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임금양보론은 선제적 투항이다! 노동자 사상으로 무장하여 자본의 임금론을 깨부수자!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자본가 언론과 경총 등 자본가 단체에서 일제히 전체 노동자 임금동결(자제)과 최저임금 인상반대를 외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 내부의 ‘자본의 앞잡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여기에 화답하여 조직된 노동자의 ‘선제적’인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한석호, ‘돌팔매 맞더라도 목청껏 임금동결을 주장하고 싶은데’, 매일노동뉴스, 2020.06.08./이남신, ‘코로나 위기 극복, 담대한 임금동결을 제안한다’, 매일노동뉴스, 2020.06.11.)

이들 ‘자본의 앞잡이’들은 이를 ‘선제적’, ‘공격적’, ‘담대한’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이는 자본을 향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내부를 향해서 제기되므로 후퇴적이고 굴종적이고 타협적이며 계급분열적이다.

이들은 조직된 노동자가 임금동결을 하는 대신에 총고용을 유지하고 임금양보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일자리를 잃은 취약한 노동자계층에게 ‘연대임금’으로 나눠주자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노동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총액분을 삭감하여 이윤을 증대시키려는 자본의 이해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반노동자적이다.

왜 그렇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가?

1. 임금양보는 구체적이고 선제적인데 총고용 유지는 담보가 없다

우선 이들의 선제적 임금동결론은 자본 또한 선제적 총고용 유지를 확약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 임금양보로 끝날 수밖에 없다. 실제 자본진영과 정부에서는 선제적 임금동결과 총고용 보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 일각서 튀어나온 임금동결론에 재계와 정부 측은 일단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노조 측의 공식 제안이 아닌 만큼 먼저 나설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총고용 유지’를 상급단체가 개별기업에 강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단 현실론도 있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안경덕 상임위원은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양대 노총에서 공식 제안을 해야 검토를 할 수 있다”며 “다만, 현재로선 민노총이 임금 동결 주장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고 답했다.

전인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현재 경제 상황을 보면 임금 인상은 쉽지 않다”며 “고용 유지는 노력해야 하지만, 해고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고 평가했다.(노동계 일각서 임금동결 ‘빅딜’ 제안…노사정 테이블에 오를까, 뉴스핌, 2020-06-13)

자본진영의 이러한 반응에 대해 한석호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노동조합운동 일각에서 실제 검토하고 있다. 역시 노동운동이다. 그런데 자본이 몹시 당황하고 있다. 사석에서는 대놓고 노동계의 임금동결 제안을 안 받겠다고 하기도 한다.

기사의 한 대목이다. “노동계 일각서 튀어나온 임금동결론에 재계와 정부 측은 일단 말을 아끼는 모양새다.” 정부가 말을 아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수십년 입버릇처럼 임금동결을 주장하던 재계가 말을 아낀다니,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재계가 발을 빼고 있다.

또 기사의 내용이다. “전인식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현재 경제 상황을 보면 임금 인상은 쉽지 않다”며 “고용 유지는 노력해야 하지만, 해고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렇다. 그래서 자본이 당황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가 임금동결을 걸고 총고용전선을 쳐야 하는 절박한 이유다.(2020. 06.13.)

현장 활동가들이 자본가들과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 사업장 내에서도 회사 관계자들과 공적인 교섭 외에 사적 모임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는 마당에 한석호 씨는 자본가들과의 ‘사석’, 즉 사적인 모임을 통해 노동자들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자주 논하고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고백하고 있다. 자신의 신분을 ‘노동운동가’라고 공개하는 한석호 씨가 얼마나 타락했는지, 그 타락에 무감각한지 잘 보여주는 자기 고백이 아닐 수 없다.

“가당치도 않는 말을 끌어다가 자기주장이나 조건에 맞도록 합리화하려는 것”을 견강부회(牽强附會)라고 하는데, 한석호 씨는 실로 가당치도 않은 말로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 하려고 하는 것 아닌가? 약삭빠른 자본가들은 임금동결이나 임금삭감을 원한다. 노동운동 일각에서 “선제적으로” 임금동결을 먼저 주장하고 나선데 대해서 환영하지 않을 자본가들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왜 자본진영에서는 말을 아끼고 있는가?

