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리정혁 동무와 윤세리는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 국가보안법을 극복(?)한 위대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천병위

“어느 날 돌풍과 함께 패러글라이딩 사고로 북한에 불시착한 재벌 상속녀 윤세리와 그녀를 숨기고 지키다 사랑하게 되는 특급 장교 리정혁의 절대 극비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최근 성황리에 종영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의 로그라인1)입니다. 아, 이 로그라인은 ≪사랑의 불시착≫을 검색하면 바로 나옵니다. 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입니다. 팍팍한 현실에 치여 가며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루 일과를 마치고 TV를 켰는데, 현실에선 볼 수 없는 왕자님, 공주님이 나오는 로맨틱 코미디는 우리에게 삶의 활력소죠. 아름다운 배경에다 달달한 대사들, 그리고 남녀 주인공의 사랑스러운 모습 등을 보고 있으면 정말 잠깐이지만 즐겁고 힘이 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사랑의 불시착≫ 1회부터 16회까지 한 회도 빠짐없이 본방사수 하면서 이 드라마에 푸욱 빠지고 말았죠. 아~~ 어떡하죠, 이 드라마가 끝나버렸으니 무슨 낙으로 살죠?

제가 이 드라마에 두 달 동안 푹 빠졌던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아름다운 두 주인공, 손예진과 현빈 때문입니다. 손예진은 정말 와….. 정말 와…였고요, 현빈은 정말 멋있었습니다.

둘째, 정말 재밌었습니다. 적재적소에 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을 주며 우리들을 즐겁게 해 주었죠.

셋째, 감히 북한을 주요배경으로(실제 촬영장소는 대한민국이지만^^) 북한사람(대한민국 배우가 연기했지만^^)을 주인공과 주요 인물로 등장시켜 완성한 드라마라는 것이었습니다.

첫째, 둘째 이유는 이미 다른 데서 수없이 얘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손예진이 예쁘고 연기 잘한다는 것과, 현빈 역시 연기 잘하고 수많은 여성들의 왕자님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 없습니다. 또, 이 작품이 왜 시청률이 높았는지 이미 수많은 기사에서 분석을 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이 셋째 이유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 적어도 이 소중한 지면을 할애해 준 동지들에 대한 예의겠지요.^^ 뻔한 얘기 안 하고, 좀 더 신선한(?) 얘기를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북한, 정확하게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너무 기니까 조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 글에선 편의상 부정확한 호칭이지만(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 표현하는 것도 부정확한 것이지요.) 북한이라고 계속 얘기하겠습니다. 무릇 어떤 것에 대해서 얘기하려면 그것에 대해 우선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 보고, 직접 겪어보고 느껴봐야 좀 더 정확하게 알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에 대해서 알아나가려면 기본적인 기준,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선입견을 갖고 있어야합니다. 그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국가보안법 때문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主敵), 언젠가는 우리가 무찔러 없애버려야 할 대상이고 우리는 이 주적이란 시선을 바탕으로 북한에 대해 접근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주적국가인 북한사람과 만나서도 안 되고, 얘기 나눠서도 안 됩니다. 당연히 북한 땅에 자유롭게 못 갑니다. 생각 없이(민족의 평화, 통일을 염원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북한에 며칠 머물렀다가 수년간 수감생활을 하고, 복역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서도 감시(?) 비슷한 것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설정부터 과감합니다. 여자 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가 어느 날 태풍에 휩쓸려서 북한에 불시착합니다. 거기서 북한군 엘리트 장교 리정혁(현빈 분)과 그의 부하 5중대 대원들을 만나고, 리정혁과 5중대 대원들은 그때부터 윤세리를 대한민국으로 돌려보내려고 갖은 수를 씁니다. 하지만 현실이 녹록치가 않아서 윤세리는 북한에 무려 한 달 동안 머물게 됩니다. 그 한 달 동안 윤세리는 리정혁과 사랑에 빠지고, 리정혁의 부하들인 5중대 대원들과 우정을 나누며, 리정혁이 사는 군관 사택마을 아줌마들과 정이 듭니다. 그리고 윤세리는 우여곡절 끝에 대한민국에 돌아오고, 드라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 황당한 설정(이 드라마의 로그라인)에 대한민국 드라마 제작자들은 이거 재밌겠는데? 하고 드라마 편성을 잡았고요,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 손예진과 현빈은 이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맘을 먹었고, 이 드라마가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재미있다며 난리가 났습니다. 이 드라마의 극본을 쓴 박지은 작가는 재밌고 환상적인 설정을 기가 막히게 풀어나가는 이야기꾼입니다. 저도 이 분의 작품을 즐겨보는데 정말 재밌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전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극본을 쓰실 때 정말 이분은 국가보안법을 생각 안하신 걸까요? 하긴 생각하건 안하건(혹은 알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겠지…하고 생각하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이 드라마는 방영이 되었고, 방영된 사실을 바탕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해석은 그때부터 작가의 손을 떠난 겁니다. 이 드라마를 쓰신 박지은 작가님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다고 하더라도 저 같은 생각으로 이 드라마에 접근한다면 이 드라마를 보면서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아이고 서두가 너무 길었죠? 자, 지금부터 나갑니다.

