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무한권력을 가진 사회에서 엽기적 만행의 제2, 제3의 양진호는 또 나타난다

2018년 11월 1일

“양 회장 회사는 기업이 아닌 ‘양진호 왕국’…한마디로 제왕이었다.”(뉴스타파)

“양 회장 회사는 기업이 아닌 ‘양진호 왕국’”이라는 말은 한국미래기술 회장 양진호가 자행한 막가파적, 엽기적 잔혹 폭력의 일면을 잘 드러낸다. 그러나 “기업이 아닌 ‘양진호 왕국'”이라는 말은 사건의 또 다른 측면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양 회장의 싸이코적 폭력과 횡포는 바로 자본주의 “기업”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다. 양진호는 한 명의 자연인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권력자로서의 자본가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 기업이라는 왕국 속에서 잔혹한 제왕으로 군림했던 것이다.
조직 폭력배의 세계가 아닌 바에야 자본주의 시민권을 가진 공민 다수에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런 무차별적 폭력과 엽기적 가학행위가 일방적이고 지속적으로 벌어지면서도 침묵을 강요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일에 꼼짝도 않고 순응할 사람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양진호의 잔혹한 폭력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어떻게 저런 일을 당하고 사냐?”고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한 명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고 묵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자본가 말 한 마디에 언제든지 파리목숨처럼 해고당하고, 그에 따라 가족의 생존이 막막해지고 생활이 파탄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처지에서 보면 사태가 완전히 달라진다. 노동자들은 시민으로서는 형식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자본가한테 종속된 처지에서는 철저하게 무권리 상태이기 때문이다.
양가 놈은 자신의 잔학한 범죄행위가 폭로되고 나서 사회적 공분이 일어나자 마지못해 사과 글을 올렸다.

