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을 통해 현대사를 배우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일까?
김남기(《반공주의가 왜곡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최근 들어 황정민ㆍ정우성ㆍ이성민 등이 출연한 영화 ‘서울의 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영화 예매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재 800만 돌파를 앞두고 있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워낙 재밌어서 두 번이나 봤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끼는 몰입력은 압도적이다. 영화는 쉴 틈 없이 박정희 사살사건부터 12.12쿠데타의 성공까지를 빠른 속도로 다룬다. 물론 그 과정에서 쿠데타의 주범이자 5.18 학살의 장본인인 전두환과 하나회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하며, 반면에 이에 맞섰던 장태완에 대해선 고평가한다.
12.12 쿠데타는 암울한 우리 역사다. 헌법을 유린한 대가로 정권을 잡은 이들이 호의호식하며 지금까지도 큰 처벌을 받지 못한 채 살아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거기다 이들은 80년 서울의 봄을 진압했고, 광주는 말 그대로 학살현장이 됐다. 따라서 우리역사의 또 다른 암울한 진실이다.
사실 남한의 역사는 첫 단추부터 오류투성이였다. 독립운동가들은 외면 받고, 이승만과 미국에 결탁한 친일파들과 부패한 이들은 ‘반공’이라는 포장 속에 영웅화됐고, 재벌이 됐으며, 정치인이 됐다. 그리고 이들에게 충성하는 이들이 세대를 거쳐 형성된다.
12.12를 일으킨 하나회 또한 마찬가지다. 이들은 박정희의 권력욕에 의해 만들어진 군내의 사조직이었고, 이들은 5.16과 같은 쿠데타를 단행했다. 이들이 목적은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일신의 영달이었다. 그들은 친미와 반공 속에 그 목적을 숨긴 채 호의호식했다. 참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역사다. 영화에서도 이들이 12.12 쿠데타를 성공시키고 난 이후, 전두환 집권기 어디까지 출세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 군대의 주요 보직과 안기부, 한미연합사령관, 국회의원 등 12.12 쿠데타 세력들은 말 그대로 출세 가도를 달렸다.
즉, 영화는 이들이 헌법을 유린했고 광주를 피로 물들였음에도 정당한 처벌 없이 호의호식했음을 보여준다. 그게 영화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12.12 쿠데타는 제5공화국이라는 MBC 드라마로 다룬 적이 있지만, 사실상 다큐 형식이라 대중들에게 큰 호소력은 없었다. 오히려, 12.12 쿠데타 시기 수도경비사령관으로써 쿠데타에 저항한 장태완을 연기한 배우의 대사가 인터넷상에서 “야이 반란군 놈의 XX야! 니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내가 지금 전차를 몰고 가서 네놈들의 머리통을 다 날려버리겠어!”로 패러디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번에 제작된 영화는 다르다. 특히나 내 또래인 20~30대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웠다고 하는 이들이 많이 생겼다. 그런 기대에 힘입어, 12월 말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만큼 영화가 큰 호소력을 가진 셈이다. 나는 이게 나쁘다고 생각지 않는다. 이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알고자 하는 이들이 분명히 생기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영화를 통해 역사를 배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물론 영화에도 역사왜곡 등이 들어간다. 그러나 이번에 나오는 주장들 중 대다수는 영화의 왜곡을 넘어 좌편향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은 전두환을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게 싫은 것 같다. 이들에게 있어 황정민이 연기한 전두광은 12.12 자유민주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5.18에서 북한군 빨갱이 폭도들을 진압한 구국의 영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전두환 까는 영화는 나쁘고 영화로 역사를 배우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영화 ‘서울의 봄’은 생각보다 고증을 살린 영화다. 물론 마지막 장면의 경우 영화적 각색이 있는 건 맞다. 그러나 대체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영화는 보는 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12.12 쿠데타가 전개된 9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아주 긴장감 있게 빠르고 정확하게 진행 및 설명했다.
거기다, ‘서울의 봄’에 대해 좌편향을 주장하며 폄하하는 이들 중 2016년 박근혜 시절 개봉했던 이정재의 메탈슬러그(주인공 캐릭터가 앞으로 전진 및 총을 쏘면서 적군 병사를 몰살하는 게임이다. 게임상에서 심지어 탱크도 파괴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영화에선 주인공 이정재가 정말 그렇게 했다.) 영화인 인천상륙작전을 반공 역사영화라며 홍보하던 이들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말 안 되는 연출이 넘쳐나는 인천상륙작전을 올바른 역사영화라며 국가 및 정권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건 괜찮고, 최대한 현실고증을 살린 서울의 봄은 안 되는가?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해 좌편향이니 뭐니 하는 건 웃기는 일이다. 나는 ‘서울의 봄’이 잘 만든 영화라 생각한다. 그래서 영화를 두 번이나 감상했다. 영화 ‘헌트’가 지나친 픽션을 가미한 영화고, ‘오펜하이머’가 지나친 인물전기적 서사로 지루하다면, ‘서울의 봄’은 그 두 영화의 한계를 최대한 극복해냈다. 그 점에서 이 영화가 고평가 받을만한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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