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라고 생각하는 반공주의 자칭 사회주의자들에게

반짝이는 것은 모두 금이라고 생각하는 허위와 독단에 빠진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 맑스주의, 심지어 공산주의를 내걸고 있으면 모두 빛나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고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그러나 반짝이는 모든 것이 금이 아닌 것처럼,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골백번 외친다 한들 현실에 존재했던 쏘련 사회주의와 현실로 존재하는 조선이나 쿠바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적대하며 심지어 타도해야 하는 체제라고 간주한다면 자신들이 아무리 주관적으로는 혁명가라 자처한다 하더라 현실에서는 조선일보식 반공주의자, 반공프로파간다를 일삼으며 레짐체인지(정권교체)를 기도하는 제국주의의 벗들이 될뿐이다.
실제 냉전 시기 제국주의 진영의 반공주의는 추상적 반공주의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쏘련사회주의와 사회주의 진영 전체를 붕괴시키기 위한 목표를 가진 반쏘 반공주의였다.
해방 이후 미제와 이승만 도당, 박정희 군사독재 체제가 유포하는 반공주의와 학살로 얼룩진 백색테러 살육체제는 바로 반북 반공주의였다.
그런데 주관적 사회주의자들, 실제로는 제국주의의 광신적 벗들로서의 반공 사회주의자들은 쏘련 사회주의와 조선, 쿠바 등 현실에 존재하는 사회주의 체제가 국가자본주의, 타락한 노동자국가, 국가사회주의로서 타도해야 하는 반노동자 반인민국가라고 사고한다. 이들 국가들의 지도자들이 타락한 관료거나 심지어 자본가 우두머리로 간주한다. 이들은 사회주의와 민족해방 투쟁 등 수십억 인류의 진보적 투쟁을 모두 관념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극단적 종파주의에 사로잡혀, 머리속으로 완벽한 사회주의의 상을 공상적으로 그려놓고 진보적 인류의 위대하고 고난에 찬 투쟁을 전부 부정한다. 현실 사회주의의 실제적 모습을 보려하지 않고 심각하게 왜곡하고 편견에 가득차 국가보안법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한국의 대다수 자칭 사회주의자들이 바로 그러한 종파적, 관념적,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다.
다음 글은 그것에 대한 비판이다.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
“이것은 <사회주의자> 너를 두고 하는 말이야”

맑스는 당시 자본주의가 가장 발전한 영국을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을 분석하고 그곳의 공업·농업 노동자들의 비참한 상태를 폭로하면서 독일에 대해서 “이것은 너를 두고 하는 말이다”라고 일갈했다. 한국의 <사회주의자>의 글을 보면서 맑스가 자본론 제1판 서문에서 한 말이 퍼뜩 떠올랐다.
<사회주의자>는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성두현, 2018년 5월 28일) 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1.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객관적 조건들
가. 분단, 반공체제에 의한 지배계급의 억압과 우민화정책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는 객관적 조건 중 가장 기본적인 것은 분단, 반공체제에 의한 지배계급의 억압, 우민화이다. 무려 70여년 기간 동안 지속되어온 분단, 반공체제는 비록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부 약화되었지만 여전히 억압적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한국사회의 구조뿐만 아니라 진보, 사회주의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분단, 반공체제는 이 체제에 대한 모든 반대를 억압, 봉쇄하고 끊임없이 진보운동, 사회주의운동을 배제 주변화해 왔다. 그 결과 이 체제는 진보운동조차 ‘허용하는’ 운동과 ‘허용할 수 없는’ 운동으로 나누어 진보운동 전체를 무력화시키려 해왔다. 분단, 반공체제에서 사회주의운동은 대표적인 ‘허용할 수 없는’ 운동으로 끊임없는 제약을 받아왔다.

분단, 반공체제가 자신을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은 분단, 반공이데올로기를 교육, 언론, 종교 등을 통해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에게 주입시켜 노동자, 민중의 의식을 분단, 반공이데올로기로 획일화, 마비시켜 우민화하는 것이다. 이 수단은 과거와 비교 그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지만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수단이 만들어내는 부정적인 결과는 분단, 반공이데올로기가 노동자, 민중의 의식에 내면화되어 노동자, 민중이 지배계급이 허용하는 틀에 무비판적으로 따르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이 수단을 통해 지배계급은 노동자, 민중의 저항의지를 꺾고 노동자, 민중이 저항하더라도 지배계급이 정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유도해왔다.”

