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지금 촛불 정황의 핵심
이범주
지금 촛불 국면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비상계엄으로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회복하자는 요구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사태를 초래한 핵심은 미국에 대한 예속과 좀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그 자체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말하자면, 내가 알기에 우리가 이념형으로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단 한 번도 이 지구상에 구현된 적 없다. 자본가들이 지들만의 이익 취하기 위해 정치인들 구워삶아 정치를 부패시키고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며 그 자본가들 돈 벌어주기 위해 다른 약소국가들 침략해서 땅 빼앗고 자원, 에너지 수탈하는 것, 그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 살해하는 것, 숱한 쿠데타 혹은 그에 준하는 혼란상으로 권력이 왔다갔다 하는 것, 그것이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의 실내용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나라 정치가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것의 현실태(現實態).
다른 나라들은 그럭저럭 잘 나간다는데 지금 우크라이나전쟁 국면에서 러시아에 적대하는 독일, 프랑스, 영국 등 핵심 서방 국가들의 경제는 미증유의 위기에 처해있다. 위기의 정도는 이 나라 한국경제가 특히 심하다. 이 나라들의 공통된 특성은 미국을 추종한다는 것. 한때 다들 미국의 그늘 아래 번성했으나 지금은 다들 미국으로 인해 몰락하고 있다.
이 나라 경제가 극히 어려워진 큰 이유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이 미국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면서 제 나라 경제를 심하게 해치는 자해적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이 우리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 파트너인 중국 그리고 자원, 에너지, 식량, 군사, 국제정치 분야에서의 강대국 러시아를 가치외교의 명분으로 적대시한 것….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대규모 핵심 제조업 공장들을 엄청난 돈 들여 미국 땅에 짓고 있는 것…그리고 무인기를 평양에 보내거나 북이 러시아에 파병했다는 식의 거짓정보를 흘리면서 북에 대한 적대정책을 극단적으로 밀어부친 게 대표적인 사례 되겠다. 이 나라 기업들과 민초들의 이익 보호하는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차마 내릴 수 없는 파괴적 결정들이었다.
그런데도 윤을 탄핵시키고 정권 잡아 나라 운영해 보겠다 나서는 이재명의 담화를 들어보면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그저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회복, (내용 모호한) 민생안정 그리고 ‘철통같은 한미동맹’ 등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미국에의 예속관계는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이고, 북과의 적대관계를 근본적으로 풀지 않겠다는 것이며, 윤석열 정권을 파탄으로 몰고 간 자해적 결정의 흐름도 바꾸지 않겠다는, 우회적이지만 명백한 선언인 셈이다.
미국의 압력을 받아서인지 초보적인 정도에서의 변혁의지도 희박하니 이재명은 이제 여당 야당의 구분도 없다며 내란수괴의 정당 국힘당과의 협치를 제안하고 있다. 이 혼란한 와중에서 유력한 야당 지도자인 그의 일성(一聲)이 그러했다.
조짐을 보면 나중을 알 수 있다. 지금의 위기가 체제 그 자체에서 기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존체제 그 범위 내에서 문제를 풀어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핵심은 건드리지 않고 수박의 겉만 핥고 있다. 임기응변, 조삼모사의 속임수 같다. 싹수가 노래 보인다.
문제는 분명히 이 나라의 기존체제 차원에서 온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 제도정치권에서도, 광장에 나와 촛불이 승리했다고 환호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서도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 즉 미국에 대한 예속의 탈피, 이 나라 극단적인 불평등의 해결, 통일을 지향하는 입장에서의 대북관계의 개선…등을 추구하는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 길 없는 민주주의’의 회복, ‘(이조차도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국힘당 내란세력의 척결’을 넘어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굴욕적 한미동맹의 예속을 끊고 자주권을 확보하여 미국 같은 대국에 휘둘리지 않고 제 나라 민초들 위한 정치를 행하는, 진정으로 독립된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자, 농민, 영세자영업 등 대다수 민초들의 권익을 억누르고 오로지 가진 자들, 재벌들을 돕고 돈을 추구해 온 정치를 바꿔내야만 한다. 왜? 그것들을 못해서 지금 이 사달이 났으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헌법보다 국가보안법이 불가침의 신성영역으로 군림하는 이곳에서 그런 지향은 금기로 봉인된 저 너머 영역에 있다. 하지만 넘어서지 말라고 금 그어진 그 너머 영역에 들어서야 우리는 비로소 결정적인 시대 상황마다 여러 얼굴로 제 모순 드러내며 완고하고 교묘하게 온존되어 온 핵심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준비 정도와 무관하게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객관적인 상황은 그걸 말해주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문제를 핵심으로 틀어쥐고 돌파해 나갈 수 있다면 비록 과정은 힘들고 고통스럽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비약적 발전을 향한 첫 발자욱을 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이번에도 똑같이 그 한계를 돌파해내지 못 한다면, 지난번 촛불이 그랬던 것처럼, 이번 촛불 또한 죽 쒀서 개 주는 꼴로 되어 우리들 향후 삶은 더 고달파질 것이고 정치에 대한 환멸과 실망은 더욱더 깊어질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아직까지는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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