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일 연구실장은 자신의 연구대상을 증오하지 않은 ‘범죄’를 저질렀다

자신의 학문적 연구대상을 증오하지 않지 않고 진리탐구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이 범죄가 될 수 있는가? 아주 어리석고 가당치도 않은 가설이고 황당한 질문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논리적 가설도 아니고 가상도 아니다. 국가보안법의 현실에서는 초현실적인 일들이 백주대낮에 버젓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지난 7월 28일 서울지방경방경찰청 안보수사대는 국가보안법 7조 1항 ‘찬양 고무’ 등 혐의로 통일시대연구원 정대일 연구실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또한 수십 년 동안 모았던 귀중한 연구 자료들과 책자들, 법원에서 출판, 판매를 허용한 김일성 주석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300질을 트럭 한 대를 동원해 압수해 갔다.

주지하듯, 통일시대연구원 정대일 연구실장은 국내 최초로 ‘주체사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북전문학자다. 전문적인 북연구자로서 정대일 연구실장은 다음과 같이 인상적인 주장을 했다.

“학문에 종사하는 학자들 중 어느 누가 자기 학문의 대상을 증오와 편견에 차서 적대적으로 대하는 자들이 있던가? 중세에 마녀학을 전공하던 수도사들이나 그러했고 현대 학자들은 그들을 동료로 여기지 않는다. 북한학 전공 학자들은 마녀학 전공 수도사들의 학문적 입장에서 시급히 벗어나야 한다.”([정대일의 북 사상 바로알기]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권독기>, 통일시대연구원, 2022.03.30.)

북에 대한 연구가 학문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어떻게 북전문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대상을 온전하게 직시하고,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을 “고무 찬양”이라고 범죄시 할 수 있는가? 학문연구의 자료가 어떻게 이적표현물 소지의 범죄가 될 수 있는가? 학문 연구의 성과를 소개하고 발표한 것이 어떻게 이적행위가 될 수 있는가?

국가보안법은 북연구자가 자신의 학문적 탐구 대상에 대해 오로지 증오와 편견에 가득 차서 적대시할 것을 폭력적으로 명령하고 강제적으로 재갈을 물리는 것이다.

북연구자가 중세 “마녀학 전공 수도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권력이 요구하는 방식대로 증오하고 적대시하고 압살할 것을 폭압적으로 강요하는 것이다. 중세시대 마녀학 전공 수도사들은 단순하게 마녀를 연구한 것이 아니라 마녀를 찾아내 고문하고 끔찍하게 화형 시키고 수장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마녀사냥을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 했다.

국가보안법은 단순하게 법체계일 뿐만 아니라 백색테러 체제이고 무고한 사람들을 마녀로 만들어 사냥하는 폭력체제이다.

정대일 연구실장은 <통일시대연구원 정대일 철학박사 국가보안법 탄압 규탄 기자회견>에서도 “저의 연구과정에 북을 증오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이적행위로 규정하였다”라고 규탄하였다.

국가보안법의 논리와 법체계에 의하면 같은 민족인 북을 증오하지 않고 동포애적 감정을 발휘하고 국가보안법이 왜곡하고 조작했던 북에 대해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된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이야말로 민족과 동포애의 적이고, 학문의 자유와 진리추구와 자유의 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소불위 초월법, 국가보안법

 

더욱이 이번 국가보안법 탄압의 명목이 됐던 《세기와 더불어》에 대해 법원에서 조차도 ‘법치와 자유민주주의 연대(NPK)’ 등 우익단체의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한바 있다. 대법원에서도 재항고에 대해 기각하여 출판, 판매가 합법이라고 판결을 내렸다.

법원에서도 출판, 판매가 합법이라고 하는데, 국가보안법의 논리, 법체계로는 이적 서적 반포행위가 된다. 합법 출판물의 내용을 소개하면 이적행위가 된다.

국가보안법은 ‘법’이지만 사법부와도 충돌하고 다른 법조항과도 충돌하는 법 위의 법이다. 국가보안법은 법 위에 서서, 다른 법을 짓밟는 자기모순에 쌓여 있는 무소불위 초월법이다. 더욱이 국가보안법은 ‘민주공화국’ 최고의 법인 헌법하고도 상충되며 헌법 조항도 무력화한다.

명목적이지만,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제21조는 “①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2조는 “①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출판이 제한되는 것은 오로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에 한정해서다.