참으로 공감 가는 주장이지 않는가?
한국사회는 자본주의 체제이면서 특수하게는 “분단, 반공체제에 의한 지배계급의 억압, 우민화” 정책이 무려 70년 동안 지속돼 왔다. 이 분단, 반공체제는 “한국사회의 구조뿐만 아니라 진보, 사회주의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한국사회의 진보와 사회주의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인민을 가혹하게 탄압해 왔다. 한국사회의 “분단, 반공체제”는 이로써 “진보운동, 사회주의운동을 배제 주변화해 왔다”
이 분단, 반공체제는 “분단, 반공이데올로기를 교육, 언론,종교 등을 통해 끊임없이 노동자, 민중에게 주입시켜 노동자, 민중의 의식을 분단, 반공이데올로기로 획일화, 마비시켜 우민화” 시켜 왔다. 이를 통해 “노동자, 민중의 저항의지를 꺾고”, 또 그 저항을 끊임없이 체제내적으로 관리, 통제해 왔다.
“국가보안법”이 바로 한국사회의 분단, 반공체제를 유지, 강화시켜온 대표적인 악법이다.
그런데 공감은 여기까지다. 극적 반전이 있다. 그러나 이 반전은 통쾌한 것이 아니라 통상적이며 상투적인 내용으로 점철돼 있다.