1. 국가보안법이 이 드라마를 재밌게 만드는데 크게 한몫했다

재벌가의 딸 윤세리를 대한민국으로 돌려보내려고 리정혁과 5중대 대원들은 갖은 고생을 합니다. 빠다치기(몰래 배를 몰고나가 다른 배로 갈아타는 것)도 하려다가 단속반에 걸리고, 육상선수명단에 넣어서 해외로 출국시키려고 하다가 악당의 방해로 리정혁은 총까지 맞고, 결국 리정혁과 5중대 대원들은 우여곡절 끝에 윤세리를 대한민국으로 돌려보냅니다. 자,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이 왜 이리 어려웠을까요? 만약 이게 단순히 외국 왔다가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다면 이만큼 흥미진진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리는 이 상황(재벌녀가 북한에 불시착!)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은 북한에 갈 수 없고, 더군다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요. 바로 국가보안법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을 모르거나 관심 없는 사람도 압니다. 그럴다면 이 드라마에선 어떻게 할까? 궁금할 수 밖에 없지요. 국가보안법이란 장벽 때문에 우리는 이 드라마를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국가보안법과 로맨틱 코미디의 환상적인 케미!!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북한에 대한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입장은 주적(主敵)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에 대해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요즘은 안 하지만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반공글짓기, 반공포스터 그리기, 반공 웅변대회가 있었습니다.2) 어디 그뿐인가요? TV에서는 ≪배달의 기수≫, ≪113수사본부≫, ≪3840 유격대≫ 등 수많은 드라마에서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줬고, 어린이들은 ≪똘이장군≫같은 만화영화를 보며 반공소년, 반공소녀가 되었지요. 물론 지금 제작되는 드라마나 영화는 이 정도는 아닙니다. 왜냐면 이제 알거든요. 이거 정말 부끄러운 과거라는 것을요.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헐리우드는 더 심하죠.) 드라마나 영화에서 북한에 대한 모습은 좀 뭐랄까 특별합니다. 이게 뭔 말이냐면…..일반적인 모습은 거의 안 보여주고 무언가 어두운(?) 좀 심하게 말하면 잔혹한(?) 모습만을 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북한을 소재로 한 대한민국 영화 중 크게 흥행한 영화는 ≪공조, 2016≫와 ≪강철비, 2017≫가 있습니다. 전 이 두 편을 모두 재밌게 봤습니다. 영화적으로는 매우 잘 만든 액션영화, 스릴러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 이 두 편의 영화를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거짓말(혹은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전제로 깔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국가의 승인 하에 위조지폐를 만들어 내는 나라(영화 ≪공조, 2016≫)이며, 북한의 최고 정치지도자에 대해 반대하는 정치세력은 그들의 목적(최고 정치지도자 제거와 권력획득)을 위해 사람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군사용 무기로 살상을 한다는 것이죠.(영화 ≪강철비, 2017≫)

이런 전제가 깔린 작품에서 보여주는 북한사람들의 삶은 항상 침울하고, 불안해하고, 이들의 얼굴엔 웃음이라곤 볼 수 없는 불만투성이죠. 하지만 이 모습에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근거를 다른 TV프로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KBS에서 방영하는 ≪남북의 창≫3)에서요.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이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토요일 아침에 하는 시사, 교양 프로그램(≪남북의 창≫ 시청률은 6% 정도 나오니 높은 편이지만..)보다 저녁, 밤 황금시간대에 하는 TV드라마와 전국에서 개봉하는 영화와는 사회적 영향력, 파급효과를 비교할 수 없죠.

