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순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인가? – 여순민중항쟁과 오늘의 과제(여순항쟁서울유족회 회장 이자훈)
여순항쟁서울유족회 회장 이자훈
해방 당시 민족적 과제는 통일된 자주국가 건설과 민족정기를 바로세우기 위하여 친일파와 일제 잔재 청산과 숙청을 하는 것이었다. 민중들의 요구로서, 당시 농민의 약 70%에 해당하는 절대다수인 소작인과 농토가 없는 백성들은 토지개혁의 핵심인 무상몰수 무상분배를 원했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과 미국·친일파·지주들은 이러한 민족과제와 민중들의 요구를 저버리고 분단국가와 친일파 온존 토지개혁을 반대하여 제주도에서 봉기한 4.3민중항쟁을 진압하기 위하여 여수주둔 14연대 파견을 결정했다.
1948년 10월 19일 그 부당한 명령에 맹렬히 반대한 사병들의 봉기는 ① 동족상쟁 절대반대(제주도 파병반대) ② 미군철수를 외친 의로운 항쟁임이 역사적으로 밝혀졌다.
8일 간에 걸친 인민위원회 활동은 자주통일국가 건설, 몽양 여운형 선생이 결성한 인민공화국의 절대 지지, 친일파 청산, 무상몰수 무상분배 원칙의 토지 개혁 등 밑으로부터의 마을 공화국을 만들어 차별 없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평화스런 마을공동체를 진압하기 위해 이승만 정권은 마치 적군을 포위하여 점령하는 군사작전처럼, 군의 10분의 1인 5,000명의 군대를 투입하여 죄 없는 양민들을 ① 즉결처분 ② 군사재판으로 학살했다.
10월 22일 계엄령이 선포되었지만 이승만 정권 각의는 실제로는 10월 25일 이를 결정했다. 계엄법도 한 달 후에 제정했다. 이런 불법, 무법, 위법으로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만행을 감행했다.
그뿐만 아니라 10월 26일 청야작전으로 여수시가지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때 노약자, 병든자, 어린아이들은 사망자 수에 포함되지 않는 행방불명으로 처리하여 통계에 잡히지 않은 인명도 무수하게 살상했다. 진압군대는 살인, 방화, 약탈, 고문, 폭력, 강간, 납치, 방화, 재산몰수 등 살육작전을 되풀이 했다. 이는 당시 미군 보고서에서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동족 살생의 만행은 72년간 방치되었고 여순지역은 마치 빨갱이들이 살고 있는 반란의 도시로 낙인찍혔다. 또한 연좌제를 남발하여 유족들은 생존과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생명의 존엄, 인권보호는 말할 것도 없이 생존의 근거를 뿌리 채 부정당했다.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박탈당한 유족들은 통한의 세월을 원망하면서 살아 왔다.
역대 국회에서 여섯 번의 특별법 발의가 있었지만 문턱도 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국가폭력이 역사적으로 밝혀졌지만, 고의적으로 국가는 방기했고 국회는 직무유기를 계속했다. 그러나 이제는 다음과 같은 역사의 명령과 유족의 염원을 담아 특별법을 하루 빨리 제정해야 한다.
첫째, 이승만 정권의 국가폭력을 단죄하고 진실 되고 공정하게 진상을 밝히고 역사 앞에 바로 세워 자손만대에 교육해야 한다.
둘째, 당시 동조했던 민중들은 이념과 사상도 모르는 민초들이 태반인데 불법, 무법, 위법으로 학살당했다. 민중에 대한 폭력, 고문, 강간, 약탈, 가옥소실, 납치, 감금, 유괴, 재산몰수 등의 만행을 빠짐없이 규명해야 한다.
셋째, 그때 항쟁에 동조하지 않았더라도 손가락으로 총살대상을 지적하면 즉결처분하는 ‘손가락총’에 의하여 무고하게 학살되고 재산 등을 강탈당한 민초들은 사회경제적 손실을 원상회복해야 한다.
