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첨예한 쟁점들3-1 통일전선의 빛나는 사례,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계급협조라 부정하는 교조·종파주의자들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영웅적인 반파시즘 투쟁에 대한 교조·종파주의적 인식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미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자들의 우크라이나를 앞세운 러시아에 대한 전쟁을 둘러싸고 국제공산주의 운동 진영 내에서는 파시즘, 파시즘의 수출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우크라이나에서 발흥하고 있는 파시즘을 부정하고 있다.

더구나 두 개의 결의안들이 상정되었다. 첫 번째의 것은 러시아 공산주의 노동자당, 러시아연방 공산당, 그리고 우크라이나 공산당에 의해 제안된 것이었으며, 러시아의 침략을 정당화하고 지지하고 있었으며, 자신의 열망들을 감추려는 러시아 부르주아지에 의해 활용된 “반파시스트”라는 구실을 재생산하고 있었다.(엘리세오스 바게나스(Eliseos Vagenas), 그리스 공산당: 제22차 공산당 노동자당 국제회의에서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대결과 “반러시아적인” 그리고 “친러시아적인” 감정에 대한 “속임수”, [정세와 노동] 제187호, 노동사회과학연구소 , 문영찬 번역 연구위원장)

과연 우크라이나에서 파시즘은 실존하는 현실이 아닌가? 단지 가상인가? 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침공을 정당화”하고 “지원”하기 위한 단지 “구실”에 불과한가?(여기서는 파시즘의 실존 여부를 다루려는 것이기 때문에 푸틴의 진짜 속내와 정치적 목표에 대한 논의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리스공산당이 이번 전쟁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발흥하고 있는 파시즘(신나치)과 반파시즘 투쟁에 대해 부정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스공산당은 반파시즘 통일전선의 빛나는 사례인 국제공산당(코민테른) 7차대회에 대해서도 ‘계급협조’라며 부정한다.

10. 공산주의 인터내셔날 제7차 대회(모쓰끄바, 1935년 7월 25일-8월 21일)에 앞서, 프랑스 공산당과 에스빠냐 공산당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날 집행위원회와 협의하여, 사회민주당들과의 협력을 요청했다. 결국, 이들 국가들에서의 인민 전선은 1936년에 공산당과 사회민주주의 및 기타 부르주아 정당과 기회주의 운동 사이의 정치적 협력의 한 형태로 구성되었으며, 자본주의적 권력에 도전하는(지) 않았던 정부에 참여하거나 또는 그 정부를 지지하였다.
제7차 대회는 다가오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성격을 제국주의적이라 규정했지만, 동시에 반파쑈 전선을 수립하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실제로, 제7차 대회는 반파쑈 정권의 출현을 노동자 권력으로의 이행의 한 형태로 본다고 결의하였다.
제7차 대회는 … 환상과 화해 정신을 불러일으켰고, 사회민주주의와 기회주의에 맞서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선의 혼란과 쇠퇴를 가져왔다 …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위한, 파씨즘에 맞선 투쟁과 외세 강점으로부터의 해방은, 자본에 맞선 투쟁과 분리되었다.(그리스 공산당 중앙위원회 성명, “공산주의 인터내셔날 100년”, 2019년 2월 26일, 번역, 노사과연, [정세와 노동], 2019년 10월 30일)

