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사태’를 통해 본 국제주의 원칙과 사회주의 건설의 쟁점
사진은 전 세계 최대의 목장으로 조성된 세포등판의 모습(사진 출처: NK투데이)
한국의 정치단체, 노동단체 및 진보정당들이 3월 22일 금요일 ‘미국의 베네수엘라 제재·간섭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행사는 진보진영이 입장차를 넘어 미제국주의의 폭력적 간섭 행위에 대해 한 목소리로 규탄 목소리를 내며 국제주의 단결의 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반제국주의와 국제주의 단결이라는 숭고한 대의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적 연대 표명뿐만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으로 발전해야 한다. 특히 거대한 정치적 압력과 첨예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뚫고 반제 국제주의를 내걸고 일관되게 싸울 필요가 있다.
레닌은 제국주의 지배를 하고 있는 자기 나라의 식민지 억압정책을 파탄내고 식민지 국가의 자결권을 옹호하며 싸우는 것이 진정한 국제주의라고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기’민족에 의해 억압받는 민족과 식민지의 정치적 분리의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공허한 말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억압민족의 노동자들과 피억압민족의 노동자들 사이의 신뢰나 계급적 연대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민족자결을 지지하는 척하면서도 자기 민족에 의해 억압받고 강제로 자기 국가에 복속되고 있는 제민족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개량주의자와 카우츠키주의자들의 위선을 폭로할 수 없다.(레닌, “사회주의 혁명과 민족자결권”)
가령 일본의 진보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배 일반을 반대하면서 정작 일본의 조선침략에 반대하여 조선의 식민지 해방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은 가짜 진보주의자인 것이다.
영국의 인도 지배를 종식시키기 위해 자기 나라 제국주의의 패배를 위해 싸우지 않는 영국의 진보주의자들, 알제리 식민지 지배에 있어서 프랑스 제국주의의 파멸과 식민지 해방을 위해 싸우지 않는 진보주의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가짜 진보주의자들인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해 자국의 패배를 도모하지 않는 것 역시 위선적 진보주의자에 불과하다.
일본공산당원이자 프롤레타리아 시인으로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으로 일제의 패배와 조선의 해방을 외치며 싸우다 산화한 마끼무라 고(槙村 浩)야말로 진정한 국제주의자였다
바람이여, 분노 안고 백두의 눈사태 타고 불어오라!
물결이여, 격분의 물보라 두만강에 일게 하라!
오, 일장기 펄럭이는 강도놈들아!
부모와 누나와 동지들의 피 스민 땅,
고국 땅에서 나를 몰아내고
지금 또 칼 차고 간도에 기어드는 왜놈병사들아!
오, 네놈들 앞에 또 우리가 굴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지껄이느냐?
뻔뻔스런 강도들을 대접할 줄 모를 우리들인 줄을 모른단 말이냐?
마끼무라 고의 장편시 ‘간도 빨찌산의 노래’의 일부다. 마끼무라 고는 조선을 강점한 자기나라 일제를 강도로까지 묘사하며 타도하기 위해 싸웠다. 식민지 조선을 모국으로 간주하며 조선의 해방을 위해 싸우다 감옥에서 당한 고문으로 27세 나이로 요절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제재·간섭 규탄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미국을 규탄했다.
이미 미국은 한반도와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민중의 삶은 아랑곳하지 않고 간섭해 문제를 일으켜 왔다.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하지만 미국 같은 강대국의 간섭과 개입은 오히려 현지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파괴하고 민중의 염원을 거스르는 일이다.
미국의 제재와 간섭은 베네수엘라 민중에 대한 공격이고, 베네수엘라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이다. 문재인 정부가 미국에 동조해서, 정권 탈취에 앞장선 후안 과이도를 임시 대통령으로 인정한 것은 유감스런 일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베네수엘라의 자결권을 온전히 존중해 과이도 지지를 철회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간섭에 반대한다.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옥죄는 모든 제재를 철회해야 하고, 베네수엘라의 미래를 베네수엘라 민중에게서 빼앗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베네수엘라 민중의 자주권을 압살하는 미제국주의의 간섭과 제재가 부당하고 철회되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미제의 조선에 대한 침략·간섭책동도 규탄되고 즉각 철회되어야 한다. 이는 구체적인 우리 현실에서 표현되는 숭고한 반제 국제주의이자 참된 민족적 태도이기도 하다. 특히 반공주의 반북주의 요새이자 파쇼악법 국가보안법이 서슬 푸른 한국에서 미제를 규탄하고 반북 종북몰이에 맞서 싸우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진보주의자의 태도다.
