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쏘 반북적 관점으로 사회주의가 대중화 되겠는가? _ 사회주의 좌파 공투본 대선후보의 전도된 인식을 중심으로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를 북한 내지는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은 못 느꼈다.”(“사회주의라는 대안, 현실 가능한 선택지로 올려놓겠다”, 이백윤 사회주의 좌파 공투본 대선후보의 참세상 인터뷰 중에서, 2022.01.05.)

불평등, 실업, 민족적 억압과 전쟁, 기생성과 부패, 기후위기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깊어지는 현실에서,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구체적인 정치적 대안, 현실 가능한 선택지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포부와 정치적 목표에 적극 동의한다.

사회주의는 대중화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극소수 활동가들만이 가진 사상이 아니라 인민대중들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지향하는 정치적 대안이 되어야 한다. 사회주의가 인민대중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자본주의가 아무리 문제가 많은 체제라 해도 자본주의 체제의 굴레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로써 영속적 착취와 억압, 수탈체제는 계속된다. 인민대중들은 정치적 불신과 무관심, 냉소, 체념에 빠지게 되어서 근본적 변화와 새로운 사회를 주장하는 진보정치세력들을 지지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대중화’를 외치며 이번 대선에 나온 사회주의 공투본의 후보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보고 새로운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노동자들 내부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늘어난 것이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쏘 반북 사회주의가 새로운 사회주의의 대안이며 현실 가능한 선택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대안은 과연 진정한 대안이며 현실의 선택지인가? 아니면 비역사적이고 비현실적 선택으로 대중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깊게 만들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전도된 인식이 가능할까? 도대체 어떻게 한국에서 대다수 사회주의자들은 수많은 진보적 인류의 희생과 노고로 만들어왔던 쏘련 사회주의와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도 사회주의 수호를 위해 분투하는 조선과 쿠바 등 현실의 사회주의에 부정적이면서 사회주의 대중화를 외칠 수 있는가?

 

민주적 사회주의는 반공적 사회주의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를 북한 내지는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은 못 느꼈다”며 “사회주의라는 대안, 현실 가능한 선택지로 올려놓겠다”는 주장은 오히려 현실의 역사 속에서 진행됐던 구체적인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관념적, 추상적으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으로 되어 사회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만들 수밖에 없다.

수정주의의 대표자 베른스타인은 사회주의를 기존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타도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실제적으로 건설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류가 지향하는 진보적 가치 정도로 봤다. 베른슈타인의 유명한 주장인 “나에게는 사회주의의 최종목표는 아무 것도 아니고 운동이 전부다”라는 유명한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수정개량주의다. 착취와 억압의 자본주의 체제 권력과 제국주의 체제를 분쇄하지 않고 자본주의, 제국주의 체제 내에서 개량의 축적으로 해방될 수는 없다. 이 체제를 인정하는 운동은 심지어 개량마저도 성취할 수 없게 한다.

억압과 착취를 없애기 위해 투쟁하는 진보적 인류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는 단순하게 정치적 목표를 상실한 가치로서 존재해 온 것이 아니었다. 수억, 수십억 인류에게 사회주의는 피와 눈물과 희생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존재해온 구체적인 역사였다.

비록 72일 동안 단명했지만 1871년 파리에서의 민중봉기는 8시간 노동제, 야간노동 철폐, 아동노동 철폐, 관료들의 직접 선출과 소환, 관료들에 대한 평균적인 노동자 임금 지급, 생산대중들의 직접 정치 같은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진보적 조치를 실현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상 최초의 민중권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철저한 민중독재가 필요했다. 파리꼬뮌은 외세와 외세에게 굴복했던 국내 통치세력들의 반혁명 공세로 인해 패배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더 중앙집중주의적이고 더 민중독재적으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에 파리꼬뮌이 패배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이후 맑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이론적 비판, 폭로와 사회주의에 대한 원리적 상을 넘어서 이제 “파리꼬뭔을 보라! 저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라고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었다.

