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구조조정, 오로지 해방의 깃발만 들고 전장에 나가자!

조선업 경쟁력이라는 백기 강요

정세도 급박하거니와, 성미 급한 독자들을 위해서 이 글 결론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얘기를 먼저 꺼내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해볼까 한다.

자본의 위기(공황) 시에 구조조정은 자본을 재편성하고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여 새롭고 배가된 착취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 과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자본은 파산당하고 거대 자본에게 흡수당하게 된다. 반면에 노동자에게 구조조정은 대규모 정리해고를 중심으로 하여 복지의 전면 후퇴, 대폭적인 임금삭감, 노동조건 악화 등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의 본질이 그러할 진데, 권력과 자본의 대대적인 구조조정 공세 앞에 다시 개량주의자들이 ‘조선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자본의 기치를 새긴 깃발을 들고 준동하고 있다.

2000년 초반에도 그랬고, 10년 전에도 그랬듯, 강신준이 바로 지금도 자본의 깃발을 노동자의 깃발로 호도한 채 그 준동의 선두에 서고 있다. 강신준은 금속연맹 시절부터도 숙련 강화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재편으로 산업 경쟁력을 회복하고, 노사상생을 유지하는 것이 노동자의 살 길이라는 자본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해 왔다. 이러한 노동자의 탈을 쓴 자본의 이데올로기는 혁명적 전망을 상실한 노동조합 운동 내에 아주 강력하고 깊게 영향을 미쳐왔다. 특히 자본주의 공황의 시기에 이러한 숙명적, 패배적, 무정부적 이데올로기는 곧바로 노동자들에게 양보교섭을 현실적, 정책적 대안인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여 파멸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강신준(강신준과 노동운동 전반의 협조주의 세력들)은 지금에 와서는 대규모 구조조정이 자행되고 있는 대우조선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구조조정 대응을 하는데 영향을 미쳤는데, 이제는 현대중공업 노조에도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유포되고 있다. 실제 강신준은 5월 20일 울산동구지역노동조합대표자회의 주최로 여는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토론회에 현중노조, 현중하청노조 등과 함께 발제자로 참여하기로 함으로써 입장을 관철해가고 있다. 강신준은 과연 현대중공업 구조조정을 어떻게 볼 것이고, 어떤 대응을 하라고 조언할 것인가? 20일 발제문은 아직 입수하지 못했지만, 그 동안의 강신준의 조선업종 구조조정 관련한 입장을 보면 그것이 얼마나 반노동자적인 것일지 충분하게 예상할 수 있다.

‘예언자’ 강신준은 최근, 이미 10년 전에 조선 산업에 불어닥칠 구조조정을 예상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인 2004년 민주노총 산하 금속연맹(2006년 산별노조 전환)은 국회에서 정책연구사업 발표회를 개최하였다. ‘조선산업의 발전전망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에는 세 가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첫째, 2000년대 이후 조선산업의 수요는 정체되는 데 반해 공급은 계속 확대되어 수급 불일치에 따른 구조적인 위기가 2010년을 전후하여 도래할 것이라는 점, 둘째, 우리의 경쟁국 가운데 유럽, 일본은 이미 이런 위기를 예상하고 범국가 차원의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있다는 점, 셋째, 우리도 이에 대응하여 범국가적인 위기 대응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이었다. 당시 조선산업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산업의 특성상 구조적인 위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보고서는 “아직 날이 맑을 때 우산을 준비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강신준, 시론] 조선산업 구조조정, 10년 전의 예고, 한겨레신문, 2016-05-02)

강신준은 “2000년대 이후 조선산업의 수요는 정체되는 데 반해 공급은 계속 확대되어 수급 불일치에 따른 구조적인 위기가 2010년을 전후하여 도래할 것”을 예상했다. 그런데 그는 이 조선산업의 위기를 과잉생산 공황이라는 자본주의 생산에 필연적인 모순의 결과로 발생한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둘째, 셋째 주장처럼 바로 유럽, 일본처럼 “이런 위기를 예상하고 범국가 차원의 대응전략을 수립”하여 대응하면 이 위기를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김영민’이라는 가명으로 강신준 자신이 번역을 책임졌던 ‘이론과 실천’ 독일어 번역본 1권에서도 맑스는 “파국으로 치달은 런던의 대규모 사업부문의 하나는 철선(鐵船) 건조업이었다. 대규모 조선소들은 호경기에 무제한적인 과잉생산을 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신용의 샘이 여전히 계속 풍부하게 솟아나리라는 기대 아래 거액의 주문을 받아 들였다.”(자본Ⅰ-3, 제23장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754쪽)며 이미 1860년대에 조선업 공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해양플랜트에 한국 조선소들이 도전하게 된 것은 2008년 세계적인 불황이 닥치면서부터다. 불황으로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사들은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등 상선 발주를 줄였다. 상선 발주가 줄면 조선소들은 당장 2~3년 내에 일감이 없어진다.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소들은 해양플랜트로 눈을 돌렸다. 유가가 100달러 이상 높아지면서 글로벌 석유업체들은 바다에서 석유를 캐는 데 혈안이 되었다. 수억달러에 이르는 해양플랜트들이 발주됐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마치 황금을 캐는 듯했던 해양플랜트 사업은 왜 갑자기 망가졌을까. …

