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미트로프 테제를 학습하며: 인민전선은 지금도 유효한가?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맑스주의 저작 읽기 세미나에서 디미트로프 테제를 읽었다. 사실 인민전선이라는 개념에 대해 관심은 많았지만, 하나의 맑스-레닌주의를 공부하는 차원에서 원전 그 자체로서 읽고 공부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사실 인민전선이라는 개념은 20세기 혁명 역사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당장 우리 근현대사만 보더라도, 일제 말기 독립운동 노선이나 해방 이후 소련 진주 하에서의 인민민주주의 국가 건설 과정 등, 우리 역사하고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게오르기 디미트로프의 인민전선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민전선 개념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말 그대로 적대세력에 맞서 공산당을 포함한 좌파들을 포함하여, 노동자, 농민, 애국적 부르주아지 및 여러 계급과 연대를 뜻한다. 즉, 이러한 계급적 연대를 통하여, 최악의 적에 맞서 싸우는 전술이 바로 인민전선이다. 이 인민전선은 이행의 특수한 형태인 전략으로까지 발전했다.
1930년대는 파시즘의 강화 속에서 이러한 방식이 채택되었고,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를 이룩할 수 있었다. 다시 정리하자면, 파시즘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적대세력에 맞선 방식이 바로 인민전선이었다.
1930년대의 상황을 생각해보자.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난 이후, 제국주의 승전국들은 이른바 파리강화회의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이권을 분담했다. 이 과정에서 패전국인 독일과 승전국이지만 이득을 크게 못 본 이탈리아나 일본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192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쿠데타를 통해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았고, 독일에선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더불어 히틀러 나치당이 공공연하게 쿠데타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일본에서는 1920년대 쇼와시대를 거치며 대륙 팽창을 원하는 호전적인 군부가 일본 정치에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됐다.
이러한 흐름은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이라는 위기에 맞춰 더 심화됐다. 1931년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괴뢰국 황제 푸이가 통치하는 만주국을 세웠다. 1933년 독일 나치당의 아돌프 히틀러가 수상으로 집권했으며, 1934년에는 파울 폰 히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자 히틀러는 독일 최고 권력자인 총통으로 등극했다. 1920년대에 이미 권력을 잡은 무솔리니는 국제연맹의 경고를 무시하며, 아프리카의 국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해서, 정복전쟁을 일으켰으며, 일본은 만주사변과 상해사변을 시점으로 중국 대륙을 점령해나갔다. 히틀러 또한 독일의 군사력을 강화하여, 1936년에는 라인란트를 군사력으로 점령해버렸다.
당시 이러한 파시즘의 위험 속에서 사회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세력은 바로 소련이었고, 스탈린은 1929년에 시작된 공업화 노선에 따라, 소련 내의 군사력을 강화해나갔다. 1919년 레닌이 창설한 제3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은 1935년에 들어 새로운 노선을 채택했고, 이것이 바로 디미트로프 테제로 알려진 반파시즘 인민전선(혹은 통일전선)이다. 게오르기 디미트로프는 불가리아 출신의 코민테른의 활동가로 1933년 나치 독일의 제국의회 방화 사건에서 재판을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다.

디미트로프는 1935년 8월 2일 코민테른 제7차 대회를 통해,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조직해야 한다고 연설했으며, 이에 따라 공식적으로 전 세계적인 진보운동은 반파시즘 인민전선을 조직하고자 했다. 1936년 프랑코의 쿠데타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서도 이러한 반파시즘 인민전선 노선이 적용되어,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는 민주진영의 대연합이 결성되기도 했다.

스페인 내전에 국제의용군으로 참여한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 여단(위)과 여성 전투원들(아래)

