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우 씨의 변절 – 그에 대한 사회과학적 분석〉
이용주(학원강사)
“자본수출은 그것을 수입하는 나라의 자본주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며, 그 발전을 크게 가속화시킨다. 그러므로 자본수출이 자본수출국의 발전을 어느 정도 정체시키는 경향을 가지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동시에 전 세계에 걸친 자본주의의 발전을 더욱 확대, 심화하는 것이다.”(레닌, 제국주의론)
100년도 더 전에 지은(1916년) 책이지만, 레닌의 이 책만큼 오늘날 제국주의 및 자본주의 발전의 상에 대해 적나라하게 분석하는 책은 없습니다. 바로 이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떠냐에 따라, 운동에 뛰어든 활동가가 여전히 그 헌신성을 지니고 견결하게 살아가느냐, 그렇지 않고 현실에 타협해 변절자가 되느냐가 정해집니다.
“이제 자본주의는 한 줌의 선진국이 지구상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식민지적으로 억압하고 금융적으로 교살하는 하나의 세계체제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전리품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무장한 2-3명의 강력한 세계적 강도들 사이에서 분배되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전리품의 분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자신들의 전쟁 속으로 전 세계를 끌어들이고 있다.”(레닌, 제국주의론)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창하는 뉴라이트는 이런 제국주의 하에서의 식민지 체제의 발전의 반동적 성격을 은폐하고 제국주의 지배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반동적 입장에 빠진 것이지요.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한 때는 진보성향 학자였다가 말끔히 우익, 그것도 뉴라이트로 전향한 안병직이니, 이영훈이니 하는 자들은 어떤 경우냐면, 그들은 ‘신식민지’인 남한은 주요 선진국 자본주의와는 달리 매판성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동시에 그 발전에 있어 계속 낙후하거나 정체될 것이라고 봤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80년대까지는 진보성향의 지식인으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에서 보듯, 여전히 핵심 산업에서 일본과의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처럼 ‘낮은 생산력’이나 ‘기형적 발전’이라는 식으로 한국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맞지 않은 것으로 되었죠. 시대착오적인 얘기라는 것입니다.
‘신식민지’라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이 정체하거나 낙후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도 자율성과 독자성을 가지고 고도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 안에 배태하고 있는 사회과학적 규정입니다.
이른바 ‘독점의 강화’라는 맥락에서 짚자면, 한국사회는 현대차, 삼성, SK, 롯데, LG라는 5대 재벌이 중심이 된 사회로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본주의 발전에 있어서 한국 국가권력이 지대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자본을 위해 각종 자본활동 촉진법, 노동악법을 마련하여 노동자 계급의 저항을 분쇄하며, 국가자본주의 방식으로 국가가 독점자본의 역할을 대리하고 독점자본의 창출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안병직, 이영훈을 중심으로 변절의 과정을 짚겠습니다. 이들은 한국자본주의의 눈부신 성장을 목도하고 그것을 ‘종속’의 약화로 해석한 사람들입니다. 조국, 박노해, 은수미 등과 더불어 이른바 사노맹을 했던 백태웅 씨도 비슷한 입장이었던 사람이죠. 그가 지은 「한국사회의 성격과 노동자 계급의 임무」란 저작의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예속적 독점자본은 낮은 생산력 때문에…제국주의의 높은 생산력 수준, 원료와 기술과 시장의 의존이라는 축적 조건 때문에, 제국주의 자본과 경쟁한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 제국주의의 신식지적 지배 하에서 낮은 생산력에 근거하여 지배계급으로 등장한 예속적 독점자본의 축적의 성격 때문에 부르조아 계급 내의 분열도 뿌리깊은 것으로 나타났다 …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는 그 자체로 틀림없이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제국주의 국제분업 질서에 예속되고 규제를 받음으로써 광범위하고 자유롭게 신속한 발전이 왜곡, 지연되는 사회이다.”
소련 사회주의의 해체가 크게 작용을 했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러한 입장 때문에 한국자본주의의 생산력의 높은 발전 상황 앞에 경도되어, 혹은 그것을 이후에라도 변절의 변으로 삼으며, 사노맹의 주요 활동가들은 박노해 씨처럼 전향서를 쓰거나, 조국, 은수미처럼 아주 반동은 아닐지라도 우익 개량주의로 투항하게 된 것이죠. 안병직, 이영훈은 더 나아가, 종속의 약화로 인해 개량의 여지가 충분해지고 모순이 약화되었다고까지 보고 변혁성을 아예 포기한 후 악질적 뉴라이트 집단에 헌신하는 이론가로 변모해 버린 것입니다.