그리스공산당이 반파시즘 인민전선 투쟁을 ‘계급협조’라 규정하며 반대하는 것은 파시즘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거나 파시즘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트로츠키주의적인 종파주의에 빠져 계급 대 계급(노동자 계급 대 자본가계급의 대립) 노선만 주장하면서 통일전선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스공산당은 “환상과 화해 정신”을 조장하고, “사회민주주의와 기회주의에 맞서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선의 혼란과 쇠퇴를 가져왔다.”며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당의 레옹블롬 정부(당시 프랑스 공산당은 이 연립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보수당의 압력과 인민전선 내부 자유주의 급진당의 눈치를 보면서 ‘불간섭 정책’이라는 명목으로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에 대한 무기지원을 금지시켰다. 이에 대해 프랑스 공산당과 전투적인 노동자들은 강력하게 비판하고 싸웠다.
프랑스에서 레옹블롬 정부가 자국 노동자들과 스페인 인민전선을 배신하고 계급협조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하지만, 이를 근거로 프랑스에서의 반파시스트 투쟁을 부정하는 것은 극단적 분파주의이자 영웅적인 반파시즘 투쟁에 대한 역사왜곡이다.
당시 프랑스 노동자 인민은 대두하고 있는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격렬하게 투쟁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에 대해 반파시즘 공동투쟁을 제안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공산당의 4차례에 걸친 반파시즘 공동투쟁에 대해 사민당이 반대했던 것처럼, 처음에 사회당은 이 공동투쟁을 반대했다. 종파주의적 태도로 인해 사회당은 프랑스에서 노동운동과 반파시즘 투쟁이 고양되는 상황 속에서 1만 5,000명의 당원을 잃었고, 1934년 5월의 톨루즈 당대회에서는 대의원의 3분의 1 이상이 공동투쟁을 지지하는 사회당 내 좌파에 찬성했다. 이로 인해 ‘프랑스 사회당· 공산당 행동통일 협정’(1934년 7월 27일)이 체결되고 프랑스에서 대두하는 파시스트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1933년 독일에서 파시즘이 권력을 잡은 뒤 파죽지세로 파시즘의 어두운 기운이 국제적으로 확장됐다. 프랑스의 반파시즘 투쟁은 최종적인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더라도 1934년 2월 6일 의회정치를 전복하고 파쇼체제를 수립하려고 기도하는 파시스트들의 폭동을 분쇄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프랑스가 만약 파시스트들에게 장악 당하고 추축국의 일원이 됐다고 한다면 2차 대전에서 쏘련의 운명도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고 민족해방투쟁도 중대한 패배를 당하게 됐을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에서의 인민전선 투쟁은 200만 명이 참여하는 공장점거를 포함한 총파업을 통해 단체교섭권 보장, 2주 유급 휴가, 40시간 노동제, 은행 국유화 등의 사회개혁적 요구들을 쟁취했는데, 당시 투쟁의 성과가 프랑스 ‘복지 국가’의 바탕이 되었다.(이에 대해서는 “코민테른의 혁명적 전통에 대한 그리스공산당의 ‘좌익’ 분파주의적 견해 비판”, 전국노동자정치협회, 2019년 12월 16일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과 반파시즘 투쟁이 명운을 걸고 싸웠던 국제적 전선이었다.

1939년 콘도르 군단 퍼레이드에서 스페인 파시스트들을 영접하는 아돌프 히틀러

그리스공산당은 심지어 1936년 국제 제국주의자들의 지원 속에 반란을 일으켰던 프랑코 독재에 맞서 싸웠던 스페인 인민전선 투쟁과 그 정부도 “환상과 화해 정신”을 조장했던 ‘계급협조’로 극렬 비난하고 있다. 무정부주의자가 아닌 한,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와 노동자 인민의 투쟁을 대립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이는 파시즘에 맞서 영웅적으로 투쟁하다 산화했던 스페인 공산당원들과 노동자·인민들, 스페인 내전을 적극 지원했던 쏘련과 국제공산주의자들, 국제의용군에 결합하며 목숨 바쳐 싸웠던 광범위한 민주주의자들을 매도하는 극단적 종파주의다.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국제 공산주의 여단을 위한 깃발을 제작 중인 여성들