단명했던 파리꼬뮌의 이상은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실현되었다. 혁명 러시아는 피억압, 피착취 근로대중의 해방과 식민지 민중의 자결권을 앞장서서 주장하고 이의 실현을 위해 투쟁하면서 제국주의 국가 내부와 식민지 억압에 시달리던 전 세계 노동자 민중의 해방의 등불이 되었다. 쏘련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자들이 일으킨 전쟁과 국내 반혁명 분자들의 책동에 맞서 사회주의를 수호했다. 쏘련 사회주의는 인류를 전쟁의 파멸로 몰아넣었던 파시즘에 맞서 영웅적으로 투쟁하여 파시즘을 격퇴했다. 사회주의는 동유럽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식민지 민족해방투쟁에서 승리한 나라들은 속속 사회주의 대오로 결집했다. 그러나 동유럽과 쏘련의 인민독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에 제국주의 체제에 패배했다.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의 해체는 진보적 인류의 패배였고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승리였다. 그러나 1991년 쏘련 해체 직후인 1992년 4월 20일 평양에서는 “사회주의 위업을 옹호하고 전진시키자”라며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고 인민대중을 중심에 세우면 불멸의 힘을 발휘한다며 패배주의에 빠진 전 세계 진보세력들을 결집시켰다. 이 ‘평양선언’에는 발표 당시에는 70개의 국제공산당 및 노동자당이 서명했는데, 지금은 300개 이상의 당들이 지지 서명을 했다.

2022년은 평양선언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과 쿠바는 제국주의 포위 속에서도 자력갱생을 기치로 사회주의 건설과 발전을 지속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를 필두로 남미에서는 반제자주를 내건 진보권력들이 들어서고 있다. 1991년 쏘련 해체를 전후로 “자본주의의 영구적 승리”를 외쳤던 제국주의는 몇 차례의 세계대공황을 거치면서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제국주의 종주국 미국은 그 패권적 힘을 점점 더 상실해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를 북한 내지는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은 못 느꼈다”는 말에는 대중들의 사회주의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라 ‘사회주의’를 천명하는 자신들의 인식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이들은 쏘련을 국가사회주의 혹은 국가자본주의로 간주하고 전면부정하거나 적대적이다. 조선의 사회주의는 관료독재이고 심지어 봉건세습체제로 간주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 체제는 인민들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해방되어야 한다고 인식한다. 이들 ‘사회주의자’들은 주관적으로는 사회주의이나 현실에서는 제국주의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에 동조하게 된다.

이들은 인류의 구체적인 진보적 역사를 부정하거나 부정적으로 본다. 이들에게 사회주의는 구체적인 역사로 존재해 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사회주의가 아니다. 이들은 현실 사회주의의 중앙집중 체제를 명령경제, 지령경제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민주적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사회주의라고 말할 때 낯간지러워하거나 몸서리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이런 분들은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외국의 영향도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 샌더스 같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이 활약했던 부분들, 영국에서도 그런 선전이 있지 않았나. 이제 더 이상 사회주의를 북한 내지는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는 경향은 못 느꼈다.”

이들에게 대안은 현실 사회주의가 아니라 서구 ‘민주적 사회주의’다. 보수당과 마찬가지의 지배계급 정당으로 타락한 영국 노동당 내에서 활동하는 노동당 좌파 제러미 코빈과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가 중심이 된 ‘민주적 사회주의’가 이들의 정치적 대안이다. 코빈과 샌더스가 영국과 미국의 보수화된 정치적 현실 속에서 정치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민주적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 내에서의 ‘사회주의’다.

“코빈의 인기 비결은 그가 굉장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과격한 사회주의 원칙론자인 줄 알았던 그가 알고보니 지극히 당연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더라는 것이다 … 코빈이 자신의 경제정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가의 역할 강화다. 이는 현재 보수당 정부의 ‘긴축’ 일변도 정책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 코빈의 ‘상식적인’ 경제정책 중 하나가 사회적 투자를 국가 주도로 적극적이고 주도면밀하게 확충해 나가기 위해 국가투자은행을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가 주창한 이래 당연시되어 온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재서술한 것뿐이다.”(김공회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영국 노동당 코빈의 상식적인 경제정책”, 한겨레 2015-08-24)

이처럼 코빈은 긴축정책에 앞장서고 반노동자적인 정당으로 타락한 노동당 주류에 비해서는 진보적 입장들을 제출하고 있지만 실제로 코빈의 정치적 입장은 전통적인 사민주의에 머물러 있다.