“저 도시의 불빛을 보십시오. 저렇듯 발전한 한국사회가 어떻게 신식민지입니까?”(뉴데일리 2009. 5.4, 안병직과 이영훈의 깊고 폭넓은 대화)
박현채 선생과의 토론에서 나온 이영훈의 항변이다. 하지만, 이 자는 전태일 열사가 항거했던, 야간노동을 하며 자본주의에 복무하는 노동자들의 상태, 인공지능으로 인해 더 빈곤과 양극화로 질주할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애써 눈감아 버렸습니다.
민경우의 변절의 경우
이제 민경우 씨의 예를 보겠습니다. 그의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를 중심으로 해서요.
“역설적으로 ‘한 · 미 FTA 반대 투쟁‘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반대 논리를 세우려고 각계 전문가들을 만나고 숱한 연구보고서를 읽었다. 대학 시절 ‘매판자본‘ 으로 봤던 삼성전자가 소니 등을 다 합친 일본 전자업체보다 매출액이 더 크다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동안 내가 몰랐던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이 일본 전자업체들의 그것보다 커졌다는 것은 그 누구도 몰랐다가 민경우 씨가 새롭게 발견한 얘기는 아니고, 앞서 변절 투항한 이영훈 등이 적극 내세우는 사실이고, 사노맹 출신 변절자들도 자신의 논리와 달라진 상황 앞에서 변절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지요.
“부끄럽지만, 수십 년간 퇴영적 주체사상과 민족의식에 매몰돼 있는 동안, 세상에는 스마트폰과 드론, 인공지능이 개발돼 있었다. 우리는 ‘민주화운동‘ 을 했다고 여겼지만 실상은 시대착오적 이데올로기 투쟁이었고 역사를 후퇴시켰다. 우리가 해보려던 한국 사회의 재편작업도 애초에 틀렸던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이영훈, 안병직과 똑같은 문제의식을 표방하고 있습니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데도, 민경우 씨 역시 이들 변절자처럼, 종속의 약화라는 측면에서만 한국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바라보고 있을 뿐, 국가자본주의의 능동적 발전이라는 방식으로 신식민지 종속도 부단히 강화되고 있는 진짜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습니다. 계속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상한 기류가 문재인 정권에서 생겨났다. 온라인에서 이 사안을 놓고 운동권 동료·선후배끼리 논쟁이 벌어졌다. 소수 강경파는 논리에서 몰리자, 평소에 안 하던 궤변을 내놓았고 감정적 언사로 공격했다. 팩트 자체를 아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함께 토론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정의를 외쳤던 이들이 어느덧 부패한 기득권으로 변신해 있었다 … 조국 씨와는 동갑이지만 운동권 노선이 달라 친분이 없었다. 하지만 사노맹 조직에서 조국의 후배였던 황희석은 비교적 잘 안다. 그는 1987년 불법 집회를 주도했다가 인문대 국사학과 사무실에 며칠 숨어 있었다. 이번에 비례대표 후보가 된 그가 ‘조국 사태는 검찰 쿠데타‘라고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군부 쿠데타‘라는 말을 썼던 학생 시절의 사고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발전 과정은 아예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 코로나 확산 사태가 정점을 치달을 때, ‘더불어시민당‘ 과 ‘열린민주당‘ 등이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여권은 정치 세력으로서 책임과 양심을 포기했다. 어떻게 하면 의석을 더 차지하느냐는 권력 의지의 화신들일 뿐이다 … 내 대학 시절을 추억하자면, ‘해방전후사의 인식‘ 이니 ‘전환시대의 논리‘ 같은 책을 봤는데, 이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독소였다. 북한에 대해 감성적 접근을 했고, ‘우리 민족끼리 주체적으로 하자‘는 말에 현혹됐다. 돌아보면 내가 지적으로 낙후한 그룹에 속해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거슬러서 우리나라를 극도로 고립된 반미(反美)의 섬을 만들려고 했던 거다.”
