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엔베르 호자 시절 알바니아의 삶과 일상

역자: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역주: 이 글은 유튜브에 있는 영상 “Albania Under Enver Hoxha (1982) NRK Documentary”를 번역한 글입니다. 다큐멘터리의 본 제목은 ‘알바니아는 지금도 독자 노선을 걷고 있다(ALBANIA GAR FORTSATT SIN EGEN VEI(노르웨이어), Albania is still going down its own path)’로 1982년 노르웨이의 공영 방송국인 노르웨이 방송 협회(Norsk rikskringkasting)에서 알바니아에 대해 짧게 만든 다큐멘터리입니다. 다큐멘터리는 사회주의 시절 알바니아의 삶과 인민들의 일상을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다뤘습니다. 영상은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PmHOfrGK0c&t=688s

 

나레이션: 농경지와 풍요로운 바다가 있는 그리스의 관광 섬 중 하나인 ‘코르푸(Corfu)’에서 알바니아 해까지, 즉 과거 모든 동맹국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폐쇄된 나라 알바니아는 결코 멀지 않다.

나레이션: 알바니아의 울퉁불퉁하며 평탄하지 않은 자연을 경작하며 가꾸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힘든 일이었다. 농사 도구나 장비는 항상 구식이었으며 현재도 그러하다. 이와 같은 부분들은 알바니아의 많은 분야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 중 하나다.

나레이션: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알바니아는 마치 시간이 멈춰있는 것만 같다.

나레이션: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알바니아의 마을과 주변에 둘러싸인 자연환경은 수십 년 동안이나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나레이션: 그리스와의 국경지대 근처에 있는 이 지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외국인이 발을 들여놓은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어를 주로 사용하는 소수민족이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자신들을 알바니아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나레이션: 이 맑스-레닌주의 국가에서 알바니아의 전통은 상당 부분 유지되고 있다. 알바니아의 민속춤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고, 이에 따라 마을에선 사람들이 춤 가지고 경쟁하며, 결승전은 수도 티라나에서 열린다.

나레이션: 그러나 알바니아의 많은 것들이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이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일부 모습일 뿐이다. 알바니아는 세계역사상 독특한 사회주의 혁명을 겪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알바니아인 10명 중 7명이 무슬림 신자였다. 물론 현재까지도 수많은 모스크(무슬림 사원)가 종종 보인다. 그러나 포교활동은 알바니아에서 더 이상 허용되지 않으며, 모스크들은 국영상점이나 박물관으로 전환됐다.

나레이션: 알바니아 교회 또한 모스크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알바니아 사회는 기독교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믿는 신 또한 추방됐으며, 알바니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순도 높은 무교 국가다.

나레이션: 더 이상 종교적으로 이용 가치가 없는 교회건물 밖에선 스포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알바니아에선 반 종교 및 무신론 정책이 젊은 세대들뿐만 아니라 대다수 알바니아인들에게 압도적으로 지지받는 것으로 보인다.

나레이션: 정부의 국가방위 및 안보 정책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 또한 사실인 것 같다. 알바니아에선 사격이 국가적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특히나 젊은 세대들이 사격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알바니아 여성(사격장에서 사격을 즐긴 것으로 추정): 사격은 우리 조국을 방어하고 인민을 수호하기 위해 중요합니다. 알바니아는 그 어떠한 나라도 침략한 적이 없습니다. 저는 사격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 사격 대회에서도 저는 제법 괜찮은 성과를 달성했죠.

나레이션: “우리 모두가 조국을 지키는 혁명 전사들이다!”가 현재 알바니아의 국가적 구호이자 좌우명이다.

나레이션: 국가가 비상 동원령을 내린지 몇 시간 안에 대다수 인민들이 손에 총을 쥐게 된다고 한다.

나레이션: 사회주의 알바니아에서 일생을 자란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고 지금도 듣고 있다: “적들의 침략에 맞선 방어전에 대비하라. 단 전쟁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침착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나레이션: 알바니아 사회는 각계각층이 정치화 되어있다. 알바니아의 전 교과과정에 맑스-레닌주의 선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학생들은 몇몇 소수의 고전 문학가들의 저작을 알바니아 원어로 읽는 것이 허가되기는 하나, 대부분의 그런 저작들은 “우익반동의 작품” 혹은 반혁명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나레이션: 더욱이 정규 이론교육 과정에서 알바니아 학생들은 공업과 농업 현장에서 어떻게 노동하는지를 배운다.