버니 샌더스 미국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대선경선 후보로 출마를 공식화 하면서 조미정상 회담을 지지하면서도 북에 대해 “경제적, 정치적으로 가능한 모든 압박을 가해야 한다”(버니 샌더스 “트럼프 대북정책은 흠잡을 수 없는 분야”, 연합뉴스, 2019-05-05)고 주장했다. 버니 샌더스는 도널드 트럼프의 대북정책에 대해 “실제로 내가 트럼프 대통령의 흠을 잡을 수 없는 한 분야”라며 지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샌더스는 “외교를 믿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를 불필요한 전쟁으로 끌고 갈지 우려한다고 했는데 당신도 군사행동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샌더스 “美·동맹방어 군사력 사용”…트럼프 “샌더스 후보될 것”, 중앙일보, 2020.02.24.)는 질문에 “전적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군사행동은 가능한 한 드물기를 바라지만 우리는 세계 최고의 군대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샌더스는 앞서 북핵·미사일 시험을 막기 위한 군사적 선제공격을 검토할 것이냐는 뉴욕타임스 설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이것이 미제국주의의 이해에 충실한 ‘제국주의자’로서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의 실체다.

자본주의 철폐와 정치권력 장악을 정치적 목표로 하는 대신에 베른슈타인 식의 가치로서의 사회주의다. 이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의 중앙집중적 계획을 지령경제, 명령경제라고 부정한다.

악랄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하이예크는 《노예의 길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에서 현실 사회주의를 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억압하고 독재권력 전체주의가 주도하는 지령경제, 명령경제라고 비난한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현실 사회주의를 실사구시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과학적, 변혁적 사상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주관적 의도와 상관없이 실제로는 자본주의자들과 같은 인식에 사로잡혔다.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제국주의자들과 반공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 프로파간다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대중들의 인식에 뿌리박힌 반공주의와 같은 수준의 인식에 머무르게 되었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반공적 사회주의이다.

한국사회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대다수 정치세력들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전도된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국가보안법에 굴복한 반공주의 민주 사회주의자들의 형성

 

해방 이후 인민대중들은 70프로 이상이 인민위원회를 권력형태로 지지했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제의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던 식민지 조선의 인민들은 해방 이후 근로인민이 주인이 되는 사회주의를 지지했다. 이들 인민들은 전국적인 인민위원회를 건설하고 일제가 남기고 간 공장을 접수해 집단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농민들은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지주들과 일제 토지를 자신들의 토지로 분배 받았다.

해방 이후 친일파 및 식민지 지배의 후과 청산, 주요 산업과 은행국유화, 토지 무상몰수 무상분배, 8시간 노동제 및 노동3권 보장, 봉건적 인식의 척결과 여성의 권리보장 등을 이룬 이북의 인민권력과 이남의 인민대중들이 열망하는 사회는 일치되었다. 이남의 인민대중들은 미군정과 이승만 주구의 단정단선을 막고 통일을 열망했다.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점령군으로 이 땅에 들어온 미군정은 인민대중들의 타오르는 해방 열망을 짓밟고 한반도 남쪽을 반공주의 전초기지로 만들어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이식시켰다.

주지하듯, 1948년 12월 2일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따라 제정된 미제의 반공주의 악법이었다. 친일파는 자신들의 반민족 행위를 세탁하고자 친미파가 되어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었다. ‘불령선인’은 이제 ‘빨갱이’로 매도되어 척결대상이 되었다. 빨갱이 사냥(레드 헌트)이 자행되어 전 국토는 피로 물들었다. 민중은 전국적인 항쟁으로 이에 맞섰다. 한국전쟁은 이 정점에서 벌어졌다.