미제 침략자들은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독재 정부’로 규정하고 전복하기 위해 내정에 간섭하여 반동 쿠데타를 조장하고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을 동원하여 파괴 공작을 일삼고 있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국주의 간섭과 제재를 일삼는 미제는 조선에 대해서는 한층 더 오래되고 가혹한 군사적 적대행위와 경제 봉쇄를 일삼아 왔다.
북한에 대한 미국 경제 전쟁의 수준과 깊이는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가장 제재를 받는 나라”이다. -조지 W. 부시
… “추가로 적용할 제재는 거의 없다.” – 뉴욕타임즈
1950년 6월 한국 전쟁이 개시 된지 3일 뒤 북한에 수출하는 모든 품목 통상정지를 강요한 순간부터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적, 금융적, 그리고 외교적 제재라는 끊임없는 요법을 유지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o 상품과 서비스 수출 제한
o 대부분의 외국 원조와 농업 생산물 판매 금지
o 수출입 은행 자금 제공 금지
o 우호적인 통상 조건 거부
o 북한으로부터 수입 금지
o 국제 금융 기구를 통한 어떠한 차관이나 자금 제공 저지
o 북한에 대한 수출용 식량과 의약품 수출 면허 제한
o 북한에 수출하기 위한 식량과 의약품의 정부 자금 조달 금지
o 운송과 관련된 수출입 거래 금지
o 이중적으로 사용되는 수출품 금지 (예를 들어, 군사목적으로 사용되어질 수 있는 일반 상품)
o 어떠한 상업적인 은행 거래도 금지.
최근 몇 년 간 미국의 제재는, “자산을 동결하고 금융적인 흐름을 잘라버리려는 노력들”에 의해, 접근에서부터 미국 은행 체제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회사들과 거래하는 은행들을 차단함으로써, 보충이 되었다. 북한을 전 세계에 접촉할 은행이 없는 은행업무 소외국으로 만드는 것으로 의도된 노력이었다. 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 경제가 붕괴될 때까지 모든 “가능한 금융적 제재 조치로 북한을 압살하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워싱턴 역시 제재를 강화시키기 위해 활동했는데, 맑스-레닌주의 체계와 비시장경제를 비난하는, 경제 전쟁 캠페인에 참여하도록 다른 국가들에 압력을 가했다. 내용에는 모든 국가들이 이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품목들을 북한에 수출하는 것을 강제로 금지하도록 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정을 후원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1990년대 이라크의 의료체계를 산산조각으로 만들어버렸던 제재 체제의 반복.) 워싱턴은 심지어 북한에 석유의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을 압박(실패한)하는 데까지 나아갔다.(스티븐 가우언스, “왜 북한은 핵무기를 필요로 하는가?, 노동자정치신문, 2013-02-28)
이처럼 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재는 1950년부터 70여 년 동안 지속되어 오고 있을 정도로 역사상 유례가 없을 가혹하고 악랄한 파괴책동이다. “추가로 적용할 제재는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제재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욱 가혹하고 엄격한 추가 제재는 번번이 계속되어 왔다.
최근 트럼프가 미 재무부에 추가 대북제재를 철회할 것을 지시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지만 2차 조미 정상회담에서 기존의 가혹한 제재를 하나도 완화할 의도가 없는 트럼프가 추가 제재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것은 기만에 불과하다.
‘인도주의와 인권’의 기치는 미제 침략자들이 조선을 악마화하고 말살하고자 내세우는 거짓 구호에 불과한 것이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에 대해 ‘독재 정권’이라고 규정하여 공세를 펼치는 것이 제국주의 횡포이자 폭력인 것처럼 조선에 대한 비열한 공세 역시 마찬가지다.