한 조선업체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2011년, 2012년은 미친 것 같았다. 당시 한 프로젝트에서 설계 변경으로 인한 추가 금액을 받아내고 이익까지 내며 성공하니까 사내에 자신감이 넘쳐났다. 해보면 된다는 과도한 자신감으로 어려운 해양플랜트를 수주했다.” …

경영진이 매출 경쟁을 하다보니 저가 수주도 등장했다. “(한국 조선 회사들은) 실제 입찰 과정에서 무조건 경쟁사보다 5~10% 깎아준다고 제안서를 써대니 원가를 보전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조선회사들이 4조원짜리 해양플랜트를 3조원이면 지어준다고 저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는 실정에 이르게 됐다.”(<축적의 시간>)(이완 기자, 구멍 뚫린 조선업 욕심이 빚은 대참사 국내 조선업계 천문학적 적자 기록… 선박 수주 줄면서 해양플랜트에 무모한 도전, “미친 것 같았다”, 한겨레21 제1090호, 2015.12.07.)

이처럼 현재 조선산업 공황은 2008년 세계 대공황과 함께 시작됐고, 이를 돌파하기 위해 국내 조선소들은 새로운 황금알을 낳는 해양플랜트로 앞다퉈 진출했다. 2011년, 2012년 짧은 호황기의 유가 상승을 바탕으로 한국 조선소들은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마치 황금을 캐는듯”이 해양플랜트를 수주하고 건설했다. 덤핑 저가 수주도 마다하지 않고 미친 듯이 매출 경쟁에 매달렸다. 그것이 오늘날 또 다시 해양 플랜트를 중심으로 조선산업 과잉생산을 낳았던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부채가 7천3백%를 넘고,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3대 조선사의 해외 법인의 총부채 규모가 5조3천584억 원에 달할 정도로 조선산업 자본들은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과 호황기의 선박 가수요(假需要)에 취해, 회사채와 주가급등을 믿고, 맹목적 수주와 생산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경쟁의 법칙에 영향을 받으면서 “신용의 샘이 여전히 계속 풍부하게 솟아나리라는 기대 아래 거액의 주문을 받아 들였다.”

이 과정은 자본주의 생산의 무정부성과 무계획성, 맹목성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그 과정은 단순하게 인간적인 “욕심이 빚은 대참사”가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의 필연적인 결과다.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은 하나의 산업기업에 투하되는 자본의 끊임없는 증대를 필연화하며, 또 경쟁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갖가지 내재적 법칙들을 각 개별 자본가에게 외적 강제법칙으로 강요한다. 경쟁은 자본가에게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그것을 끊임없이 증대시키도록 강제하는데, 그는 오로지 누진적으로 축적함으로써만 그것을 증대시킬 수 있다.(자본Ⅰ-3, 제22장, 이론과 실천, 672쪽)

조선산업 자본은 무정부적 생산에서 파산을 피하고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생산규모를 늘리고 미친 듯이 수주경쟁에 뛰어들며 생산에 몰두했던 것이다. 강신준은 유럽, 일본처럼 “이런 위기를 예상하고 범국가 차원의 대응전략을 수립”하면 위기를 극복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조선업의 과잉생산 공황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불가역(不可逆)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최근 한국 시장 점유율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데, 일본 역시 조선산업 세계 1위를 구가하다 1990년대 몇 차례, 그리고 2000년 이후부터는 줄곧 전 세계적인 경쟁전에서 한국에 밀려나 시장을 뺏겼다. 이로 인해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이 잘려 나가고,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파산하고 거대 자본으로 흡수통합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일본을 제치고 3년 연속 세계 수주 1위를 차지한 중국 조선업계가 지난해부터 침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올 들어서는 파산 신청이 잇따르고 수주 물량도 급감하고 있다. 2010년 한때 3000개에 달하던 중국 조선소 숫자는 현재 100여개로 줄었다. 그나마 실제 수주 활동을 벌이며 정상 운영하는 조선소는 20개 남짓하다.(김기홍 기자, [재계 인사이드] 가라앉는 중국 造船… ‘순풍에 돛’ 단 韓·日, 조선비즈, 2015.07.01.)

최근 빈사상태를 면치 못하는 중국 조선산업도 사실은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2000년대 중반부터 급속도로 성장해오면서 생산에 몰두해온 결과 오늘날의 위기에 파산 사태 속출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그중 그리스는 세계 최대 해운 국가로 불리고 있는데, 그리스 역시 2015년 디폴트(채무 불이행) 사태로 선박 발주가 대폭 줄어들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최근 1990년대 이후 처음으로 한국 보다 수주를 많이 받고 있다고 하나, 그것은 16여 년 동안이나 양국이 한국 조선 산업에 밀려왔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한다. 이처럼 전 세계 조선 산업이 각국별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으나, 전 세계 조선 시장 자체가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하여 전 세계 조선자본이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상황이다.