자본가들이 솔직하게 표현했듯이, 저들은 선제적 임금동결 대신에 교환을 요구받는 ‘총고용 유지’에 대해서는 “상급단체가 개별기업에 강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해고금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냉혹한 부르주아적 현실인식이다. 저들은 오로지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양보를 받으려 하지만 그 대가로 내어줄 생각은 꿈에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운동’ 일각에서 알아서 먼저 양보를 하겠다며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나서고 있으니 한석호 씨 말대로 자본가들이 내심 기뻐하면서도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본가들과 달리 “사회적 타협”을 강조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는 “양대노총에서 공식 제안을 해야 검토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 역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원포인트 노사정 사회적 대화에 이미 참여하여 전 국민고용보험 대가로 자발적 ‘고용보험료 인상’을 월권으로 제안하면서 “이번에는 도중 하차는 없다”고 공언하는 만큼, 실제 이러한 교환이 의제로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렇다 하더라도 고용유지와 임금삭감의 교환이 현실에서 이뤄질 가능성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우선적으로 임금을 양보한다고 해도 자본이 대량해고를 남발한다면 이를 제어할 방도가 없다. 이들 ‘자본의 앞잡이’들은 노사정협약을 강조하는데 김대중 정권은 노동운동 내부의 관료주의 지도부들과의 합의로 노사정합의를 한 뒤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입법화 하여 이를 법적, 제도화 하였다. 경사노위를 활용하여 노동자들의 이해를 관철시킨다는 이들의 주장도 이미 현실에서는 수없이 파산에 파산을 거듭하였다. 사회적 협약 기구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배신한 관료들을 들러리로 내세워 동의와 설득의 모양새를 취한 뒤 자본과 권력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도구가 되어 버렸다.

자본은 노동자의 임금양보를 대가로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합의를 하기는커녕 의제로 올리려고 하지도 않을 텐데, 설령 백보를 양보하여 사회적 타협으로 합의하려 한다면 이를 법적, 제도화하기 위해 정리해고법을 국회에서 폐기하여야 한다. 그런데 임금양보 대가로 총고용을 보장한다는 노사정 합의도 실현 가능성이 없지만 법적으로 노동악법을 폐기한다는 담보는 더더욱 없다.

결국 총연맹이나 개별 노조들이 임금양보를 승인하면 이는 대단히 구체적이고 ‘선제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집행되는데 비해 그 대가로 교환받으려는 “총고용 유지”는 확실한 담보물이 없다. 현금을 주는데 그 대가로 부도어음을 받는 격이다.

무엇보다 자본의 공황과 경쟁의 격화, 이로 인한 개별자본의 파산이나 파산 위기의 증가는 의지나 노사정 확약이나 이것을 넘어선 법률 조항 보다 더 강제적인 자본주의 경제법칙의 영향을 받는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노사가 서로 해묵은 주장만 되풀이해서는 해결이 안 된다.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당연히 그렇게(임금동결과 고용유지) 진행돼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다만 항공·호텔·마트 등 일부 업종은 매출이 거의 발생 안 해 고용유지가 불가능하다”며 “실질적으로 기업 측에 도움이 될 만한 예외조항을 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뉴스핌, 같은 기사)

이처럼 설사 협약을 맺는다 하더라도 총고용 유지의 ‘예외조항’, 즉 일부(!) 업종에서 정리해고를 인정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항공·호텔·마트 등 일부 업종”에 한정돼 있지만, 이 예외조항은 자본주의 공황의 정도에 따라, 또 미래에 닥칠 위기에 대비해서든지, 또는 위기를 과장해서이든지 여러 가지 이유로 총고용 유지의 예외 업종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중소영세상공인들의 파산은 노동자 대량실업 이상으로 속수무책으로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파산하면 대다수 비정규직 노동자로 취업하거나 완전 실업 상태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계급동맹 대상인 중소영세상공인들의 파산에 대해서는 이 총고용 유지 협약으로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자본의 독점의 강화는 자본주의에서 경제법칙이다. 이 경제법칙은 공황 상황에서는 더욱 더 가속도적으로 작동된다. 자본주의 공황과 경쟁의 격화, 노동자들의 대량 실업과 미취업, 소상공인들의 속수무책의 파산, 이러한 경제법칙을 노동자들의 일방적 양보로, 협약으로 강제할 도리가 있는가?

