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새로운 시작인데 저들은 끝을 얘기하고 있다!(12/17 개정판)
탄핵(소추)된 권력의 인물, 기구, 제도, 정책, 관념은 버젓이 살아남아 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이 결정되고 난 뒤 한 주간지는 커버스토리에서 이렇게 그 감격을 묘사하고 있다.
“익숙한 이분법이 무너졌다. ‘광장의 시민과 선출된 국회’ ‘직접민주주의 대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분법으로는 12월 9일의 결과물을 설명할 수 없었다. 대통령의 1차 대국민 사과(10월25일)부터 따져 격동의 7주 동안 실제로 벌어진 일은 이 이분법을 훌쩍 뛰어넘는다. 광장의 시민은 입법부를 집요하게 동원해 행정부 수반에게 책임을 묻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대의제에 대한 직접민주주의의 승리일까? 그보다는 대의제를 놀랍도록 훌륭히 다루어낸 주권자의 승리였다. 2016년 겨울, 한국 민주주의는 1987년 여름의 광장으로부터 또 한 단계 도약했다.”(절묘하게 위대하게 주권자가 승리했다, 시사IN 2016.12.17)
박근혜 탄핵이라는 그날의 감격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그랬을까? 12월 9일 국회 탄핵은 노동자 민중의 승리였다. 야당이 머뭇거리고 동요하고 뒷걸음칠 때마다 박근혜 즉각 퇴진을 외치며 투쟁한 노동자 민중의 투쟁이 있었기에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탄핵이 결정됐다. 그러나 그날의 승리는 완전한 승리가 아니라, 첫 번째 승리의 첫 교두보였다. 아니 방심하다가는 첫 승리의 교두보도 온전하게 지켜내지 못하고 박근혜 체제의 총반격에 의해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위태위태한 교두보였다. 그 징조가 확연하게 보이고 있다.
박근혜는 직권 정지됐지만, 여전히 박근혜 하에서의 인물, 기구, 제도, 정책, 관념은 버젓이 살아남아 있다. 박근혜 하의 인물, 기구, 제도, 정책, 관념 등을 바로 우리는 적폐라고 부르며 그 적폐를 없애기 위해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박근혜는 탄핵 직전 마지막 인사로 세월호 특조위 해체를 주장하던 조대환을 민정수석으로 임명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한사코 막아보겠다고 끝까지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하의 파쇼 앞잡이였던 황교안은 권한이 중지된 박근혜를 대신하여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다. 황교안은 탄핵 직후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불법적인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 주시기 바란다.”며 박근혜 말투를 흉내 내고 있다. 권력의 앞잡이가 간이 배밖에 나와 있지 않은 한 감히 전 국민적인 “집회·시위”에 대해 저따위 망발을 지껄일 수 있단 말인가?
“귀태” 박근혜가 부정선거로 권력을 찬탈하게 만들고 간첩조작, 내란조작, 통합진보당 해체, 세월호 실소유주 의혹과 세월호 가족 감시와 세월호 진상규명 은폐, 노조 감시와 파괴, 언론인, 방송예술인, 노동자 사찰과 감시와 통제, 심지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과 부장판사들까지도 권력의 개로 길들이기 위한 지속적인 감시 사찰… 이 모든 범죄의 온상인 국정원은 여전히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으로 남아 있다.
서울고법(부장판사 이상주)은 12월 13일 “불법 폭력 집회는 어떠한 이유로도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며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에게 징역 3년에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불법 폭력”을 용납할 수 없다는 법원은 경찰의 백남기 농민 살해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아무도 처벌하지 않았다. 법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무기임을 법원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징역 3년의 중형에 추가로 덤으로 얹어주는 벌금 50만원은 또 뭔가? 법이 이토록 세심하다는 걸 보여주는 담보물인가? 법원은 엿가락처럼 제멋대로 휘는 잣대로 불법적 뇌물 공여자들인 자본가들에게는 단 한 명도 법적 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
박근혜 하에서 추진됐던 노동법 개악도 폐기되지 않았다. 청문회에서 보듯, 자본가들과 권력자들의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하는 뻔뻔한 태도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미제국주의는 탄핵 전후에 “한미동맹 불변과 차질 없는 사드 한반도 배치”를 공언했다. 탄핵 즉시 미국은 공격용 핵잠수함을 진해해군기지에 입항시켰는데, 언론에서는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과 맞물려 입항한 만큼 정국 혼란을 틈타 도발할 수 있는 북한에 경고 메시지를 주기 위한 조치”(YTN, 핵잠수함 입항…“북 도발 억제용”)라고 해석하고 있다.
