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과 선원들의 공모 등 세월호 감춰진 진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세월호 학살사건이 있은 지 1년 6개월이 지났다. 세월호 1주기부터 500일이 넘어가기까지 전반적으로 투쟁은 소강상태에 이르렀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6월 27일 출범한 4.16 약속국민연대(이하 ‘4.16연대)의 활동이다. 4.16연대는 유가족과 시민 사회단체들이 합쳐져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까지 회원 수가 약 2500명으로 많지는 않다.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해 600만 명의 국민들이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되는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명운동에 동참했던 것에 비한다면, 4.16연대가 현재 세월호 투쟁을 대표하는 조직임을 감안한다면 매우 적은 숫자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4.16연대가 600만 명의 국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던 그 분노와 아픔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세월호 투쟁의 정곡을 찌르지 않고 옆으로 비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를 ‘인권이 침몰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진상규명, 안전사회건설,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인양 등의 활동과 함께 4.16인권선언 제정 특별위원회를 통해 인권선언을 만들고,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한다.
세월호를 ‘인권’의 문제로 풀어가려는 4.16연대의 활동에 대해 내부에서도 투쟁을 안 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과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세월호 참사 인권으로 말하다> 소책자에 실린 질의응답을 한번 살펴보자.
- 아직 세월호 투쟁에 있어서 할 일이 많은데, 인권선언을 하자는 게 좀 생뚱맞아 보이는데요.
그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요즘입니다. 사실 세월호 참사를 풀어내는 실마리, ‘안전사회 건설’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진상규명’에 있어서도, 아직 그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참사 당일과 헛발질에 가까운 구조실패 현장에서 우리는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왜’라는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고, ‘왜 세월호가 침몰했는가’, ‘왜 즉각 구조에 나서지 않았는가’ 등 무수한 의혹은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니까요.
그런 차원에서 진상규명 투쟁을 비롯한 현재의 세월호 투쟁과 인권선언 운동은 같은 방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가령, 세월호 인양, 미수습자에 대한 권리 등은 세월호 유족이나 피해자만의 권리가 아닙니다. 전국민적 사건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에서 발생하는 세월호와 같은 재난, 참사, 사고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호 참사 이전에는 이런 문제가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로, 사회적 인식으로 자리잡지 못했던 한계가 있었던 게 사실이지요. 이런 권리의식을 확산하는 것, 사회가 마땅하고 당연하게 이런 문제에 접근하는 시각과 태도를 갖도록 하는 문제는 현재의 세월호 투쟁의 과제이며, 인권선언운동의 과제입니다. (강조는 인용자)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를 풀어내는 실마리’를 ‘진상규명’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을 ‘안전사회 건설’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하며, 세월호 사건을 여전히 ‘안전사고’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참사 당일 ‘헛발질에 가까운 구조실패’가 일어났다며, 세월호와 같은 ‘재난, 참사, 사고’를 겪는 모든 이들에게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이것이 사회적 인식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것, 이러한 권리의식을 확산하는 것이 인권선언운동의 과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연 304명의 생명들이, 우리의 꽃 같은 아이들이 인권을 몰라서 죽음을 당했는가? 세월호가 단순한 재난사고인가? 생존학생들은 법정에서 ‘퇴선명령’만 했어도 모두 살릴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 왜 끝까지 ‘퇴선명령’을 하지 않았는가? 왜 ‘가만히 있으라’고 안내방송을 했는가? 왜 해경은 구조를 하러 갔던 민간어선들과 민간잠수사들의 구조를 막았는가? 왜 4.16 연대는 구체적으로 벌어진 현실로부터 세월호 문제를 추적하지 않고, 추상적인 ‘인권선언운동’을 과제로 대체하였는가?
세월호 사건에 온 국민이 가슴아파하고, 분노하는 것은 그것이 국가권력에 의한 폭력, 학살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세월호 학살에 대한 대국민적인 분노가 대정부 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진실을 은폐하는 것은 물론이고, 조·중·동 언론을 동원하여 광범위한 대중조작을 펼치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투쟁이 상승할 때마다 유가족들에게 갖은 폭력을 행사하고, ‘특혜논란’에 휩싸이게 하여 유가족을 분노하는 국민들과 분리시키는 것이었고, 둘째로 세월호 참사를 ‘안전사고’로 규정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안전사고’로 규정하는 것, 그 효과는 4월 16일 참사 당일 현장에서 일어난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해 ‘사고’로 위장하여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은폐하고, 4월 16일 당일 구체적으로 벌어진 학살을 ‘안전사회’의 문제로, 사회 전반의 문제로 환원시켜버림으로써 구체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학살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4.16 연대의 투쟁방향은 진실을 은폐하려는 박근혜 정부에게 어떠한 타격을 줄 수 있겠는가? 의도하지 않았든 그것은 투쟁에 혼란을 주고 투쟁을 회피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진상규명 투쟁
- 해경과 선원이 공모해 검은 물체를 운반하는 영상이 공개되다.