결국 다시 강조하지만 그렇다면 이제 현실에서 남는 것은 노동자의 ‘선제적’인, 즉 일방적인 임금양보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협약 이전에 현실에서는 이미 노동자들에 대한 대량해고가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2. 정규직 임금자제와 최저임금 인하 공세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정규직 임금동결이나 임금인상 자제가 비정규직이나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으로 귀결될 리 만무하다.

통계청은 2019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4%로 역대 최저치라고 하지만, 노동자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전세비를 포함하여 주택 마련 자금에 대한 은행부채, 통신료, 교통비, 자녀부양비, 학비, 의료비용은 여전히 높아서 공식 소비자 물가 통계와 체감물가의 괴리는 “6년 만에 최대”라는 기사도 나오고 있다.

2018년 공무원 임금인상률은 2.9%이고 2019년은 1.8%이다. 이는 명목상의 인상일 뿐이고 실질적인 체감 물가인상에 대비해보면 실질임금 동결 내지 인하이다. 정부는 공무원 임금동결을 필두로 전 노동자의 임금인하를 유도해낸다.

자본진영의 통계임을 염두에 두고 임금인상의 대략적 추세를 알기 위해 살펴보면 상용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장 협약임금인상률은 2017년 3.6%, 2018년 4.2%, 2019년 3.9%이다. 그런데 100인 미만 사업장은 대다수가 미조직 사업장이므로 이 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노동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상용 1인 이상 사업장 전체 근로자 실질임금 인상률을 보면 2018년 3.7%인데, 전년도인 2017년에는 1.3%에 불과했다. 경제활동인구 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실질임금 인상률을 보면 2018년에 4.2% 상승했는데 이는 2017년 0.2% 인상에 따르는 결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2020년 1-3월 명목임금 인상은 -0.15%다. 명목인상이 저 정도라면 실질임금은 대폭 인하다. 이미 대기업 노조도 최근 몇 년 동안 낮은 임금인상률을 기록했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지부장 이상수)는 이미 2020년 4월 17일 지부 소식지를 통해 고용보장을 조건으로 임금자제를 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에 대해 자본가 언론에서는 ‘임금동결’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나섰다. 현대차 지부는 4월 21일 성명을 통해 “임금동결로 몰아가는 보수언론에 경고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부는 이것은 “연말에 부가적인 보상”으로 부분적인 보상을 받는 독일 금속산업 노사 ‘위기 협약 체결’로서, 현대차 지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임금동결을 선언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자본가 언론에서는 “노조의 변신은 무죄…코로나가 바꾼 현대차”(노컷뉴스, 2020.04.30.0.), “지금은 인상 명분이 없다”···임금협상 타이밍 재는 車노조”(서울신문, 2020.06.02.)며 정치선전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생산성과 품질향상에 노력하고 임금을 자제하는 대신에 고용안정을 도모하여 사회적 합의를 하겠다는 현대차 지부의 주장은 바로 한석호, 이남신 식 ‘사회적 타협’ 노선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이미 최근 수년 간 지속적으로 임금양보가 진행되고 있고 실질임금이 삭감되고 있는데 총고용은 유지되고 있는가? 게다가 이 임금양보가 비정규직이나 취약한 노동자 계층의 고용안정과 임금인상으로 연결됐다는 근거는 있는가?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지엠 비정규직 사례처럼,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가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 최저임금은 어떠한가? 자본진영은 지난해 총공세로 2020년 최저임금 인상 적용은 2.9%(240원)로 급락했다. 자본가들과 자본가 언론에서는 내년 2021년에 적용될 최저임금 심의를 앞두고 최저임금 동결 공세를 광범위하게 개시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를 명목으로 더욱더 대대적인 임금삭감과 대량 정리해고 공세를 취하고 있다. 하나의 일자리라도 지키겠다는 문재인의 공언과 달리 아시아나 항공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은 지난 5월 11일 집단적으로 정리해고를 당했다. 기업에게는 2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자금이 지급되는 반대편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량으로 잘려나가고 있다. 2019년 2020명의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끔찍하게 죽어나가고 올해 5월에만 58명의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며 참담한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으로 더 많이, 더 열악한 조건 속에서 힘들게 일할 것을 요구하고 필요할 때는 일방적으로 내치는 만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본가들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냉혹하게 공격에 나서고 있는데, 왜 이쪽에서는 알아서 먼저 내주자고 하는 반노동자적인 주장이 버젓이 횡행하는가?