“다. 북한의 부정적 영향
… 현재 한국에서 사회주의운동의 발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체되고 있는 데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과거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가 아니라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북한의 상태이다. 그리고 북한은 긍정적인 영향이 아니라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자본주의의 대안이 사회주의인데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를 대안이라고 한다면 노동자들은 이런 대안에 끌리지 않을 것이다. 이른바 ‘북한 사회주의체제’는 분단체제라는 동전의 또 다른 면을 차지하는 것인데 이 체제는 가장 타락한 형태의 스탈린주의적 체제로서 3대세습의 유일적 억압체제이다. 또한 노동자, 민중의 생활수준이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체제이다. 이러한 체제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 노동자들이 나서도록 고무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은 사회주의체제가 아니며, 노동자들에게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이 건설하려는 사회주의정당의 강령초안에서 ‘현실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북한을 비판하는 것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노동자, 민중들에게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잘 나가다가 참으로 희한하게 완전히 다른 길로 빠지지 않는가? 왜 이렇게 앞뒤가 판이하게 다른가?
<사회주의자>가 앞에서 주장하는 분단, 반공체제의 억압과 우민화, 그리고 “분단, 반공이데올로기”가 혐오를 조장하는 대상과 뒤에서 신랄하게 비난하는 “현실로 존재하는 사회주의”, “북한”은 서로 다른 존재인가?
한국에서 반쏘 이데올로기는 반북주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자> 성두현이 “가장 타락한 형태의 스탈린주의적 체제”라고 북을 비난하는 것을 통해 볼 때 그가 쏘련 사회주의 체제에 대해서도 혐오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북에 대해서는 그 “스탈린주의적 체제”의 “가장 타락한 형태”라고 하는 것을 볼 때 심지어 북에 대해서는 가장 극렬한 반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주의자> 성두현은 쏘련에 대해서는 극렬한 적대감을, 북에 대해서는 가장 극렬한 적대감과 혐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반공주의 체제는 바로 반쏘비에트, 반북체제이다. 북에 대한 적대감과 혐오를 통해 이 땅의 지배계급이 백색테러 체제를 유지하면서 억압과 착취와 수탈을 강화해온 것이다. 반공은 진공 속에서가 아니라 해방과 분단과 전쟁과 억압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서 만들어진 반북이데올로기 체제이며 반북 억압체제이다.
이처럼 반공주의는 70년 동안 북에 대한 가장 극렬한 적대감을 통해 끊임없이 배양, 조장, 고무, 이식시켜온 통치 이데올로기다. 반공은 이 땅 지배계급의 강령이자 국교이다. 이 적대적 감정을 통해 이 땅의 진보와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진보적 인사, 사회주의자들은 “빨갱이”로 내몰리고 100만 이상이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골로 간다”는 말이 가지는 어마어마한 공포는 지배계급이 이 땅 노동자 민중 전체에게 강요한 감정이었다. 따라서 역사의 진실을 아는 평범한 노동자 민중이라 할지라도 침묵을 강요당했다. “중간만 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침묵과 순응이 미덕으로 자리잡았다. 저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여전히 이 땅 대다수의 노동자 민중에게는 반공주의, 반북주의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는 진보를 자처하고, ‘좌파’를 자처하고, ‘혁명’을 자처하는 세력들 대다수도 이 반북, 반공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오히려 이들의 반북, 반공주의는 진보적이고 심지어 급진적인 사상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더 확고하게 내면화 되어 있다. 자신들이 현실에서는 분단, 분단체제가 심어 놓은 반공, 반북주의에 사로잡혀 있고, 실제 이로써 자본주의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의 이해에 실천적으로 복무하면서도 여전히 진보적이고 변혁적이라는 도덕적, 지적, 정치적 착각에 빠져 있기 때문에 어떤 측면에서는 더욱 더 독단적이고 맹목적이다.
이들이 북을 “가장 타락한 형태의 스탈린주의적 체제”로 간주하는 근거는 조선일보 같은 극우 파쇼 신문이 주장하는 수준과 동급이다. 이는 북이 “3대 세습” 체제라는 것이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재벌의 3대 세습과 북의 3대 세습을 비교하며 양비론을 펼치기도 한다. 어떤 “진보주의자들”은 아시아나 항공에서 재벌의 추악한 횡포를 보면서 “기쁨조” 운운하는 종편 수준의 저열한 반북의식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진보로 자신을 위장하기도 한다.
이른바 “사회주의자”들이 사회주의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반북 적대와 혐오감이 생기는 것이다.
이들은 재벌의 세습과 북의 “3대 세습”을 동일한 위치에 놓고 보면서도, 그 이면의 이른바 “세습”의 본질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북의 “권력승계”는 혈연적 승계가 본질이 아니라 정치적 계승이 본질이다. 쏘련과 중국에서 수정주의자들로 권력이 교체되고 사회주의의 “자주성”을 상실하는 것을 보면서, 70여년 동안 지속된 포위 공세 속에서 제국주의가 강요한 “전시 공산주의”와 다를바 없는 정치적 특수성 속에서 나온 것이다.
재벌의 세습은 독점자본의 세습이다. 노동자들을 대를 이어 착취, 억압할 수 있는 착취적 관계의 재생산이다. 압도적 다수의 노동자 민중을 빈곤과 고통으로 내모는 세습이다. 재벌의 3대 세습과 북의 이른바 “3대 세습”을 동일한 행태로 간주한다면 이 “세습”의 성격이 같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과연 북에서 재벌의 세습처럼, 착취적 관계를 3대째 재생산하고 있는가?
또 하나 북을 “3대 세습”이라고 비난하는 자들, 세력들은 자본주의 정치체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적 포로들이다. 보통선거제가 정착한 자본주의는 다당체제이고 5년, 또는 4년 마다 지배자들을 교체한다. 그런데 다당제는 균형과 견제로, 최대의 민주주의 장치로 포장되고 있지만, 그 복수의 당들은 과연 어느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가? 한국은 다당제 중에서도 특히 역사적으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라는 양당이 번갈아가며 집권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가장 악랄하고 파렴치하고 반동적인 전통적인 한국의 지배계급이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의 가장 악랄하게 파렴치하고 반동적인 모습 때문에 그 반민주성과 반노동자성, 반민중성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진보”로 자신을 포장하고, 정치적 대안없음에 기대어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세력이다. 이들 역시 근로기준법 개악과 최저임금법 개악에서 보듯, 자본의 이해를 대변한다. 다만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방식이 자유한국당과 다른 것이다.
최근 정계 은퇴 선언을 한 안철수가 “다당제”를 지키려 했던 것이 자신의 정치적 포부였다고 말하였는데, 과연 지배계급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권력자들이 정기적으로 얼굴을 교체해 가며 지배하는 다당제에 어떠한 진보성이 있는가?
반면 쏘비에트나 현실 사회주의 체제는 “일당” “유일체제”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유일적 억압체제”라 보는 다당제 민주 소부르주아 <사회주의자>들에게는 이것이 “억압체제”일 것이다.
당이 복수냐 아니냐가 본질이 아니라 당의 계급적 성격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맑스주의가, 맑스-레닌주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핵심적인 정치적 교의이다.
북의 “권력승계 형태”를 자본주의적 인식 속에서 무턱대고 비난하지 말고, 북이라는 체제가 생겨나고 지속해온 역사성을 독자적으로 인식해야 한다. 북의 “3대 세습”을 비난하는 자들, 정치세력들은 1994년 “권력승계” 이전의 북에 대해서도 역시 비방을 일삼아 오지 않았는가? 그 때에는 정기적으로 권력이 교체되지 않은 “일당 독재”라고 비방하지 않았던가?
“분단, 반공체제에 의한 지배계급의 억압과 우민화정책”에 의해 “가장 타락한 형태의 스탈린주의적 체제”라고 반북 반공 혐오와 적대감에 빠져 있는 <사회주의자>야말로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이 아닌가?

“이 체제는 진보운동조차 ‘허용하는’ 운동과 ‘허용할 수 없는’ 운동으로 나누어 진보운동 전체를 무력화시키려 해왔다. 분단, 반공체제에서 사회주의운동은 대표적인 ‘허용할 수 없는’ 운동으로 끊임없는 제약을 받아왔다.”(<사회주의자>, 같은 글)

이 반공 분단체제가 허용하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 국가보안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속에서 반북 반공주의에 사로 잡혀 있는 <사회주의자> 당신들이 사회주의 운동을 끊임없이 자기 제약 속으로 밀어넣고 있지 않은가?
“분단, 반공이데올로기로 획일화, 마비시켜 우민화”
“사회주의노동운동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들”
이것은 바로 <사회주의자> 당신들을 두고 하는 말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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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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