2016년 4월 현재 “한국 조선업, 4月 수주물량 ‘0’”(이종혁 기자, 서울경제, 2016-05-10)이라고 아우성치고 있는 자본이 고작 1년 전만 해도 “세계 조선업 불황에도… 한국 ‘나홀로 선방’”(김기홍 기자, 조선일보, 2015.05.06.)이라고 허장성세를 하는 것이 바로 자본의 맹목성이다.

자본주의 과잉생산으로 벌어진 오늘날 조선산업 구조조정 강행에 대한 강신준은 자본의 대행자나 고위 국가관료가 된 것처럼 주장한다. 강신준은 노조-자본-국가가 “범국가적인 위기”앞에 공동으로 “위기 대응 체계를 구축”하자고 하기 때문에 노동자의 자주적인 입장이 없는 것이다. 강신준은 자본과 국가의 구조조정 공세 앞에 해외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배외주의적이고, 국내의 자본과 국가에 대해서는 상생을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10년 전의 예고”, 즉 ‘조선산업의 발전전망과 노동조합의 대응방향’에서 강신준은 “노조 대응전략의 기본방향은 우리나라 조선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것을 1차 목표로 하고 구조조정에 대비해 초기업적인 대응과 보호막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교섭범주를 확대해야 한다”(송은정 기자, “조선업 노조 초기업적 대응 시급” 2008년 조선업 위기 대비한 노조대응전략 공청회, 매일노동뉴스, 2004.11.22.)고 주장했다.

이처럼 강신준에게는 “조선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대전제 하에서, “초기업적인 대응과 보호막을 마련하는 것을 목표로 교섭범주를 확대”하는 것이 “노동자의 주체 역량 강화”인 것이다. 그런데 1차적이고 우선적인 대전제가 자본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이기 때문에 “노동자의 주체 역량 강화”는 말뿐이고, 노동자는 수세적이고 종속적이 될 수밖에 없다. 노조가 경쟁력 강화라는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 자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조의 자주성을 말살당하고 자본의 공세에 노동자의 권리를 속절없이 넘겨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의 “초기업적인 대응”으로 “교섭범주를 확대”하는 것이 과거에도 강신준, 임영일 등 개량주의자들이 포진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등의 주요한 주장이었다. 이 목표 하에 독일식 산별교섭 체계를 강화하는 산별노조‘만능론’, 산별조직 형식 전환론은 노동운동을 자본에 종속된 협조주의 운동으로 전락하는데 복무하면서 노동운동을 약화시키고 패배로 몰아갔다.

강신준은 각 조선소의 노조와 사용자 대표 등 노사동수로 구성된 ‘(가칭)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 같은 노사정 교섭 모델을 주장하였는데, 이 주장은 금속노조의 조선업종 관련한 요구안으로 반영되어 제출되기도 했다.(김상민 선전부장, 국내 조선산업발전전략위 꾸리자 [금속노조 요구안해설-5] 조선업종 요구안, 금속노동자, 2012.03.14.)

심지어 2016년 현재에도 금속노조와 조선업종연대회의에서 “고용안정 문제와 산업발전 전략을 모색하는 (가칭)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여기에도 강신준식 사상과 요구가 반영되어 있다. 물론 2016년 구조조정 대응기구는 “고용안정 문제”가 앞에 내걸려 있지만, 그것 역시 산업발전 전략, 즉 “조선업의 경쟁력을 유지강화하는” 전제 하에 놓여 있기 때문에 생사여탈권을 쥔 자본에게 노동자의 운명을 비주체적으로 종속시키도록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본격적인 투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투항의 상장인 백기를 들고 전장에 나갈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강신준 연구 보고서=과거 현중 어용노조의 신강령과 무쟁의, 무교섭 원칙

강신준은 또한 “하지만 이후 이해당사자들의 행태는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2002년 연구사업을 발주한 노동조합은 최대 사업장인 현대중공업이 2003년 금속연맹에서 탈퇴함으로써 조직적인 분열에 휘말린데다 임기가 2년밖에 되지 않는 집행부의 고질적인 조건 때문에 아무런 대응책도 준비하지 못하였다.”(강신준, 시론] 조선산업 구조조정, 10년 전의 예고, 한겨레신문, 2016-05-02)라고 그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조선산업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산업의 특성상 구조적인 위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보고서는 ‘아직 날이 맑을 때 우산을 준비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데, 그 기조를 담은 보고서는 이후 어용 현중노조에서 그대로 잘 실현됐다.

2005년 민주파 출신인 현중노조 탁학수 집행부는 노골적인 노사 협조주의 선언인 신강령을 선포했다.

[현중노조 선언, 이념, 강령]

선/언

현중 노조는 노동조합 설립 목적 달성을 위해 노사가 상생관계임을 깊이 인식하여 노사 호혜적 협력관계를 바탕으로 조합원의 행복과 미래를 추구해 나간다.

이/념

  1. 참여와 협력을 바탕으로 하는 노사 공존공영의 추구를 기본 이념으로 한다.
  2. 기업경쟁력 강화에 기여하여 기업의 성장을 통해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3. 노사가 함께 성장하는 상생적 노사문화를 창출하여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도모한다.