미국 공격형 핵잠수함의 진해 배치는 “북 도발 억제용”이 아니라 박근혜 퇴진 투쟁을 외치며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 민중에 대한 협박으로 보인다.
박근혜 퇴진까지는 묵인하는데, 그것이 미제국주의의 지배를 터럭만큼도 위협하지 마라! 사드 배치 방해마라! 전쟁의 원흉 미군철수로 나아가지 마라! 한미일 제국주의 동맹을 건드리지 마라! 아니면 노동자 민중을 짓밟아버리겠다!! 이것이 오만방자한 미제국주의의 의도 아닌가?
이처럼 대의제, 국회기구를 통한 탄핵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을뿐더러 여전히 구체제의 추악한 질서를 그대로 보존하게끔 하고 있다. 광장과 거리, 현장의 힘이 그대로 유지, 발전되고 그 강력한 힘으로 구체제를 철저하게 타도할 때만이 보다 공고하고 실질적인 승리가 쟁취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탄핵은 승리의 첫 교두보이면서도 금방 무너져 내릴 수 있는 모래 위에 쌓은 교두보가 될 수도 있다.
너희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국민”을 팔지 마라!
조선일보는 전면에 나서서 이제 탄핵으로 이 투쟁을 종결하자고 다급하게 선동하고 있다.
“집회 때마다 과격 발언이 나오거나 폭력 조짐이 보이면 평범한 시민들이 제지했다. 아무런 불상사 없이 결국 헌법 절차대로 매듭지어질 수 있게 된 것은 그 덕분이다. 나라와 국민이 그만큼 성숙했다. 이것을 ‘2016년 국민의 명예혁명’이라고 부른다 해도 결코 과찬이 아니다…. 리더십 없이 어둡고 거친 바다를 항해하게 됐다면 의지할 것은 나침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의 나침반은 법치(法治)뿐이다. 정부, 여야, 사법부 모두 법만 바라보면서 법이 가리키는 곳으로 걸어가면 길이 나온다. ‘명예혁명’은 국민이 눈을 부릅뜬 채 법치를 지켜 누구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을 때 완성될 수 있다.”([사설] 朴 대통령 탄핵소추, 이제 대한민국의 나침반은 法治다, 조선일보, 2016.12.10.)
조선일보는 “명예혁명” 운운하며 집회를 통제하고 지배자들의 틀 속으로 우겨넣으려고 했다. 조선일보의 프레임은 항쟁에 나선 노동자 민중을 노예화된 신민으로 조련하려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박근혜 퇴진 투쟁을 관제집회로 박제화하려는 악의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민주주의 국가의 나침반은 법치”라고 주장한다. “눈을 부릅뜬 채 법치를 지켜 누구의 일탈도 용납하지 않을 때” 명예혁명은 완성된다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국정원과 검경과 국가보훈처 등이 총동원된 부정선거로 “법치”가 무력화 되고, 노동자 민중의 권리가 찬탈당할 때 무엇을 했는가? 부정선거 범죄자 박근혜의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을 때, 조선일보는 그 범죄자 박근혜를 결사적으로 비호하지 않았던가? 부정선거의 몸통이자 국민감시, 간첩조작 기관인 국정원이 불법적인 쁘락치 공작을 통해 내란음모를 조작해 냈을 때, 조선일보는 “민주주의 국가의 나침반인 법치”를 어느 꽁무니에 감추고 내란자를 엄벌에 처하라고 핏대를 올리지 않았던가? 국정원이 세월호 가족을 감시하고 카톡 사찰을 불법적으로 자행할 때 조선일보는 그 “민주주의”와 “법치”를 난폭하게 짓밟지 않았나?
농단자 최순실과 김기춘의 합작으로 합법적인 정당인 통합진보당이 해체당할 때, 조선일보는 “민주주의 국가의 나침반인 법치”를 어디에 구겨두고 있었던가? 백남기 농민이 청와대 명령으로 경찰에 의해 거리에서 타살당할 때 조선일보는 “폭력 시위” 운운하며 권력의 불법 살인행위를 비호하지 않았던가? 권력의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범죄 행위에 가담해 왔던 조선일보가 그 더러운 입으로 감히 “민주주의”와 “법치”를 운운하는가?
