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의 강력한 국제 연대를 외치며

훗출판사 대표 서의윤

순서

1. 전제: 전쟁이 아니라 점령이다

2. 점령의 정상화: 국제사회의 책임

3. 이스라엘: 피해자의 정당성을 내세운 집단

4. 팔-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꿈1: 위축되어가는 팔레스타인 노동 운동

5. 팔-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꿈2: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적 저항의 한계

6. 팔-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꿈3: 외부적인 충격 없이는 회의적이다

7. 행동 방안: 강력한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1. 전제: 전쟁이 아니라 점령이다

현지 시간 2019년 5월 3일부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2014년 이후 가장 큰 규모라는 공습을 퍼부었고 팔레스타인인 30여명과 이스라엘인 4명이 사망했다. 현재 하마스는 5월 6일 휴전을 선언했지만 이스라엘은 묵묵부답이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의 실질적 정부 기능을 하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포를 쏜 것을 공습의 이유로 들고 있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서 로켓포가 날아오기 하루 전에 이미 시위를 하던 팔레스타인인 4명이 이스라엘군의 발포에 숨진 사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3월부터 시작되었던 팔레스타인인들이 ‘위대한 귀환(Great Return)’ 1주년 시위에서의 유혈 진압도 이와 같은 맥락에 있다.

언뜻 보면 닭과 달걀의 관계인 듯이 엮여 있는 이러한 상황 때문에 언론은 이를 ‘보복 공습’ 등으로 부르며 팔-이 양측의 대등한 충돌처럼 보도하고 있다. 그런 언어 속에서 잊히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무력으로 불법 점령 중이라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및 동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1967년 전쟁 때 이스라엘에 점령당했으며, 1994년 오슬로 협정으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들어서면서 제한된 자치가 시작되었다. 2005년, 가자지구에서는 모든 이스라엘 불법 점령촌(정착촌)이 철수하게 되고, 그 이후 가자지구는 거대한 감옥이자 공습하기 최적화된 지역이 되었다. 반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는 이스라엘 불법 점령촌(정착촌) 건설이 가속화되면서 팔레스타인 영토와 실질적인 생활권 및 이동권을 치명적으로 잠식해가고 있다. 또한 동예루살렘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주거권을 제한하거나 박탈하여 팔레스타인 인구를 줄이는 방식으로 인종청소를 진행 중이다. 이 모든 것이 ‘팔레스타인인을 절멸시키려는 시도’의 과정들이다. 2018년 이스라엘은 ‘유대국가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자국이 유대인만을 위한 국가임을 선언했다. 이는 민주주의와도 양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팔레스타인과의 공존을 거부하겠다는 아주 분명한 선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애초부터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의 나라로 기획되어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고 인종청소를 함으로써 그 목표를 이뤄온 집단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77년의 제네바협약 제1추가의정서에서는 “식민지배, 외세의 점령, 혹은 인종차별적 정권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의 무장 저항을 국제적 무력충돌로 정의하고 있다.1) 수 세대를 살아온 땅과 삶을 빼앗기고 억압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을 ‘테러’라고 부르거나 더 근본적이며 조직적인 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사태를 호도해서는 안 된다.

2. 점령의 정상화: 국제사회의 책임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 정책은 하마스가 2005년 지방선거와 2006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파타를 누르고 압승을 거두면서 시작되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이루어진 선거에 따라 하마스는 과반이 넘는 의석을 얻었고 새로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려는 참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하마스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자의적인 규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이 중동이나 중남미 지역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말하자면 꼭두각시 정부를 선호하는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결국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는 파타 정부가 다시 들어서게 되고 하마스는 이에 불복하면서 가자지구를 장악한다. 그리고 2007년 6월, 가자지구에 대한 봉쇄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만으로는 이러한 봉쇄가 가능하지 않다. 가자지구 남쪽, 라파 국경을 봉쇄한 것은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무바라크는 피억압자의 투쟁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함께 살자’는 주의였다. 개량적 입장으로 전술적 위치를 잘못 잡은 무바라크의 이집트는 결국 이스라엘에 대립하고 있던 헤즈볼라와 하마스와 이란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으며, 팔레스타인-이스라엘 평화 협상이 진행되지 않는 책임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이스라엘 점령 둘 다에게 물었다. 무바라크가 물러난 이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이집트는 간헐적으로 국경을 개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과 함께 가자지구를 봉쇄하고 있다.

