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윤석열 쿠데타의 동조자인가?: 미국이 쿠데타 세력들을 비호했다는 합리적 의심과 역사 및 국제정치적인 맥락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2024년 12월 30일 오후 10시 30분 나는 너무나도 충격을 받았다. 페이스북을 켰을 때 ‘계엄’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나는 과거 한국 현대사에 대해 얘기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고, 정말로 윤석열이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그날 나는 새벽 3시까지 잠을 자지 않으며 상황을 집에서 지켜봤다. 마음 같아선 현장에 가고 싶었지만, 교통이 끊긴 상황이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한 이틀 정도는 깊게 생각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과연 미국이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관여가 없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난 2023년 이맘때쯤 한국에서는 전두환의 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하여 1,300만 명이나 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오보람, “”영화관서 재개봉하라”…계엄선포·해제에 ‘서울의 봄’ 재조명”, 연합뉴스, 2024.12.04., <https://www.yna.co.kr/view/AKR20241204124500005?input=1195m>.) 그 당시 나는 이 영화를 보며 미국이 이 사건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을까부터 의심을 했다. 왜냐하면 한국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에 항상 미국이 개입했기 때문이며, 제임스 하우스만(James H. Hausman)과 같은 인물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마다 음지에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번 계엄령에서도 특수부대가 투입됐고, 군 헬기와 장갑차가 출동했다. 1961년 5.16 쿠데타 당시나 1979년 12.12 쿠데타 당시와 유사할 정도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전시 작전권이 미국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다 한국은 평시에도 대규모의 병력을 독자적으로 미국의 허가 없이 동원할 수 있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미국이 이 사건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느껴진다. 거기다 현재 한국에는 3만 명 가까이나 되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100대 이상의 전투기와 또 다른 100대 이상의 헬기 그리고 400배 가까이 되는 전차 및 장갑차가 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규모 미군 병력이 주둔하며 전시작전권도 타국에게 있는 나라에서 대규모 군대가 서울로 이동했음에도 미국이 전혀 모른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의심해 보았을 때 말이 안되는 얘기다. 그런데도 12월 4일 아침 미국 백악관 대변인이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 계획에 대해 사전에 전해 들었냐는 질문에 “듣지 못했다”는 언급만 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질 않는다.(김재용, “미국 국무부 “계엄 계획 미리 듣지 못해‥중대한 우려””, MBC 뉴스, 2024.12.04., <https://imnews.imbc.com/replay/2024/nwtoday/article/6662967_36523.html>.)
그렇다면 내가 미국의 이와 같은 발표를 하나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고, 그 근거는 무엇일까? 따라서 나는 이 부분을 역사적인 맥락에서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의 냉전에서 수많은 나라에 군 기지를 건설했고, 타국에 대한 체제전복 행위를 무수히 많이 자행해 왔다. 미국은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다면 그 나라의 민주주의 같은 건 전혀 신경쓰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지금부터 미국이 과거 냉전시기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지 그 예시를 설명하겠다.
우선 라틴아메리카의 과테말라의 사례를 보고자 한다. 1951년 3월 과테말라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대통령인 하코보 아르벤스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아르벤스 정권은 토지개혁을 추진했고, 대규모 국유화에도 착수했다.(노엄 촘스키, 김보경 옮김,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한울, 1996, 81쪽.) 이와 같은 조치는 당연히 연합과일 회사와 같은 미국 기업들의 경제적 손실을 야기할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은 과테말라에서 CIA를 이용하여 1954년 아르벤스를 축출하는 쿠데타를 일으켰다.(비자이 프라샤드, 심태은 옮김, 『워싱턴 불렛』, 두 번째 테제, 2022, 85쪽.) 그 결과 아르벤스는 1954년 6월 27일 사퇴하게 되었으며, 그는 “앞으로 20년간 피로 얼룩진 파시스트 독재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의 예측은 빗나갔다. 왜냐하면 과테말라에서 파시스트 친미 우익 독재는 1996년까지 지속되어 40년을 넘겼기 때문이다. 미국이 지원한 과테말라 우익 정권은 마야 원주민 마을에서 저지른 626건의 대량학살사건을 포함하여 30년 동안의 내전에서 총 20만 명을 학살했다.(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이광일 옮김,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 – 존슨에서 오바마까지』, 들녘, 2015, 168~169쪽.)
