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와 그 ‘진보적’ 벗들(1) – 연재를 시작하며
2019년 2월 8일
맑스·엥겔스는 《독일이데올로기》, 《공산당 선언》에서 “모든 시대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는 지배계급이 가만히 앉아서 한 시대의 사상을 지배계급의 사상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계급이 가진 정신적 생산수단인 언론, 교육, 종교도 지배계급의 사상 형성에 봉사한다. 심지어 최근에는 인터넷 댓글 공작이 권력과 자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자행되기도 한다.
지배계급은 중립적으로 보이는 통계조차 지배계급의 이해에 맞춰 재해석, 조작하기도 한다. 자본주의 민의의 척도라는 여론조사조차 정치적 의도에 맞춰 사전 기획되고 여론조사 문항을 의도를 담아 구성하는 등 자의적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지식인, 전문가들을 직접적으로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로 매수 또는 포섭하여 이들로 하여금 중립을 가장하고 전문성으로 위장하게끔 하여 여론을 조직하고 조작해 내기도 한다. 이른바 “여론 주도층(오피니언 리더)”의 존재는 첨예한 사안마다 그 지배적 여론을 형성하는 일정한 집단, 계층이 있음을 공공연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의 국교는 사실상 “반공”라는 말이 있듯, 부르주아 체제, 제국주의 체제에서 지배계급의 사상은 반공주의 사상이다. 한국에서 지배적인 사상 역시 반공이었는데, 근래에는 이것이 ‘종북몰이’로 나타나고 있다. 반공주의는 쏘련 사회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을 때에는 반쏘주의로 나타났고, 특히 수십 년 동안 쏘련 사회주의 체제를 건설한 지도자인 스탈린에 대한 극단적인 비방으로 나타났었다. 한국의 반공주의는 한국 자본주의 체제와 대립하고 있는 조선과 그 지도자들을 악마화하는 극단적인 반북주의로 나타났다. 반공주의는 여전히 우리 사회 전체의 사고를 제한하고 편견과 독단을 조장한다. 또한 진실을 가로막고 거짓을 유포하고 언로를 봉쇄하며 행동의 족쇄가 되고 있다.
“문화적 냉전”, 제국주의 반공 공작
열전(熱戰)이 무력전쟁으로 펼치는 전쟁을 의미한다면, 냉전(冷戰, Cold War)은 보통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 진영과 쏘련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주의 진영의 대립적인 국제관계를 의미한다.
미쏘 간 냉전의 시기에 펼쳐진 냉전은 치열한 이데올로기전의 양상으로도 전개됐다. 이 미쏘 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이른바 “문화적 냉전”의 방식으로도 수행되었다.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그린비, 옮긴이 유광태 · 임채원)이라는 책에서는 그 냉전이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진영에서 어떻게 수행되고 있는지를 방대한 자료를 인용하여 폭로하고 있다.
미제국주의에서는 이 시대의 지배적인 사상인 반공주의적 제국주의 사상과 이를 유포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정치선전)를 치밀하게 전개해 왔다. 이 책에 따르면 CIA(미국 중앙정보국)는 이 정치공작의 최선두에 선 제국주의 진영의 ‘전위대’이다. CIA는 포드 재단, 록펠러 재단, 뉴욕카네기 재단 등 170개가 넘는 자금 ‘통로’를 이용해 막대한 자금을 투여하여 반공주의 프로파간다를 수행해 왔다. CIA는 이 재단들을 통해 노조, 청년단체, 대학, 출판사 등에서도 비밀첩보 활동을 전개했다. 그런데 CIA의 자금 공급은 은밀하게 진행되고, 민주적으로 가장한 기관의 자금통로를 거쳐서 전달되었기 때문에 자금을 전달받는 단체들은 독립적인 활동으로 위장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양심의 거리낌 없이 자주적 활동으로 포장하여 미제국주의의 이해에 간접적으로 봉사하기도 했다.
CIA는 프락치 공작조차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표 나지 않게, 심지어는 매수된 지식인의 생각이 “마치 자신의 독자적인 신념에서 우러나온 것으로 조장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CIA는 ‘여론주도층’인 “최상층 지식인”을 매수하여 이용하는데, 이들을 이용하면 이른바 “낙수효과”를 발휘하여 지식인 전체에 대한 파급과 이로부터 전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CIA의 집중 공작 대상이 된 “비공산주의 좌파”
CIA는 반공주의 활동을 전개하면서 특히 “비공산주의 좌파의 동원 효과”를 강조하기도 한다. 따라서 과거 공산주의 활동을 했거나 지금도 반쏘비에트, 반스탈린주의적 입장에서 ‘좌파’를 내세우는 ‘진보적’ 인사들이 문화적 냉전을 수행하는 적임자로 낙점된다.
여전히 진보적 지식인, 활동가, 단체를 자처하면서도 반쏘비에트, 반스탈린적 관점에 입각한 “비공산주의 좌파”는 주로 누구인가? 바로 트로츠키주의자들이다. 그리고 ‘신좌파’를 자처하는 인사들도 마찬가지로 CIA의 포섭 대상이다.
CIA는 트로츠키주의자들, 신좌파들 등 반쏘 반공주의자들의 쏘련이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적극 활용했다. 이들은 반쏘비에트, 반스탈린을 내세우면서도 여전히 “급진적”이거나 “진보적” 수사를 사용하거나 그 신념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에 CIA로서는 이들을 매수하는 것이 가장 용이했고 또 반공주의적 사상의 파급력도 컸기 때문이다.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 때부터 “개인숭배” 비판이라는 명목으로 반스탈린 공세가 고조되었고 고르바초프 때 정점에 달했다. 반스탈린주의는 쏘련 사회주의의 실질적인 건설자인 스탈린에 대한 비난을 내세웠지만 실은 맑스주의의 혁명적 사상을 부정하여 수정주의 사상을 유포하는 수단이었다.