또한 이 모든 상황 뒤에서는 경제적인 동기 역시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98년과 2000년에 각각 가자지구 연안에서 가자 마린 가스전과 마리B 가스전이 발견되었고, 이곳의 에너지 매장량은 팔레스타인을 에너지 독립국가로 만들기에 충분한 양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이 이 가스전에 접근하는 것조차 금지했다. 실제로 1995년의 오슬로II 협정의 결과 가자지구 사람들은 자국 내의 바다에서조차 20해리(약 37km) 이내의 범위에서만 어업활동을 허락되었으나, 이는 이후 2002년 12해리(약 22km)로, 또 2006년 이스라엘 내 파이프라인 건설이 추진되면서 심지어 그 반절인 6해리(약 11km)로 줄어들었다. 이는 또 다시 2009년 3해리(약 5.5km)로 제한된다.2) 이스라엘이 계획하고 있는 이 파이프라인은 이스라엘에서 키프로스와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이어지는 세계 최장의 해저 파이프라인이 될 예정이며 아랍에미리트가 이미 이 프로젝트에 투자를 한 상태이다.3) 즉 키프로스와 그리스, 이탈리아, 그리고 아랍국인 아랍에미리트까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에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보낸 것과 같다.

그 밖의 국제 사회 구성원들 역시 무관심을 통해 이 상황에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진보 매체임을 자처하는 한겨레신문은 2019년 5월 6일 ‘이스라엘 IT업계에 특수부대 출신 많은 이유는?’이라는 기사를 통해 군대에서 배운 바에 따라 창업하고 성공하는 이스라엘 군인 출신 기업인들과 박원순 시장의 환담을 다루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예스맨이 필요 없다. 오히려 ‘노’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을 고용하고 싶어 한다”, “젊은이들이 군대에 오게 된 동기가 제일 중요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 보안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창업을 위한 창의성을 부여하는 요소가 된다”, “결국에는 문화와 분위기다. 이스라엘에는 (격의 없는 뻔뻔함을 뜻하는) ‘후츠파(Chutzpah) 정신’이 있다고 들었다. 그것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정신인 것 같다” 등등의 덕담이 오갔다는 내용이다.4) 피점령자에 대한 국제적인 연대를 표명하는 성명을 발표해도 모자라는 판국에 이스라엘의, 그것도 군인 출신 기업가들을 본받자는 기사가 데스크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가자지구에 쏟아지는 공습을 무시한 걸까, 하마스의 일방적인 휴전 선언에 대한 축하인걸까. 아니, 그저 철저한 무관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무관심이 침략자 이스라엘을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어 간다.

3. 이스라엘: 피해자의 정당성을 내세운 집단

실제로 이스라엘은 겉보기에는 정상국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을 방문한 사람들은 그 서구적인 모습, 자유로운 토론 문화, 다양한 개성 등에 대해 얘기한다. 이스라엘 내부적인 문제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사회는 비교적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바로 옆의 타인을 침략하고, 멸시하고, 죽이는 와중에 내부적으로 세운 아름다운 공동체가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침략자이면서도 자기 나라의 안보에는 철저하고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그 사고방식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스라엘은 공교육을 통해 자국민들을 철저하게 ‘피해자’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스라엘이 가진 가장 큰 추진력은 바로 그 피해자가 가진 정당성이다. 피해자의 정당성은 복수의 성격을 갖는다. 즉, 아무리 지속되어도 끝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금도 전 세계 유대인들을 ‘난민’이라고 부르고 이들의 ‘귀향(알리야)’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폴란드의 강제수용소 흔적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즉, 끊임없이 홀로코스트 전후에서부터 현재 중동에서 고립된 위치까지 이어지는 정당한 희생자 역할의 유일한 소유자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레임은 이스라엘이 실질적인 강국이며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태생부터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인종청소를 하면서 시작했었다는 모든 사실 관계들을 잊게 만든다. 강하게 들고 일어난 피해자, 그게 이스라엘의 모습이 되었다.

“No thought control 사상 통제 거부” 라는 Another Brick in the Wall의 가사를 이스라엘 담벽 위에 적고 있다.

