起承轉反資本主義
_ 이범주
1492년 10월 12일 스페인을 떠난 콜럼버스가 바하마 군도의 한 섬에 상륙했다. 여기에는 원주민 아라와크 족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에 대한 콜럼버스의 기록은 이러하다.
“원주민들은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할 정도로 너무나도 순진하고 재산관념이 없습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누군가가 달라고 하면 거절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어느 누구와도 나누어 가지려 합니다.” ([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 역사의 진실] 김남기 저 31쪽)
콜럼버스는 이런 사람들을 생포해서 유럽으로 데려가 노예로 삼거나 현지에서 금을 갖고 오라 강요했다. 금을 갖고 오지 못하면 손과 발을 잘랐다. 원주민들은 저항하거나 도망쳤다. 스페인人들은 사로잡은 사람들을 목 매달거나 불태워 죽였다. 2년 만에 아이티의 원주민 25만 명 가운데 절반이 목숨을 잃었다…..자본주의는 이런 잔혹한 과정을 거치며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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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사례를 보면 타인을 신뢰하고 공격할 줄 모르는 선량, 순박한 사람이 악의로 가득한 인간을 이겨낼 재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부 도둑 잡아낼 재간 없고 신뢰와 우정으로 이어온 관계를 이용해 맘 먹고 사기치려는 자를 피할 도리 없다.
– 콜럼버스 일당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긴 했지만 아이티 원주민들 삶의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희구할만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그 천국의 모습은 아마도 아이티 원주민 사회와 같을 것이다.
–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체제로 자리잡아 지속된 시간은 길게 잡아도 300년이 안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부분 이 체제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자본주의 대안으로 등장했던 사회주의가 실패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장구하게 진행되어온 인류의 역사를 생각하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 또한 역사의 산물이고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
– 지구 온갖 종류의 활용 가능한 자원을 남김없이 파내 이윤창출 위한 무계획적 생산에 모조리 탕진하고, 이 과정에서 지구 최후의 구석구석까지 오염시키는 자본주의…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보다시피 인간관계를 극단적인 경쟁과 대립, 투쟁으로 몰고 가는 자본주의가 과연 인간 본성에 맞는 것이며 추구할만한 것일까….이렇게 나갈 때 인류의 생존이 가능키나 할 것이며 사람은 과연 이런 조건에서 기본적인 안도와 행복을 느낄 수 있기나 한 걸까….
–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며 거대한 부를 쌓고 막대한 권력을 누리는 소수의 잉간들한테야 이 체제가 낙원으로 보일 것이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런 식 삶이 살만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생즉고(生卽苦)의 삶인데, 말이 그렇지, 사람치고 사는 게 곧 고통인 인생을 누가 살고 싶어하겠는가. 난 생즉희(生卽喜)의 삶을 함 살아보고 싶다.
– 자본주의에서 미래는 없다. 연대, 우애, 헌신…등의 추구할만한 공동체적 가치들을 모조리 파괴하고 인류가 깃들어 살 근거 즉 자연을 모조리 망가뜨리기 때문이다.
– 미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는 어쩌면 망가지기 전 과거의 것들에서 진실로 진보적인 것들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망가지기 전의 모래가 흐르는 강,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처녀지, 이웃 간에 나누었던 따스한 인정과 협조, 아이티 원주민들에게서 보이는 공동체 지향적 삶….이런 것들이야 말로 진정 우리가 추구할만한 진보적 가치가 아닐까…하는 것이다.
– 어쨌거나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은 오로지 지금의 조건에 근거한다. 지금의 조건은 자본주의 체제다. 자본주의 체제 이전 사람들의 삶은 이와 같지 않았으며, 앞으로 다가올 다른 체제에서의 사람들 삶은 분명 지금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늘 말하듯 諸行無常.
– 흥미로운 책을 읽어나가다가 인상적인 대목이 있어 그에 대한 감회를 적는다. 어쨌거나 오늘도 起承轉反資本主義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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