“명예혁명”은 역사적으로 민중을 학살하고 민중의 투쟁과 권력을 짓밟았던 무리들이 민중을 모욕하기 위해 고안해낸 역사왜곡과 반민중적 관념에 불과하다.
동아일보 역시 조선일보 못지않게 노동자 민중을 기만하며 조롱하고 있다.
“평화적이고도 절제된 촛불혁명이 탄핵안 국회 의결을 이끌어냈지만 국회가 언제까지나 촛불에 의존해서는 위험하다. 광장의 민의가 제기하는 문제를 헌정질서 안에서 풀어내는 것이 정당과 국회의 할 일이다. 특히 차기 대권이 목전에 다가왔다고 믿는 야당의 대선 주자들이 지금까지 집행돼 온 정당한 정부의 정책을 뒤집거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번복 등 안보와 체제를 뒤흔드는 주장을 밀어붙인다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사설]박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제 국회가 답을 내놓을 때다(동아일보, 2016.12.10)
“헌정 질서 안에서 풀어내는 것”, 이 말은 박근혜의 질서 있는 퇴각을 돕자는 말에 다름 아니다. 제도권 야당에게 여기에 타협하라는 종용을 하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노골적으로 야당의 대선 주자들이 지금까지 집행돼 온 정당한 정부의 반노동자적인 정책이나 사드 배치를 번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사드 철회로 불안해지는 것은 어느 국민인가? 전쟁 위협의 중단과 평화 정착에 불안해하는 자들은 미제와 빌붙은 전쟁책동자들 뿐이다. 동아일보는 자신들이 만들어낸 가상의 “국민”을 팔지 마라! 여태껏 너희들에게 비국민으로 배척당하고 억압당하고 착취당했던 노동자 민중을 조롱하지 마라!
광장과 거리, 현장 권력을 강화하고 중단 없이 투쟁하자
박근혜는 도주 우려가 있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 박근혜는 당장 구속되어야 한다. 박근혜는 구속 상태에서 세월호 7시간을 포함해 세월호 진상, 국정 농단의 진상, 거슬러 올라가 귀태 박근혜를 낳았던 부정선거의 진상에 대해 남김없이 다 불어야 한다. 박근혜 권력 하에서 반노동자적 반민중적 행위를 자행했던 권력범죄자들은 다 처벌받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법치주의”의 실현 아니겠는가?
헌법재판소는 법치 실현의 기관이 아니라, 파쇼권력의 개가 되어 통합진보당 해체와 전교조 법외노조 판결에 동원됐던 반헌법 반민중 기구다. 이들 파쇼권력의 개들이 헌법재판관이라는 엄중한 이름으로 박근혜 퇴진 여부를 판가름하며 거드름을 떠는 것을 한시도 지켜볼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당장 해체되어야 하는 구체제의 핵심 기구다.
부패와 비리 주범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들인 재벌들은 모두 처벌받고 구속되어야 한다. 부패와 비리의 주범들은 비리 재산을 즉각 몰수당해야 마땅하다. 불법‧탈법적 방식을 동원한 경영 세습권은 즉각 박탈당해야 한다.
박근혜 국회 탄핵은 박근혜가 당장 퇴진해야 하는 범죄자임을 가장 보수적인 국회도 인정한 것이다. 박근혜가 탄핵당한 지금 범죄 권력 하에서 벌어졌던 각종 범죄 행위는 원천 무효가 돼야 한다. 노동법 개악 시도는 박근혜-최순실 농단과 손잡은 재벌들의 “민원”을 권력이 들어준 결과다. 따라서 노동법 개악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범죄자 재벌들의 유성, 갑을오토텍의 노조 탄압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현대차,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재벌의 탄압을 즉각 중단하고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가 전원 정규직으로 되어야 한다. 헌법에 명문화된 결사의 자유에 맞게 전교조,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은 즉각 전면 보장되어야 한다.
“헌법질서”는 성문화된 법적 조항의 문제이기 이전에 힘의 문제다. 제헌헌법은 해방 이후 노동자 민중의 격렬한 투쟁을 반영하여 만들어졌다. 노동자 민중의 권력 장악을 회피하기 위한 양보로 만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그 제헌헌법 뒤에는 학살당한 수십만 노동자 민중의 피의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러한 투쟁의 결과 만들어진 제헌헌법은 노동기본권의 주요 쟁점인 “근로자의 이익균점권 및 기업운영참가권”이라는 노동기본권의 주요 쟁점 사항들을 수용했다.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은 5.15 쿠데타 이후 제3공화국 헌법에서 사라졌다.