유대계 지식인들 역시 이 피해자 프레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다.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저자 주디스 버틀러나 [유대인, 불쾌한 진실]을 쓴 슐로모 산드 역시 현재 시오니즘이 벌이고 있는 패악은 그래도 나치즘에 비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다.5) 위대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는 2004년과 2008년 이스라엘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을 침공할 때마다 이스라엘의 ‘방어적인 전쟁’을 지지했다가 전쟁이 살육이 되는 것을 보고서야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점령 자체를 문제의 시작으로 인식한 것이 아니라 전쟁의 참상이라는 일반적인 인도주의적 공감에 따라 이스라엘의 정책을 반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유대계 지식인들에게는 잘못을 저지르고는 있으나 그래도 피해자인 이스라엘과 인류사에서 비정상의 흔적을 남긴 나치즘 사이에 분명한 선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 안에서 이스라엘은 끊임없이 자신이 정상국가임을 주장한다.

4. 팔-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꿈1: 위축되어가는 팔레스타인 노동 운동

국내 많은 좌파들이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해결책으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노동자들이 계급에 기반한 단합을 이루어 혁명적인 정당을 건설하는 것을 든다. 특히 현재의 점령 상태와 다를 바 없는 2국가 해결책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인과 이스라엘인이 민주주의 원칙 아래 함께 공존하는 1국가 해결책마저도 혁명적이지 않은 부르주아 국가가 될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현실적으로는 2018년 이스라엘이 유대국가법을 통과시키면서 사실상 1국가 해결책이든 2국가 해결책이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공존할 방법은 사라졌다. 그럼 진실로 남은 방법은 양측의 노동자들이 계급적 기반으로 단결하여 혁명을 일으키는 길뿐일까?

노동조합이 활발히 조직되고 활동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가장 큰 노조의 적은 이스라엘이었다. 노동조합은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의 중요한 축이었고 이스라엘은 노조를 불법화하거나 허가를 내주지 않거나 노조 가입을 방해하는 등, 자본의 흔한 방법을 통해 팔레스타인 노조를 억압했다. 기타 국가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점령국인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노동조합을 뒤지거나 조합원들의 사진을 찍고 취조를 하는 데 있어서 영장발부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불법 조직’을 꾀한 죄로 이스라엘 법정에 섰고, 그것이 노동 운동과 관련된 일인 경우 형량은 더욱 가혹했다. 사회주의를 내세운 좌파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DFLP(팔레스타인 민주해방전선, the Democratic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FLP(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the Popular Front for the Liberation of Palestine), PCP(팔레스타인 공산당, the Palestinian Communists Party) 등의 활동 역시 이 기간 동안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노조들을 통해 인민들을 조직했던 것 역시 이 정당들이었다.

하지만 1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 민중 봉기) 이후 야세르 아라파트가 이끄는 파타당이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노동조합 조직 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민족 해방 운동에서의 파벌은 노동 운동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고 노조들은 당파에 따라 극명하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1994년 오슬로 협정 이후에 생겨났다. 팔레스타인 사회의 발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신자유주의 정책이 도입되었고 민간 투자, NGO 활동, 국제 원조가 급증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노조들이 해외 지원을 받는 NGO 형태가 되어가고 대중 조직에 앞장섰던 좌파 지식인들 역시 현지 물가의 수배에서 수 백 배의 임금을 주는 국제단체들에 고용되면서 노동 운동은 급속히 변질되었다. 그 와중에 경찰 업무를 포함하여 이스라엘의 기관이 하던 일을 떠안게 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이스라엘의 대리인을 자처하며 모든 종류의 대규모 조직화를 탄압하고 좌파 활동가와 조직들을 무력화시켰다.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먼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상대하고, 이후 이스라엘의 점령을 상대하고, 그리고 자본을 상대해야 하는 삼중고에 놓여 있는 것이다.