이번 국가보안법 침탈 사건은 헌법상의 권리와 자유를 일정 정도 제한하는 유보조항에 비춰볼 때도 아무런 정당성이 없다. 그럼에도 국가보안법은 헌법 1조 1항, 헌법 제 21조 1항, 2항, 헌법 22조 1항, 이밖에 헌법상의 행복추구권과 각종 개인의 권리 등 ‘신성한’ 법률 조항들과 권리들을 난폭하게 침해하고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린다.

국가보안법의 사고와 법체계는 개인뿐만 아니라 자신들 체제의 헌법이나 (대)법원의 판결 같은 ‘법치주의’의 적이기도 하다.

앞에서 “북에 대한 연구가 학문연구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어떻게 북전문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 대상을 온전하게 직시하고, 진실을 탐구하고자 하는 노력을 ‘고무 찬양’이라고 범죄시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는데, 국가보안법 체제 하의, 무도한 윤석열 정권 하에서든 그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윤석열 정권에게 북은 학문연구의 대상도 아니고 교류와 협력, 평화 추구의 대상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선제적으로 타격하고 말살해야 하는 주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야만을 정복하지 않으면 야만에 정복 당한다

 

정대일 연구실장은 앞에서 인용했던 기사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북의 동포들을 만나는 것은 이제 평화를 사랑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우리 촛불시민들의 과제이자 의무이다. 촛불시민들은 통일문제에 관해 정치권에 일정하게 위임하였던 자기 권리를 거두어들이고 직접정치의 주인이 되어 통일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시대의 물결은 깊고 얕은 소를 만나 잠시 정체하거나 역류하는 듯 하지만 결국은 도도하게 통일의 바다로 흘러가고 있다. 6.15에서 터져 나와 4.27을 지나온 거세찬 격류는 마침내 분단의 담을 허물어뜨리고 우리 민족이 하나 되는 통일시대를 열어낼 것이다.

가슴 벅찬 통일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촛불시민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로 “세기와 더불어”를 추천한다.”(같은 기사)

북의 동포들과의 교류와 협력의 폭을 넓히고 이를 통해 상호 간의 인식과 이해를 깊게 하여 마침내 분단의 담을 허물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자는 주장이다. 평화와 통일의 길을 추구하는 것은 권력 당국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이제 깨어 있는 시민들 스스로의 몫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금기와 편견을 깨고 북의 사상과 체제의 근간이 된 지도자의 회고록을 읽어보자는 것이다. 그 동안 출판이 금지가 됐던 서적이 우리사회의 민주주의의 신장과 여기에 영향을 받은 법원의 합리적인 판결로 합법화가 된 마당이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없다는 판단도 있었을 것이다. 더욱이 《세기와 더불어》는 저자가 항일무장투쟁과 해방 직후까지를 다룬 회고록이기 때문에 남과 북의 대립과 대결이 고조된 전쟁과 이념·체제 대결, 대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책이니 통일의 대상인 북을 이해하기에는 적합한 책이라는 판단도 했을 것이다.

참으로 소박하고도 구구절절 올바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건전한 상식과 합리적인 인식으로 보면 지극히 합당하고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이 국가보안법의 색안경으로 보면 무시무시한 범죄가 된다. 앞으로 국가보안법의 법정에서는 다음과 같은 범죄혐의들이 제기될 것이다.

정대일은 북의 동포들을 만나 “회합통신”하자며 간첩행위를 공개적으로 선전, 선동하고 있다!

정대일은 통일문제가 당국자들만의 몫이 아니라 민간의 몫이기도 하다면서 정부가 유일하게 ‘통치’차원에서 접근하는 문제에 월권으로 개입하고 반정부 선전, 선동을 공개적으로 하고 있다!

정대일은 반국가 단체의 수장을 “고무찬양”하는 이적행위를 저질렀다!

정대일은 반국가 단체 수장의 저작을 소지, 탐독하라며 불법 범죄를 확산 기도했다!

참으로 황당무계하고 가당찮은 인식 아닌가? 그러나 72년 동안 존속해 오면서 이 사회를 온통 야만으로 물들인 국가보안법의 인식과 법체계로는 이 모든 것이 정당화 된다.

야만적인 국가보안법을 정복하지 않으면 이 사회가 야만에 정복당한다.

반민주, 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을 타도하지 않으면 자유와 인권이 타도 당한다.

반통일 악법 국가보안법이 사라지지 않으면 분단이 영속화 되고 통일이 사라진다.

미제를 등에 업고 반북 대결 “국가 총력전”을 외치며 이 땅을 제2의 우크라이나 같은 참화의 현장으로 만들려는 윤석열 정권을 분쇄하지 않으면 평화와 우리의 생존, 생명이 분쇄 당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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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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