아프리카에서도 미국은 그러한 짓을 벌여왔다. 대표적으로 콩고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벨기에의 식민지로 레오파르트 황제 통치기 2,000만 명이 학살당하며 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콩고는 1959년 독립을 쟁취했다. 놀랍게도 그 당시 벨기에는 콩고가 독립하기 1년 전인 1958년에도 콩고인을 데려다가 인간동물원을 전시했었다.(김상일, “‘인간동물원’을 보면 ‘우리’가 보인다”, 통일뉴스, 2018.10.26.,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6671>.) 콩고는 독립운동가 파트리스 루뭄바(Patrice Lumumba)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친 끝에 독립에 성공했다. 그러나 독립 후 루뭄바의 콩고는 친벨기에 세력의 개입에 직면했고, 이에 맞서 소련에 도움을 요청하자 미국은 벨기에 세력과 합작하여 루뭄바를 암살하고 과거 벨기에에 협력한 세세 세코 모부투를 내세워 30여 년 동안 독재통치를 하도록 도왔다.(노경덕, 『사료로 읽는 서양사 5 현대편 – 제국주의에서 세계화까지』, 책과함께, 2022, 331~332쪽)
중동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란의 사례를 보자. 미국은 이란의 총리였던 모하메드 모사데크(Mohammad Mossadegh)는 영국 이란 석유회사의 석유 독점권을 박탈하고자 했다. 그 당시 이란 주재 미국 대사의 보고에 따르면, “모사데크는 이 나라 국민 95~98%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CIA는 이른바 1953년 ‘에이잭스 작전(Operation Ajax)’을 실행하여, 영국의 정보기관 MI6와 합작한 다음 모사데크 정권을 축출하고 그 자리에 부패하고 잔혹한 왕인 팔레비 샤를 내세워 25년간 독재통치를 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미국은 팔레비 샤가 이끄는 비밀경찰인 사바크(SAVAK)를 전폭적으로 지원했고, 쿠데타 성공 2주 만에 미국은 샤에게 긴급원조 6,800만 달러를 제공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1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이게 바로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나가던 시기에 미국이 이란에서 벌인 행위였다.
미국은 대규모 제노사이드 정권도 지원했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가 그렇다. 미국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운동가이자 지도자인 수카르노가 제3세계 노선을 선택한 이후 반미노선을 추구하자 그를 권좌에서 축출했다. 미국의 CIA는 수하르토 군부세력에게 거금을 들여 1965년에 쿠데타를 지원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수하르토 친미세력들은 학생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을 가려내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공산주의자로 규정된 사람들은 즉석에서 가족과 함께 전부 총살했다. 학살은 1969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인도네시아 공산당 추종자로 선발된 사람 3,500명을 쇠막대기로 목을 치는 방법으로 살해당하기도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의 경우 섬 인구 200만 명 중 10~20만 명이 상상할 수 없는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당했으며, 인도네시아 대학살 기간 동안 총 100~300만 명이 학살당했다.(김남기, “미국이 지원한 인도네시아 대학살”,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1.12.02., <https://mlkorea.org/v3/?p=11033>.)
미국은 민주적인 선거로 집권해도 혹은 친미독재정권을 세워도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된다면 제거해버리는 모습을 냉전 시기에 보여왔다. 라틴아메리카의 칠레의 예시를 들겠다. 1970년 9월 칠레에서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자가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라 불리는 사회주의 성향의 대통령은 그 당시 미국이 독점하고 있던 케니코트와 아나콘다 그리고 세로광업(Cerro Mining)을 국유화했고, “칠레 경제 수출의 80%가 소수 외국계 거대기업의 손에 들어가 있으며, 이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줬다.(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 “앞의 책”, 2015, 77~84쪽.) 아옌데는 진보적인 개혁으로 연평균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을 8% 이상 상승시켰고, 물가인상률은 37%에서 15% 이하로 인하했으며, 8.3%에 달했던 실업률도 4.8%로 감소시켰다.(빅터 피게로아, 정인환 옮김, 『살바도르 아옌데 – 혁명적 민주주의자』, 서해문집, 2016, 193~194쪽.)