현재 팔레스타인 경제는 이스라엘과 국제사회에 종속되어 있어서 가자지구 인구의 80%는 국제 원조에 의지하고 있으며 서안지구에서도 국제원조는 GDP를 좌우할 정도의 규모이다. 서안지구의 15세 이상 노동인구 중 약 10%가량이 점령국인 이스라엘 혹은 이스라엘 점령촌(정착촌)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들 중 42%만이 이스라엘이 발급한 허가증을 가지고 있다. 즉, 이스라엘 밑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 반 이상은 손쉬운 해고와 점령이라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 고용이라도 없으면 팔레스타인 실업률은 35%까지 치솟게 된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의 사업체들은 아주 작은 규모여서 2012년 기준으로 거의 90퍼센트의 사업장들은 직원 수가 5명 미만이었고, 나머지 중 8퍼센트도 직원 수가 5에서 9명 사이인 소규모 상점들이었다. 물가는 이스라엘 기준이기 때문에 유럽 못지않게 높지만 실업률은 치솟고 임금은 극히 낮다.6) 팔레스타인 라말라와 가자에 기반을 둔 조사 기관인 AWRAD(the Arab World for Research and Development)의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85%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겪은 바가 없으며 43%는 팔레스타인 노조를 아예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파편화된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소규모 사업장들이라는 배경, 이론 및 지도부의 부재, 당파간의 힘겨루기, 자본과 점령의 대리자가 된 자치정부, 그리고 신자유주의라는 괴물에 맞서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맞이하고 있다.

5.  팔-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꿈2: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적 저항의 한계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은 없어지거나 최소한 지금과는 달라져야 하는 점령국이지만 이스라엘 노동자들에게 이스라엘은 가급적 안정적이어야 하는 생활의 기반이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점령자의 일원인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들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지 않는다. 점령 자체를 타파하지 않는 이상, 이스라엘 노동자들의 일상이 팔레스타인 인민들에게는 폭력과 모욕과 죽음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항한 팔레스타인의 비폭력 투쟁 중 가장 강력한 것이 BDS(Boycott, Divestment, Sanction) 운동이다. 이 운동은 이스라엘 기업에 대한 보이콧을 넘어서 이스라엘과의 문화, 학술 교류 역시도 저지한다. BDS 운동을 앞장서서 이끌고 있는 핑크 플로이드의 로저 워터스가 한 예이며,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가 “한 국가에서 공연한다고 해서 그 국가의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이스라엘 공연을 강행했던 것이 그 반대의 사례이다.

언뜻 간단하고 정당해 보이는 이 운동은 사실 복잡하게 얽힌 정체성의 문제를 품고 있다. 특히 기업과 자본이 아닌 문화, 학문의 분야인 경우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와 같은 입장을 취하는 자유주의적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점령국 이스라엘에 의해 실제적인 고통을 받고 있으나, 그 책임이 이스라엘 국민 개개인들에게는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의 개개인들은 이스라엘의 종국의 방향을 이끌어 낼 중요한 의사결정자이며 평화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주체들이지만, 이스라엘의 개인들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리고 현대의 세련된 자유주의는 그러한 개인들을 존중하고 지지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의회와 정부를 통해 이스라엘 국민들이 간접적으로 선택해온 정책 노선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인민들은 교육을 통한 뿌리 깊은 피해자 의식을 가지고 선거 때마다 경제가 아닌 국가 안보를 중심으로 투표를 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4년간 집권하면서 극우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네타냐후 총리는 2019년 4월 총선 한 달 전만 하더라도 뇌물 수수와 배임 및 사기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라면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불법 점령촌(정착촌)을 대대적으로 병합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반아랍 극우 정당들과 연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네타냐후와 극우 리쿠드당을 다시 한 번 선택했다. 내부적인 비리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만큼, 이번 가자지구 공습과 같은 대아랍 혹은 대이란 시위 형태의 공격은 계속될 수 있다.

이스라엘 노동당과 아랍계 정당인 하다쉬당은 스스로 좌파임을 표방하고 팔레스타인과의 ‘화합’을 추구하면서도 네타냐후와 반대되거나 차별되는 확실한 행보를 보이지 않아왔다. 청백당은 야당들의 그러한 지지부진함을 비판하면서 생겨난 정당으로 우익의 반대세력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등장했으나 역시 인권이나 평화 등의 모호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마저도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지, 현실적인 지속성을 보이고 있는 리쿠드당과 비교하면 불안정하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우익 리쿠드당의 대안을 찾지 못한 듯 1996년 이래로 새로운 인물이 주도하는 중도파 정당이 대중적 지지를 받으며 등장했다가 다음 선거를 넘기지 못하고 스러지는 패턴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7) 좌측으로 가는, 즉 현재의 우익 정권에서 중도파를 향하려는 인민들의 바람은 분명해 보이지만 그것이 실현되기 위한 현실적인 촉매가 부족하다.