나레이션: 학생들과 교사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인텔리겐치아(지식인 계층)도 최소 매년 1달에 한 번씩은 참호를 파거나 건설 작업이나 혹은 이와 비슷한 중노동에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

나레이션: 알바니아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알바니아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이와 같은 혁명적 실험의 중심지였다. 그 전에는 알바니아인 10명 중 8명이 문맹이었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알바니아인들을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 이와 함께 알바니아의 여성 인권도 사회주의 시절에 급격히 상승했다. 1938년 알바니아 전역에서 여성 노동자 668명 중 대부분은 하루 10시간 동안 형편없는 저임금을 받고 일했던 14-16세 연령대의 소녀들이었지만, 1967년에 이르러 24만 8천명 이상의 여성들이 남성들과 정확히 동등한 조건에서 생산 직종에 종사했다. 엔베르 호자는 1946년부터 낙태 합법화, 국영탁아소 건설 정책과 더불어 가사노동 분담을 위한 대대적인 문화혁명을 통하여 여권을 급격히 신장하였고, 이후에는 50% 할당을 목표로 국영기업체 할당제, 최고인민회의 할당제, 상급당(중앙위원회) 할당제 등을 적용하여 노동당 및 관직·기업에서 특정성별이 성별 헤게모니를 쥐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1985년에는 이미 주요 기관에서 여성 비율이 40%에 달할 정도로 유럽 최고 수준의 할당 상태였다. 여성 교육도 또한 증진시켜 1978년의 여성 고졸 이상 학력 보유자 수는 1958년에 비해 101.9배로 높아졌다.(역주)

사회주의 이전에는 부자와 빈민 사이의 극심한 차이가 있었지만, 현재 알바니아 사회에서 그런 안 좋은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사회주의 이전 시대를 경험한 노인들뿐이다.

나레이션: 알바니아가 많은 부분에서 전쟁 전에 비해 많이 발전했지만, 알바니아 사람들은 알바니아 외에 다른 나라에서 부가 어떻게 성장하고 축적되었는지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거나 그다지 관심이 없다. 다음 세대는 알바니아가 교육에서 공통적인 주제를 위해 올바른 사회주의 모델을 발견했다는 것을 아마 알게 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레이션: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는 서구사회와 비교했을 때, 다소 시간이 거꾸로 돌아갔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알바니아에서 자동차 개인소유가 금지된 이래로 알바니아에는 자동차가 많이 눈에 띠지 않게 됐다.

나레이션: 알바니아 시민들 대부분은 도보를 이용한다. 티라나의 거리는 퇴근 시간 전후로 걷는 사람들로 붐빈다.

나레이션: 티라나에 있는 국영상점에는 길게 늘어진 대기 줄도 없고 보편적인 소비재 부족 현상 같은 것도 없다. 알바니아의 소비자들은 10년 전처럼, 상품을 살 때 같은 가격을 지불한다. 알바니아에는 인플레이션도 없으며, 물가상승도 전혀 없다. 그러나 상품의 다양성 측면에서 다소 한정적이다. 물론 알바니아인들이 상품이 매년 다양해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숨기려 하지는 않는다. 알바니아 정부는 공식 정부 정책을 통해 수입 상품의 물가가 상승한다 하더라도, 이 상품들을 전과 같은 가격으로 살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나레이션: 국가의 경제성장 및 산업성장을 결정짓는 것은 노동 인구의 생산력이다. 알바니아의 생산성은 여전히 낮으며, 이와 관련한 대부분의 비난은 낙후된 기계를 향한다. 그러나 알바니아인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도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들의 산업은 여러 분야에서 잠재적인 경쟁력이 있다.

나레이션: 또한, 알바니아의 특정 상품에 대한 적절한 수요도 있다. 알바니아 산업은 가장 넓은 의미에서 결과를 낳는 것은 수요와 노동활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 다른 동유럽 국가로의 수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나레이션: 대부분의 알바니아 산업은 소련과 공산주의 중국의 도움과 원조를 받아 건설되었으며, 두 사회주의 강대국은 과거 알바니아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알바니아-소련 이념 갈등과 알바니아-중국 이념 갈등*으로 사이가 틀어지면서, 알바니아는 사실상 자력갱생에 의존해야 했다. 현재 알바니아는 심지어 소련과 중국 장비의 예비 부품도 만들고 있다.

