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시대 구체제로의 복귀가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목표가 될 수 있는가?

사진: 점좀빼(사진 활동가)

박근혜 파쇼권력 타도!

노동자 민중에게 권력을!!

 

노무현, 박근혜 시대는 무엇이었나?

박근혜가 노동자 민중의 성난 퇴진 요구에 밀려 국정을 잠시 중단했을 때, 일시적이나마 평화가 왔고 자유가 왔다. 경찰병력은 그 야만의 발톱을 감추고 뒤로 물러났다. 검찰은 권력의 주구노릇을 하다가 함께 타도 대상이 될 것이 두려워서 일부 ‘농단자’들을 구속, 처벌하며 정의의 사도를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박근혜가 100만이 넘는 노동자 민중의 성난 퇴진 투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정을 재개했을 때, 한일군사정보협정 체결 기도가 이뤄지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과 노동부 장관을 내세운 노동법 개악 시도가 자행되고 있다. 박근혜는 절대 다수 노동자 민중의 요구를 부정하며 권력을 유지하려 음모와 술수를 꾸미고 있다. 박근혜 정권을 즉각 퇴진시켜야 한다. 새누리당을 해체시켜야 한다. 그 부역자, 언론들을 색출해내야 한다. 이것이 당면한 우리의 과제다. 이 당면 정치적 과제가 성취될 때까지 타협자들을 역사의 무대에서 치워버리고 단호하게 정권 퇴진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 투쟁과 함께 누가 역사의 주인이 되고, 퇴진 이후 어떤 세상을 만들어갈지 정치적 전망을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장엄한 역사의 무대에서 앞장서서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의 요구는 새 지배자들한테 찬탈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과 단 한 번도 싸우지 않았던 민주당, 국민의당 같은 제도권 야당과 그 야당의 대선주자들이 이제 앞 다퉈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에 동참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그런데 그 야당과 대선주자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박근혜 정권과 어떻게 다를 것인가?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노무현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정치적 목표가 되어야 하는가? 노무현 시대의 영광을 노래하는 인물, 정치세력들의 근본 한계는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노무현 시대를 노래하며 그것이 우리가 꿈꿔야할 새 시대라고 말하고 있다. 안철수는 말할 나위도 없고, 문재인, 심지어 이재명의 시대는 노무현의 시대와 근본적으로 다를 것인가?

자칭 노무현의 남자, 즉 노무현의 정치적 계승자를 자처하는 안희정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 역사에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도전했던 모든 사람이 죽어가야 했던 역사의 부정의를 나의 도전으로 옳은 소리, 정의의 소리를 당당하게 주장해도 현실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노무현 시대에 그런 환희를 맛봤다.”(나주석 기자, 노무현의 남자 ‘안희정’이 시대를 뛰어넘는 방법, 아시아경제, 2016.11.20.)

과연 노무현 시대가 노동자 민중에게 정의의 시대인가? 환희를 맛봤다면 누가 환희를 맛봤다는 말인가? 이명박, 박근혜를 거치면서 도를 더해가는 권력의 폭압에 노동자 민중이 분노하여 전 민중적인 권력 퇴진 투쟁에 나선다 할지라도, 그것이 단지 노무현 시대의 재현을 위해 싸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그것은 노동자 민중의 항쟁을 노무현 시대라는 또 다른 구체제로 복귀시키는 복고적 행위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노무현 시대 역시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인 구체제의 일부였다. 노무현 시대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에 대해 “더 이상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던 시기는 지났다”며 차갑게 냉소를 내뱉던 시기였다. 농민들이 백주대낮에 경찰 폭력에 타살당하고, 김대중 시대에 도입된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을 등에 업고 정리해고를 자행하고 비정규직이 급속도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자본을 위해 노동악법이 제정되던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 시대 자주성에 대한 민중의 기대와 염원에도 불구하고, 해외 파병이 이뤄지고 평택 대추리에서 미제국주의 군대의 안정적인 이전을 위해 경찰과 군대가 자국민한테 잔인하게 폭력을 자행하던 시기였다.

박근혜 시대는 이처럼 김대중,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예비됐던 것이다. 노무현에 대한 민중의 기대감은 노동자 민중의 삶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끝없이 추락하면서 배신감과 환멸로 나타났다. 이것이 이명박 샐러리맨 신화, 또 다시 박근혜를 통해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기대감과 열망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기대감은 현실적 기대감이 아니라 정치적 전망을 상실한 가운데 나오는 환상적인 기대감이기 때문에 그것이 무너진 자리에는 곧바로 현실적 분노로 채워졌다. 2008년 거대한 촛불집회가 그것을 보여준다.

