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스주의 고전읽기] 엥겔스 《독일 농민전쟁》 _ 종교개혁의 외피를 쓰고 농민들 봉건통치배들과의 계급전쟁을 치르다
일시: 8월 30일(월) 19시 30분
장소: 노정협 사무실(남영역 인근)
문의: 010 3398 0248
* 과학적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분이라면 누구라도 세미나 참석을 환영합니다.
맑스에게 역사적 유물론의 방법대로 역사를 서술한 탁월한 저작이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프랑스 내전》이 있다면, 엥겔스에게는 《독일 농민전쟁》과
《혁명과 반혁명》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할 《독일 농민전쟁》
의 집단적 주인공이 1500년대 봉건제 압제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가난한 농민들이라면, 그 중심에 있는 개별 인물은 단연 토마스 뮌쩌(Thomas Münzer, 1489년? ~ 1525년 5월 27일) 였습니다.
뮌쩌의 종교개혁은 실상은 종교의 외피를 쓴 반봉건 혁명 사상이었습니다.
엥겔스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이른바 16세기의 종교전쟁에서도 매우 적극적인 물질적 계급이해가 나타나 있었으며,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서의 충돌과 마찬가지로 이 종교전쟁은 계급전쟁이었다. 비록 당시의 계급투쟁이 종교적인 특징을 띠고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당시의 다양한 계급의 이해관계와 요구가 종교적인 장막에 가려졌다 하더라도 이것은 실제 정황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으며, 당시의 제조건을 통해 해명되어져야 한다.”
뮌쩌는 당시 봉건지배계급에게 폭압을 당하고 있는 농민계급의 입장을 변호했습니다. 뮌쩌는 혁명가답게 투철하게 싸우다가 혁명가답게 죽었습니다.
뮌쩌가 태어난 날은 분명하지 않지만 죽은 날은 분명합니다. 뮌처는 1525년 벌어진 농민반란을 앞장서 이끌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그해 5월 27일 처형당했기 때문입니다.
봉건계급의 사적소유를 철폐하고 농민해방 세상을 만들려 했던 뮌쩌는 공산주의 사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뮌쩌의 스승은 그에 앞서 종교개혁을 매개로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던 루터였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온건한 개혁을 원했고 뮌쩌는 철저한 혁명을 원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시기 당파와 비교하면 루터는 지롱드당 이었고 뮌쩌는 자코뱅당이었습니다. 루터가 당통이었다면 뮌쩌는 혁명의 화신 마라였습니다. 이 둘이 화해할 수 없었던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루터는 《반란적 정신에 대항하여 작센의 제후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뮌쩌를 사탄의 도구로 선언하고 그를 국외로 추방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뮌쩌가 농민반란의 정신적 무기를 농민들에게 제공하였다면, 루터는 체제를 수호하려는 반동 봉건영주들에게 정신적 무기를 제공하였습니다.
결국 루터는 《강도와 살인을 저지르는 농노 무리에 대항함에 대해》라는 팜플렛을 통해 영주계급의 입장을 옹호하며 반란 농민들을 가혹하게 진압하고 처형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엥겔스의 《독일농민 전쟁》은 유럽에서 수백년 동안 이어진 독일 농민 전쟁의 한 시대를 역사적 유물론으로 조명하고 있습니다.
우리역사의 1894년 갑오농민전쟁을 염두에 두면서 엥겔스의 《독일농민전쟁》을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천국은 저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뮌쩌의 주장은 당시 억압당했던 농민계급에게나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에게나 모두 해당되는 진리입니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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