강/령

  1. 우리는 산업 민주주의 바탕을 두고 노사공동 번영을 통해 노동자의 사회적 지위와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한다.
  2. 우리는 노사 안정에 기여하고, 나아가 경제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신 노사문화 창출을 지향한다.

이처럼 2005년 6월 15일에 체결된 신강령은 철저하게 노자협조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었다. 신강령은 노자협조주의를 바탕으로 자본과 상생하여 조합원들의 복지를 보장받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신강령을 바탕으로 해고자이자 금속노조 부위원장 출신인 현중노조 오종쇄 위원장은 2009년 2월 13일 현중노조 대의원대회 수련회에서 임금협상을 현중자본에 백지위임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오종쇄는 그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중국 조선산업의 급부상 속에서 앞으로의 조선산업은 그리고 노사관계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다. ….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가 지혜를 모아 자신의 노동 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갖춘다면 세계 최고 자리는 그리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으리라 확신한다. 집행간부들이 이런 지혜의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중국 방문을 통해 얻은 귀중한 소득이다. 눈앞에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긴장감을 중국에서 찾았다는 현실이 안타깝지만…(참붓언론 2/27, 오 종 쇄/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 2/27 중국의 성장을 바라보며, 글 재인용, [노동자정치신문 50호] 현중노조 임금 백지위임과 조선산업 공황 -현중 민주노조와 전투적 노동운동은 부활할 것인가? 2009-04-21)

바로 노조가 무쟁의, 무교섭을 한 배경에는 조선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노동자의 고용과 생존, 복지를 보장받겠다는 자본의 이데올로기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 조선산업의 급부상 속에서 앞으로의 조선산업”의 미래에 대한 사용자적 고뇌에 빠져 “자신의 노동가치를 높이고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분투하던 어용 오종쇄와 “당시 조선산업은 호황을 지속하고 있었지만 산업의 특성상 구조적인 위기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고 보고서는 ‘아직 날이 맑을 때 우산을 준비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는 강신준의 사고의 배경, 철학, 이후 대응이 하나라도 다른 게 있는가?

자동차 산업 노조 ‘민주파’ 집행부에서 노조 위원장이 회사 관계자와 신차 발표회를 가지고 판촉활동에 나서며 무쟁의를 확약하는 노사협조주의 행보 역시 노조가 강신준 식 협조주의 사상에 물들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미 탁학수 집행부 이전에도 현총련(현대그룹총연맹) 의장 출신인 윤재건 위원장도 1998년 4월 15일 단체교섭을 앞두고 원유 운반선 수주를 위해 회사 부사장과 함께 프랑스로 출장을 다녀오는 노사협조주의 행보를 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에서의 일련의 무쟁의와 민주파 출신 신어용들의 준동은 바로 조선산업 호황을 배경으로 이후에 불어 닥칠 조선산업의 위기를 대비하자는 ‘우산 준비론’에서 비롯됐다.

그 ‘우산 준비론’ 뒤에는 노동자 전체에 대한 전면적인 현장통제와 백색테러 조직인 ‘산업보안대’같은 경비대를 내세운 폭력적 노무관리 증대, 노동강도 강화, 임금인상 억제, 중대 재해(기업 살인), 하청의 전면적 확대와 2004년 박일수 열사의 분신이 있었다.

이제 조선업종에서 “날이 맑을 때”인 호황이 끝나고 거센 폭우가 내리는 전면적인 공황과 대대적인 구조조정 공세에 대해 강신준은 어떻게 대비하자고 하는가.

노동조합이 먼저 업종 차원의 연대를 구축하고, 정부를 끌어들여 초기업적 교섭을 통해 산업경쟁력, 노동시장, 숙련체계, 고용안전망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다행히 현대중공업에 민주집행부가 들어섬으로써 연대를 위한 조건은 이제 마련되어 있다.(강신준, 한겨레신문, 같은 기사)

“다행히 현대중공업에 민주집행부가 들어섬으로써 연대를 위한 조건”이 마련되어 있으면 그 새로운 국면을 활용해서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구축하자고 독려하는 대신에 여기서도 어김없이 강신준은 “산업경쟁력, 노동시장, 숙련체계, 고용안전망 등의 종합적인 대책”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수많은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결국에는 노동자들이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발적으로 임금삭감, 퇴직금 양보, 노동시간 연장, 노동조건 악화를 감내하는 양보교섭을 부추겼을 뿐이다. 심지어 정규직 노조가 고용의 완충장치로 비정규직 노동자 우선 정리해고에 동의하고 희망퇴직에 합의하는 것으로까지 나아갔다. 그러고도 자본의 위기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정리해고 최소화라는 이름으로 정리해고조차도 수용하는 것이다.