한석호 씨는 “한국 노동운동에서 임금동결을 대놓고 주장하는 일이 바로 그런 차원이다. 자본의 앞잡이로 취급받기 딱 좋은 행위다”(한석호, 같은 글)라고 주장했는데, 그런 만큼 자신들에게 어떠한 비난이 쏟아질지 명확하게 알고 행하고 있는 “확신범”들인 것이다.

3. ‘연대임금론은 연대도 아니고 노동자 임금론도 아니다

이남신 씨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임금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임금교섭의 기본인 하후상박을 실현하지 못한 조직노동의 책임이 가볍지 않음을 상기해야 한다”(이남신, 위의 글)고 주장했다.

2017년 민주노총 선거에서도 윤해모 후보진영에서 ‘사회연대기금’이라는 명목으로 임금양보를 주장한바 있고, 조상수 선거대책본부에서는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의 ‘하후상박론(下厚上薄)’을 언급하며 ‘연대임금’이라는 명목으로 노동자의 임금동결을 주장했다. 또한 2018년 하부영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장은 비정규직 차별해소를 내걸고 ‘하후상박 연대임금 전략’을 제안하고 2019년에는 무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노동운동 경력을 팔아 자본의 주구로 변절한 노사정위원장 문성현이 ‘성과급 반납’으로 “비정규직 처우 개선”하자는 ‘연대임금’ 주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전례 없는 상황, 노조와 회사 서로 힘 합쳐야”며 노사상생과 임금자제를 설파하여 조중동 등 자본가 언론에서 모범으로 찬사를 보내는 한국노총 산하 SK이노베이션노조(이성훈 노조위원장)의 사례와도 같다.

조선일보에서는 “계속 우리만 잘 먹고 잘살자고 임금 인상 투쟁(을 하는) 방향이 옳은 것인지를 생각해 달라. 앞만 보고 달려오다 보니 우리는 10% 이내의 기득권자 세력이 되었다”(11월 21일 ‘노동조합의 사회연대전략’ 포럼 중 하부영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발언)는 하부영의 발언을 인용하고, 2019년 기아차 지부의 무파업 사례 등을 들며 변화된 사태에 대해 찬사를 보내고 있다.(“상위 10% 대기업 노조의 새바람… 투쟁보다 대화”, 김소희 이코노미조선 기자, 2019.12.24.)

이처럼 현재 제기되는 하후상박론은 노동해방과 평등세상을 위해 전투적으로 싸웠던 전노협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이다. 전노협의 하후상박 임금론과 이들의 임금양보론은 전혀 다르다. 전노협은 파쇼 권력의 폭압적 공세를 등에 업은 경총을 비롯한 자본가 집단들의 임금가이드라인과 총액임금제를 분쇄하고 1990년 18.8%, 1991년 17.5%, 1992년 15.2%로 임금인상을 쟁취했다. 1991년 경제성장률이 9.1%에서 1992년 5.15%로 급락한 상황에서도 대대적인 임금인상을 쟁취해낸 것이다. 심지어 전노협은 선파업 후교섭이라는 교섭관행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 당시에 자본·권력과 협조하여 임금담합을 하려던 한국노총에 대한 점거와 탈퇴투쟁이 대대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한국노동연구원, 『19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 2001. 2. 참고)

전노협의 임금인상 투쟁의 원칙은 자본의 임금론인 생산성 임금론도, 더욱이 노골적인 임금자제론도 아닌 생활임금 쟁취였다. 생활임금론은 자본가들의 주장대로 임금이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와 그 가족의 노동력을 재생산하는데 들어가는 생활수단의 가치로 구성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여 제기하는 노동자 계급의 임금론이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임금을 삭감시키려는 자본의 거짓 이데올로기를 뚫고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안정적이고 인간다운 삶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임금투쟁의 사상이었다.