이제 ≪사랑의 불시착≫얘기를 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이 규정한 우리의 주적(主敵) 북한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선 너무나 사랑스럽게 나옵니다. 리정혁에 푹 빠져서 팬클럽처럼 활동하는 군관사택마을 아줌마들은 리정혁이 데리고 온 도덕 없는 에미나이(윤세리)가 너무 얄미워서 괴롭혀 보려고 하지만 또, 윤세리가 리정혁을 다른 여자에게 뺏길까봐 걱정해주고 도와주려고 애도 씁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리정혁의 부하 5중대 대원들은 처음에는 북한으로 넘어온 윤세리를 제거하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윤세리가 리정혁의 집에 머무는 동안 윤세리를 어쩔 수 없이 편하게 모십니다. 처음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5중대 대원과 윤세리는 서로의 안위를 염려할 만큼 우정을 나눕니다. 이들의 관계가 이렇게 변해가는 것을 보는 재미, 그러니까 리정혁을 두고 쏟아내는 윤세리와 군관사택아줌마들의 수다, 그리고 윤세리와 5중대 대원들의 소소한 코미디, 특히 윤세리와 표치수(양경원 분)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말싸움은 이 드라마의 큰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근데요 이게 실은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로맨틱 코미디의 특성상 이렇게 인물들의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합니다. 로맨틱 코미디에선 주인공의 주변 인물(이 드라마에선 5중대 대원들, 사택 마을 아줌마들)들이 주인공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웃겨줘야 주인공들이 그들의 버프를 받아서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줄 수 있거든요. 그런데 말에요, 이렇게 교과서적인 이미 우리들이 많이 봐왔던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가 ≪사랑의 불시착≫에선 신선하게 느껴졌을까요? 전 단언합니다. 국가보안법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우리에게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대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충실히 거기에 맞게 북한사람들을 바라 봤습니다.

제 어린 시절, 1970, 80년대에는 북한사람들을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봤고, 지금은 그때보단 덜 하지만 아직도 북한사람들을 혐오하는 분들도 계시고, 아마 대한민국 사람들 대부분은 북한사람들을 동등한 위치에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연민의 시선으로 아니 시혜(施惠)를 베풀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사람들은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보다 레벨이 떨어지는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선 북한사람들을 불쌍한 사람들, 시혜(施惠)의 대상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리정혁을 비롯해서 주변 인물인 군관 사택마을 아줌마들, 5중대 대원들 모두 자신들의 삶에 충실하며 나름 만족과 보람도 느끼고 결정적으로!!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합니다. 이것도 일반적인 드라마에선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만 우리가 이들의 이런 모습들이 특별해 보인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보안법 때문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런 참신한 재미를 느낄 수 없었을 테니 이것이야말로 국가보안법과 로맨틱 코미디의 환상적인 케미라고 할 수 밖에요. 어때요? 제 느낌에 동의하시나요?

3. 국가보안법이 뭔지 보여준 최초의 드라마

이 드라마의 주인공 윤세리(손예진 분)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습니다. 이건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선 국정원에 가서 며칠 간 밤샘 조사를 받아야 하는 게 현실일거에요. 하지만 이 드라마에선 북한에서 대한민국으로 ‘걸어서’ 다시 돌아온 윤세리가 국정원에 가서 조사받는 장면은 없어요. 대신 윤세리의 아버지가 국정원가서 일을 잘 마무리했다고 대사로 처리하더라고요. 아, 이걸 시비 걸 생각 전혀 없습니다. 전 ≪사랑의 불시착≫을 너무 재밌게 봤고요, 이건 크게 문제되지 않습니다. 이 드라마는 환상적인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니까요. 이런 거 걸고넘어지면 꼰대에요. 하지만 그래도 국가보안법을 완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건 대한민국에서 만든 드라마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이 드라마를 보다보면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현실을 한탄하는 장면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이건 철저히 제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기억나는 거 하나만 들자면… 리정혁과 윤세리가 북한에서 한창 알콩달콩 할 때 윤세리가 촉촉한 눈빛으로 리정혁을 바라보며 우리는 여기서 헤어지면 앞으로 서로의 안부조차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 보는데 좀 울컥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배우 손예진 때문인 것 같습니다. 손예진이 눈에 눈물을 머금고 얘기를 하면 저도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 마음은 국가보안법이 아니라 손예진 때문에 슬펐지만, 그래도 제 지각능력은 국가보안법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런 글 쓰는 것이죠.

