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투쟁 없이 근본해방도 없다”는 주장의 역사적, 정치적 의미

“민주주의 투쟁 없이 근본해방도 없다”고 하면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것이 분명하다.

“민주주의 투쟁만으로 해방이 가능한가?”

“민주주의 투쟁만 하고 해방을 포기한 것이 아니냐?”

“민주주의 투쟁을 거쳐서만 해방으로 가자는 단계론 아니냐?”

이러한 질문은 가상의 질문이 아니라 특히 ‘급진적’인 정치적 경향에서 실제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다. ‘민주주의’ 문제에 대한 온전하고 제대로 된 실천을 위해서는 이러한 사고에 대해 비판하고 올바른 관점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민주주의 투쟁 없이 근본해방도 없다”는 주장에는 보다시피 “근본해방”이 전제되어 있다. 따라서 이 주장에는 이러한 근본해방의 전략적 전망 속에서 민주주의 투쟁을 어떻게 사고하고 배치하느냐의 문제가 함축돼 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은 민주주의 투쟁과 근본적 해방을 대립시키는 것이 아니라 통일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여기서 단계론의 문제를 마치 해방의 전망을 뒤로 미루는 입장과 실천으로 왜곡하는 경우가 많은데 맑스주의에서 “단계론”은 원래 역사발전의 단계를 인위적으로, 주관적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주장이다. 역사발전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역사발전의 법칙에 의거할 때에만 해방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도 있다.

“민주주의 투쟁을 넘어 반자본으로 가야 한다”

“정권퇴진 투쟁 해봐야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그만이다. 반자본 투쟁이 중요하다”

위 주장은 다 동일한 문제의식의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주장은 실제 박근혜 퇴진 투쟁이 실제적으로 나타나기 전에 이른바 ‘좌파’ 정치적 경향 속에서 나타났던 주장들이다.

이 주장 역시 민주주의 투쟁과 반자본 투쟁을 결합시켜 사고하지 않고 분리해서 사고하는 것이다. 변증법적 사고가 아니라 형이상학적 사고다.

물론 “정권퇴진 투쟁 해봐야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그만이다”는 주장은 일면의 진실을 담고 있다. 왜냐하면 박근혜 퇴진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이 반노동자성과 반민중성 속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는(자유한국당이 가장 반동적이고 가장 반노동자적이고 가장 반민중적인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지만) 정권이라는 점을 점점 더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이 가능하다.

“정권을 퇴진시키기 않고 반자본은 가능한가?”

“정권 퇴진 투쟁과 반자본 투쟁은 대립되는가?”

자본의 이해는 반드시 자본의 이해를 폭력적으로(또는 동의와 설득의 모양새를 취하여 폭력적으로) 대변하는 집행위원회인 정권을 통해 관철된다. 따라서 정권 퇴진 투쟁과 반자본 투쟁은 대립되지 않는다. 물론 특정 정권을 자본의 이해와 분리시켜 사고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심각한 정치적 비판이 필요하다. 정권에 대한 환상이 있기 때문이다.

해방을 가로막는 “반역사”의 역사

앞에서 “민주주의 투쟁 없이 근본해방도 없다”는 주장에는 보다시피 “근본해방”이 전제되어 있다고 했는데 이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런데 왜 곧바로 “근본해방”만을 주장하지 않고 “민주주의 투쟁 없이”는 근본해방이 없다고 하는가? 이는 해방을 위한 조건, 경로를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 맞춰 구체적으로 사고하려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투쟁 없이 근본해방도 없다”는 주장에 대한 비판적 인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할 수 있다.

“해방을 위한 조건, 여건, 수단이 조성되지 않고 해방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과연 해방의 조건, 해방의 역사적 조건, 수단은 무엇인가? 특히 분단(이는 구체적으로 남은 자본주의, 북은 사회주의로 나눠진)되고, 제국주의 군대가 진주해 있는 한국에서 해방의 역사적 조건은 무엇이고 그 수단은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지금 현 시점을 역사적 축적물로 보고 역사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이다. 역사적 기원, 뿌리는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고 뒤에는 반드시 과학적 사고가 뒤따라야 한다.

국가보안법은 2018년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면서 우리의 자유로운 사고, 행동, 정치활동 자유 전반을 위축시키며 해방의 전망을 가로막는다. 여전히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합법적,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공산당”이 한국에서는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

박근혜 정권 퇴진 이후에도, 박근혜 정권의 재판거래로 재판을 사전 조작한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는데도 여전히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한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6년째 감옥에 갇혀 있다. 그 당시 진보정당을 강제해산시켰던 파쇼 탄압의 무리들 누구도 그 문제로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 진보개혁적으로 자처하는 대다수의 언론, 지식인들, 정치세력들 대다수가 당시 박근혜 정권의 종북몰이에 협조 내지 가담했다. 국가보안법이 강요한 정치적 노예적 인식 하에서 사고하고 행동했다.

이를 역사적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자.

2018년은 국가보안법 제정 70년이다. 국가보안법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12월 1일 제정됐다. 1948년은 역사적으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가? 1948년은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계급 간 투쟁이 격렬하게 벌어진 해이다.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에 우리 역사 앞에서는 누가 해방된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격변적 투쟁들이 벌어졌다.

여전히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니까 당시 이북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는 않을 것이고, 이남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에 몇 달 만에 미군정이 진주하며 군정통치 체제로 민중의 해방 열망을 짓밟았다.

1945년 9월 7일 태평양방면 미국 육군부대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조선인민에게 고함” 포고령은 “금일 북위 38도 이남의 조선영토를 점령한다.”는 점령조항을 발표했다. 심지어는 조선어를 못 쓰게 했던 일제와 마찬가지로 영어를 공식언어로 선포하기도 했다.

