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더더욱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시인 30주년 통일예술제에서
혁명과 통일이라는 말이 사라진 시대에 김남주 시인의 혁명성을 기리는 이 자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뜻깊게 생각됩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고 좋아하는 김남주 시인과 시를 기념하기 위한 자리에서 발언할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한강 시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으로 언론과 사람들이 온통 그 시인과 작품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게 된 점이 자랑스럽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은 광주학살의 역사적 문제와 개인의 상처, 고통을 다룬 훌륭한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노벨문학상이 때로는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군도 같은 반공작품을 썼던 솔제니친 같은 인물들에게도 상을 부여한 것을 보면 이 상이 대개 얼마나 서방제국주의의 눈과 입장으로 문학을 평가하고 재단하는지 그 정치적 한계가 분명하다 알 수 있겠습니다.
이 점에서 체르니셰프스키나 고리키, 루쉰, 네루다 같이 진보적이고 국제적으로 저명한 인물들을 그리는 문학상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첫 수상자는 김남주 시인이 될 것이라 봅니다.
아니 반대로 주체적 우리 민족의 관점에 입각해서 김남주 시인의 삶의 치열함이나 시적 성취를 보면 바로 다른 누구도 아닌 세계 김남주시인상이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인류의 진보와 평화에 복무해온 저명한 국제적 진보 문예인사들에게 이 상을 수여해야 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가 위대한 것은 가장 뛰어난 계급성과 가장 탁월한 예술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학작품이 계급성은 있되 예술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것은 정치선전글이라 할 수는 있으나 뛰어난 문학작품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예술성은 높으나 계급성이 허약하다면 그것은 좀 심하게 표현하면 언어유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입니다.
김남주 시인의 계급성은 계급문학에서 흔히 결여되어 있는 민족성이 결합되어 진정한 애국주의적 혁명성으로 꽃을 피우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합니다.
더욱이 잘 아다시피 김남주 시인은 가장 실천적인 시인이었습니다. 가장 고통 받는 한 인간이 감시와 통제, 집필기구조차 주어지지 않는 세계 감옥사에서도 유례 없는 가장 열악한 집필조건에서 위대한 혁명적 작품을 피토하듯 쏟아냈습니다.
김남주 시인의 시는 분단된 조국, 반공주의 자본착취 체제에서 당대 최고의 사상의 거처였고 진리의 등불이었습니다.
김남주시인은 “사상의 거처는 상아탑의 서재가 아니라, 먹물로 그리는 현학의 미로가 아니라 노동의 대지이고 거리와 광장의 인파” 같은 인민대중의 삶과 투쟁 속에 있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잡화상들이 판을 치는 자본의 시장에서 사상은 그 저울이 계급의 눈금을 가져야 적과
동지를 바르게 식별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시인은 당대 최고의 사상의 거처라고 했는데, 세상은 수다한 변화를 했지만 여전히 분단ㆍ착취체제, 미제국주의 지배체제라는 점은 불변하기에 지금도 여전합니다.
남북관계가 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의 대북 적대정책과 전쟁 획책으로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되었다고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인의 외침과 열망이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까?
남과 북이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되었다고 “조국은 하나다”는 열망과 염원이 사라지는 것입니까?
민족은 실존하는 것입니다. 실존하는 민족이 외세와 그 추종자들에 의해 강제로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전환되어 오늘날 전쟁의 참화가 우리를 짓누르고 반공주의가 이 땅의 진보와 민주를 압살하고 참된 자유와 해방을 질식시키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전히, 더더욱 “조국은 하나다”는 가장 진보적인 시대정신입니다.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모르게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또한 쓰리라
인간이 세워 놓은 모든 벽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남인지 북인지 분간 못하는 바보의 벽 위에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좌충우돌하다가 내빼는 망명의 벽 위에
자기기만이고 자기환상일 뿐
있지도 않은 제3의 벽 위에
체념의 벽 의문의 벽 거부의 벽 위에 쓰리라
조국은 하나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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