전노협의 하후상박론은 자본과 권력에 대한 정치투쟁으로 대폭적 임금인상을 쟁취하고 그 몫 중에서 더 가난하고 더 취약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폭을 상대적으로 높여 노동자 계급 내 평등을 쟁취하자는 논리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노동자들이 역사의 무대로 진출한 이래 전노협의 임금인상은 사회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삶을 전진시켰다.

그런데 자본의 앞잡이들의 임금양보론은 자본의 이윤을 투쟁으로 쟁취하여 노동자 내 임금격차를 줄이자는 주장이 아니다. 일방적 양보와 타협과 총액임금의 감소로 자본의 이윤확대에 복무한다.

이는 1820년대 이후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늘어나자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막기 위해 자본의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낸 ‘임금기금제’에 불과하다. 이는 임금은 기금처럼 한정돼 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통해 임금인상을 해봤자,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을 줄이는 결과만 가져오기 때문에 임금인상은 무용한 일이라는 이론이다. 이들은 다만 ‘연대임금제’라고 마치 이 요구가 노동자의 요구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을 뿐이지만 아래에 인용문에서 보는 것처럼, 자본의 이윤을 공격하지 않고 임금이 기금처럼 제한돼 있어서 상위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이 하위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의 걸림돌로 사고한다는 점에서 임금기금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박사의 분석에 의하면 상위 10%와 하위 10% 소득 격차는 2014년 5.00배에서 2019년 5.39배까지 벌어진 상태다. 그걸로도 암담한데, 코로나19가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임금이 인상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밑바닥 노동은 임금을 인상할 수 없다. 일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임금인상이 가당키나 하겠는가.'(한석호, 위의 글)

“일 자체가 없는 상황”이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전노협 당시 한국노총 어용들의 노경총 임금담합은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규탄과 준열한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운동이 무너진 21세기 한국 노동운동 내에서는 이러한 친자본적인 주장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노골적으로 유포되고 있고 이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이들 ‘자본의 앞잡이’들은 정규직 노동자의 일방적 임금양보를 ‘노동자연대’니 전태일 ‘풀빵정신’이니, ‘나눔정신’이니 하며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그러나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주장을 가지고 전태일 열사를 모독하면 안 된다. 전태일 열사의 정신은 인간애를 바탕으로 하지만 자본 및 권력과의 비타협적 투쟁정신이다. 이들 ‘자본의 앞잡이’들의 주장은 노동자들 내부의 격차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노동자들 사이의 심대한 격차를 더욱 늘리고 계급 간 불평등을 더 심화시킬 뿐이다.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 내부의 분열을 더 심화시킨다. 그리고 오늘날 노동운동 내에 팽배한 이기적 조합주의와 반연대적 사상, 노사타협주의와 개량주의 사상 등을 유포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무의식을 조장한다. 이로써 이들이 말하는 ‘노동자연대’는 한국 노동운동의 후퇴와 분열상을 더 심화시킬 따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착취사회를 근원적으로 철폐시키려는 노동운동의 근본목표를 상실하게 하고 자본에 포섭된 운동으로 타락시키는데 크게 일조한다.

노동자 내부의 계급적 단결과 연대는 노동자들이 먼저 쟁취한 삶의 수준과 권리를 아래로 끌어내려 좁히는 하향평준화 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단결과 연대는 이윤추구가 지상과제인 자본에 맞서 노동자들의 공통의 이해를 관철시켜내는 것이어야 한다.