* 알바니아는 1953년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가 스탈린 격하 운동을 진행하자, 이에 대해 수정주의라며 강력히 비판했다. 당시 같은 입장이던 중국의 모택동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나, 문화대혁명 이후 1970년대 초 중국이 소위 미국과의 데탕트 시절로 넘어가자, 이에 대해서도 모택동을 강력히 비판했다. 대표적으로 1972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중국을 방문하자 호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미제가 베트남뿐만 아닌 전 인도차이나에서 살육과 폭격을 일삼을 때 중국은 미제와 비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 수치스럽고 반맑스주의적이고 비동맹적인 협상은 우리 쪽은 물론이고 베트남인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었다. 이것은 스캔들이었다. 이것은 베트남, 그들의 전쟁, 우리, 그들의 동맹, 그리고 다른 모든 진보적인 인민에 대한 중국의 배신이었다. 역겹다.(역주)

나레이션: 노동현장의 알바니아 사람들은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기꺼이 표출하고자 하지만, 몇몇 말들의 경우 거듭 반복되곤 한다. 예를 들어, 자기결정권에 의한 낙태 문제를 한 알바니아 여성에게 질문하면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어느 알바니아 여성: 낙태는 우리 알바니아 전통에서는 행해지지 않는 행위입니다. 당은 우리 스스로 모든 아이들을 돌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혁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사회주의와 궁극적으로 공산주의를 건설해나갈 신세대가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어머니라면 건강 혹은 의학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전혀 원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 앞서 각주를 통해 설명했지만, 알바니아의 경우 낙태를 공식 금지한 적은 없다. 아니 오히려, 엔베르 호자 시절 초기에 낙태를 합법화했으며, 여권 신장이라는 측면에서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진보적인 정책들이 실시되었다. 따라서 차우셰스쿠의 루마니아와는 분명 다른 지점을 보인다.(역주)

나레이션: 알바니아인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생산량 증대이자 향후 정부의 5개년 계획이다. 이것이 바로 최소 우리 방송국 취재팀이 받은 알바니아의 인상이었다.

나레이션: 이제 알바니아인들은 자기 자신들의 노력에 전념하고 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근무시간이 길다하더라도 최근 알바니아의 발전 상황에 진심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레이션: 알바니아 여러 지역에 있는 주택들은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여전히 낙후됐다.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발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가가 모든 건물을 소유하고 있으며, 각 가정당 임대료를 낸다. 임대료는 한 달에 1일 급여 정도에 해당된다.

나레이션: 곧 아이까지 태어나 4명으로 늘어날 오스마니(Osmani) 가족의 부부는 대개 같은 급여를 받으며 집단 농장에서 함께 일하며 살고 있다. 이들은 방 두 개인 아파트에서 살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보자면 이는 알바니아 가정의 평균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아나(오스마니 가족의 부인 이름인 것 같다.)가 만삭일 때, 그녀는 평소 월급의 80%를 받게 된다. 아마 아이가 태어날 때 즈음엔 국가가 추가적으로 보너스 형식의 보조금을 지불해주며, 그 이후엔 새 생명이 태어난 것을 축하해주는 마을 축하행사(!)가 있을 것이다.

나레이션: 여가시간의 경우 알바니아인들은 자주 주변 이웃 단위로 파티 및 축제를 즐긴다. 알바니아인들의 삶의 즐거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 곳은 한 곳에 집중돼 있는 최근 알바니아에서 건설된 수많은 국영 호텔 중 한 곳이다. 한 직물 공장 대표자들이 다른 도시에 있는 동료들을 방문하고 있다. 이는 수고에 대한 감사의 표시다.

나레이션: 알바니아에는 휴일 손님들의 숙박을 위한 여러 개의 특별한 최신식 호텔이 있다. 그러나 평범한 알바니아인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휴가철에 해외여행을 갈 수 있다.*

* 한국에서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냉전 시절 사회주의 국가들의 인민들도 해외여행을 갈 수 있었으며,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동독의 경우 서독으로의 불법 이주가 많았기에 정부의 공식 허가 없이는 서독을 방문할 수 없었지만,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소련으로 연결되는 동유럽 지역의 나라들과 그리고 다른 공산권 국가들을 사실상 아무런 제한 없이 그리고 공평하고 값싸게 여행할 수 있었다. 소련 인민들 또한, 사회주의 국가들과 일부 제3세계 국가들을 정부의 특별한 제약 없이 여행했다.(역주)

어느 알바니아 남성: 이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엔지니어나 전문직으로서 해외로 파견되어 전문 지식을 교류할 수 있기 때문에 해외여행이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나레이션: 알바니아가 전문지식을 필요로 한다는 것은 알바니아 당국 또한 인정하는 부분이다. 또한 알바니아는 이전 보다 더 큰 차원에서 서방 국가들과도 전문지식을 교류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레이션: 알바니아는 상당한 양의 석유를 비축해두고 있다. 하지만 중유고, 많은 기름 생산지역에서는 닳고 노후한 흔적이 보인다. 알바니아 석유생산은 대략 매년 200만 매트릭 톤이며, 이는 불과 몇 년 전보다 훨씬 적은 양이다. 어떤 사람들은 유전(oil wells)이 거의 비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알바니아 노동당 공식 대변인은 알바니아가 장기간 자원을 활용하기를 원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분명한데, 왜냐하면 알바니아에서 석유자원이 사라지면 사태가 훨씬 나빠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레이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미래에 대한 인민들의 주된 관심사는 광물이나 자원에 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 대다수는 알바니아의 민중의 영웅이자 이데올로기적 지도자인 73살의 엔베르 호자의 권력을 누가 계승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알바니아 관중들: 엔베르 호자! 엔베르 호자!(를 외치고 있다.)

