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공안기구는 법치주의의 탈을 쓰고 시민의 삶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헌법 위에 군림하며 오직 공권력의 기획으로 연명하는 악법입니다. 국가기관이 개인의 일상을 장기간 사찰하여 사건을 설계하고, 시민의 신념을 처벌의 대상으로 삼는 이 비정상적인 역사는 이제 끝나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안기구는 법치주의의 탈을 쓰고 시민의 삶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정권의 국면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사건을 부풀리고 관리하며, 공권력이 한 개인을 얼마나 무참히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기획 수사의 도구가 바로 국가보안법입니다.

최근 판결들은 공안당국이 얼마나 허구적인 논리로 사건을 조작해 왔는지 증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충북동지회 사건’을 보십시오. 수사기관은 이들이 북의 지령을 받아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1심은 무려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상급심의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핵심 혐의였던 ‘범죄단체 조직’은 형체도 없이 사라진 무죄로 뒤집혔습니다. 공권력이 만든 공포의 성벽이 얼마나 부실한 조작이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석권호, 김영수 님에 대한 수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수백 명의 인력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의 벽을 타고 넘으며 보여주기식 압수수색을 강행했습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활동과 정세 토론을 ‘북의 지령에 따른 조직 사건’으로 둔갑시켜 노동운동 전체에 간첩 굴레를 씌우려는 이 구태의연한 기획 수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이정훈 님의 사례는 또 어떠합니까? 공안당국은 확인조차 불가능한 유령 같은 인물을 북한 공작원이라 단정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소통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을 바쳐온 이 위원의 연구와 저술 활동을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했습니다. 실체 없는 인물을 내세워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압수수색한 명백한 이념 재판입니다.

하연호 님의 사례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1심 재판부가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에 실질적인 위해를 가할 구체적 위험이 전혀 없다’고 판결하며 해당 부분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가 이를 뒤집고 법정 구속까지 강행한 것은 공안당국의 억지 기소를 사법부가 그대로 추인해 준 꼴입니다. 법의 잣대가 공안당국의 입맛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하는 이 현실이 진정 법치 국가입니까?

또한 박응용, 윤태영, 박승실 님의 사례처럼 국가보안법은 수년에 걸친 장기 사찰과 함정 수사를 통해 개인의 삶을 파괴해 왔습니다. 판결문에조차 ‘국가에 실질적 위해를 가한 점이 없다’고 명시하면서도 실형을 선고하는 이 모순은, 사법 정의가 아니라 공안당국의 의도가 재판에 개입된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더 있습니다. 지금 감옥 밖에서도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고발과 압수수색, 끊임없는 소환 조사와 재판을 받으며 일상을 저당 잡힌 사례가 무려 70건이 넘게 존재합니다.

공안당국은 확정판결도 나기 전부터 ‘간첩’이라는 낙인을 찍어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언제든 다시 구속될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 시민들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만듭니다. 수년 뒤 무죄가 확정된다 한들, 그사이 파탄 난 개인의 일상과 사회적 살인은 누가 책임집니까? 이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민주 시민의 영혼을 파괴하는 명백한 국가폭력입니다.

이재명 정부에 강력히 촉구합니다. 시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하는 구조를 방치한 채 민주주의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정부는 국가기관의 과도한 사찰과 조작 수사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당장 시정하십시오. 그 시작은 부당하게 구속된 모든 양심수를 즉각 석방하는 것입니다.

일제의 치안유지법에 뿌리를 둔 반민족적 유산, 국가보안법을 이제는 끝냅시다. 국가의 감시와 공포 없이 자신의 신념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 사회를 위해 정부가 앞장설 것을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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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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