1937년 스페인 내전 기간 국제여단의 미국 링컨대대

영국 첩보기관에 동지들의 명단을 넘기고 정보원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악한 정치생활을 마감했던 조지 오웰을 비롯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당시에 인민전선을 ‘계급협조’라 부정하고 당시 농민들의 요구와 열망, 농촌의 발전수준을 넘어 무분별하게 집산화를 주장했다. 심지어는 인민전선 배후에서 ‘혁명’을 일으켜 사실상의 반혁명 책동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리스공산당은 스페인 인민전선에 대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같은 극단적 분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공산당이 반파쇼 인민전선을 부정하기 위해 대는 첫 번째 근거인 “사회민주주의와 기회주의”와의 투쟁을 이유로, 당시 사회당, 사회민주당 같은 정치세력들과의 통일전선을 부정하는 것은 파시즘과 전쟁에 반대하고 민주주의 열망에 사로잡혀 있는 광범위한 대중들, 특히 사회민주주의 세력들의 영향권에 있는 광범위한 노동자 인민들을 반파시즘 투쟁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방치하는 격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파시즘을 키워주고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선의 혼란과 쇠퇴”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스공산당이 반파쇼 인민전선을 부정하기 위해 대는 두 번째 근거인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위한, 파씨즘에 맞선 투쟁과 외세 강점으로부터의 해방은, 자본에 맞선 투쟁과 분리되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과도 맞지 않다.
침략자 독일 파시즘에 맞선 쏘비에트 권력과 인민들의 인류사 최대의 투쟁은 쏘비에트를 수호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동유럽 전반에서 인민민주주의 권력, 사회주의 권력을 가져왔다. 외세 강점에 맞서는 민족해방 투쟁 역시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 시켰고 이 역시 많은 국가에서 인민민주주의 권력, 사회주의 권력을 가져왔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은 순수 정신의 고안물이 아니라 선진적 노동자 인민의 열망의 표현

 

그리스공산당이 프랑스와 스페인에서의 인민전선 사례를 부정하는 것은 이 반파시즘 투쟁에 영향을 미쳤던 국제공산당 7차대회의 결정을 똑 같은 논리로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리스공산당은 코민테른 7차대회가 “사회민주주의 및 기타 부르주아 정당과 기회주의 운동 사이의 정치적 협력의 한 형태로 구성”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포기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투쟁으로 전락하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 7차대회의 반파시즘 통일전선은 파시즘과 정면대결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이행하는 형태를 찾는 혁명적 현실주의의 정수였다.

코민테른 7차대회 당시 의장이자 반파쇼 인민전선의 기초자였던 게오르기 디미트로프

레닌은 15년 전에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의 이행 혹은 접근의 형태를 찾아내는” 것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라고 우리에게 호소했다. 분명 통일전선정부는 일련의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행형태의 하나가 될 것이다. ‘좌익’ 공론가는 레닌의 이 지시를 언제나 회피해 왔다. 시야가 좁은 선전가들인 그들은 단지 ‘목적’에 관해 말할 뿐, ‘이행의 형태’ 등에는 결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익 기회주의자는 노동자 사이에 부르조아지의 독재로부터 프롤레타리아독재로 가는, 의회를 통한 평화로운 산보라는 환상을 퍼뜨리기 위해 이 두 개의 독재 사이에 특수한 민주주의적 중간단계를 설정하려 했다. 이 가공의 ‘중간단계’를 그들은 또한 ‘이행형태’라고도 부르면서 레닌까지 인용했다! 그러나 이 속임수를 폭로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혁명’에의, 즉 부르조아 독재 타도에의 이행과 접근의 형태에 관해 말했던 것이지 부르조아독재와 프롤레타리아독재 사이의 이행형태에 관해서는 전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왜 레닌은 프롤레타리아혁명에의 이행형태에 그처럼 유난히 큰 중요성을 두었던 것인가? 그것은 그가, 참으로 광범한 근로대중을 혁명적 전위쪽으로 끌어들이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권력획득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문제에 있어서는 대중에게 단순한 선전과 선동이 그들 자신의 정치적 경험을 대신할 수 없다는 법칙, 즉 모든 대혁명의 기본법칙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정치적(혹은 혁명적) 위기가 발생하면 공산당 지도부는 혁명적 봉기의 슬로건을 내세우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광범한 대중이 그들의 뒤를 따른다는 생각하는 것은 흔한 좌익식의 오류다.(디미트로프, “파시즘의 공세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임무”, 통일전선 연구 반파시즘 통일전선에 대하여, 거름)