6. 팔-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의 꿈3: 외부적인 충격 없이는 회의적이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노조인 유대노동총연합(히스타드루트, Histadrut)는 태생부터 시오니즘 운동의 가장 중요한 축으로 유대 노동자들의 보호와 이권을 위한 집단이었으며 팔레스타인인들을 배제하고 억압하면서 유대인 노동자들에게 바람직한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이스라엘 인민들은 이상적인 사회주의 국가를 추구했으면서도 그것을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가상의 진공 상태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처럼 스스로를 속였다. 실제로는 먼저 존재했던 팔레스타인 사회를 뿌리째 들어내는 폭력을 통해 공간을 확보했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사회주의’를 꿈꿨던 것이다. 그렇게 형성된 사회는 그 자신들만의 천국을 지키기 위해 보다 폭력적으로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지워나가려고 하고 있고 이는 노동조합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이스라엘의 노동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건강 보험과 최저 임금은 피점령자인 팔레스타인인까지 미치지 못한다. 오히려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면서도 오직 생계를 위해 브로커와 이스라엘 노조에게 이중으로 돈을 내야 한다.

2011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는 노조가 아닌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생활비용 상승과 구조적 불평등에 항의하는 대규모 텐트 농성이 일어났으며, 같은 해 9월에는 50만 명의 대규모 인민들이 각 도시들의 거리로 쏟아져 나와 민생과 불평등을 해소할 것을 요구했다. 인민의 폭발적인 힘과 다중 지성을 겪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다소 보수적인 히스타드루트가 아닌 대안적인 노조들을 만드는 움직임이 등장했고, 이를 통해 유대인 노동자, 팔레스타인 노동자, 하레딤, 그리고 러시아에서 온 극단주의 이주자들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경제적인 대안체를 만들고 그것을 견인차 역할로 하여 정치적인 대안체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일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사람들은 길에서 해방감을 느꼈지만 여전히 표는 리쿠드당에게 몰렸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소시민들은 다시 정권과 개인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책임에서 벗어나고 있다. 통일전선이 아닌 소위 다중 지성의 한계이다.

팔레스타인의 대표적인 좌파 정당인 PFLP의 열렬한 활동가이자 위대한 작가인 가싼 카나파니는 “팔레스타인 문제는 팔레스타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혁명가들의 문제이다.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이 시대의 대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각성한 인민들이 겪는 사회주의의 경험에서는 협소한 나와 타자의 경계가 넓어지고 보편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넓은 공감을 형성한다.

그 반대로 깨닫지 못한 인민들은 ‘너’를 배척하고 딛고 올라서서 얻는 ‘나’의 행복을 추구한다. 소규모 공동체들과 소규모 노조들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행태는 안타깝지만 진공 상태에서 자신들만의 천국을 추구했던 이스라엘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복사한 축소판이 될 뿐이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 인민들과 함께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한 투쟁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스스로가 점령자 입장에 있음을 인정하고 일상의 불합리가 점령까지 닿아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전 국민이 학교와 군대를 통해 대규모의 조직적인 방식으로 스스로를 피해자로 인식하는 가해자로 탈바꿈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외부의 충격 없이 그러한 깨달음이 가능할까? 사회주의가 방구석 ‘구좌파’로 불리며 파편화된 부문 운동이 유행하는 지금, 우리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에서만 예외적으로 굳건한 계급의식과 운동을 기대할 수 있을까?

7. 행동 방안: 강력한 국제 연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노동자들에게 혁명적 각성을 이루고 부르주아 국가를 물리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보다 사회주의적인 시각에서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그에 따라 팔레스타인 인민들과의 국제 연대를 강화해야 하는 게 먼저다. 현재 우리나라 평화단체들의 국제정세 판단 능력은 서구 중심적인 것 아니면 둘 다 나쁘다는 양비론으로 한정되어 있다. 서구 프로파간다의 앞잡이인 국제 엠네스티에 찬동하여 시리아의 테러 단체인 ‘화이트헬멧’을 자유와 인권을 위해 희생하는 영웅으로 그리거나8) 시리아 정부가 영토를 회복하는 것을 ‘공격’이라고 부르면서 반대 시위를 열었던 것이 그 한 예이다.9)

화이트 헬멧이 골란 고원을 빠져나갈 때 사람들이 이스라엘 버스를 타는 모습. 로이터통신 사진. July 22, 2018.