박근혜는 전임 이명박과 합세해 국정원이 중심이 된 총체적 부정선거로 권력을 찬탈했다. 처음부터 상당수 민중이 박근혜에 분노했다. 세월호 학살에서 그 분노는 더 첨예하게 커졌다. 그러나 이 분노는 아직 전 민중적인 것은 아니었다.

먹고 살게 됐다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환상이 상당부분 프로파간다와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의 결과지만, 무시할 수 없는 환상이 박정희의 딸, 박근혜에 대한 기대감으로 끈질기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발전과 성장은 농민 생존권 박탈, 저임금, 장시간 노동, 노동자의 무권리 등 노동자 민중에 대한 야만적 탄압을 기초로 자본을 급속도로 성장시키고 재벌을 이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로 만드는 과정이었지만, 박근혜를 통해 민중들이 자기 체험을 할 때에만 그 환상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박근혜 시대에 대한 환상의 무너짐은 결국 최순실의 국정 ‘농단’으로 폭발했다. 부정선거도 민중권리의 찬탈이지만, 여기에 더해 자신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보잘것없는 개인들에 의해 공적 권력이 농단당하고, 그 정점에 박근혜가 있다는 사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고통이 바로 그 부패한 개인들의 ‘농단’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에 민중은 쌓여 왔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여기에 조선일보와 청와대 우병우의 자중지란은 권력 내부에서 공유하고 있던 암묵적인 비밀을 여과 없이 폭로하도록 했다. 물론 이것도 세월호 투쟁과 민중총궐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 투쟁이 총선에서 아무도 예상 못한 새누리당의 참패를 낳으면서 권력 내부의 분란을 촉발시켰기 때문이다.

노무현 시대의 근본 한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안희정은 또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 한 명 잘 뽑아서 나라 팔자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믿음은 이제 안 가졌으면 좋겠다. 임기 5년짜리 대통령을 누가 무서워하나. 삼성이 (최순실 씨 딸 정유라에게) 말을 왜 사주겠나. 새로운 대통령이 나타나도 그 사람을 포섭해버리면 그만이다. 그게 재벌과 기득권의 권력이고 힘이다. 대통령 하나를 바꿔서 할 수 있는 힘의 한계를 우리는 이미 봤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우리는 그분이 노력하는 모습을 봤다.”

삼성이 최순실 딸 정유라한데 말을 사줬던 것처럼 권력을 포섭해 버리면 끝이라는 말이다. “재벌과 기득권의 권력이고 힘”이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지배한다.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는 재벌이다. 그 재벌의 지배 뒤에 미군과 미제국주의가 또 버티고 있다.

과연 노무현이 재벌의 지배체제에 맞서 존경스러울 정도로 노력했는가? 그 노력의 결과가 삼성경제연구소 보고서를 바탕으로 FTA를 체결하고 자본을 위해 정리해고를 자유롭게 하고 노동악법을 개악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하는 것이었는가? 당시 노무현의 이데올로기는 노동귀족론, 고임금론, 사회적 대화였다. 박근혜가 무식하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면, 노무현은 세련된 논리로 무장하고, 인권변호사 출신이라는 배경과 권위를 바탕으로 노동자 계급 상층부를 포섭하여 자본의 이해를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가장 폭압적인 방식으로, 가장 직접적인 방식으로 반노동자적 정책을 관철시키다가 대대적인 민중의 항쟁을 불러일으켜 자본의 지배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든 박근혜에 비해 노무현은 얼마나 위대한 지도자였는가? 노동자 인민을 포섭함으로써 재벌 더 나아가 미제국주의의 이해를 안정적으로 관철시키는 노무현은 얼마나 기특한 지도자였겠는가? 박근혜의 정치적 불안정성이 계급 지배를 위태롭게 하는 지금 지배계급은 노무현의 지도력에 얼마나 찬사를 보이겠는가?

그런데 노무현 개인의 의지나 선의와 상관없이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겠는가? 그것은 바로 안희정이 말한 대로 “재벌과 기득권의 권력이고 힘” 때문이다. “존경스러울 정도로 … 노력하는 모습”이 있다 하더라도 재벌과 재벌을 지탱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 조중동 같은 언론, 국정원 같은 파쇼 기구, 미제국주의 군대라는 시스템이 그대로 존재하는 한 그 권력은 지배계급의 힘과 기구들,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그것의 적극적인 도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포기한 순간 그 힘들에 넘어간 것이고, 나중에는 이 권력의 힘들을 자신들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기까지 한 것이다.