“이번 보도를 접하면서, 저에 대한 비난과 원망은 모두 옳은 말씀으로, 저 스스로 반성의 계기로 삼고 있으나, 회사 직원들이 마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비겁자’로 지칭되고 있는 현실에 다시 한번 큰 좌절감과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잘못은 제게 있으며, 직원들이 불의에 침묵하게 된 연유도 모두 저의 독선적 행태로 인한 것이므로, 그 간 묵묵히 일에만 전념해 온 직원들에 대한 비난을 거두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회사 직원들이 마치 ‘불의를 보고도 침묵한 비겁자’로 지칭되고 있는 현실에 다시 한번 큰 좌절감과 비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니!
양진호 이 놈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졌다는 “싸이코 패스”인가?
도대체 “좌절감과 비통함”은 누가 감당하는 몫인가? 양진호의 막가파적 폭력과 횡포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이 몸서리치며 느껴야 하는 고통 아닌가? 양진호의 폭력과 횡포를 접하며 공분하고 있는 사람들이 느껴야 하는 감정 아닌가? 그런데 “좌절감과 비통함”을 느끼도록 한 잔혹 범죄자 양가 놈은 사과를 하는 자리에서도 마치 “회사 직원들”의 정의로운 대리자로 자처하고 있다. 조폭 대장이 부하들을 늘상 개패듯 패면서도 때로는 조폭적 의리와 우애를 강조하는 것처럼, 엽기적인 의리와 정의감을 과시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기업의 “회장”으로서의 엽기적 책임감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양진호의 노동자에 대한 싸이코적 잔혹 폭력과 횡포는 이윤에 대한 무한대의 갈망, 무한대의 착취욕, 무한대의 탐욕, 그리고 이 ‘무한대’들을 위한 무한대의 권력에서 나왔다.
이 무한의 권력의 원천은 자본가들의 기업과 공장, 토지 등에 대한 소유권이다. 기업을 소유, 지배하는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노동자들을 노예화 시킨다. 노예제도는 폐지됐지만 양진호 같은 잔악무도한 자본가들에게 먹고 살기 위해 노동자는 굴욕을 감내하며 임금노예로 전락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양진호 뿐만 아니라 자본가 놈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 연일 사회적 공분을 사면서도 연일 또 계속되고 있다.
양진호 뿐만 아니라, 2007년에는 한화그룹 김승현회장 놈은 자기 아들 보복을 한다면서 조폭들을 대동하고 회칼과 권총으로 살해협박하며 흉기로 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2010년 10월에는 최태원 SK회장의 사촌 동생이자 SK재벌 3세인 최철원M&M 전 사장이 직접 야구 방망이로 화물연대 노동자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고 맷값으로 수표를 던져준 잔혹한 폭행 사건도 벌어졌다.
2014년 대한항공 기내에서 대한항공 회장 조양호의 딸인 부사장 조현아가 자신에게 서비스된 견과류간식이 메뉴얼대로 제공되지 않았다며 승무원과 사무장을 무릎 꿇리고 소리를 지르며 모욕을 주고 난동을 부리고 회항을 했던 사건도 벌어졌다. 이어서 조양호 부인 이명희의 폭언과 폭력 사건도 벌어졌다.
제2의 양진호, 제3의 양진호, 제4의 양진호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적 공분을 산 재벌놈들과 재벌가들은 이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재벌로 행세하고 있다.
과거에도, 최근에도 ‘양진호들’은 항상적으로 있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과거에 노동자들에게 정문 경비들이 출근하던 노동자들에게 쪼인트 폭행을 가하고 두발 검사를 하고 바리깡 삭발을 하는 사건도 일상사로 일어났다. 정주영은 제임스 리라는 노조파괴자를 동원해 식칼 테러 만행을 자행하기도 했다.
갑을의 자본가 놈들은 조폭용역을 동원하여 노동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잔인한 폭력을 자행하기도 했다. 현대차, 기아차 자본의 구사대 폭력와 용역깡패를 동원하여 백색테러를 자행하기도 했다. 삼성의 납치극과 노조 파괴극도 거리낄 것 없이 자행됐다. 자본가들의 잔인무도한 행위는 헤아릴 수 없다.
한국 자본주의는 거의 활극 수준의 조폭 자본주의나 다름없었고, 지금도 양진호 놈의 폭력만행 횡포에서 보듯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맑스는 자본은 “사회적 관계”라고 했는데, 이 말은 자본가들의 권력과 부와 힘의 원천인 자본의 형성이 자본가 단독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본의 무한대적 권력과 무한한 부와 무한한 힘은 노동자들을 착취해서 나온 것이다. 자본가들이 소유한 기업도, 공장도, 기계도 다 노동자들의 과거의, 집단적 노동의 산물이다.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이 없었다면 자본도 없다. 자본이 적용하는 과학기술 발전의 성과 역시 노동자들의 집단적 노동의 결과물이다.
그런데도 이 사회적 관계는 정상적이고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일방적 종속관계고 그렇기 때문에 비인격적 관계다. 현대판 주인과 종의 관계다. 이 비정상적 관계 뒤에는 언제나 검찰이 있고 법원이 있고 김앤장 같은 법무법인이 있고, 이 관계를 합리화, 정당화 하는 자본의 언론이 있다.
이윤에 대한 무제한적인 갈망과 자본 간 경쟁은 자본주의의 필연적 법칙이다. 삼성 백혈병 집단 학살도 여기서 비롯됐다. 무노조 삼성에 대한 갈망도 무한대적 이윤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축적욕에서 비롯됐다. 자본의 착취의 계기는 합법적이고 대등한 계약으로 성사되지만 자본의 축적욕이 작동되는 과정에서는 불법적이고 야만적인 폭력과 폭언도 스스럼없이 자행된다.
“할 수만 있다면 혹성이라도 합병할 텐데”
제국주의자 세실 로우즈가 한 말을 레오 휴버먼이 “경제사관의 발전구조”(최근에는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는 제목으로 출판)에서 인용했다.
이처럼 혹성을 합병하지 못하는 자본가들은 “할 수만 있다면” 제국주의 침략을 자행하여 식민지 민중 수백만을 학살하고 수십억 인류를 식민지 노예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자본가들은 “할 수만 있다면” 무차별적으로 환경을 파괴하고 전쟁도 불사한다. “할 수만 있다면” 자본가들은 사회적 지탄을 받는 반 사회적 행위이든, 범죄이든 뭐든지 서슴없이 자행한다.
그나마 자본주의에도 자본의 반 사회적 행위, 노동자들에 대한 잔혹한 폭력과 횡포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이 필요하다. 언론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감시와 폭로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건설해서 자본의 무한대적 탐욕과 폭력과 횡포에 일정 정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생길 때에만 이 끝없는 탐욕과 폭력은 일정 정도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제어력은 탐욕과 여기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폭력과 횡포를 부분적으로 제한할 수 있을 뿐 근절하지는 못한다.
“재벌 갑질”이라는 용어는 권력과 결탁한 자본가들의 폭력과 횡포를 잘 보여주지만, 그것을 비정상적 일탈의 결과로만 인식되도록 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필연적 수반물이라는 것을 은폐하기도 한다. 이로써 멈추지 않고 지속되는 “갑질”을 제어하거나 근절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을들의 반란”은 피착취자들, 피수탈자들의 조직적 반란이 되어야 한다. 착취와 억압과 노예화를 철폐하는 투쟁이 되어야 한다.

사진: 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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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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