국제 엠네스티가 이스라엘과 결탁한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알누스라가 만든 화이트 헬멧10)의 메가폰이 되자마자 따라서 작은 스피커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특히 스스로를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당사자’가 나타나면 국내 평화단체들은 판단력을 잃어버린다. 하지만 우리는 감성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시각에 따라 철저히 현실에 기반을 둔 정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장 강력한 대이스라엘 비폭력 투쟁인 BDS 운동에 각 정당과 조직들의 국제연대지부가 나서서 참여하며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는 국내 기업들이나 문화 활동 등에 대한 감시를 철저하고 지속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국내에서도 2014년 이스라엘이 한창 팔레스타인을 폭격하고 있을 때 국내 개인들, 평화운동 단체, 영화인들이 모여서 이스라엘 대사관의 지원을 받아 이스라엘 특별전을 열려고 했던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를 보이콧한 바 있다. 하지만 보이콧에 참여한 단체와 개인들이 여전히 문화, 학술적 보이콧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으며, 점령에 대한 국가와 개인의 책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선행되지 않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 운동은 대중화되거나 지속되지 못했다. 이들은 국제 엠네스티가 BDS운동을 하면서부터는 이제는 문화, 학술적 보이콧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보이지 않고 있다. 국내 평화운동가들이 서구 NGO를 추종하여 국제 엠네스티 하나만을 보고 달려간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이렇듯 주체적인 사고와 분석이 없는 사대적인 추종은 평화운동의 전망의 상실이다.

이렇듯 자유주의적 시각은 어디에서든 우리의 눈을 흐리게 하고 행동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우리는 책임을 방관하는 이스라엘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점령을 일상으로 살아가고 있는 팔레스타인 인민들과 연대하면서 이스라엘 개인들이 이에 동참할 수 있는 여지를 터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내 평화, 인권 단체들 및 각 조직의 국제지부들에게 문화, 학술적 보이콧에 대한 입장을 고민해보는 토론회를 제안할 수도 있다.

단체와 조직들이여, 그대들이 떠드는 만큼 우리는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해진 것에는 쉽게 공감하게 된다. 공감과 당위성은 연대의 두 축이다. 성명서를 내고 시위를 하고 보이콧을 행동으로 옮기자. 다만 반드시 과학적이고 현실적인 정세분석을 바탕으로 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후주

1) Article 1(4) provides that armed conflicts in which peoples are fighting against colonial domination, alien occupation or racist regimes are to be considered international conflicts.

2) 홍미정, 단국대 중동학과 조교수, 수요산책. 2017년 11월 9일

3) Pipeline Technology Journal, www.pipeline-journal.net

4)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92804.html

5) “이는 시온주의가 나치즘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분명 아니다. 아렌트는 그런 등치를 거부했을 것이고 우리도 그래야 한다.”(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6) The Occupied Palestinian Territory, ILO, 2018

7) 워싱턴 포스트, Netanyahu’s new rival is surging in Israel’s polls

8) 2018년 7월 국제 엠네스티의 중동 파트너인 화이트 헬멧이 시리아를 빠져나갈 때 이스라엘군이 호위해주었지만 국제 엠네스티와 같이 활동하는 이들은 아무도 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2018년 12월에는 유엔에서도 화이트 헬멧이 독가스 공격, 장기 밀매한 것을 공식으로 발표하였지만 역시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뉴시스 2018, 7, 22 시리아 ‘화이트헬멧’ 800명, 이스라엘에 의해 요르단으로 구출돼; AMN. 2018.7.22Israel allegedly evacuates 800 White Helmets from southwest Syria: Bild ; BBC New 2018. 7. 22 Syria conflict: White Helmets evacuated by Israel

9) http://www.peoplepower21.org/Peace/1555109, https://21stcenturywire.com/2017/02/08/amnesty-international-humanitarian-spin-merchants-and-propaganda-peddlers-for-nato/

10) Tass. 2018.11.2. Russian Foreign Ministry has evidence proving White Helmets are Jabhat al-Nusra’s branchhttp://tass.com/politics/1029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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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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