‘숙련체계’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말하겠지만, 강신준이 말하는 ‘노동시장’과 ‘고용안전망’은 정리해고의 대가로 국가가 나서서 전직 취업알선, 재취업 훈련 및 교육, 실업 수당 지급을 통해 ‘고용안전망’을 가지고 ‘노동시장’으로 재취업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리해고자와 실업자들이 자본과 국가에 저항하여 자본주의가 위기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강신준이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아도, 자본가 국가는 이미 알아서 이 기만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해당 기업의 경쟁력을 키워 생산적 고용을 창출하되 대량 실업에 대비 재취업훈련 등 노동시장에 다시 진입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원승일 기자, [구조조정發 고용대란 오나] 9만명 넘는 협력업체 직원 대량 실업 우려…정부 실업급여 등 우선 지원 , 헤럴드경제, 2016-05-10) 하는 것처럼, 이 대책은 ‘신속한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고, 노동자를 일방적으로 희생시켜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단이 될 뿐이다. 그리고 실제 과거 2001년 김대중 정권 하에서 대우자동차 정리해고 이후에 ‘희망센터’(이사장 이목희)라는 실업대책기구가 만들어졌고, 다시 이 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언론에서 떠들어대지만, 이 기구는 희망 없는 절망센터로 “전형적인 언론플레이”에 불과했다. 정리해고자 노동자들을 건설일용직으로 내보내는 인력공급처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은 이처럼 노동자를 대량 정리해고하고 임금과 상여금, 퇴직금을 대폭 삭감한 대가로 막대한 구제금융을 제공받았다. 대우자동차는 이후 GM으로 매각됐는데, 노동자 정리해고는 ‘회생 가능한’ 기업으로 대우자동차를 만들어 매각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결국 구조조정은 이러한 자본 회생의 자구책, 양적완화라는 신용 공급의 대가로 노동자가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하고 자본이 다시 이윤을 회복하여 경쟁력을 구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 일부는 파산하고 거대 자본으로 집중되어 새로운 착취의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재편성된 자본은 정규직을 자연감원하거나 희망퇴직을 유도하고, 하청 노동자와 오늘날 ‘물량팀’ 같은 기간제 일용직 노동자들을 대거 사용함으로 다시 착취를 강화하게 된다.

정성립 대우조선 사장은 3월 간담회에서 “(일감이 많을 때는) 물량팀이 40%를 차지했는데, 이분들은 특정 물량이 끝나면 자동으로 떠나는 구조라 (인력을 줄이는 데) 근본적인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과감한 구조조정은 힘들고, 연말 저성과자를 중심으로 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로 갈 것 같다”고 인력 구조조정을 시사한 바 있다. 올해 수주실적이 없는 삼성중공업 역시 해양플랜트 수주잔량 24기 가운데 연내 5기를 완성한다.(김보미 기자, 탈출구 없는 조선업계의 불황, 주간경향 1176호, 2016.04.12.)

이처럼 물량팀은 자본에게 호황기에는 무노조 저임금 장시간 노동력으로 자본에게 최대 이윤을 가져다주는 인간 착취 재료이고, 공황기에는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고도 가장 먼저 쫓아낼 수 있는 인간 ‘잉여 폐기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저성과자를 중심으로 한 상시적 구조조정” 체제에서 선별적으로 정리해고 될 대상이다. 반면 물량팀 노동자들은 자본의 산업순환과 생산물량에 따라 울산과 거제, 영암 같은 조선산업이 위치한 지역을 오가다가, 일부는 건설산업으로 들어가는 현대의 유랑민으로 전락해 있다. 그런데도 물량팀 일용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에게는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 물량이 끝나면 자동으로 떠나는 구조”에 불과한 것이다. 그 자동으로 떠나는 구조 하에서 무수한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박탈당하고 가중되는 빈곤 속에 사회적 타살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숙련 향상과 고부가가치 산업 재편,

자본의 구조조정 방향과 일치 

우리는 2016년 노동절 특별호에서 금속노조와 조선업종연대회의의 “고용안정 문제와 산업발전 전략을 모색하는 (가칭)노사정 조선산업발전전략위원회”에 대해 노조가 자주적인 고용안정의 문제를 넘어 자본주의 “산업발전 전략”을 앞장서서 제출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완곡하게 제기했는데, 실제 그러한 우려가 일부 현실이 되고 있다.

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일부 노조가 자본의 경쟁력 이데올로기, 생산성 향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강신준이 주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노동자의 숙련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재편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확보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안이야말로 오늘날 전반적인 과잉생산, 특히 조선업종에 집중적으로 밀어닥치고 있는 과잉생산 공황의 여파에 대처하기 위해 자본이 진행해 왔고, 실제 공황이 심화됨에 따라 한층 더 가속화 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양병효 고용안정부장의 인터뷰를 볼 때, 대우조선노조는 바로 강신준 같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가지고 사태를 인식하고 또 대응하고 있는 직접적인 사례다.

“버티컬 용접이라고 아십니까. 예전에는 어마어마한 높이의 선박을 A, B, C 3층으로 나눠 세 명의 용접사가 작업을 했다면 지금은 곤돌라를 활용해서 1명의 용접공이 빠른 속도로 이를 해냅니다. 설비 자동화 못지않은 기계화 용접이라고나 할까요.”

