 총체성에 대한 부정은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고 다원주의 인식을 주장한다. 다원주의자들은 계급투쟁이나 권력장악 등을 모더니즘 시대의 착오적 인식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체주의는 공산주의의 집단주의와 정반대 되는 이념이다. 공산주의의 집산주의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집단적 소유로 출발해 개인주의 대신에 공동체주의를 지향한다. 전 사회의 이해에 반하는 자본가들의 사적인 탐욕적 이윤추구를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에 반해 개인은 전체 사회의 발전에 복무하고 전체 사회는 개인의 존엄과 발전을 위해 움직이는 사회다. 권력은 민중억압과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인민에게 봉사하는 멸사봉공의 수단이다.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회주의와 현존하는 사회주의가 제국주의의 부단한 개입과 말살 공세 속에서, 저발전한 구시대의 생산력과 구래의 낡은 인식으로 출발해 한계를 가지고 부단히 오류와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하더라도 사회주의의 발전은 전 인류의 발전이었고 사회주의의 진보는 전 인류의 진보였다.
사회주의권의 해체는 내란과 민족갈등, 학살, 무상복지 체제의 붕괴와 기업 사유화와 올리가르히(재벌)를 불러왔다.
사회주의권의 해체는 제국주의의 전쟁과 민족억압, 내정간섭을 극도로 조장하고 서방 나라 노동자 민중의 임금인하와 복지체계를 무너뜨렸다.
공산전체주의는 공산집단주의를 왜곡하고 전체주의가 파시즘의 산물이라는 점을 은폐시켰다. 간혹 파시즘의 전체주의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공산전체주의와 대비되는 것을 간주하여 역사의 진보를 부정하는 회의주의와 무정부주의를 조장했을 뿐이다.
윤석열의 공산전체주의론은 자신의 파쇼 전체주의를 공산주의에 전가하고 파쇼성을 은폐하는 수단이었을 따름이다.
미국은 윤석열의 계엄을 반대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한다고 했지만, 전쟁과 민주파괴, 친일 역사왜곡의 배후는 미국이었다. 내란이 하루아침에 도둑처럼 찾아온 것이라고 간주하지 않는한 윤석열 내란의 물질적 근거와 이념적 토대인 파쇼 전체주의의 90프로는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만들어졌다.
대북 전쟁책동뿐만 아니라 우크라라이나에 경제지원, 무기지원을 강요하고 북한파병설을 조작하여 군대 파병을 종용한 것도 미국이었다.
인권과 자유에 수호자를 자처하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신나찌를 통해 대러적대와 돈바스학살을 지원하고 레짐체인지를 통해 전쟁을 유도하고 대리전을 치르고 있다.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침략자들을 지원하여 가자지구를 폭격하고 아기와 어린이를 포함해 팔레스타인인 십수만을 학살하고 부상하게 한 미국이 미국식 민주주의와 인도주의의 가치를 내세우고 이 가치질서를 강요하는 것은 인류의 비극을 가져오고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경찰의 흑인 및 자국민학살에 비춰볼 때 파시즘의 모든 온상은 미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윤석열의 내란은 헬기가 굉음을 내며 국회의사당 상공을 비행하고 군병력이 국회를 침탈하여 비상계엄 해지결의를 저지하려 하고 서울시내에 장갑차를 출동시키는 등 초현실적 상황이 2024년에 급작스럽게 벌어짐으로써 서울의봄이 영화가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도록 했다. 내란의 전모가 점점 더 밝혀지면서 의원들과 노동운동가들 체포하고 구금계획을 세우고 심지어 수거계획까지 나오면서 학살까지 자행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있다.
내란의 공포와 충격은 전 국민적 분노가 됨으로써 국회에서 윤석열 탄핵 결의가 통과되고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떨어지는 사상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한밤의 내란과 처단 포고령, 전쟁 유도, 민주수호, 정권타도 등의 아와 피아와의 목숨을 건 투쟁 현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인식이 얼마나 안이하고 비현실적 인식이었는지 분명하게 확인시키고 있다.