비록 스페인 내전은 프랑코가 이끄는 파시스트 세력이 승리를 거머쥐었지만, 이 전쟁에서 가장 많은 물자를 지원한 것은 당연하게도 소련이었다.
그러나 반파시즘 인민전선은 또 다른 부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요소로 작용했는데, 그것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고,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공격하면서 견고해졌다. 유럽에서는 히틀러와 무솔리니에 맞서, 미국, 영국, 프랑스, 캐나다 그리고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들이 싸웠고, 1945년 5월에 파시즘을 축출하는데 성공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미국, 영국, 장제스의 중화민국이 싸웠고, 1945년 8월 소련의 대일전 참전은 일본 제국주의의 패망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에서 채택된 노선은 이후 서구 제국주의 열강에 맞선 경쟁에서도 나타났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시작된 냉전에서 수많은 인민민주주의 국가들이 점진적으로 진보적 부르주아민주주의 단계에서 사회주의 단계로 나갔다. 북조선만 보더라도 이러한 점은 아주 명확히 표출된다. 소련 군정 하에서의 북조선은 초기 애국적 민족주의자들과도 협력하는 노선을 걸었으며, 1946년에 시작된 토지개혁에서도 전면적인 무상몰수가 아닌, 친일파 민족반역자들 한에서의 몰수만 추진했다. 마찬가지로, 1945년 9월에 탄생한 베트남민주공화국도 1946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러한 단기간의 인민민주주의적 개혁을 추진했으며, 토지개혁도 친불성향의 민족반역자들의 재산만 몰수하는 것으로 추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나타난 초기 인민민주주의적 개혁들은 1935년 코민테른 제7차 대회에서 채택된 노선의 연장선상이다. 디미트로프 테제를 보면, 당시 골칫거리였던 사회민주당 세력들과 어떻게 연대하고, 또 이들을 우리 공산당 편으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가 있다. 디미트로프는 광범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일전선만이 파시즘에 맞서 승리를 이룩할 수 있는 길임을 역설했다. 이는 1930년대 당시 점증하는 파시즘 세력에 맞서 대중투쟁을 강화하고, 궁극적으로 파시즘을 몰아낼 수 있는 노선이라 보았다. 다시 말해, 파시즘이라는 가장 큰 적대세력에 맞서기 위해선, 진보적으로 동맹이 될 수 있는 그 누구하고도 협력하고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디미트로프의 관점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순한 연합만 있는 것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이를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각 국가의 코민테른 지도기관 및 기구는 간부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뿐만 아니라, 대중들과 진심으로 융합하고, 또 그 대중 속에서의 활동을 통하여 노동자계급의 대업에 대한 그 헌신을 증명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정당을 강화한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또 디미트로프는 파시스트 독재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의 급소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1930년대 당시 파시즘은 이들 모든 계층의 이익,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며, 따라서 좌파들은 파시스트 조직에 억지로 말려들었거나 혹은 무의식적으로 가입한 노동자를 그들의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극히 초보적인 운동에 끌어들임으로써 비로소 파시스트 독재를 타도하기 위한 단호한 투쟁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파시즘 인민전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첫째, 우선 대중들과 결합할 줄 알아야하고, 진보적인 정당과 심지어 애국적일 수 있는 부르주아 정당들과도 연합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이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파시즘을 타도하고 파시즘을 타도하는 과정 전후로 연합한 세력들을 궁극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 편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즉, 이러한 단계를 통해, 궁극적으로 혁명의 길로 나가는 것이 반파시즘 인민전선의 핵심 전략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부분을 현재 우리 대한민국 상황에 적용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윤석열 정부가 파시즘화 되어가고 있는 현실과 더불어, 이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69시간 노동제, 노조 탄압, 사회적 극우화, 다시 시작된 반동적인 역사 국정화, 점증하는 국가보안법 탄압, 한미일을 중심으로 하는 제국주의적 군사동맹 그리고 우크라이나 네오나치 세력에 대한 무기 지원 등에서 윤석열 정부는 과거 파시즘 국가의 그 방식을 상당 부분 따르고 있다. 파시즘이 점증하는 현실 속에서 디미트로프 테제는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게 만든다.
현재 점증하고 있는 한반도 위기 속에서 우리는 디미트로프가 채택한 반파시즘 인민전선 노선을 통해, 현재 파시스트 윤석열 정부를 타도하는 전국적이고 전 국민적인 투쟁에 참여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여기에 참가한다고 해서, 민주당의 제2중대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대투쟁에서 우리의 노선을 홍보하고, 한 사람이라도 우리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의의가 있다. 즉, 대중적인 반윤투쟁 과정에서 우리 쪽이 내세우는 자주통일과 미군철수 그리고 국가보안법 철폐 및 노동시간 단축과 대중적인 복지 건설 등을 홍보하고 선전하는 그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
즉, 이번 반윤투쟁을 통해, 윤석열을 몰아내고, 현 시국보다 평화적인 정책을 추구하는 우익정당인 민주당이 집권을 한다고 해서, 우리가 이 정부를 무조건 방어할 필요는 없다. 이번 투쟁을 통해, 민주당이 집권 후 반동적인 방향으로 나선다면, 우리는 이에 맞서 우리의 입장을 선전하고, 이에 맞서 투쟁하면 된다. 지난 문재인 정권시기, 민중을 배신했던 이석기 의원 문제나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 남북평화를 얘기하면서 한미연합훈련을 실행한 이 반동적인 행태에서는 당연히 주요타격 방향이 민주당 우익정부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마치, 반동적인 사민당 정부가 1920, 30년대 파시즘 등장 이전 보인 행태에 공산당 좌파들이 공격적으로 나선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집권한 상황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에 맞선 대중투쟁에서 우리 스스로가 연대 및 선전을 할 필요가 있었듯이, 현 반동적인 윤석열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기 위해선, 대중들이 투쟁하는 곳에 결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반동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윤석열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 대중적인 투쟁으로 우리 좌파들이 나서야 하며, 현재 주요타격 방향은 윤석열 반동 정권이다. 지금 상황에서는 윤석열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우리 좌파들에게도 필요하다. 바로 그런 점에서 디미트로프 테제는 우리가 이 점증하는 파시즘 현상에서 어떠한 노선을 추구해야하는지, 그 광명을 보여줄 것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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