이 드라마엔 악당이 있어요. 북한에서 리정혁과 윤세리를 괴롭히다가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악당, 대한민국에선 윤세리의 지위를 뺏으려는 악당이 있습니다. 특별한 악당들은 아니에요. 북한의 악당은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수없이 봐왔던 테러리스트..딱 그 이미지였고, 대한민국의 악당은 쓰레기 인간말종 재벌가 아들이에요. 역시 전형적인 악당캐릭터였죠. 전 이 악당들에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제가 영화나 드라마를 좀 많이 봤습니까. 이런 악당들 어떻게 될지(죽거나, 감옥에 가거나) 뻔히 보이니까요. 그래도 연기 정말 잘하더라고요. 역시 악당이 연기를 잘 해야 주인공이 빛나는 거에요.^^ 아, 잠시 다른 얘기했네요. 그렇게 악당들의 모습에 별 관심을 갖지는 않았는데요, 딱 대사 한 마디가 확 와 닿더라고요. 평소 윤세리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둘째 오빠 윤세형(박형수 분)이 자신의 아버지 윤회장에게 윤세리를 후계자 자리에서 얼른 끌어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해요.

“아버지, 이제껏 재벌가에 사건 사고 나봐야 뭐, 뇌물, 횡령, 폭행, 도박, 마약 이런 거였어요. 근데 세리 얘는 국가보안법이에요. 이거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니까요?”

드라마 후반부에 와서 다시 한 번 긴장감을 주려는 대사죠. 리정혁과 윤세리의 사랑이 얼마나 힘든지 말에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게 국가보안법이 없었다면 윤세리와 리정혁의 사랑이 우리들이 봤을 때 무색무취 무미건조했을 지도 몰라요. 윤세리가 재벌가의 딸이지만 리정혁도 그에 못지않은 북한의 최고 엘리트거든요.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끼리 만나는 사랑얘기는 시청자들의 외면을 당한답니다. 대체적으로요. ㅎㅎㅎ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재밌고 흥미진진한 사랑 이야기는 두 가지 스타일로 정리됩니다. 하나는 로미와 줄리엣이요, 둘째는 삼각관계입니다.(이 드라마는 이 두 가지 스타일을 다 갖고 있습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서로 원수로 여기는 가문이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랑이 숭고하고 아름다웠듯이,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이 있었기 때문에 윤세리와 리정혁의 사랑은 로미오와 줄리엣급으로 격상될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를 정신없이 보는 우리 입장은? 국가보안법? 그런 거 알게 뭐에요, 얼른 두 사람이 맺어지길 바라는 마음에 그런 거 안 보입니다. 그럼 안 되죠. 작가 입장에서 시청자들에게 이들의 사랑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한 번 그 이유를 상기시켜 준겁니다. 국가보안법이란 차원이 다른 법을 대사에 직접 언급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우리들의 심장이 더 쫄깃해지라고요. 맞아요, 국가보안법은 뇌물, 횡령, 폭행, 도박, 마약 등…이런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에요. 이게 진짜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면 윤세리는 신상에 큰 변화가 생길 겁니다. 아무리 재벌이 돈이 많아도 돈으로 해결 못할 거 에요. 하지만 솔직해 집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보는 우리는 솔직히 별 느낌 없잖아요. 안 그래요? 내 일도 아니니까 뭐…ㅎㅎㅎ

그런데 이게 진짜 심각한 문제였나 봅니다. 정작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국가보안법이고 나발이고 윤세리와 리정혁이 어떻게 사랑이 맺어질까 궁금해 죽겠는데, 어떤 이들은 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합니다.4) 물론 일이 더 크게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런 드라마 한 편 갖고 이런 난리를 부리는 걸 보면 국가보안법이 어떤 이들에겐 그들의 생존기반을 지탱하는 기둥인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이들(고발한 사람들 말고 다른 어떤 이들!)은 이 국가보안법으로 대한민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나…그리 생각됩니다.

