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을 읽고(전국노동자정치협회 著) 글: 이범주

이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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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이 책에 여러 미덕이 있겠지만 내게는 두 가지가 확 눈에 뜨인다. 먼저 한국 자본주의의 여러 특수성에 대해 과학적, 원칙적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특수성이라는 지엽에 매몰되지 않도록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맑스-레닌주의의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분단과 국가보안법, 미국에 대한 신식민지적 예속에 시달리는 이 나라의 특수한 민족적 현실을 매우 실천적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된 생각들을 무질서하게 서술하는 방법으로 이 훌륭한 책에 대한 독후감을 대신하도록 하겠다.

– 이 나라는 살만한 사회인가? 세계에서 자살률, 노인빈곤률, 산업 재해율이 가장 높은 나라, 출생률은 가장 낮은 나라,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절망에 취직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나라….이런 것을 보면 그리 살만한 나라 같아 보이지 않다. 여기 사는 이들은 고통스럽다. 고통은 변화를 희구한다. 그러면 이런 문제가 제기된다. 도대체 이 나라는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운가, 즉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

– 지난 1980년대에는 이에 대한 논의가 매우 활발하게 진행됐었다. 논의는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한 부류는 계급모순이 궁극적 원인이므로 일단 계급모순을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제시했다. 또 한 부류는 미국에 대한 식민지적 예속이 선차적 문제이므로 미국에 대한 예속철폐, 즉 민족해방의 과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이 두 견해 모두 한국 사회에 내재된 핵심 문제를 드러내는 탁견이었다. 그러나 부족함이 있었다. 전자의 견해는 상대적으로 민족해방의 과제를 경시했고 후자는 국내의 계급모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두 견해 모두 한국 현실 모순구조의 핵심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서로 대립할 것은 전혀 아니었으니 논쟁보다는 서로의 부족점을 보완하며 협조했어야 했다. 그러나 각자의 의견이 지닌 ‘합리적 핵심’을 인정하지 못하고 논쟁에 치우친 아쉬움이 있다.

– 어느 문제를 먼저 해결할 것인가. 이에 대한 양자 사이의 논쟁은 자못 심각하고 뜨거웠지만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나라들이 망하고 북한(조선)도 미증유의 자연재해와 제국주의 국가들의 살인적 봉쇄로 고난의 행군을 겪는 것을 보면서, 현실 사회주의에 실망한 논객들이 논쟁과 실천의 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양자 사이의 뜨거운 논쟁도 이 나라의 미래태(未來態) 대한 진지한 모색도 모두 순식간에 사라지고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자본주의에 투항하며 (사회주의를 향한 진보의) 역사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이른바 ‘역사의 종언’을 선언한 것이다.

– 그리고는 30~4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는 다시 묻는다. 그 옛날 그 많은 이들이 고민하며 제기했던 그 많은 문제들은 해결되었는가, 없어졌는가…. 아니다, 사위를 둘러보면 그 시절 고민했던 문제들은 오히려 더 심해지고 더 고통스러워졌다.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비정규직으로 근근히 생존을 꾀한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자식들을 키우는 데 거의 모든 자산을 갈아 넣다시피 한 노인들은 휴지를 주우며 힘겹게 노년의 생존을 도모한다. 최근의 방위비 논란에서 보듯 미국은 전보다 훨씬 더 노골적이고 거만하게 이 땅위에 군림하며 그래도 명색으로는 한 나라의 어엿한 정부를 쥐락펴락하며 군림하고 있다. 한 나라의 자주적 권리가 난폭하게 유린되고 있는 것이다. 계급착취, 민족예속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 이런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는 인민들은 고통스럽다. 언제까지 자본가의 노예가 되어 이 고통스런 삶을 연명할 것인가. 언제까지 미국에 대한 예속적 삶을 지속하며 굴욕을 감내할 것인가. 그렇다, 80년대보다 계급적 착취, 민족적 예속의 고통은 더 노골적이고 고통스러워졌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은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끝내야 하고 민족적 예속을 극복하여 자주적인 나라를 건설해야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 않은 숙제는 두고두고 괴롭히는 법이다. 인과율을 벗어날 수 없다.