그러나 진상규명 투쟁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현장에 출동한 해경이 이준석 선장 등 선원들을 해경 123정으로 옮겨 태우는 과정에서 선원들과 뭔가를 논의하고 검은 물체를 운반하는 모습이 영상을 통해 확인돼 논란이 되고 있다.
한겨레TV의 시사탐사쇼 ‘김어준의 파파이스’ 66회에 공개된 영상을 보면, 이 선장 등 다른 선원들이 해경 123정으로 옮겨 탄 뒤에도, 사고 당시 조타실에서 근무했던 박한결 삼등항해사, 조준기 조타수 그리고 해경 박모 경장이 조타실 주변 갑판에 남아 검은색으로 보이는 물체 두 개를 다루는 장면이 등장한다.
모든 선원들이 빠져나간 이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조 조타수는, 박 경장이 벗어준 해경 구명조끼를 입고 박 경장과 함께 바닷물에 뛰어들어 일반 승객들에 섞여 구조된다. 당시 해경 123정이 주변에 있었고, 해경의 고무단정이 주변을 오가는 상황이었는데도 이를 이용하지 않 았던 것이다.
이 같은 영상은 세월호 진실을 추적하면서 시민들 성금으로 다큐멘터리 <인텐션>을 제작하고 있는 김지영 감독이 그동안 공개됐던 현장의 여러 영상들의 시간대를 맞추고 정밀 분석을 하는 과정에 확인된 것이다. 김 감독은 “영상만으로는 이 검은색 물체 두 개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세월호의 운항기록과 관련한 자료나 저장장치일 가능성이 있다”며 “승객을 구조하는 데에 전념해야 할 급박한 순간에 해경과 선원들이 세월호 조타실에서 반드시 가져와야 할 물건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영상이 공개됨으로서 해경이 선원들을 먼저 구조한 이유에 대해 ‘일반승객인 줄 알았다’는 변명은 거짓말이었음이 증명되었다. 또한 해경이 선원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먼저 구조를 했을 뿐만 아니라 세월호 침몰의 원인을 알 수 있는 자료를 감추기 위해 선원과 공모하였음이 폭로되었다.
과연 이 영상을 보고도 세월호 사건이 무능력한 정부의 구조실패라고 볼 수 있는가? 304명의 죽음이 안전사고로 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 ‘결정적인 순간만 빠진 세월호 영상기록장치
또한 한겨레TV의 시사탐사쇼 ‘김어준의 파파이스’ 68회에서는 영상기록장치(DVR Digital Video Recorder) 인양 과정의 석연치 않은 점을 집중 조명했다. 김지영 감독은 ‘파파이스’ 68회에 출연해, 공식적으로는 사고 두 달이 넘어 6월22일에 인양한 것으로 되어 있는 DVR의 조작 가능성 의혹을 제기했다.
세월호는 대형 여객선이어서 주로 배 내부를, 일부는 선체와 바다의 경계를 향한 카메라들이 있고, 모두 64개의 영상이 기록된다. 이 영상들이 온전하다면, 세월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문제가 있어서 확인하려고 하면 그 구역에 CCTV가 없다는 것이다.
김지영 감독은 속력을 확인할 수 있는 데이터가 없으며, 23번 채널의 경우 사고 전날인 4월 15일 밤 11시부터 데이터가 아예 없고, 5번 채널의 경우 4월 16일 오전 2시 27분부터 오전 7시까지 남아있는 부분도 꺼지거나 분산되어 있어 조작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해군(SSU)가 6월 22일 3층 로비안내실에서 발견한 DVR과 관련해 조작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 이유는 첫째로 사고 두 달 만에 발견된 DVR의 상태가 크게 부식되지 않은 채 깨끗하다는 것, 둘째로 검찰은 배가 왼쪽으로 기울어질 때 CCTV 전원코드가 뽑혔다고 주장하고, 승무원 강해성도 법정진술에서 이와 일치하는 증언을 했지만, CCTV의 위치를 확인해 본 결과 배가 기울어질 때 바다를 향하는 쪽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또한 CCTV를 고정시키는 나사가 있으며, DVR 뒷면에 나사로 조여진 부착물들이 많은데, 16개 카메라 영상이 입력포트 4개에 연결되며, 이 포트들에서 입출력 단자를 빼내려면 공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들어 CCTV가 뽑혀서 바닥에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이 날 파파이스에 함께 출연한 <4.16 기록단>의 임유철 감독은 해군이 CCTV를 바다에서 가지고 나온 날, 바지선 위에 있었다며 그 날의 상황을 증언했다.
