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세에 새로운 수준에서의 반북 적대를 일삼을 것인가? 급변하는 정세 속에 부각되는 당면 투쟁 과제를 적극 수행할 것인가?
2018년 10월 17일
노동자연대, 노동해방투쟁연대, 변혁당 등 한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이나 트로츠키주의적인 조직들은 이러나 저러나 북(조선)에 대한 반공주의적 적개심과 혐오를 표출해 왔다.
북이 미제국주의의 핵위협과 포위말살 책동에 맞서 자위권의 일환으로 핵무장을 강화할 때는 “모든 핵 반대”라는 양비론과 중립을 가장하며 종국적으로는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의 이해에 복무해왔다.
그러나 북은 제국주의 전 진영의 고립말살책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핵무력을 완성했다.
미본토까지 위협하는 핵무력이 완성되자 미제도 어쩔 수 없이 비핵화를 명목으로 북과의 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북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남북 간 경제협력, 조미 국교수립과 경제제재 철회를 걸고 투쟁하고 있다.
그 사이에 남북 간 판문점 선언, 조미 간 싱가폴 선언, 남북 간 평양선언이 합의됐다.
여전히 미제국주의는 제재완화 대신에 비핵화를 강박하고 미제국주의의 바지사장인 유엔사가 남북 간 경제협력, 군사대립 완화 조치를 가로막고, 심지어 트럼프는 황제처럼 승인을 요구하고 문재인 정권은 굽실대고 있지만, 남북, 조미 간 관계개선은 시나브로 불가역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나 트로츠키주의적 이른바 반북 ‘좌파’는 새로운 상황에 맞춰 새로운 수준에서의 반북 혐오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부르주아와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의 주관적 바람대로 “중국 식”이니 “베트남 식”이니 하며 북이 부르주아적 시장개혁개방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북을 고립되고 폐쇄된 국가자본주의니 어쩌구하며 비난하더니 이제는 자본주의 시장개방을 하고 있다며 우려를 가장한 반북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는 북이 이재용이나 현대그룹 독점자본가와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것을 자본의 “식민지” 운운하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보자!
세계적 수준에서의 공산주의 체제가 달성되기 전 일국의 사회주의가 자본주의와 대외 무역관계를 끊고 고립경제, 폐쇄경제를 추구하는 것이 사회주의 원리인 것으로 보지 않는한 어떻게 이러한 인식이 나올 수 있는가?
그렇다면 북은 다시 제국주의의 경제제재 속에 압살당해야 하는가?
사회주의가 대외 무역을 확장하며 인민복리를 위해 자주적 발전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회주의가 대외무역을 함에 있어서 그 대상은 자본주의 국가의 기업일 수밖에 없다. 그 중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하는 독점자본이 사회주의 대외무역의 주된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북이 현대나 삼성 같은 독점자본과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것은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이 이 과정에서 계획경제 속에 대외무역과 신용의 국가독점을 확고하게 유지한다면 자본주의와의 거래확대가 자본주의 시장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미 북은 제재 책동 속에서도 선군정책에서 군대와 인민경제의 병행적 발전이라는 병진정책으로의 전환, 이어서 핵무력 완성 이후부터는 인민경제 발전에 집중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며 안정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가 미제국주의의 북에 대한 제재에 반발하며 제재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북이 미제의 제재에도 굴하지 않고 자주적 인민경제를 발전시켜 왔는데 제재가 철회된다면 인민복리경제를 더욱더 고도로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북이 경제봉쇄를 뚫고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체제와 대외무역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시점에서 몇몇 언론에서는 북이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노동신문 기사를 소개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사회주의 위업 수행은 치열한 계급투쟁과정’ 제목의 논설에서 ‘제국주의자들의 평화 타령과 유화정책은 사회주의 나라에 대한 군사적 침략정책이 파산된 데로부터 궁여지책으로 꺼내 든 것으로, 힘으로 이루지 못한 압살 야망을 경제 문화적 공간을 통해 실현해 보려는 교활한 계책’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군사적 위협 공갈과 야만적 제재 봉쇄로 굴복시켜 보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체질적 거부감과 적대심은 상상을 초월한다’며 ‘제국주의자들에 대해 티끌만 한 환상이라도 가진다면 사회주의를 고수할 수 없게 된다’고 역설했다.
특히 ‘비사회주의 요소는 제국주의자들의 제재봉쇄 책동으로 사회주의 경제건설에서 난관이 조성된 시기에 머리를 쳐들게 된다’며 ‘경제생활이 어려울 때 생긴 사상 의식의 변화가 경제 형편이 좋아지면 저절로 개변되리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식”이니 “베트남 식”이니 하며 제국주의와 부르주아 진영의 주관적 바람과 달리 북은 지금 정세를 여전히 “계급투쟁과정”으로 인식하며 “제국주의자들에 대해 티끌만한 환상이라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경계하고 있다.
북의 “식민지화”라며 마치 제국주의 의도를 경계하는 체하며 실은 제국주의의 이해와 바람대로 부화뇌동하는 한국의 이른바 ‘좌파’들은 북에 대해 이러나 저러나 비난 일색으로 신 반북 소동에 나설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임무에 반하여 활동해온 그 동안의 몰역사적, 몰계급적 행보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한다.
정치적 관심을 노동자들의 경제적 현안에만 집중시키고는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국면에 기권하거나 소극적으로 임하는 경제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동해방투쟁연대의 최근 기사가 트로츠키파들의 신반북주의와 정치적 협소함과 정세 기권주의를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이재용을 비롯한 재벌 자본가들을 동반자로 여기는 것처럼 북한 정권도 이들을 동반자로 여기며 함께 웃고 즐기는 한, 우리가 이들 모두와 ‘민족구성원’으로서 나란히 설 여지는 없다.
바로 여기에 38선보다 강력한 계급 분단선이 그어져있다. 그리고 이 ‘계급 분단선’ 앞에서는, 평화도 통일도 불가능하다.”(오연홍, 38선보다 강력한 계급 분단선 – 이재용을 바라보는 남북한 정권의 시선, 온라인신문 165회 18-10)
“38선보다 강력한 계급 분단선”이라고?
과연 이들 트로츠키파는 현대사에 대한 최소한의 역사인식이라는 것이 있는가? 38선이라는 분단은 제국주의와 노동자 민중 간의 계급대립과 무관하다는 말인가? 분단을 극복하고 자주적으로 남북이 통일하는 것이 계급적 과제와 무관하다는 말인가?
이들의 몰역사적 인식과 노동계급의 문제를 노사 간 현안문제로만 협소화 시키는 경제주의를 전면 규탄, 폭로해야 한다.
우리는 북의 핵무력 완성으로부터 시작된 남북, 조미 간 관계개선과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분단극복과 통일과 해방이라는 노동자 계급의 원대한 정치적 과제에 충실하게 임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과제이지만 새로운 정세 속에 전면 부각되는 당면 투쟁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일방적, 폭력적 비핵화가 아니라 북에 대한 제재완화와 전면철회를 위해 싸워야 한다.
제국주의와 부르주아의 반북반공주의 프로파간다를 폭로하고 노동자 민중이 자주적, 역사적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중선전, 교양,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국정원을 해체시키는 투쟁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한미연합사, 한미일 동맹 체제 해체시키고 미군을 철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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