예, 맞습니다. 우리는 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눈 하나 까딱 안하는 재벌들도 국가보안법에는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것을 말에요. 이만하면 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국가보안법의 실체와 위력을 어느 정도 보여줬다고 생각하는데 말에요. 그죠? 제 말이 일리 있죠?

4. 국가보안법을 거역하며 행복한 결말을 보여준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하지만….

이제 마지막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지난 두 달 동안 이 드라마를 보면서 리정혁과 윤세리, 윤세리와 군관 사택마을 아줌마들, 윤세리와 5중대 대원들의 사랑과 우정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에서 이들이 벌였던 행동들은 전부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사실을요. 심지어 이 드라마는 결말도 국가보안법을 아주 대놓고 위반합니다. 한반도에서는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 질 수 없으니 제3국인 스위스에서 리정혁과 윤세리를 재회하게 만듭니다.

그런데요, 윤세리가 한반도에서 리정혁을 만나건, 외국에서 만나건 윤세리는 대한민국 사람이에요. 그래서 얄짤 없어요. 윤세리는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이미 북한을 한 번 갔다 온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이고(윤세리 아버지가 국정원에 가서 싸바싸바 처리했다고 하지만..) 집행유예였을 텐데, 다시 위반했단 말이죠. 이건 재벌이고 뭐고 윤세리 아버지가 아무리 힘이 세도 쉴드 쳐줄 수 없을 거에요. 맞아요, 현실에서 이랬다면 윤세리는 감옥에서 몇 년 살아야 합니다.

자,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 중에 저처럼 이렇게 국가보안법으로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야말로 저 같은 사람들을 보고 꼰대, 아니 요즘 유행어 진지충이라고 합디다. 그죠? 우습죠? 조롱감이죠. 리정혁과 윤세리의 국경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국가보안법 운운하면서 몇년을 빵에 들어가 살아야 한다느니 하며 투덜대고 있으니 말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실제로 아직도 국가보안법은 우리 곁에서 우리들의 일상을 침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건 드라마일 뿐이에요. 드라마에서 저를 포함한 시청자들은 국가보안법이고 뭐고 개무시하고 (심정적으로) 그 법을 위반하면서 리정혁과 윤세리를 응원했습니다. 까놓고 얘기해서 우리는 전부 이번에 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을 보면서 국가보안법을 가뿐하게 위반했습니다. 느낌이 어떠십니까? 국가보안법을 (심정적으로) 위반한 기분이 어떠십니까? 맞아요, 이런 드라마에 저처럼 국가보안법을 언급하면서 진지한 얘기를 꺼내면 놀림당해도 쌉니다. 하지만!! 조롱의 대상이지만, 그 조롱거리, 놀림거리인 국가보안법이 실제로는 무시무시한 법이란 것입니다. 조금만 국가보안법에 대해 알아보신다면 국가보안법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지금도 빼앗는 중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자, 이제 끝을 맺을까 합니다. 이런 드라마 리뷰로 국가보안법을 언급한 것에 대해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겠지만, 너무 논리적 비약도 있지 않나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맞습니다. 다 제 능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말에요….국가보안법이 의외로 넘지 못할 벽은 아니라는 거….그래도 웬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은 받지 않으셨나요? ㅎㅎㅎ 주저리주저리 떠들어대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무리 하겠습니다. 이 세상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엔 끝이 있는 법이죠. 그럼 이만.

주1) 로그라인(Log Line): 제작되는 영화, 드라마에 대해 어떤 이야기인지 한 문장으로 소개하는 것.

주2) 저는 그 당시 반공글짓기를 꽤 잘 썼습니다. 열혈 반공소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정말 나가고 싶었던 것은 반공웅변대회였는데(그렇잖아요,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박수까지 받으니까 폼 나잖아요.^^) 안타깝게도 저는 웅변을 할 만한 성량과 언변이 되질 못했어요. 그때는 정말 반공웅변대회 나가는 애들이 부러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웅변대회 못 나간 것이 정말 다행이에요. ㅋㅋㅋ

주3) 1989년 3월 14일부터 방영 중인 시사 교양프로. ‘남북 관계 현안을 심층 분석하고, 북한의 이모저모를 생생한 영상과 함께 전해주는 공영방송 KBS가 자랑하는 북한 전문 프로그램’이라고 검색하면 나옴.

주4) “북한군 미화vs판타지”…’사랑의 불시착’,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

https://news.nate.com/view/20200122n37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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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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