안희정은 그 대안으로 대통령 개인이 아니라 “정당이 집권해야 한다. 5년짜리 대통령이 하는 정책만으로는 한국의 시장이나 이기심으로만 움직이는 경제 주체들에게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없다. 정당이 (정책을) 지켜야 한다.”라고 전망을 제시한다. 노무현의 집권과 정책을 정당의 결과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 정당의 성격이 “재벌과 기득권의 권력이고 힘”, 독점자본의 언론과 금권정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자본가 정당일진데 어떻게 그 거대한 지배적 힘들과 싸우겠다는 것인가? 그 정당을 움직이게 하는 이념은 그 근본적 힘들을 부술 수 있는 사상이 하나라도 있단 말인가?

안희정은 “기득권 질서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영웅적 한 개인이 아니라 이상과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 즉 정당이 지속적이고 조직적으로 세상의 변혁을 시도해야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안희정은 재벌과 국정원, 검경 등 파쇼 기구, 제국주의 같은 “기득권 질서”와 싸울 수 있는 “이상과 이념을 공유하는 집단 즉 정당”을 조직하여 “세상의 변혁을 시도”하자고 하는 것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제도권 야당, 대선주자들의 이념과 정치적 목표는 무엇인가?

안희정은 그 정당의 이념이나 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당이 낡은 지역주의 정치에 기초하거나, 종북이나 좌빨(좌익 빨갱이)을 이야기하는 낡은 이념의 시대에 갇혀 있거나, 20세기의 계급투쟁의 계급의 관점에 있으면 현재 민주주의 정당 틀에서 자기 역할을 못 하게 된다.”

낡은 지역주의 정치를 근본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계급정당이 되어야 한다. 지역을 넘어 계층을 넘어 노동자와 민중의 이해를 확고하게 관철시키는 계급정당, 전투정당이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지역, 국가를 넘는 국제주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 지역주의는 낡은 것만큼이나 뿌리 깊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노무현 시대 지역주의를 넘고자 하는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면서 지역별로 쪼개진 민중을 하나로 포괄할 이념을 가지고 있었던가? 전혀 아니다.

지역주의와 싸우기 위해서는 다른 한편으로는 지역주의를 낳은 박정희 파쇼 정권의 파쇼 통치 수단인 민중 분열과 맞서 싸워야 한다. 이 민중분열의 이데올로기적 기초에는 반공주의가 있다. 반공주의는 지금까지도 한국 지배계급의 지배도구이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그 정치 모리배들도 이 반공주의의 노예가 되고, 반공주의의 부역자가 되고 동조자가 되었다.

내란 공작, 이석기 국회의원 국회 제명, 통합진보당 해체, ‘북한 인권법 제정’ 등에서 파쇼 권력의 적극적인 부역정당이 되었다. 심지어 문재인은 이 종북주의 신종 반공이데올로기에 적극 부합하면서 특전사 출신임을 강조하는 퇴행적인 모습도 보였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민중 도살자이자 반공주의 도당의 뿌리인 이승만 묘역을 참배하는 반동적 모습을 연출했다. 추미애는 살인마 전두환을 예방하려다 민중적 분노 앞에 부랴부랴 취소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종북이나 좌빨(좌익 빨갱이)을 이야기하는 낡은 이념의 시대에 갇혀 있”는 것이 낡은 정당의 모습이라면, 민주당 대선 후보로까지 위치를 다지고 있는 충남지사 안희정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가 몰아칠 때 단 한번이라도 이에 맞서 싸운 적이 있었나? 안희정과 민주당은 낡은 이념의 적극적인 동조자이자 부역자였다.

안희정은 “20세기의 계급투쟁의 계급의 관점에 있으면 현재 민주주의 정당 틀에서 자기 역할을 못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계급투쟁의 관점이 정당의 이념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계급투쟁의 계급의 관점”은 인위적으로 불러온 낡은 관점의 산물이 아니다. 태초 이후로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으로 분열된 이래 계급이 있고, 지배자와 지배 권력이 있고, 여기에 맞서는 피착취자와 피착취계급들이 있었다. 양자는 필연적으로 투쟁할 수밖에 없고, 이 투쟁이 역사를 발전시켜온 근본적인 원동력이다.