– 한국 자본주의는 자체 내에서 잉태되어 발달하지 않고 일본과 미국에 의해 이식 확장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 자본주의의 특성에 대해 많은 논의들이 있어 왔으니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기술, 시장, 원료, 자본…등의 상당부분을 미국 일본…등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는 면에서 종속성

2. 공업-농업 간 대기업-중소기업 간의 국내 연관이 배제된 채 수출 주도형으로 외국과의 연관이 주로 되어 성장이 이루어지므로 경제 성장의 성과가 국내에 고루고루 확산되지 못한다는 면에서의 파행성

3. 미국, 일본, 유럽 자본주의 선진제국(諸國)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력이 떨어진다는 면에서의 저 생산성

4. 재벌 등의 대자본이 예컨대 골목상권에 대한 배려 없이 돈 되는 거라면 뭐든지 하려 하는 천박성

5. 국내 인민들보다는 외국 자본의 이익에 더 기여한다는 매판성….등이 대략의 내용 되겠다.

– 이런 논의들은 일견 설득력이 있으나 문제의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이 논리를 따라가면 이런 주장들은 궁극적으로는 자본가 계급에게 종속성, 파행성, 저생산성, 천박성, 매판성…등을 해결해 달라고 촉구, 청원하거나 그들로 하여금 그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 때문이다.

– 한국의 대자본가 계급은 애초에 신신민지적 상황에서 종속성, 매판성, 파행성…등을 축적의 조건으로 삼아 그들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추구해 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돈을 쉽게, 잘 벌 수 있었기에 그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견 이 나라 경제를 신식민지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보이는 외국 선진 자본들과 동일한 이해관계를 갖는다. 더구나 지금에 이르러서 국내 재벌기업들의 생산력은 외국으로 직접 투자, 자본수출을 실행하고, 필요하면 거대 외국자본들과 서슴없이 경쟁하며, 무인 자동화기계, 인공지능 등의 고급기술을 도입함으로써 많은 노동자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에까지 발달하게 되었다.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청년 실업자들을 보면 우리는 이미 낮은 생산력이 아니라 과잉의 생산력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잉의 생산력은 새로운 생산관계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 자본은 돈이 되는 것이면 모든 것을 사업의 대상으로 한다. 천박하지 않은 자본은 없다. 돈이 안 되는 것은 아무리 중요하고 필수 불가결의 것이라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 자본이건 국민경제 단위 내에서 타 산업 혹은 대기업-중소 자본과의 균형, 연관을 그 자체로 추구하지 않는다. 심지어 생산력이 가장 발달한 나라인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국 내의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키면서까지 최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생산기반을 중국 등 외국으로 이전하고 금융산업 등을 기형적으로 발전시켰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자본도 (외국에 의존한다는 면에서)일종의 종속성, (국내 산업과의 연관성을 거칠게 파괴한다는 면에서)파행성을 피할 수 없다. 결국,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한 문제로 여겨졌던 파행성, 종속성, 매판성, 천박성….등은,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인민의 삶을 살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이윤 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고유한 성격에 기인하는 불가피한 모습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특수해 보이는 한국 자본주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오로지 하나 자본 임노동 관계, 즉 자본주의의 착취구조 그 자체를 철폐함으로써 인민들의 행복과 복리증진을 위해 경제행위를 하는 방향으로 체제를 바꾸는 것이다.

– 자본주의의 착취구조를 철폐한다는 것은 소수 자본가들이 소유하고 있는 생산수단을 전 인민의 소유로 바꾼다는 것이고 자본가계급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한 그리고 다수 근로인민을 위한 정치를 추진하기 위한 독재를 실시한다는 뜻이다. 자본가 계급은 자신이 지닌 막대한 권력과 재산을 제 손으로 내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혁명이 필요하다.

– 궁극적인 방향은 이렇게 정해졌다고 하자. 그렇다면 유럽과 러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맑스레닌주의의 대의와 과학성을 널리 선전하고 노동계급의 선진분자를 당 조직으로 모아 조직, 투쟁, 대중 봉기하여 사회주의 권력을 수립할 수 있는가. 문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왜 가능하기 않은가. 여기에 한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특수성이 있다.