“직경 5미터나 되는 거대한 파이프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를 용접사가 직접 몸을 움직이면서 용접했다면 지금은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파이프를 돌려서 빠른 속도로 깔끔하게 용접작업을 끝냅니다. 바로 이런 공정 기술력을 보고 유럽에서 경탄을 금치 못하는 거죠.”(울산저널, “이채훈 기자, 우리가 조선업 산증인…A부터 Z까지 사라지는 게 한스럽다” 대우조선해양을 보라 2부 – 진격의 양 부장이 말하는 조선업 오디세이, 2016-05-04)

과거 세 명의 용접사가 작업을 하던 것을 곤돌라를 이용한 ‘기계화 용접’을 통해 1명의 용접공이 빠른 속도로 같은 분량의 일을 해내게 하고, 새로운 방식을 통해 거대한 파이프를 빠른 속도로 용접하도록 하는 이 같은 방식이 바로 노동자의 숙련의 향상이고, 새로운 설비나 생산방식으로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게 하는 방식이 바로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조선업의 재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으로서는 바로 노조가 요구하고 있는 방향으로 생산성이 올라가고 경쟁력 있는 조선산업으로 재편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나아가고 있다. 여전히 조선산업은 타 산업에 비해 노동력을 많이 필요로 하지만, 여기서도 역시 대량의 노동력이 폐기되어 왔다.

물론 “주요 대형 조선 업체들이 모두 회원사인 ‘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인력 현황을 살펴보면 1990년 직영(원청) 기능직 인력은 3만5000여 명이었는데, 2014년도에도 여전히 3만5000여 명으로 그대로이다.”(박종식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조선업, ‘업그레이드’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2016.05.04.)라고 하고 있지만, 그 동안 자본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기 때문에, 이에 비해 고용 규모는 상대적으로 급감해 왔던 것이다. “반면 사내하청 기능직은 1990년 7천여 명에서 2014년 12만 7000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는데, 그것은 어용노조의 합의와 묵인 하에 이뤄졌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에 비해서도 훨씬 더 대규모로, 빠르게 그 과정이 진행되어 왔다.

숙련의 향상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재편은 바로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과 기술혁신, 자동화, 기계화의 확산에 다름 아니다. 이는 자본규모에 비례해 점점 더 노동력을 폐기하는 필연적인 과정으로 자본의 발전과 생존 법칙이기도 하다.

일부 특수 부위 용접처럼 전문 숙련공들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물량팀 사례처럼 대다수는 상대적으로 미숙련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노조가 앞장서서 숙련을 주장하는 것은 자본으로 하여금 현재 대규모로 자행되는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도록 한다.

경기침체에 따른 감원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근로자들이 있다. 조선·플랜트 산업현장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특수기술자’들이다. 한 손 아닌 양손으로 용접이 가능한 플랜트 특수기술자, 두꺼운 철판을 매끈한 곡선으로 휘는 조선업계 곡직사(曲直士) 등이 그들이다. … 곡직사는 현대중공업에 50여명, 대우조선에 20여명 근무한다. 대부분 10년 이상 근무해야 높은 기술력을 갖출 수 있고 희소가치가 높아 구조조정 태풍에 다소 비켜나 있다.(이상현 이정훈 기자, 양손 용접·강철 가공..감원 태풍 비켜난 ‘특수기술자들’ 일당 50만∼60만원 ‘귀하신 몸’..외국서도 잇단 러브콜, 연합뉴스, 2016.05.13.)

위 기사는 최고도로 숙련을 겸비한 ‘특수 기술자’들은 “감원 태풍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사례를 통해 고숙련이 구조조정을 피할 방책이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이들 ‘특수 기술자’들을 제외한 수만 명 노동자들은 누구라도 정리해고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따름이다. 이들 ‘특수 기술자’들은 대다수가 10년 이상 정규직으로 안정적으로 근무하는 노동자들 중에서도 특별하게 고급 기술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산업에서 정규직들은 자연감원 대상이 되면서 퇴직하게 되고, 그들 중 일부는 일반 정리해고나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되고 있다. 나머지는 외주 하청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지면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하청으로 취업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외주 협력업체 일용직 물량팀도 다수다. 결국 조선산업에서 대다수 노동자들은 “엄청난 시간과 집중력, 경험의 기술이 매우 중요”한 안정적으로 높은 숙련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결국 숙련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재편의 강조는 자동화, 기계화 도입으로 대다수가 과잉인구화 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게끔 한다. 게다가 생산성 향상의 노예로 노동자를 전락시키고 숙련을 강화하지 않으면 대량 정리해고는 불가피하다는 자본의 입장을 정당화하여 노동자 스스로 자기 눈을 찌르는 자해적인 요구에 다름 아니다. 생산성 향상은 바로 인력을 최소화하고 일정한 시간 동안에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도록 하여 최대한의 생산성과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해방의 깃발을 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과 대량 정리해고 광풍이 몰아치는 자본주의 공황의 시기에 더욱 더 계급의식을 갖춰야 한다. 자본과 노동자의 공동 이해, 상생을 추구한다거나, 자본의 경쟁력이 노동자 생존의 조건이라는 사고는 노동자들을 일방적인 양보교섭의 늪으로 몰아가다가 괴멸시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고용 보장’ 요구가 고용만 안정되면 임금, 단협, 퇴직금 모든 걸 양보하고, 비정규직 우선 정리해고를 용인하는 정규직만의 총고용보장이 된다거나 혹은 그것을 주장하다가 결국 고용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대우조선노조는 2015년 이미 단체교섭에서 기본급 동결과 총액임금을 삭감하고 무파업 동의서 제출을 통해 ‘경영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그러나 정성립 사장은 이러한 노조의 양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16년 5월 12일 첫 단체교섭 상견례에서 다음과 같이 협박을 했다.