미국에게 있어 아옌데가 민주적인 통치를 통해 민중들에게 대대적인 지지를 받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미국은 1960년대에도 아옌데에 맞서 칠레의 친미 우익 정치인을 선거에서 지원해왔고, 1970년 아옌데가 집권한 시점부터 칠레 경제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작에 착수했다. 그렇게 했음에도 아옌데가 대대적인 지지를 받자, 1973년에는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지원하여 쿠데타를 사주했다. 아옌데는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에서 AK-47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가 자결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칠레에서는 피노체트 독재가 실행되어 17년의 군사독재가 진행됐다.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한 피노체트 정권에서 무려 3~6만 명의 칠레인이 군사독재에서 학살당했고, 수십만 명의 칠레인이 강제 망명길에 올라야 했다. 칠레의 유명한 좌파 시인 파블로 네루다도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도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목숨을 잃었다.(김남기, “두 개의 9.11 2001년 9.11테러와 1973년 칠레에서의 9.11”,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23.09.11., <https://mlkorea.org/v3/?p=14164>.)
놀랍게도 미국은 자신들에게 전적으로 충성해도 자신들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제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적으로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국이 후원한 꼭두각시인 응오딘지엠(Ngo Dinh Diem)이 그러했다.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 이후 제네바 회담에 따라 베트남은 북위 17도선을 기점으로 남북 분단이 됐다. 그 당시 베트남 북부에는 디엔비엔푸 전투를 승리로 이끈 지도자 호찌민(Ho Chi Minh)이 정부를 이끌었다. 이 당시 미국은 베트남 남부에 반공민족주의적인 인물인 응오딘지엠을 내세웠다. 응오딘지엠은 미국 스스로가 평가를 내린 바와 같이 미국의 창조물이었고, 그가 다스리던 남베트남이라는 국가 또한 마찬가지였다.([Part IV. B. 1.] Evolution of the War. Counterinsurgency: The Kennedy Commitments and Programs, 1961, p.43~44) 응오딘지엠은 가족정치와 독재정치를 펼치며, 과거 베트남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세력들을 빨갱이로 몰아 탄압하고 학살했다. 제네바 회담 이후 응오딘지엠은 집권 기간 동안 베트남 남부에서 노동당 당원 90%를 제거했고, 최소 7만 명의 인명을 학살했으며 100만 명을 투옥하고 20만 명을 잔혹한 고문으로 영구 장애로 만들었다.(줄리아 로벨, 심규호 옮김, 『마오주의 – 전 세계를 휩쓴 역사』, 유월서가, 2024, 341쪽.)
그러나 1963년 틱광둑(Thich Quang Duc) 승려의 분신자살과 그로 인한 불교도들의 시위 그리고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의 해방구 건설 등 응오딘지엠 정권은 아무런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응오딘지엠 정권이 더 이상 국정을 이끌어갈 능력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미국은 CIA를 동원하여 1963년 11월 쿠데타를 일으켜 응오딘지엠을 암살했다. 이후 즈엉반민 정부를 세웠지만, 응우옌카인이 쿠데타로 집권하자 미국은 또 다시 새로운 쿠데타 세력을 지지했다. 응오딘지엠 암살 이후 10번의 쿠데타가 있었는데, 1965년 응우옌반티우(Nguyen Van Thieu)가 집권하자, 미국은 당연히 부패한 프랑스 식민지군 출신의 군부 세력들을 지원했다. 그리고 그 세력들은 독재정치를 펼쳤고 미국의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았다. 또한, 자국민 수십만 명을 감옥에다 가두고 고문했으며, 미국과 협력하여 수백만 명의 인명을 죽였다.
그렇다면 이런 미국의 비민주적인 행태가 한국에서는 없었을까? 이것은 한국 현대사를 공부해보면 확인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도 미국은 부패한 독재자들을 지원해왔다. 1948년 제주 4.3 항쟁과 여순항쟁을 진압한 이승만 정권은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탄생했다. 그 당시 이승만 세력은 한국전쟁 시기 국민 보도연맹 학살을 포함한 각종 민간인 학살을 벌여 100만 명의 양민을 학살했다.(김삼웅, 『독부 이승만 평전』, 책보세, 2012, 260쪽.) 이승만은 1952년 부산정치파동을 통해, 전시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최전선에서 인민군과 대치중이던 전투부대까지 후방으로 빼내어 자신의 독재정치를 연장했다. 즉, 미국은 이런 이승만이 1960년 4.19 혁명으로 물러날 때 까지 지원했다. 이승만 이후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통해 집권하자 미국은 박정희 세력이 반공을 제1의 국시로 내세운다는 것을 알고 이 세력을 지지했다. 즉, 박정희 독재정권을 지원해준 것은 미국이었다.