미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선전 역시 쏘련 및 국제공산주의 진영의 분열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스탈린을 악마화하는 것을 통해 반공산주의를 선전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그런데 미제국주의는 히틀러가 대학살을 자행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이라는 점을 전면 부정하지 못한다. 미제국주의는 히틀러와 파시즘의 배후에 자본주의 독점자본이 있다는 것을 부정해야 한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국의 일원이었던 미국, 영국, 프랑스가 히틀러와 대립하면서도 히틀러의 “동진정책”을 방조내지 지원했던 공범이라는 점을 숨겨야 한다. 따라서 미제국주의를 포함한 제국주의 진영에서는 히틀러와 파시즘, 스탈린과 볼셰비키를 동급의 악마로 묘사하는 것을 통해 자본주의를 구원하고 대중들이 공산주의에 대해 반감을 품게 한다.
히틀러는 “백색파시즘”, 스탈린은 “적색파시즘”론이 바로 ‘도찐개찐’의 논리로 제국주의의 자본주의를 구원하는 반공논리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출판사에서 번역된《열린사회와 그 적들》(칼 포퍼)이 그 전형적 논리이다. 칼 포퍼는 히틀러의 나찌즘을 비판하면서도 쏘련 사회주의를 “전체주의”로 묘사하여 양자를 폐쇄된 사회로 규정하고 열린사회를 지향한다고 했다.
칼 포퍼는 자유주의적 입장의 반공주의자로 “젊어서 맑스주의에 빠지지 않으면 바보지만, 그 시절을 보내고도 맑스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더 바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맑스주의를 그저 청춘시절에 열정만으로 수용하는 진보적 사상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여 깔아뭉개고, 과학성이 없거나 현실의 전망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도록 하는 세련된 반공주의이다. 실제 “진보적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숙명주의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투항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주 애용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칼 포퍼와 마찬가지로 “나찌즘”과 “전체주의”를 반대하고 열린사회를 지향한다고 하는 대표적인 자가 있는데, 그가 바로 국제적인 투기 자본가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다. 조지 소로스는 칼 포퍼의《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신조로 삼아 열린사회기금(the Open Society Fund)을 창설하여 체코, 폴란드, 헝가리, 중국, 쏘련 등지에서 반공산주의 운동을 전개했다.
카우츠키가 레닌 당시의 혁명 러시아를 “전체주의” 체제,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간주하여 비방에 앞장선 이래로, ‘좌익 공산주의’ 세력도 이러한 논리방식을 그대로 차용하여 쏘련과 현실 사회주의를 ‘적색 파시즘’으로 비난한다. 트로츠키 역시 “스탈린 체제와 파시즘 체제는 사회적 기초는 판이하지만 동일한 현상이다. 이 두 체제의 특징은 지독히도 비슷하다”(《배반당한 혁명》라며 ‘적색 파시즘’론을 주장했다.
흐루쇼프 이래로 우경화된 국제 공산주의 진영의 유로 꼬뮤니즘은 반쏘비에트를 모토로 하였고, 이후 서구의 진보적인 지식인들, 청년운동들도 운동적 전망을 상실하고 대거 무정부주의화 되거나 자유주의적으로 변모하였다.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버마스, 라캉, 들뢰즈, 데리다, 지젝, 알튀쎄르, 네그리 등 현대의 각종 “진보적” 사조들은 반맑스(레닌)주의적이다. 이들의 정치적 공통분모는 반쏘비에트적이고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반공주의적”이다.
국가보안법이 절멸시키려는 대상에 대한 공통의 증오
한국에서는 한국전쟁 이후 맑스레닌주의로 무장한 급진적인 혁명적 운동이 사실상 절멸되었다가 1980년대에 다시 반제국주의와 반자본주의를 내건 급진적인 정치운동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러나 쏘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이후 짧았던 맑스주의의 “르네상스” 시대가 저물고 청산주의의 시대가 되었다. 이때부터 한국에는 ‘신좌파’ 사상과 그와 상통하는 트로츠키주의가 창궐하게 되었다. 이들의 공통분모 역시 반쏘비에트, 반북주의이다.
한국의 ‘진보적’ 지식인들, 진보를 자처하는 정당, 언론들에서도 ‘종북몰이’에 굴종하거나 심지어는 종북몰이의 적극적인 동조자가 되기도 하는데 이는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가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좌파’ 진영에서는 국가보안법을 비판하면서도 그 국가보안법이 현실로 반국가단체, 이적단체로 격멸하려 하는 대상이 바로 현존하는 조선(북한)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을 반대하면서도 국가보안법의 노예가 되어 반북·반공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제국주의와 그 ‘진보적’ 벗들>이라는 기획연재는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이라는 책을 여러 차례 인용할 것이지만, 그것을 모티브로 한다 하더라도 거기에 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2차 대전의 전초전이라는 스페인 내전과 2차 대전의 성격과 이후 ‘냉전’이라는 성격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이다. 쏘련 사회주의의 쟁점, 반쏘비에트를 내건 “비공산주의 좌파” 트로츠키주의, 각종 자유주의 사상, 그리고 한국의 종북몰이와 그 ‘진보적’ 몰이꾼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연재의 방향에 대해 대략 구상을 하기는 했지만, 연재를 계속 하다보면 어디로 글이 향할지 지금으로서는 필자도 온전하게 모른다. 이후 독자들의 반향, 주변의 평가, 연재를 계속하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많은 내용들이 추가될 수도 있겠다.
연재가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효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주제들을 다룰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가보자. 가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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