회사 또한, 경영정상화를 목적으로 한 현재의 자구계획에 추가하여, 기존 계획대비 더 처절하고 혹독한 자구노력 의지를 반영해야 정부, 채권단, 국민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며, 현재 인력, 임금, 설비 규모 조정을 포함한 전반적인 대응방안을 5월말에 내놓을 예정으로 경영상황별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인 기술경쟁력과 인적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회사는 시장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수주활동을 할 수 있는 대외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이며, 꼭 살아남을 것입니다.(대우조선노조 새벽함성, 제2802호, 2016년 5월 12일)

그것은 “현재의 자구계획에 추가하여, 기존 계획대비 더 처절하고 혹독한 자구노력 의지를 반영”하는 것으로, “현재 인력, 임금, 설비 규모 조정을 포함”하여 노동자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가중하는 것이다. 정성립 사장은 다만 “기술경쟁력과 인적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라고 했는데, 그것은 정리해고와 임금삭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본을 위한 기술과 인적 ‘경쟁력’을 회복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최우선의 목표’는 노동자 살리기가 아니라, “시장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수주활동을 할 수 있는 대외환경이 조성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으로 하겠다는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노동자를 죽여 회사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1998년 공황시기와 이후 구조조정 사업장에서 양보의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그러나 왜 공황기 노동운동의 그 파멸적인 양보교섭이 또 다시 반복되고 있는가?

노동해방의 전망을 상실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필연적이고 영원한 생산관계라고 하는 자본주의 노예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특히 1989년 말 1990년대 초 동유럽과 쏘련 사회주의 해체 이후 변혁의 전망과 목표를 상실한 노동운동은, 전노협에서 마지막 전투적 노동운동의 숨결을 몰아쉬다가, 결국 점차적으로 자본주의 내에서 실리와 개량을 추구하는 협조주의, 실리주의 노조운동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공황기에는 전투적 노조운동을 추구했던 노동운동 세력들조차도 자본의 공세 앞에 처절한 투쟁을 하기도 했지만 일부는 양보교섭으로 일관하기도 했고, 이후에는 협소한 경제주의에 빠지거나 심지어 무쟁의 선언에 앞장서는 등 전투적 기치마저도 상실하고 노조‘운동’ 세력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벗어나는 운동의 목표를 가지지 못하는 노동운동은 필연적으로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탈을 쓰고, 교묘하게 자본의 이해에 복무하고 있는 강신준 같은 개량주의적, 협조주의적 인물, 세력과 철저하게 결별해야 한다.

노동자는 노사 상생, 노사 공동 파트너십 구축, 노사 동반자 관계 구축 등 다양한 노사협조 이데올로기를 떨쳐 버리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조직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철저하게 자주적인 입장과 비타협적인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

현대중공업 같은 거대자본의 성장을 위해 조선소는 한 달에 한 번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하는 참혹한 죽음의 사업장이 되었다. 노동자들은 자본의 거대한 현장 통제 하에 20여 년 동안 무쟁의와 심지어 무교섭을 강요당하며 피를 흘리고 땀을 쏟아 왔다. 정규직 노조가 오랫동안 식물 어용노조가 된 상태에서 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건설 시도는 무지막지한 폭력만행과 계약해지 시도, 해고 등 탄압으로 진압 당했다. 이 투쟁에 앞장섰던 하청 노동자들 일부는 열사가 되어 사라져 갔다. 이처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이 그 동안 조선산업의 성장과 막대한 흑자의 원천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회사가 위기에 빠졌으니 하루아침에 노동자들이 잉여폐물이 됐으니 나가라고 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앞에서도 말했듯, 구조조정은 노동자에 대한 대량 정리해고와 임금삭감, 단협과 복지의 전면적인 후퇴를 의미한다. 반면에 자본에게는 노동자 희생의 대가로 은행이나 정부의 천문학적인 구제자금을 통해 다시 경쟁력을 갖추고 이윤을 회복하여 거대한 독점의 길을 가도록 만드는 수단이다. 특히 현대중공업 같은 거대자본은 공황 시기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고 파산한 다른 자본을 자신들 손아귀로 집중시켜 더 크고, 더 새롭게 지배를 강화하는 호기로 삼는다.

그런데도 정권과 자본, 심지어 한겨레신문처럼, ‘진보적’이라고 하는 신문조차도, 노조와 노동자가 앞장서서 고통을 분담하여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협박을 해대고 있다. 그런데 그 구조조정을 통해서 회사가 정상화되면 어떠한 일이 벌어지겠는가?