그리스공산당이 트로츠키주의자들과 같은 ‘좌익 공론가’적 태도로, 종파주의적 태도로 반파시즘 인민전선과 코민테른 7차 대회 결정을 비웃고 있지만, 반파시즘 인민전선은 현실과 괴리된 공산주의자들의 정신적 고안물이 아니다. 인민전선은 파시즘에 맞서 총단결을 외치며 싸웠던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 인민의 열망과 요구에 기초해 있다. 인민전선은 현실의 과학적인 인식이고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혁명적인 대응물이다. 인민전선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가는 특수하고 역사적 조건에 맞는 투쟁이다.
이 인민전선은 파시즘이 대두한 나라에서, 식민지·반식민지 나라에서 각 나라의 혁명의 특수한 조건, 이행의 특수한 경로를 찾도록 하고 수많은 나라, 민족들이 승리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제공산당 7차대회에서 반파쇼 통일전선을 기초했던 드미트로프는 “우리는 어디에서든 자본주의와 싸우고 있다. 프랑스에서 이 투쟁을 훨씬 전진시켜야 한다. 자본주의는 단지 하나의 역사적, 경제적 범주가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계급, 인간, 은행 따위의 형태를 갖고 있다.”(디미트로프, “프랑스 문제에 대하여”, 1935년 5월 11일, 코민테른 자료선집 3, 동녘)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는 단지 하나의 추상적인 역사적, 경제적 범주가 아니다. 반파쇼 인민전선은 자본주의와의 투쟁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역사적 조건마다 취하는 구체적인, 각각의 특수한 형태, 공세에 맞서 생동감 있게 싸우는 것이다. 민주주의 부정, 민족자결 부정에 맞서 싸우는 투쟁도 자본주의의 특수한 형태, 공세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그리스공산당은 ‘좌익 분파주의’, 교조주의적 태도로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코민테른 6차 대회에서 “1.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의 즉각적인 이행이 가능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 2.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다소 빠른 이행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변혁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평균 수준의 자본주의 발전 국가들, 3. 프롤레타리아 독재로의 이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전화를 위한 전 기간을 필요로 하는 식민지 혹은 반식민지 국가들.”로 혁명의 단계 규정을 두는 것도 반대했다.
그리스공산당에게는 오직 계급 대 계급의 모순, 자본주의 대 프롤레타리아 독재밖에 없다. 혁명의 발전 ‘단계’, 조건, 순서, 경로를 부정하고 비약하여 오로지 궁극 목표만을 주장한다. 그리스공산당에게는 “국제 제국주의 체제에서의 각국의 위치의 상대적 변화와는 관계없이” 오직 순수 프롤레타리아 혁명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궁극 목표만 있다. 이 또한 전술이자 이행형태로서의 반파시즘 인민전선, 식민지·반식민지, 최근의 신식민지에서의 이행의 특수성, 이행의 조건을 부정하는 트로츠키주의의 전형적 정치적 입장이다.
우리사회에서 이러한 입장이 나타난다면, 분단의 특수한 조건, 미제국주의 진주라는 특수한 역사적 조건도 고려하지 않고 러시아식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궁극적 형태만을 추상적으로 추구하는 교조주의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민족끼리’도 “계급협조”이며 심지어 “범죄”라고 극단적으로 부정, 매도하고 그리스공산당의 입장을 무분별하게 번역, 소개하고 있는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식 좌익적 교조주의다.
그리스공산당은 쏘련 해체 전 페레스트로이카를 지지했던 우경 노선을 청산하고 그리스 내에서 투쟁을 선도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국제공산주의 운동을 주도하는 공산당 중 하나다. 그러나 과거 우경적 노선은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서 그 반대 극의 종파주의적인 좌경노선으로 변하면서 분파주의적 특성이 점점 더 부각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제국주의 포위라는 극단적 제약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의 특수한 조건, 혁명의 현실성, 난관을 부정하고 극단적이고 일방적인 규정으로 적대감을 표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종파주의적 입장으로 중국은 독점자본주의에 바탕을 둔 제국주의 국가이며, 쿠바는 “자본주의 관계의 지속적 강화”가 이뤄지는 시장 사회주의이며, 조선은 “자유경제지대”, “시장”을 추구하는 3대 족벌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스공산당은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 그와 대결하면서 각국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하고 있는 국가들에 대한 존중과 이해, 배려가 전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좌익교조주의적 입장으로는 그리스에서 혁명도 없다. 국제공산주의 운동에도 혼란과 분파주의, 기회주의 정신을 심을 따름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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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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