특정 시기 법원의 판결은 힘의 문제로 결정된다. 청와대 100미터 앞 행진을 보라! 같은 법인데 권력이 약화되고 노동자 민중의 힘이 강해지자 100미터 앞 행진을 보장하지 않는가? 광화문은 물론이고 시청광장에서의 집회조차도 경찰차로 에워싸던 바로 그 법이 아니던가!
광장은 지금까지 준이중권력의 역할을 해 왔다. 광장의 요구에 따라, 과도중립내각, 2선 퇴진, 단계퇴진, 명예로운 퇴진 보장 운운하던 야당이 탄핵에 동참하게 되었다. 앞으로 황교안과 내각 총사퇴 여부와 조기대선을 준비하는 과도중립 내각의 문제가 쟁점이 될 것이다. 1단계가 점차로 끝나가고 조기대선이 급격하게 부각하게 되면 권력재편 쟁점과 함께 광장과 거리의 권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주도자는 민중인 쌍퀼로드였다. 반동복구 이후 1848년 프랑스 혁명의 주도자는 노동자 민중이었다. 그러나 이 혁명의 성과로 기존 권력이 물러가면 권력의 참여 문제에서 노동자 민중은 항상 배제 당했다. 노동자 민중의 요구는 혁명이 끝나면 철저하게 무시당했다. 새로운 지배권력은 항상 민중의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무장을 해제하면 노동자 민중에게는 새 지배권력의 총알밥이 날아들었다.
조기 대선 국면이 앞으로 펼쳐진다고 해서 광장의 준이중권력을 무너뜨리면 안 된다. 노동자 민중이 물리력으로 무장한 것은 아니지만 광장은 제도권 야당에, 권력과 언론에 압력을 가하는 대중의 힘이었다. 이 광장의 압력이 무너지고 헌법질서 속으로 숨으면 민중의 힘은 그대로 끝장나고 만다. 민중은 힘없는 일개 유권자로 전락하게 된다. 광장 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금권정치가 작동하게 된다. 언론은 다시 자본과 권력자들의 이해에 맞춰 나팔을 불어댈 것이다.
기존 헌법질서가 아니라 새로운 제헌이 되어야 한다. 민중의 의지, 혁명의 힘으로 제헌을 해야 한다. 기존 썩어빠진 국회를 대신하여 노동자 민중의 제헌의회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려고 투쟁했나?는 자괴감은 패배한 자들의 넋두리에 불과할 것이다.
1단계 박근혜 즉각 퇴진, 새누리당 해체, 권력자들, 언론 부역자들, 재벌 공범들의 처벌이라는 1단계 투쟁의 원칙을 확고하게 밀고 나가자. 준이중권력인 광장을 실질적인 이중권력으로 키워 나가자! 노동자가 노동자 요구를 내걸고 역사와 광장 투쟁의 전면에 나서자. 광장과 거리에서 공장과 직장으로 민주주의를 확장시키고 자본의 질서와 통제를 약화시켜야 한다. 광장과 거리에서 공장과 직장으로 다시 더 크고 힘차게 광장과 거리로 쏟아져 나와야 한다.
철도 노동자들은 지금은 파업을 접었지만 그 동안 최장기 파업을 하며 이 투쟁에 앞장섰다.
KBS 언론노동자들은 파업을 단행했다. 재파업을 예고하며 잠정중단됐지만 이 투쟁은 자주적 언론을 향한 뜨거운 몸짓이다.
박근혜 탄핵으로 이제 그 본격적인 투쟁의 서막이 올랐다. 우리는 여전히 더 실질적인 민주주의와 완전한 해방을 위한 타는 목마름으로 간절하게 민주주의와 해방을 외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시작인데 저들은 끝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겨우 시작인데 저들은 끝내지 않으면 끝장날 것이라고 협박하고 있다!
저들은 이대로 끝내지 않으면 끝장날 것이라는 협박을 넘어 우리를 실제 끝장낼 것이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
중단 없는 투쟁!
광장과 거리, 현장의 이중권력화!
노동자 민중에게 권력을!!
노/정/협
이 기사를 총 267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