임유철 감독은 ▲ 안개가 자욱했는데도 희생자 가족들이 지켜보지 않은 상태에서 인양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점 ▲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해경은 DVR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지 않았다는 점 ▲ 두 달 이상 바닷물에 잠겨 있었는데도 DVR이 매우 깨끗했다는 점 ▲ DVR을 인양과정에서 어떠한 교신도 없었다는 점 ▲ 해군 SSU 대원이 나사를 일일이 풀었다고 증언했다가 DVR이 바닥에 떨어져있었다고 말을 바꾼 점 ▲해군의 헬멧에 부착된 카메라에 DVR 인양 장면이 담기지 않은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CCTV 조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재조사를 하기로 했다.
- 해군함정, 세월호 사고 인지하기 전에 현장에 있었다?
세월호 사고 직후, 해군이 최초로 사고 접수를 전달받았다고 발표한 시각 보다 5분 일찍 현장에 해군함정이 도착해있었다는, 해군 책임자의 법정 증언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해군은 해당 책임자가 ‘그렇게 증언했을 리가 없다’며, 이 같은 증언내용 자체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해군이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국회 국방위원회(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에 제출한, ‘세월호 조난 사고와 관련하여 우리 군의 시간대별 조치내용’을 보면, 해군은 세월호 사고를 최초로 인지한 것이 당일 오전 9시3분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해군작전사령부 훈련 책임자가 최근 법정에서는 8시58분경에 이미 현장에 있었다는 시인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30일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우한석 씨의 세월호 관련 명예훼손 재판 중, 조동진 해군대령의 증인신문조서(제3회 공판조서의 일부)를 보면 이같이 나타나있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작사 연습훈련처장을 맡았던 조동진 잠수함사령부 잠수함전대장(해군대령)은, 지난 3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기리 판사 주재로 열린 우한석 씨의 세월호 관련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해군 함정이 세월호 침몰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58분경, 세월호 침몰현장에 출동해서 이미 도착해 있었던 사실을, 당시 해군 작전사령부 훈련참모처장으로서 알고 있느냐’는 피고인 우한석씨의 증인신문에, “예,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또한 당시 해경 ‘CN-235’ 초계기가 촬영한 1시간 10분여짜리 영상 속에 있는 해군 함정을 들어 “해경의 CN-235가 세월호 침몰 현장부근에서 촬영한 이 사진 속의 함정이 해군 ‘함문식함’이 맞느냐”는 피고인측 신문에 조 대령은 “예, 맞다”고 답했다.
우한석 씨는 지난 5월 이 재판(1심)에서 1년6개월 형을 선고받고, 현재 수감 중인 상태로 항소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애초 해군은 9시 3분에 최초 상황접수를 했다고 했으나, 8시58분 이전에 해군함정이 현장에 있었다는 것은, 세월호의 급변침 시점(8시48분~49분) 전후로 근방에 있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제까지 정부는 세월호가 침몰한 원인을 ‘급변침’에 의한 것으로 발표해왔으나, 그러한 정부의 수사발표를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밝혀졌다.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으로 박근혜를 퇴진시키자!
이처럼 세월호 투쟁은 여전히 유효하다. 세월호의 진실은 정부가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드러날 수밖에 없다.
민주노총은 지속적으로 세월호를 자신의 투쟁과제로 삼아 왔다. 비록 소극적이기는 하지만, 노동자 계급이 이 투쟁에 계속 함께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민주노총 역시도 <정부의 안전대책을 위한 토론회>, <안전사회 만들기 국제 심포지엄>,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입법촉구> 등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중심에 두고 사업해 왔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정부와 극우 언론에서 불러주는 대로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엉뚱한 곳에 힘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세월호 투쟁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성격에 맞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세월호 투쟁의 방향은 박근혜 정부에 의한 학살, 그 원인을 밝혀내는 것이어야 한다. 진실을 감추기 위해 정부가 은폐하고 조작한 모든 것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하고 폭로하여야 한다. 그 분노를 모아 ‘박근혜 퇴진’을 목표로 투쟁해야 한다. 세월호 학살의 진실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박근혜 정부는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는 세월호 학살에 이어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노동자들에게 또 다른 굴종과 죽음을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 민중의 단결로 ‘박근혜 퇴진!’ 깃발을 들고 투쟁하자!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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