이라크에서 1991년 걸프전 이후 미국과 제국주의 진영의 경제봉쇄로 이라크인 150만 명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했는데 이중 60만 명은 어린아이였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이스라엘의 경제제재로 마취제 없이 수술을 한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2018년 11월에 베네수엘라, 쿠바와 니카라과 3국을 ‘폭정의 트로이카(troika of tyranny)’로 비난하면서 베네수엘라, 쿠바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스티븐 가우언스는 조선에 대한 미국의 경제제재에 대해 “경제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제재는 전쟁이고 학살 행위에 다름 아니다.
조미 2차 정상회담에서 미제 침략자들은 조미합의를 파탄시켰다. 조선은 영변핵시설 폐기 조건으로 “유엔 제재 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에 대한 해제를 요구했음에도 미제는 일방적인 비핵화 협박만 일삼으면서 조미 정상 회담을 결렬시켰다.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에 대한 제재 해제조치조차도 부정함으로써 미제가 내세운 “인권과 인도주의”가 제국주의 폭력과 횡포를 가리는 구호인지 다시금 증명되었던 것이다.
제국주의 경제제재와 사회주의 ‘자력갱생’
우리는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제의 경제제재에서 또 다른 측면을 본다. 경제제재는 자주적 발전의 침해다. 베네수엘라는 미제의 경제봉쇄로 인해 한층 더 경제적, 사회적 위기가 더 가속화 되고 있는데, 석유 수출에 대한 의존이 높은 상황에서 미국이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PDVSA에 대해 제재를 한 것이 가장 큰 타격이 되고 있다.
앞에서 조선에 대한 미국의 제재 상황에서 보았듯이, 제국주의 진영은 금융과 운송 제재를 비롯해 석유, 농업 생산물 거래, 식량과 의약품 거래까지 인민경제 전반을 물샐틈없이 가혹하게 봉쇄한다. 여기에 군사적 공세는 인민의 복리에 들어갈 비용과 노력을 부단하게 군수품 생산으로 돌리게끔 한다.
사회주의는 이상이자 현실이다. 사회주의는 공리공담도 아니요, 진공 속에서 원리만으로 건설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주의를 붕괴시키기 위해 적개심을 가지고 자행하는 ‘문화적 냉전’과 군사적, 경제적 포위 말살책 속에서 건설되어야 한다. 국제적 연대도 사회주의가 생존함으로써 연대의 대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극도로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사회주의 건설의 모범을 창출하는 것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진정한 국제적 연대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경제봉쇄에 맞서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계획의 강화와 자력갱생이 절실하다. 사회주의 사상과 문화와 기술을 사회주의 건설의 구체적 과정 속에서 굳건하게 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이것이 없다면 제국주의의 경제적 고립말살책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고 결국은 사회주의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
베네수엘라가 지금 겪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위기는 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강화와 정치적, 경제적 자주성의 실현이 진보적 체제를 유지,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제와 제국주의 진영의 외부적 공세와 내부적 쿠데타 세력들의 준동은 베네수엘라가 생존하고 진보적 발전을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강화를 통해 내외부 반혁명 세력들의 책동을 분쇄하고 자주적인 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를 강화시켜야할 필요성을 절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레닌은 “공산주의는 쏘비에트 권력 더하기 전국의 전기화이다.”라고 했는데, 전자는 바로 프롤레타리아가 중심이 된 인민대중국가(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후자는 사회주의 기술발전의 토대를 의미하는 것이다.
1920년대 중반 쏘련 공산당 내부에서 치열하게 논란이 되었던 사회주의 건설의 방향을 둘러싼 논쟁에서 트로츠키는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문제를 국제주의를 부정하는 ‘일국사회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고립적인 “민족경제”로 왜곡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앙양은 구라파의 주요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이 승리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라며 “일국의 국가적 범위 내에서의 고립된 사회주의 건설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했다. 이에 대해 스탈린은 다음과 같이 일축했다.