이때부터 자주적인 민중의 권력이자 전국적으로 존재하던 인민위원회를 탄압했다. 쌀공출과 노동의 권리를 박탈하고 저항하는 민중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했다. 1946년 10월 1일 대구에서 일어난 대구항쟁을 비롯해서 전국적인 민중의 저항에 대해 미군정은 총칼로 학살했다.

1948년에는 이승만 도당을 내세워 이남만의 단독정부 수립 의도를 노골화 했다. 사실상 제주 전 민중이 여기에 저항하여 총파업, 총궐기를 하였는데 이것이 제주 4.3항쟁이다. 그런데 1980년 5월 광주에서는 전두환의 군인들이 무차별적으로 광주 동포들을 학살했는데, 10월 19일 당시 전남 여수시에 주둔하고 있는 14연대의 군인들은 제주 동포를 학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총부리를 학살자들에게 돌리면서 군사반란이 일어났다. 군인들의 이 영웅적인 항거를 중심으로 여순의 민중들까지 대거 합세하고 이것이 전국적으로 미군정과 이남만의 단독정부 수립 반대투쟁으로 들불처럼 번져 나갔다.

미군정과 이승만 도당은 여순항쟁을 진압해야 제주와 전국적인 항쟁 진압이 가능하다고 여기고 여순에서 수천 명을 학살하고 10월 27일 항쟁을 진압했다. 그리고 한 달여 만인 12월 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했다. 국가보안법은 역사적인 기원을 볼 때 백색테러 민중학살법이자 백색테러 반민중 체제 보장법에 다름 아닌 것이다.

해방을 방해하는 특수한 역사적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은 그 격렬한 계급 간 투쟁이 가장 격렬한 전쟁의 형태로 발생한 것이다. 이 3년여 동안 한국전쟁은 마침내 분단을 낳았고 정전체제를 낳았다. 미군은 모든 외국군의 철수라는 정전선언에도 불구하고 유엔사를 내세워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미제국주의는 70년 이상 동안 한미일 반공주의 전쟁동맹을 내세워 군사적 위협과 경제제재를 펼치며 대북 적대 정책을 펼쳐오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1960년에 이남에 핵무기 611개를 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핵위협에 맞서 북에서는 2017년에 마침내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을 성공시켰다. 이후 2018년에만 역사적인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리고 그 사이에 싱가포르에서 최초로 북미정상회담도 열렸다. 그러나 미국은 싱가포르 선언이 무색하게도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경제제재를 유지하며 여전히 일방적인 북의 비핵화를 겁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양선언 합의대로 북의 김정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앞두고 있다.

이 4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답방은 남북 간 평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이며 남과 북의 대립과 적대를 약화시킬 것이다. 이 답방은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강하게 제기하게 될 것이다.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은 곧바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국가보안법과 미군 철수 문제이다.

미제국주의가 북의 전략핵 완성으로 회담장에 나왔지만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싱가포르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종전선언을 거부하고 북에 대한 압박을 고조시키고 있는 이유도 다 여기에 있다. 남북 간 화해와 협력, 통일 기운의 고조, 북미 간 수교와 불가침합의는 북을 적으로 간주하며 존속하는 분단체제의 기생물들이 존재할 이유를 쓸어버린다. 존재할 이유가 없어지면 당연 그에 따라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만들어 낸다. 자유한국당과 사드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은 이 역사적 과업을 끝까지 달성할 능력도, 철학도 없다. 오히려 이 역사적 과업의 걸림돌이다.

한반도에서 당면한 역사적 과업은 오로지 진보적인 노동자 민중과, 이 노동자 민중의 염원을 일관되게 대변하고 전망을 제시할 수 있는 정치세력만이 달성할 수 있다.

그런데 분단은 자본의 지배체제와 무관한가? 아니다. 오히려 분단을 빌미로 한 반공주의 체제는 자본의 지배체제를 공고하게 구축했다. 노조결성 및 사상과 표현의 자유 등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및 민주적 권리, 경제적 및 사회적 권리를 철저하게 짓밟으며 자본은 성장했다. 자본이 노예제와 농민에 대한 수탈과 피눈물 위에서 역사적으로 성장했던 것처럼, 한국에서 자본의 성장과 지배체제 역시 농민에 대한 수탈과 노동자의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산재와 직업병 등 온통 무권리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따라서 노동자 민중이 근본적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이 역사적 장애물들을 걷어 치워야 한다. 분단을 근거로 한 결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 억압이 사라져야 한다. 민중의 역사적, 과학적 인식, 전망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이 철폐되어야 한다. 법적 철폐뿐만 아니라 그 법적 장애 하에서 나타났던 몰역사적 사상도 사라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국주의 군대가 사라져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근본적 해방을 위해서는 이를 위한 무기가 필요하다. 이는 당건설이다. 의회주의 정당과 반공주의 정당을 가지고서는 해방이 불가능하다. 한국사회 계급모순의 특수한 표현형태인 분단모순을 제거해야만 해방의 전망도 가능하다. 분단모순을 해결한다는 것은 계급투쟁이 아닌 것이 아니라 최고조의 계급형태이다.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에 누가 해방된 나라의 주인이 될 것인가를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했던 민중의 해방열망을 해결하는 것이다. 학살당한 민중의 한을 해방적으로 신원하는 것이다. 결국 이에 따라 해방을 위한 전제조건들을 창출하는 “민주주의 투쟁 없이는 근본해방도 없다”는 명제가 성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434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