미군정의 주구 이승만 백색테러 체제가 4.19이후 막을 내린 뒤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박정희 군사파쇼 체제는 저항하는 모든 세력들을 빨갱이로 내몰아 암살, 고문, 살해, 구속 등으로 철저하게 탄압하며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내건 세력들을 사실상 절멸시켰다. 이남에는 미제가 심어 놓은 친미 반공 군사 파쇼체제가 수립되었다.

1960, 70년대 박정희 군사파쇼 체제에 저항하던 민주주의자들, 박정희가 심어 놓은 한국노총 어용 체제에 맞서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싸웠던 노동자들, 부마항쟁 등 민중의 투쟁이 이어졌지만 변혁적 정치운동의 명맥은 사실상 끊어졌다. 박정희의 암살 이후 전두환 신군부에 맞섰던 5월 광주의 투쟁정신은 1980년대 내내 반독재 반미 통일운동, 혁명적 노동운동의 자양분이 되었다. 1980년대는 불의 시대, 혁명의 시대였다. 1980년대에는 한국사회를 과학적으로 인식하여 변혁을 모색하기 위한 사회성격논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때에는 누가 변혁의 원칙에 충실하고 그에 합당한 변혁의 수단과 경로를 잘 제시하고 있는지를 둘러싸고 정파들 간의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말 1990년대 초 쏘련이 해체되자 불의 시대는 가고 청산주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1991년 열사들의 이른바 분신정국, 전노협의 건설은 1980년대 불의 시대를 지속시키는 불꽃들이었지만, 청산주의라는 더 거대한 물결 속에 마지막으로 이어진 투혼들이었다. 이때부터 ‘위기’를 야기한 변절·투항자들 스스로가 조장한 ‘맑스주의의 위기’, ‘노동운동의 위기’가 시작되었다. 혁명적 운동을 버린 자들의 자기 ‘고백’이 앞 다퉈 시작되었다. 혁명적 문학은 후일담 문학으로 후퇴하고, 역사와 사회를 총체적,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거대 담론 대신에 현실과 괴리된 개인주의 조류, 각종 소부르주아 조류가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 혼란의 시기 때 수입된 사회주의는 토착성, 역사성을 상실한 외래의 ‘국제사회주의’였다. 이들 국제사회주의자들은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에 대해 온전한 사회주의 건설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면서 환영했다. 이들은 진보적 인류 전체의 패배와 자본주의 복귀를 단지 착취와 억압의 ‘국가자본주의’ 체제의 패배로 봤기 때문이다.

이들의 국제사회주의는 “공상 속 사회주의”였다. 이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사회주의의 원리적 상을 그려놓고 그 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전면부정하고 적대시했다. 일국에서 사회주의 건설과 노동자국제주의를 대립시켰다. 이들의 주관주의적 관념 속 사회주의와 달리 쏘련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와 싸우고 파시즘과 진보적 인류 전체의 운명을 걸고 싸우고 민족해방투쟁을 지원하는 등 희생과 제약 속에서 사회주의 건설을 했다. 무수한 한계와 오류에도 불구하고 인류 역사에서 사실상 전인미답의 사회주의 건설을 하며 인류의 진보에 기여했던 쏘련사회주의를 국가자본주의라는 극단적 종파주의의 눈으로 단죄했다.

이들 ‘신흥’ 국제사회주의자들과 달리 1980년대 맑스레닌주의를 자처했던 세력들은 쏘련사회주의 패배 원인을 계획경제 및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약화와 당의 혁명성 약화, 제국주의와 타협, 굴복에 원인이 있다고 본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인식했다. 이들은 소멸로 갔어야할 국가가 소련에서 강화되었다고 하면서 쏘련을 국가사회주의로 규정했다. 이들 사회주의자들은 쏘련 사회주의의 민주집중적인 원리에 기초한 당, 중앙집중적 경제를 관료주의 병폐로 인식하고 이에 대비해 ‘민주적 사회주의’를 외쳤다.