– 한국은 분단되어 있다. 분단에 기초한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사회주의의 대의를 선전, 선동하는 것, 사회주의 정당을 건설하는 것, 북한(조선)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것 등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실정이다. 한국의 역대 정권들은 제 권력을 효과적으로 지키기 위해 국가보안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무수하게 간첩 사건을 조작해 왔다. 이로 인해 사상의 자유를 본령으로 하는 초보적 민주주의도 이 나라에서 구현되지 못했다. 노동운동은 지극히 고립, 파편화되어 노조 조직률이 지극히 낮고 노동자들의 의식도 건강한 계급의식으로까지 발전되지 못하여 그들의 요구는 대부분 초보적 수준의 경제투쟁 이상을 넘어가지 못한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업종 간 노동자 사이의 분열도 심한 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한국에서 사회주의와 북한(조선)의 역사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연구하는 것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왔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사회주의 자체와 북한(조선)에 대한 혐오와 적대적 분위기가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건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노동계급 운동이 현실에 뿌리내리기는 실로 지난한 일이다.

–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미군이 한국군에 대한 전시 작전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에서 민족 자주 정권을 세우고자 하는 그 나라 인민들의 정당한 투쟁,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투쟁 등에 개입하여 그것들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유린했다. 이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역사적 현실로서 한국의 대미(對美) 신식민지적 예속 또한 이런 세계적 보편성의 한 형태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미군을 축출하지 않으면 우리의 자주성을 온전하게 추구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미군, 그리고 미국의 이익을 제 나라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하는 국내의 소수 친미엘리트 등의 영향력을 배제하지 않고서는 사회주의 실현은커녕 초보적 수준의 민주주의 실현조차 불가능함을 인식하자.

– 분단과 미군이 주둔하는 현실은 한국이 신식민지적 예속 상태에 있음을 말해준다. 자본가 계급과 미국이라는 압도적 힘의 제국주의 세력 두 가지의 멍에를 메고 계급착취와 민족적 수탈에 고통받는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노동 인민들의 삶은 실로 고달프다.

– 그러나 일면 강고해 보이는 이 질곡의 체제가 실은 부단히 동요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이 동요의 진원은 미국의 힘이 전 같지 않다는 현실에 있다. 미국은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 이후 잠시 패권적 위치를 점했으나 연이어 벌인 부도덕한 전쟁으로 인한 국고탕진, 재정적자, 무역적자, 국내 제조업 공동화(空洞化), 극단적인 불평등, 인종문제, 실업….등의 국내문제로 시달리고, 국제적으로는 더 이상 전과 같은 군사패권, 달러패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 강력한 군사력 없이는 국제통화로서 달러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데 미국은 이제 이란 정도의 나라조차도 이길 수 없는 군사력의 나라가 되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미국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위상 또한 더 이상 전과 같지 않게 될 것이다. 이 흐름은 한국전쟁 후 미국과의 대결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맞서 온 북한이 이제는 핵무력까지 완성해 놓고 미국에게 협상을 강요하면서 더 급해지고 있다. 미국이 쫓기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한국의 이 강고해 보이는 체제도 불안하게 흔들릴 수 있다. 미국의 쇠약, 미군철수와 더불어 국가보안법도 그 시효를 다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왜 그러한가. 태초 이 나라에 분단과 분단에 기초한 국가보안법을 내려 먹인 힘이 미국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힘의 퇴조와 철수는 한국의 정치지형에 예측할 수 없는 격변의 조건을 만들어낼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모순과 갈등으로 가득한 이 나라의 변혁을 막는 궁극의 외적(外的) 폭력이 미국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퇴조와 그로 인해 생기는 균열은 70여 년 동안 억압받아온 이 나라 변혁에너지의 폭발을 격발할 방아쇠가 될 거라 판단된다. 그 균열을 비집고 어떤 폭발이 어느 지점까지 나아갈 것인가.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급격한 변혁 흐름의 한 가운데 있는지도 모른다.

– 한국 자본의 고도로 발달된 생산력, 파행성, 식민지적 종속성, 천박성…등은 지금 단계에서의 변혁이 자본주의의 추가적 발전이 아니라 자본주의 그 자체의 철폐를 요구하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더불어서 우리는 ‘선행적으로’ 수행해야 할 과제가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임을 인식해야 한다. 일에는 순서가 있어야 한다.

– 노동삼권 보장을 향한 노력, 사회주의에 대한 일상 교양과 더불어 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그리고 분단극복에 이은 통일에 공감하는 모든 사람들, 모든 세력들과 연대하자. 남북 간의 적대관계 해소, 국가보안법 철폐, 평화정착 그리고 그에 이은 통일은 곧 그 자체로 변혁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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