이러한 초현실성의 현실성은 개인의 인권, 인도주의, 차별, 억압 등 일상적인 차원의 문제도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수백만의 헌신적, 집단적인 투쟁, 민중항쟁, 정치권력과의 투쟁 없이는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심지어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냉엄하게 인식시키고 있다.
윤석열의 인지부조화 때문에 내란이 벌어졌고 심지어 개인의 탐욕이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낳은 주범이라는 유시민의 인식은 객관적 진리를 부정하고 총체적으로 사회모순을 인식하지 못하는 지적, 정치적 파탄의 결과이다.
포스트모던한 자유주의, 다원주의 인식은 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총제적으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들의 무정부주의적 인식은 파시즘 대두의 역사적, 구조적 원인을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파쇼 권력을 타도하고 새 사회로 나아가는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다.
윤석열은 문재인과 민주당식 자유주의에 반하여 파시즘으로 나아간 것이 아니다. 윤석열은 문재인이 산파이며 문재인으로부터 가장 극단적인 파쇼 괴물로 나아간 것이다.
문재인은 촛불투쟁으로 박근혜가 권력에서 내려오고 그 수혜를 받아 권력을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으로는 윤석열을 임명하고 임기를 보장했을 뿐만 아니라 검찰권력을 그대로 유지시키고 적폐라는 이 사회의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척결하기는커녕 이 모순을 등에 업고 이 모순을 온존시키는 가운데 민심이 이반하면서 문재인과 맞서는 이미지로 자신을 포장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까지 만들었다.
문재인의 노동존중은 노동착취로, 소득주도 성장은 실질임금 삭감과 역대급 최저임금 인상으로, 부동산문제 해결은 집값폭등과 막대한 개인주택부채로, 남북관계 개선은 남북관계 파탄으로,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는 미제의 입김에도 마구 흔들리는 속국의 확인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은 북의 남북연락소 파괴와 적대적 민족관계로 나타남으로써 민심의 배반을 낳고 이 전반적 후퇴 속에서 윤석열이 탄생하여 사회전반을 극단적으로 퇴행시키는 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무소불위 검찰권력과 국가보안법은 종북몰이와 반공주의 덕에 존속해왔던 윤석열과 국민의힘의 토대가 되었다.
2024년은 국제적으로 미제를 위시한 서방 제국주의의 전쟁책동과 학살로, 국내적으로는 윤석열이 포스트모던의 가상세계를 박살냄으로써 우리는 다시 권력투쟁, 계급투쟁의 시대를 인식하게 되었다. 깊어지는 경제위기와 저성장, 대중들의 가중되는 빈곤과 실업의 공포는 2025년을 민주 대 반민주의 투쟁을 선명한 노자 간의 계급투쟁으로 분출하게 할 것이다.
일면적, 개별적, 현상적, 표피적, 우연적, 개별적, 분열적 인식을 극복하고, 분단적, 지역적 인식 대신에 통일적 인식으로 나아가고 이 사회의 근본모순을 총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사회성격을 인식하고 그 인식하여 계급중심성을 세우게 해야 한다. 노동중심성은 배타적이고 우월하고 협소한 인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전위이며 이 사회 발전과 진보의 중심 계급임을 인식하고 실천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민중과 손잡고 지식인들이 민중의 이해에 당파적으로 봉사하게 하도록 해야 한다.
청년들이 포스트모던한 분열적, 불모의 인식 대신에 사회과학의 진보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개인주의를 척결하고 역사발전의 선두에 서도록 해야 한다.
2025년은 포스트모던한 다원주의 인식 대신에 혁명적 인식으로 무장 및 재무장하여 윤석열 없는 해, 그를 통해 개조된 새 사회로 나아가는 원년이 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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