이들은 쏘련사회주의 해체원인을 쏘련이 가장 강성하고 발전했던 것에서 찾고, 해체 원인이 되었던 것을 지향점으로 삼았던 것이다. 철저히 전도된 인식이었다. 이들은 맑스레닌주의의 변증법적 유물론, 사적유물론을 버렸다. 이들은 역사를 유물론적으로 인식하기보다는 ‘스탈린주의’의 문제로 단순하게 인식했다. 스탈린이 쏘련사회주의 해체의 주범이고 모든 국제적 패배의 원인 제공자였다. 역사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인식 대신에 ‘스탈린주의’ 한 마디면 역사가 손쉽게 정리되었다.

이들에게 맑스레닌주의는 스탈린주의로 왜곡된 맑스레닌주의에 불과했다. 이들은 레닌주의가 스탈린주의를 낳았다면서 레닌주의도 부정했다. 이들은 내친김에 엥겔스사상이 레닌주의를 낳았다면서 맑스와 엥겔스를 분리했다. 이들은 마침내 맑스조차도 이른바 인본주의의 초기 맑스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누면서 맑스주의의 통일적 발전을 부정하며 맑스주의도 버렸다.(이에 대해서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반대하는 ‘진보’적 철학 사조의 정치적 실체”, 노동자정치신문, 2018년 11월 3일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과학적 역사 인식의 총화이자 현실 개조를 위한 불패의 무기였던 맑스레닌주의는 갈기갈기 찢어져 해체 당했다. 이제 남은 것은 혁명성과 과학성, 진리성이 거세된 포스트맑스주의, 네오 맑스주의, 무정부주의적 맑스주의, 강단 맑스주의, 신좌파적 맑스주의였다. 대중들과 괴리되고 현실과 떨어진 극소수 강단 지식인들만의 “밀교화(密敎化)”된 프랑스 현대철학 사조들이 밀려 들어왔다. 이러한 소부르주아적 ‘사회주의’는 반쏘반공주의를 공통분모로 한다는 점에서 역사와 현실 인식에서 트로츠키주의와 일체감을 발휘했다. 이들은 쏘련을 반대하고 수십 년 동안 쏘련 사회주의를 건설했던 지도자였던 스탈린을 반대하는 사회주의였다. 이들의 반쏘는 반북이 되었고 반스탈린주의는 반김주의가 되었다.

21세기 분단된 반도 남쪽에서 대다수 사회주의자들이 그리는 사회주의의 상은 반쏘, 반북 사회주의다. 이들은 사회주의 원칙을 지키며 강성한 사회주의 건설을 했던 시대의 사회주의 상과 원리를 반대한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주의가 대중화 되지 않은 이유는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일반이 아니라 현실의 사회주의를 이적단체, 반국가단체로 규정하는 악법이다. 국가보안법은 반공주의법이다. 반공은 바로 반북이다. 국가보안법은 현실의 사회주의, 특히 북의 인민대중들의 자유와 인권을 말살하고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는 폭압적 체제로 인식을 시킨다. 사회주의 국가의 지도자들을 악마화 하여 사회주의의 영상을 흐리게 한다.

그런데 이들 사회주의자들은 국가보안법이 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현실 사회주의를 혐오하고 부정한다. 국가보안법이 가리려고 하는 북의 현실에 대해 무지하다. 주관적으로는 진보적이나 실제로는 국가보안법의 인식에 사로잡힌 일단의 사회주의자들은 대중들의 반북반공주의 인식에 영합을 하고 더 깊게 만든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대중들은 “더 이상 사회주의를 북한 내지는 구사회주의와 동일시하”지 않게 됨으로써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적대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고, 아무리 이 체제가 문제가 많다 할지라도 이 체제에 적응, 노예화 되어 살 수밖에 없다.

국가보안법이 폐지되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지 않았다하더라도 자주적 인식을 함으로써 국가보안법을 무력화 시켜야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회주의 대중화’를 위해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한다. 우리 안에 내면화된 분단적 인식을 혁파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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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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