당은 한 나라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라는 것은 사회주의가 그 나라에서 건설될 수 있다는 가능성 문제이며 또 이 과업은 한 나라의 힘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라는 것은 무력 간섭과 자본주의의 복구로부터의 보장이며 또 이 과업은 오직 혁명이 몇 개 나라에서 승리하는 조건 하에서만 해결될 있다는 것에서 항상 출발하였다. 이런데도 어떻게 이 두 개의 과업을 염치없이 서로 혼동할 수 있는가?(스탈린, 보고 “우리 당내의 사회민주주의적 편향에 관하여” 결론, 스탈린 선집2, 1926년 11월 3일)
트로츠키는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적 단결이라는 과제와 국가적 수준에서의 사회주의 생산의 조직화라는 문제를 뒤섞어 버렸던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앙양은 구라파의 주요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이 승리한 후에야 비로소 가능하게 될 것이다”라는 말은 유럽의 주요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이 승리하기 전에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진정한 앙양은 불가능하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국제주의”라는 말로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생산의 성공적인 조직화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패배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의 성공적 건설이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사회주의 전망을 가지게 한다는 점에서 국제주의적 측면에서도 이는 숙명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자본은 국가 단위를 기반으로 전 세계적 운동을 하기 때문에 자본주의 모순은 국가적, 국제적으로 집중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불균등하게 발전하는 체제이기 때문에 모순이 첨예해지고 집중되는 약한 고리가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다. 이 약한 고리에서 위기가 고조되고 혁명이 분출할 수밖에 없다. 이 약한 고리는 일국 차원에서 우선적으로 혁명의 가능성을 높이고 이 일국혁명이 성공하고 성공적으로 유지, 강화될 때 사회주의 진지가 강화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국제적인 경제적, 정치적 위기로 나타날 수 있다.
결국 제국주의 체제의 포위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사회주의 건설을 하는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국 내에서 사회주의 건설의 성공을 위한 ‘자력갱생’은 사회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다.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이 존재할 당시에도 사회주의 분업논리가 강조되면서 일국 내에서 사회주의 경제의 자주적, 자립적 발전을 위한 노력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대국주의적 태도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조치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공업국가가 제3세계를 착취하고 수탈하는 정도로 약탈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대국주의적 태도는 사회주의 나라 사이에서 우호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약화시켰다. 특히 쏘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될 시점에서 사회주의 분업경제는 도미노처럼 사회주의 진영 국가들을 무너뜨리는데 일조했다.
사회주의 경제는 자주적, 자립적인 사회주의 계획체제를 강화하면서 사회주의 국가 상호 간의 우애와 평등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제국주의 체제 속에서 혁명이 제국주의 체제의 모순이 첨예해지는 한 나라에서 일어나고, 이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의 포위압살책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회주의의 자주적, 자립적 존속과 발전을 위한 ‘자력갱생’은 필수적인 사회주의 경제의 특수한 원리이자 보편적 원칙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 생산의 모범적 원리가 ‘자력갱생’이라는 것은 사회주의가 폐쇄경제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의 고립은 제재에 의해 강요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사적, 정치적 힘을 동원하여 제재를 돌파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제재를 뚫고 자본주의 국가가 경제 거래를 할 경우에도 자본이 사회주의 경제의 자주성을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 ‘자력갱생’은 그때에도 여전히 필수적으로 강조될 수밖에 없다.
제재가 전쟁이라면 제국주의가 가하는 전쟁에 맞서 ‘자력갱생’은 사회주의의 전쟁이다. 자본주의가 경쟁과 이윤추구가 중심이 되는 사회라면 사회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인민의 정신적, 문화적, 물질적 풍요를 위해 복무하도록 하는 체제이다. 실업을 일소하고 주택, 의료, 교육, 보육의 전면 무상화와 교통과 문화의 무상 또는 저렴화, 노후 연금의 전면 보장을 통해 인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체제이다. 제국주의 전쟁이 파괴와 약탈과 극도의 불평등을 의미한다면, 사회주의 전쟁은 전 세계 인민의 해방과 행복, 풍요를 위한 사심 없는 인간들의 집단적 헌신과 투쟁을 의미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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