민족해방계열에 속해서 활동한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인데, 제대로 짚자면 민족해방의 대의가 후퇴하고 개량화된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해야 맞는데, 민경우 씨는 기존의 변절자들과 똑같은 논리로, 민족해방계열이 북한을 감성적으로 추종하고, 시대의 흐름에 못 맞추고 고립된 반미의 섬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는 논리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열린민주당이나 더불어시민당으로 대표되는 그룹의 행태를 보고 끔찍한 기분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들이 현재 견결한 운동가들도 아니고, 그저 부르주아 논리에 포섭된, 자본에 의해 적당히 길들여진 그저 그렇고 그런 사람들일 뿐입니다. 반미가 무엇입니까? 반미는 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변혁적 주장입니다. 민경우 씨는 이를 포기하겠다는 것이죠.
“‘조국 사태는 검찰 쿠데타’라고 말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지만, 한국의 특성상, 절차적 및 내용적 민주주의라는 요소와 사회적 평등이라는 요소는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같이 가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양극화로 말미암아 극단적으로 불평등해진 이 사회의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순수한 불만을 역이용해 ‘조국 및 그 가족의 부정부패’를 기득권 주류의 그것과 같은 것처럼, 아니 더 심한 것처럼 몰아가서 이를 검찰이 수사하는 것을 당연한 것인 양 여기게 하고, 그렇게 해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려는 음모인 것이 조국 사태의 본질인데, 민경우 씨는 사회불평등이라는 요소만 부각시켜서 불평등 문제를 덮으려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을 극우 권위주의 세력에 대한 심정적 지지로 경사시키고 있습니다.
“현 정권의 586 정치 실세들은 돈 버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돈 때문에 발생하는 고통을 경험하지 못 한 집단이다. 이들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고용이 줄어든다는 당연한 사실도 이해 못 하거나 관심이 없다. 현실의 복잡성을 알지 못하기에 ‘부동산 공유제‘ ‘특목고 폐지‘ 같은 말을 꺼내는 것이다. 돈이 움직이는 현장에서 형성되지 않은 사상과 정책 노선은 쉽게 허물어진다.”
돈 버는 게 힘든 일이고, 돈 때문에 얼마나 고통이 많이 발생하는지, 이 서울대 출신의 지식인이 여태까지 몰랐다가 운동권의 ‘몽상’에서 깨어나서야 알게 되었다는 그런 얘기로 들리는군요. 그러나 최저임금이 오른다고 곧 고용이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 아니지만, 이런 얘기는 노동자를 공격하는 자본의 이데올로기입니다. 우선 고용이 줄어드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의 고도화에 비해 이윤의 일부를 고용으로 돌리는 비중을, 사회복지로 돌리려는 비중을 낮추려는 자본 그 자체의 속성 때문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그것을 가속화시키는 측면까지 결합되어서인 것이지, 노동자의 최저임금 주장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소위 ‘부동산 공유제’니 ‘특목고 폐지’니 하는 주장이 현실의 복잡성을 알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얘기라고 했는데, 완전히 변혁운동 하는 사람들을, 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사람들을 아예 지각머리 없는 사람들인 양, 순진한 사람들인 양 깎아내리고 있습니다. 이는 사회의 이데올로기 지형을 왼쪽으로 당기는 작업을, 어렵지만 가속화한다면 실현될 수 있는 정책들인데 말이죠.
“운동권에 있을 때는 부족하면 위로하고 설득하고 같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완전히 다르게 움직였다. 2년쯤 지나 학원을 말아먹었다. 후배들을 내보내면서 법적인 갈등으로 비화됐다. 내가 마치 악덕 고용주처럼 됐다. 고발돼 지방노동청에 몇 번이나 출두했다. 우리나라 노동법이 정말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
활동가였다가 ‘소부르주아’로 되면서 느끼게 된, 경험하게 된 여러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회이고, 자본주의 시스템에 편입되면 그 개인이 선량하고 그렇지 않은가에 상관없이 자본주의 생산관계 그 자체의 속성에 따라 움직이게끔 되어 있다는 걸 새삼스럽게 알았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런데 이걸 노동법이 문제가 많기에, 자본가들의 이익을, 사업주들의 이익을 더 보장하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는 정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안타까움을 많이 가지고 있는 민경우 씨지만, 활동가들에 대한 자본의 부단한 개량화 책동에 맞서려고 하지 않고 어느덧 포섭당해 극우 이데올로기의 나팔수로 되기 시작한 모습이 역력해진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운동의 과정에서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건 나타날 수 있는 배반자, 변절자들에 대해 자본주의 그 자체에 대한, 제국주의의 신식민지로서 기능하는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일련의 시각과 관점을 중심으로 날카롭게 비판하고, 운동 이론을 바르게 정립하고, 변혁이론으로서의 맑스주의에 입각한 사상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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