노동자들이 대거 잘려나가고, 임금이 삭감되고 복지가 후퇴하는 노동자의 고통과 절망과 죽음 위에서 정몽준 같은 기생적인 자본가들은 여전히 거대자본의 소유자로 남아 승승장구할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미개하다”고 망발을 지껄였던 철없는 인간 말종 자식새끼들이 대를 이어 노동자를 지배하는 착취자가 될 것이다.

기아자동차 부도, 현대자동차,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등 대량 정리해고 공세 앞에서 우리가 경험했듯이, 자본이 위기에 빠지거나 파산한다고 해서, 공장터와 기계와 생산기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파산하는 자본은 다른 자본에게로 흡수될 것이고, 이를 흡수하는 자본은 더 거대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는 인수 합병, 매각 등 자본의 소유권 강화나 변화 여부와 상관없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고용과 생존권을 요구하며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자본이 실제로 공장 자체를 매각하는 경우에는 국가권력에게 고용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해야 한다. 해외로 도피하는 경우에는 공장점거를 통해 그 자본도피를 막고, 국가권력을 대상으로 자본주의 소유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자본 구제책의 대가로 권력과 자본은 노동자와 노조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피를 말리며 양보를 요구한다. 그런데 거대 기업의 존립 여부는 국가에게도 그 권력기반과 안정성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위협이 된다. 그 때문에 권력은 지난 해 10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대우조선 해양에 대해 4조 2천억 자금지원을 발표하고, 이중 3조 2천억 원을 집행했던 것이다. 따라서 권력과 자본의 존립 협박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을 우선적으로 내걸고 자본주의 자체의 존립, 권력의 존립을 뒤흔드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개별 자본의 존립을 넘어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위협감을 느껴 총자본과 권력은 노동자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공황기에 자본과 권력은 “분열해서 통치하라”는 모토에 충실하게 노동자 내부를 분열시킨다. 노동자와 민중을 분리하고 분열시킨다. 자본은 하청 노동자를 우선 정리해고하고, 정규직 내에서는 사무직, 일반직, 여성 노동자 등 약한 부위를 먼저 쳐내고 나서 희망퇴직 등의 공세를 가중한다.

자본이 특정한 공황 시기에 적자와 수주 급감을 이유로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고 정리해고를 하려 한다고 해도, 수십 년 동안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통해 성장하고 흑자를 거둬왔던 막대한 자본의 몫이 있기 때문에 자본의 사내유보금을 토해내도록 하고, 독점자본가들 개인들의 부동산, 주식 등 자산과 해외에 은닉한 자산, 현금 등을 반납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고통전담을 요구하는 자본과 권력에게 기업영업비밀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주택 마련을 위한 채무나 빈곤과 자녀 교육 등의 이유로 진 각종 채무에 대해서는 탕감할 것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총고용 보장’은 노동자가 각종 임금성 부분을 양보하는 일자리 나누기 형태가 아니라, 실질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전체 노동자의 고용보장, 인력 확충 투쟁으로 공세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특히 조선 산업에서는 하청 노동자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에 우선적인 정리해고 대상인 하청 노동자들과의 계급적 단결이 가장 중요하다. 자본의 대량 정리해고 공세를 원하청 노동자의 단결로 돌파하고 하청 노동자의 대규모 조직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는 원하청 노조의 노동자적 단결과 드높은 요구, 의식적인 조직화 노력이 중요하다. 이때 하청 노동자 우선 정리해고 반대와 중층 하도급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하청 제도 자체의 철폐를 내걸고 투쟁해야 한다.

조선산업 뿐만 아니라, 해운, 철강, 건설, 금융권 등 산업 전반에 걸쳐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불고 있다. 미조직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수만 명이 소리소문없이 잘려나갔다. 청년과 학생들은 한층 더 가혹한 취업난으로 고통 받고 있다. 민주노총은 청년단체, 학생기구, 실업자 단체와 함께 정부를 대상으로 전국적인 실업대책을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조선업종을 넘어서 구조조정 사업장 전체 원하청 노동자 투쟁기구를 구축하고, 민중총궐기 투쟁을 통해 민중과 손잡고 구조조정을 강행하는 폭력기구인 권력과의 투쟁으로 확장하는 전투적 노동운동, 보편적 노동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 쪽에서는 절대 다수 인민의 실업과 복지 박탈, 빈곤,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노동조건, 저임금, 사회적 타살이 강요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극소수 지배계급의 엄청난 부와 향락과 부패와 기생성이 한 사회 유지, 발전의 전제조건이 되는 이 반동적인 자본주의 이윤 체제를 박살내고 혁명적 노동운동으로 거침없이 나아가야 한다. 노동자가 지나치게 고되게 일하고 너무 오래 일한 결과 생겨난 생산물의 과잉이 노동자 민중에 대한 공세의 계기가 되는 자본주의 체제가 아니라, 그 과잉을 교육, 의료, 탁아, 주택이 전면 무상화 되고, 완전 고용과 획기적인 노동시간 단축으로 노동 그 자체가 자아실현과 즐거움이 되는 전면적인 풍요의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노동자는 구조조정 공세 앞에 자본과 권력, 그들의 노예적 기수들이 쥐어준 백색 투항의 깃발을 버리고 노동자 해방의 붉은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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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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