20세기 이 문명시대에 계급투쟁이 낡은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계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차적으로 증명해야 하고, 이 계급모순과 적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2차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오늘날 박근혜 정권에 맞서는 전 민중적인 투쟁이 계급투쟁이 아니면 무엇인가? 지배권력에 맞서 노동자와 전 민중이 싸우는 계급투쟁이 아닌가? 민주당은 이 계급투쟁의 한 가운데서 권력의 공멸을 막기 위해 민중투쟁을 제도권 내로 가두고 안정적인 정권교체로 자신들이 새로운 권력을 차지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구체제의 신권력 지망생들한테 물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이 문제인 것은 공적권력이 아닌 사적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 농단의 내용이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이어서 더욱 문제가 된다. 그런데 재벌이나 조선일보 등 언론, 권력자들은 이 농단을 다 알았으면서도 그 농단의 내용이 자신들의 이해와 일치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침묵해 오고 그 농단에 동참, 동조해 왔던 것이다.

한때 민주주의자였다가 자본과 권력의 대행자로 행세하는 안희정, 그리고 민주당 등의 제도권 정치세력들이 노동자 민중의 박근혜 파쇼 권력에 대한 분노와 전국적인 항쟁 분위기를 이용해서 ‘노무현 시대’라는 구체제로 복귀하려는 것은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성과를 도둑질 하려는 절취행위다.

노동자 민중은 박근혜에 이어 권력을 차지하려는 제도권 야당 세력들에게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저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의 파괴자들, 이 땅에서 전쟁책동을 일삼고 점령하고 있는 주둔군을 철수시킬 수 있는가? 미제국주의에 의해 강요되고 있는 사드 배치를 전면 중단시키고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또한 전쟁의 근원을 조장하는 북에 대한 고립말살 적대 정책과 한미일 반공주의 동맹을 반대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노동의 권리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저들은 또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반노동을 추동하는 근원적 힘이자 부패의 온상인 전경련을 해체시킬 수 있는가? 재벌의 지배와 이건희, 이재용, 정주영, 정몽구, 정몽준 사례에서 보듯, 그 지배력의 영구적인 대물림을 끊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재벌의 지배력을 보장하는 기업에 대한 사적소유권, 그 형태인 주식회사 제도를 근원적으로 분쇄할 수 있는가 물어야 한다.

저들은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그것은 박근혜도 말했다. 박근혜 하에서 그 정책을 입안하고 지금은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긴 철새 김종인도 재벌 지배의 폐해와 경제민주화를 말한다. 그러나 재벌의 경제적 집중, 그리고 재벌의 이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력은 생산수단, 기업에 대한 재벌의 소유권을 근절하고 전 노동자 민중이 기업을 집단적으로 소유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다.

당신들은 자본의 착취체제를 철폐할 수 있는가?

착취제 철폐나 사적소유권 철폐라는 혁명적 목표가 먼 미래의 문제라면, 당장 재벌로의 민영화(사유화)를 전면 반대하는지, 노동법 개악을 중단시키고, 1998년 김대중 정권에서 도입한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원천무효화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또한 2006년 노사관계선진화방안(노사관계로드맵)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한 복수노조 관련 악법조항들과 병원, 철도, 전기, 수도, 석유 등 필수공익사업장에 대한 필수유지업무제도로 노동자 파업을 근원적으로 제약하는 악법을 원천무효화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또한 전교조, 공무원노조 등에 대한 전면적인 노동3권을 보장할 것인지 물어야 한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저들은 또 역시 당연히 그럴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종북몰이를 배격하고 그 종북몰이의 근원인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간첩조작, 국민감시와 통제의 기관이자 종북몰이의 원흉인 국정원을 해체시킬 수 있는가? 그리하여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 물어야 한다.

또한 전면적인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고 파쇼 탄압으로 구속된 한상균, 이석기, 이병진 같은 양심수들을 전원 석방시키고 명예회복과 피해배상을 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이러한 노동자 민중의 요구는 국정 ‘농단’으로 훼손된 노동자 민중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다. 이 최소 요구를 부정한다면 당신들의 박근혜 퇴진 투쟁 동참은 거짓이고 허위이다. 박근혜가 물러나고 당신들로 교체하려는 권력의 성격은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일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정치 모리배들에게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이 앞장서서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민중의 법정에 세우자. 노동자 민중이 이 땅의 주인이고 권력의 주인이다. 박근혜 퇴진 투쟁으로 노동자 민중의 간절한 요구를 쟁취하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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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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