나레이션: 40여 년 동안 엔베르 호자는 알바니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지도자였다. 호자는 여러 면에서 알바니아의 전설적인 인물이자 유럽 사회주의의 등대로서 대표됐다. 엔베르 호자는 공식적으로 알바니아 노동당 정치국 제1비서다. 반면 호자의 반대파들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장기 집권하는 독재자이자, 냉혈하기 짝이 없는 과대망상증 환자로 부른다. 반대파들의 생각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알바니아에서 엔베르 호자는 대중들에게 가장 유명하고 지지를 받고 있다.*

* 엔베르 호자가 1980년대까지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던 이유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 공산당을 지도하며,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와 히틀러의 나치 독일에 맞서 반파시즘 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1939년부터 1944년까지 파시스트 군대가 알바니아에 주둔했는데, 무솔리니 정부는 호자의 빨치산 부대를 토벌하기 위해 10만이 넘는 병력을 알바니아에 배치했으며, 히틀러 또한 전차를 동원한 병력을 포함하여 총 3만 명 많게는 7만 명 가까이 병력을 배치했다. 호자의 빨치산 부대는 독일군 수천 명을 사살했고, 1944년 11월 끝내 독일군을 몰아냈으며, 수도 티라나를 해방했다.(역주) 

광장에 모인 알바니아 대중들: 엔베르 호자의 당! 우리는 항상 당의 호소를 따를 준비가 됐다!*

* 위와 같이 대중들이 외치며 시가행진을 한다.(역주) 

나레이션: 엔베르 호자는 아마도 이 나라에 접근할 수 없는 반대파나 정적들 사이에서는 인기가 많지 않을 것이다. 엔베르 호자는 지금까지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의 지도자 개인 우상숭배를 강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에 이 알바니아에서 열린 시가행진 퍼레이드와 예술적 표현 또한 약간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알바니아 노동당 대변인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입장을 우리에게 얘기했다.

알바니아 노동당 대변인: 엔베르 호자 동지와 우리 알바니아 노동당이 개인숭배(혹은 우상숭배)에 대해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는 총회와 여러 문서들을 통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엔베르 호자라는 지도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감정과 개인에 대한 우상숭배를 절대 혼동하지 않습니다.

나레이션: 우리 방송국 취재팀은 통역을 통해, 알바니아에서 엔베르 호자에 대한 입장과 의견이 나뉘는지? 정치적 반대파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반대파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는지? 정말로 알바니아에 4만 명 이상의 정치범이 수감된 것이 사실인지? 등에 대해 질문했고, 대변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바니아 노동당 대변인: 우린 노동 수용소의 존재를 목격한 외신 기자들의 방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4만 명의 정치범? 이건 정말 아닙니다. 숫자가 너무 뻥튀기 됐습니다.

노르웨이 취재팀: 그렇다면 정확한 숫자는 대략 얼마 정도인지?

알바니아 노동당 대변인: 이와 관련한 정보를 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한 숫자를 취재팀 분들이 어떻게 확보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터무니없는 수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얘기하고자 합니다. 정치범 숫자가 4만 명이라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지나치게 과장되었습니다.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주장들입니다. 그리고 왜 이렇게 큰 숫자가 나왔는지도 그 이유를 전혀 모르겠습니다.

나레이션: 공개적인 비판은 현재의 알바니아 사회에선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자보식 벽보는 예상외로 알바니아에서 잘 작동한다. 정부의 공지사항들은 도시 축구팀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지명된 사람들에 대한 보다 심각한 비난에 이르기까지 내용이 다양하다.

나레이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에 붙은 대자보에 두드러진 것은 불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노래의 후렴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다.

알바니아의 어느 노래: 알바니아 노동당의 위대한 지도력 아래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행복하게 살고 있다.

나레이션: 또한 행복한 어조만으로는 알바니아의 일상생활의 어두운 면을 잊기에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런 어두운 면들은 방문객들이나 일반 알바니아인들이 보통 볼 수는 없는 모습일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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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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