이러한 각종 정규직 임금양보론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단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분열을 더 심화시켰다. 정규직 임금양보로 비정규직 임금을 올린다는 발상과 방식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개선하는 데 실효성도 없다. 실제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부분적인 임금인상과 삶의 전진은 오직 투쟁의 성과였을 뿐이다. 한국노총 어용 사업장 내에서 정규직 임금양보분으로 비정규직을 임금을 올리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이 나아졌다는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비정규직의 실질적 임금인상은 정규직의 임금양보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본에 대해 공세적인 요구를 하여 쟁취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일환으로 정규직 전환을 이뤄냈을 때 실질적인 삶이 개선될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적 이해관계를 대립시켜놓고 정규직 노동자로 하여금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계급적 단결’을 강요하는 것은 허구적 단결의 추구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단결의 현실적 기초, 이해관계를 무너뜨리면서 하나가 되라고 강요하는 강압밖에 되지 않는다.(“횡행하는 정규직 임금양보론 2017년판 노ㆍ경총 임금담합론을 분쇄하자!”, 투쟁과 혁신 선대본, 2017. 11. 28. 7)

4. 작금의 운동노선을 근원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임금인상 투쟁의 원칙은 무엇인가?

맑스의 임금에 대한 원칙은 당파적으로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것이면서도 과학적이기 때문에 현실과 맞아 떨어진다. 노동자들의 임금상승은 자본가들의 이윤의 축소다. 반대로 노동자 임금삭감은 자본가들의 이윤의 증대다. 이 적대적 법칙은 자본주의에서 필연적이다. 이 자본가와 노동자의 서로 다른 권리와 권리가 충돌하게 되면 누가 힘이 더 센가, 누가 더 단결하는가에 의해서 임금이 결정된다. 따라서 맑스는 노동력의 재생산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한 사회의 사회, 역사, 문화적 발전 수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고 있다. 이 사회, 역사, 문화적 발전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착취사회에서는 부분적인 임금인상만으로는 노동자들이 완전하게 해방될 수 없다. 부분적인 임금인상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의 지배와 착취는 계속될 것이며 또한 운동이 후퇴하면 부분적인 임금인상은 자본의 반격에 따라 언제든지 후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은 임금인상이 이윤을 축소시켜 자본축적을 방해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간다면 그 축적 규모를 축소시킬 수 있는데 그에 따라 고용된 노동자 수가 줄어들거나 임금이 줄어들게 된다. 더 나아가 자본 축적 자체를 중단함으로써 고용된 노동자들 전체가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다. 또한 현대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은 인플레이션을 통해 임금삭감 효과를 거두고, 그것을 통해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을 대폭 인하하기도 한다.

지금 유포되는 ‘선제적’ 임금양보론은 지금 최저임금을 포함해 노동자 전반의 임금수준을 둘러싸고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투쟁 전열을 무너뜨리는 선제적인 투항이다. 작금의 횡행하는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반노동자적인 ‘운동’노선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한석호 씨는 노동자들의 일방적인 임금양보를 종용하며 이러한 흐름이 생겨나는 것에 대해 “역시 노동운동이다”고 감탄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운동’이 아니라 ‘자본운동’이다.

한석호 씨가 말하는 비정규직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노동운동 내부의 전반적 우경적 분위기는 혁명적 전망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인정하는 한석호 식의 가짜 노동운동이 가져온 결과다. 한석호 씨는 사회주의 전망과 현실 사회주의를 부정하고 스웨덴 노동자들의 복지체제가 자신의 이상이라고 늘 표현하지만, 번번이 노동자의 일방적 양보로 끝나고 마는 ‘사회적 타협’ 외에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실업과 죽음의 노동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복지체제를 어떻게 극복하고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사회로 나아갈지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침묵한다.

이러한 한석호와 이남신으로 대변되고 상당수 노조 전반에 팽배한 노사협조주의적 흐름들은 자본의 착취전략, 노동자 분열전략, 노동자 계급무의식 전략에 동조함으로써 노동운동의 투쟁성과 조직력,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말살하고 이로써 노동자의 삶을 심각하게 후퇴시킨다.

자본운동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운동은 임금인상 투쟁을 통해 초보적인 계급의식과 단결과 연대를 배우고 노동자와 자본가와 계급적대감을 고취함으로써 착취를 철폐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에 적극 나서고 사회 전체의 진보적 발전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운동 내에 자본의 대리인들의 ‘선제적’ 임금양보론을 선제적으로 박살내고 생활임금 쟁취하고 노동해방으로 나아가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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