전두환 정권도 마찬가지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고, 미국은 신군부를 인정했다. 거기다 1980년에 일어난 광주민주화운동을 신군부가 진압하는데 각별한 도움을 줬다. 그 당시 미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다.(김철원, “[단독][다시, 체로키파일을 열다] 2편-체로키 파일, 무엇인가?”, 광주 MBC, 2024.05.15., <https://kjmbc.co.kr/NewsArticle/1410482>.) 즉, 미국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가 어떤 행동을 하든지 이를 지켜보고 있었고, 최종적으로 신군부의 잔혹한 진압에도 불구하고 그 정권을 승인하고 지원해줬다. 사실 광주민주화운동은 어떻게 보자면 한국에서의 반미주의 운동에도 큰 영향을 준 사건이었다. 아무튼 정리하자면, 미국은 광주에서 2,000명을 학살한 전두환 정권을 승인하고 인정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역사적으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를 확인해봤다. 미국은 자신들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되면 제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도움이 될 것 같으면 그 정권이 비민주적이더라도 항상 승인했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미국의 실체를 잘 모르고 있기에 이런 사실을 아는 한국인들은 극히 드물다. 나는 이번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사태를 보면서 미국이 윤석열의 계엄을 비밀리에 지원해줬을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미국이 이를 지원했다는 명확한 증거자료는 없으나, 지금까지 과거에 미국이 해왔던 일들을 보면 그런 의심은 앞으로도 계속 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12월 5일 한신대학교의 이해영 교수의 페이스북 게시글인 “<12.3 친위쿠데타와 미국 혹은 네오콘>”을 읽었다. 이해영 교수의 글에 따르면, “이런 궁정형 친위쿠데타가 친러, 친중국국가에서 일어났다면 ’자유와 민주에 대한 중대한 도전‘, ’강력한 제재‘, ’즉각 원상회복‘ 등의 온갖 멘트가 나올 장면”이라고 한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프리고진의 1일천하 반기가 어떻게 미화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부분에서 이해영 교수의 주장은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하다못해 그 당시 한국의 한겨레 기사 제목을 보면, 제목이 “탱크 위 인증샷까지…러시아 군중 환호 속 철수하는 프리고진”이다.(김미향, “탱크 위 인증샷까지…러시아 군중 환호 속 철수하는 프리고진”, 한겨례, 2023.06.26.,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1097343.html>.) 이 당시 서구 언론이 대대적으로 홍보한 프리고진의 반기의 결과는 1일천하였으며, 오히려 러시아의 전쟁수행 능력은 더 강화됐다.
현재 미국과 서방은 우크라이나에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벌이며 애꿎은 인명만 희생시키고 있다. 참고로 현재 미국 민주당에 포진되어 있는 네오콘 세력들은 트럼프와는 달리 국익 보다는 이념을 내세우는 집단이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특대형 전범인 딕 체니가 카말라 해리스를 지지한 것만 보더라도 현재 미국 민주당의 성격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네오콘 전범들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패망한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켰고, 2023년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을 일으켰다. 거기다 조 바이든 집권 말기인 현재(2024년 12월 8일) 민주당 네오콘 세력들은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전복시켰다. 이런 일련의 국제정세는 결코 한반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며 이해영 교수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다만 이해영 교수는 영국 보수당 네오콘인 폴포드가 주장한 것처럼 이번 내란이 반중성향인 이재명을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목표로 감행됐다고 주장하는데는 이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촉발하기 위한 것인지 어떤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이번 계엄에 대해 미국이 어떠한 형태로든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이유는 현재 국제정세와 떼놓을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계엄 사태를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1980년 광주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윤석열 정권에 맞서 민중이 궐기한 상태다. 지금 이 순간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 없다. 당연히 민중들과 함께 거리에서 투쟁해야 한다. 그리고 윤석열 정권의 제2차 계엄을 막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미국이 절대로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나라가 아님을 폭로해야 한다. 이번에 운동이 커지면서 그러한 모순이 앞으로 더 드러날 것이다.
따라서 내가 이런 글을 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미제국주의자들에 대한 환상을 단호히 버리고, 거리에서 투쟁으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미국이 세계적으로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권을 무너뜨린 실체도 낱낱이 폭로해야 한다. 세계는 이제 다극화의 시대다. 무너져 가는 미국식 일극 제국주의 패권의 편이 아닌 각국이 주체가 되는 다극화의 편에 서자. 현재는 그게 바로 촛불을 들고 일극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윤석열과 국민의힘을 몰아내는 것이다.
작금의 현 과제를 인식하고 투쟁의 대오에 나서자!
나가자 투쟁의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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