넷째,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수만의 민초들의 영혼을 달래고 깨끗하게 명예를 회복해야 하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교육해야 한다.
다섯째, 진상이 규명됨으로써 (전남 통계 사망 11,131명) 국가의 사죄를 받고 당시 군·경·우익 학살주범들을 가해자로서 단죄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특별법은 반드시 제정되어야 하고 이 성실한 작업이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국민화해와 화합의 초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가까운 예로 독일과 일본의 전후 처리를 비교하더라도 알 수 있듯이 문명국가로 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자주적 통일을 염원하는 많은 민족구성원들은 당시의 여순민중항쟁은 오늘의 과제인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회는 더 이상 직무유기를 하지 말고 하루 빨리 특별법을 제정하라!
이것이 국민의 요구이다.
[자료]
<성명서> 여순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에 따른 “서울유족회 결성에 즈음하여”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했던 14연대 장병들이 부당한 상부의 제주도 파병 명령에 맹렬히 항명하여 ① 동족 상쟁 반대(제주도 파견 반대) ② 미군철수를 외치면서 봉기한 여순항쟁은 올해로 71주년을 맞이한다.
8일 간에 걸친 민중공동체를 자주적으로 결성하고 민중들의 지지와 적극적 협력에 의하여 인민위원회를 운영하면서 당시 이승만 정권의 분단국가 건설을 반대하고 항쟁했던 역사를 환기하면서 2019년 7월 4일 유족들의 합의에 따라 서울유족회를 결성한다.
당시 민족적 과제였던 자주통일국가건설, 친일잔재 청산, 토지개혁을 통하여 참다운 평등사회를 만들려는 민중들의 의지와 선택을 무참히 짓밟고, 죄 없는 민초들을 불법과 무법에 의한 학살(약 12,000∼20,000), 폭력, 강간, 가옥소실, 재산몰수, 납치, 고문 등의 인류문명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 잔인성을 저질렀던 국군의 지휘관 주력은 일제시 만주에서 독립운동가와 독립군을 토벌했던 “만군간도특설대”의 인물들이 주력이었던 것도 치를 떨게 한다.
살아남은 유족들은 빨갱이란 낙인 속에 연좌제와 갖은 차별, 학대의 그늘에서 고통과 억울함을 삭이면서 고난의 생을 살았으며 대를 잇는 가난과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지금도 헤매고 있다.
제도적 민주화를 쟁취한 현 시국에서도 아직껏 특별법이 국회에서 계류되고 있는 통탄할 시대를 우리들은 절규하면서 살고 있다.
역사의 정의는 무엇이며, 진실은 어디로 갔으며 왜 죄 없는 많은 젊은이들이 초개와 같이 사라져야 했던가?
진상을 백일하에 규명하고 명예를 완전히 회복하는 길만이 구천에 떠돌고 있는 원혼을 달래는 길이요 살아남은 유족들을 두 번 죽일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국권의 최고기관인 국회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진압과 학살의 갖은 만행의 주범들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것이 여순항쟁은 현재 진행형이 된다.
우리들 유족회는 비상한 각오와 결의로써 특별법을 꼭 관철할 것이고 그것만이 원한의 세월을 인고하면서 견딘 최대의 보상이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요구한다.
국회는 빠른 시일 안에 특별법을 제정하라!
“과거의 역사를 망각한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그 역사를 청산하지 않는 민족은 되풀이 한다”는 명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진보연대를 비롯한 민족단체, 시민단체가 협력하여 “여순항쟁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범시민단체 대책협의회”까지 만들어 전 국민적 협조체제를 만들어 주신 데 대하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제, 우리들 유족들도 고령화됨에 따라 시간적 여유도 없다.
하루 빨리 국회는 더 이상 직무유기를 하지 말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빠른 통과를 다시 한 번 촉구하는 바이다.
2019년 8월 15일
서울유족회 회장 이자훈(李慈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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