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정권퇴진 투쟁을 머뭇거리는 동지들께! 냉소, 기권, 낙담, 패배주의를 딛고 파쇼정권 ‘패륜정권’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에 적극 나서자!

윤석열 정권은 ‘패륜정권’입니다. 언감생심 이 자들에게 이민위천이라는 숭고한 애민감정, 그 바탕이 되는 자기희생적 고귀한 세계관까지 바라지도 않습니다. 윤석열을 정점으로 이 정권의 고위인사들은 하나 같이 보통의 인간이라면 가져야할 인간적 감정을 상실했습니다.
수해로 신림동 세 가족이 참변을 통한 반지하방 앞에 쭈그리고 앉아 국정홍보용 사진을 찍으며 “저지대라서 직격탄을 맞았다” 지껄여대는 윤석열의 냉담하고 속없는 발언, “뇌진탕 같은 거겠지”, “세월호 길 가선 안돼”, “(유가족이) 유족 전체 대변하는 거 아냐”, ‘주최자가 없는 행사’,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가 있었다면 굉장히 많은 경찰인력을 투입해야겠죠”라며 이태원 참사 책임자들인 대통령, 총리나 행정안전부 장관, 국민의힘 핵심 인사들이 158명의 비통한 집단 참사 책임을 회피하는 것도 모자라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향해 내뱉은 일련의 망언이나 파렴치한 태도, 정치공작적 태도들을 보면 우리를 통치, 지배한다는 작자들이 과연 사람인지 사람의 탈을 쓴 괴수인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자들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할 때 그 옆에서 피자를 시켜먹으며 조롱하는 인간군상들과 뭐가 다르겠습니까?
문제는 세월호 단식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자들이 아무리 금수만도 못하다 하더라도 이 자들이 수백만, 수천만 노동자 민중의 삶을 좌우하는 위치에 있지 않는데 비해 정권의 인사들은 그렇지 않다는데 심각함이 있습니다.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 “필요할 경우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윤석열의 인종주의적이고 70년대 식 노동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으며 이것이 오늘날 노동자에 대한 적대적이고 천대적인 세계관과 주62시간 연장근로 기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생존의 벼랑 끝에서 절박한 심정으로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향해 내뱉는 망언이나 탄압들을 보면 이 자들이 할 수만 있다면 노동자들의 권리를 송두리째 박탈하는 것도 모자라 노동자라는 존재 자체를 세상에서 박멸하려고 작정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러나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저자들의 악선전에서 확인됐듯 몇 주 정도 노동자가 노동을 멈추면 온 세상의 물류 시스템 전반이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이 노동을 멈춘다면 이 역시 전국의 건설현장들, 산업현장이 작동을 멈추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저들은 하고 싶어도 노동자들이라는 존재 자체를 말살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저들은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권리들을 말살하고자 합니다.
과거 노동운동가 출신이라는 국토부 장관 원희룡은 “건설노조가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 되고 있다. 그간 건설현장에서 민주노총 조끼를 입은 ‘완장 부대’가 방치됐지만, 새 정부에서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방치하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건설노동자들이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라니요?


저들은 자본가들의 비용절감 기도나 안전설비 미비, 중층하도급제 등 자본가들 잘못으로 한 해 수백 명의 희생자들이 발생하는 죽음의 건설현장에서 피땀 흘려 일하는 하늘 같이 고귀한 건설노동자들을 기생충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이는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적개심의 표출이고 노동자의 권리, 노조를 다 분쇄하겠다는 전쟁선포입니다. 경찰은 이미 말 그대로 건설노조와의 “200일 간 전쟁선포”를 하고 노조를 침략하고 있습니다.
이 노동자들에 대한 전쟁선포와 침략은 같은 민족인 북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선제타격 하겠다는 전쟁광적 태도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제의 마름 노릇을 자처하다 무고한 민중을 희생시키고 우크라이나 땅을 전장터, 참화현장으로 만드는 망나니 젤렌스키를 보고도 이 땅을 제2의 우크라이나로 만들겠다고 광기를 표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윤석열의 종북공안몰이, 검찰파쇼공화국 부패척결쇼의 뻔뻔한 이중잣대, 언론탄압의 모습은 이에 따르는 필연적인 부산물입니다.
그런데 윤석열 패륜정권에 대한 지적은 도덕감정, 윤리감정의 문제입니다. 이 반인륜적 도덕성, 윤리성의 본질은 파시즘입니다. 윤석열은 파시스트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노동자의 권리를 전면 부정하고 적대시합니다.
파시즘은 배외주의고 그 배외주의의 끝은 전쟁책동입니다.
파시즘은 반공산주의고 이는 반북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종북공안몰이로 반공주의로 공포정치를 구사하기 시작합니다. 지금은 단속적인 국가보안법 탄압, 집단 살인마 북송 사건 정쟁화에 이어 서해공무원 사건 등을 통한 전임정권 인사들에 대한 탄압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반공종북몰이는 전쟁위기를 고조시키고 전쟁획책을 하며 더 광적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파시즘은 정치적 악선전을 일삼는데 윤석열의 데마고기(민중을 기만하는 정치적 허위선전)는 반북·반중·반러 혐오로, 노조적대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파시즘은 자본의 사도입니다. 파시즘은 자본의 경제위기를 전쟁책동과 노동자민중에 대한 전면 탄압과 자본이윤의 극대화로 극복하려 합니다.
노동자권리말살을 비롯해 민중의 제반 권리를 박탈하려 기도합니다.
이로써 파시즘은 민주주의 일반을 탄압합니다. 언론을 길들이고 탄압합니다.

 

더 머뭇거리지 말고 윤석열 정권퇴진에 나서야 합니다

 

윤석열 정권이 파시즘을 향해 나아가는 정권이지만 파시즘은 단호한 투쟁으로 퇴치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은 독일 파시즘처럼 중간층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중간층을 적으로 돌려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박정희 유신파쇼 시대로 되돌리려고 획책한 박근혜 정권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정권이 전쟁책동을 하고 전쟁의 참화를 부르지만 광범위한 평화애호 세력의 결집으로 전쟁을 막을 수 있습니다.
화물연대노동자들은 16일 간의 영웅적인 투쟁으로도 윤석열 정권의 강도와 같은 업무개시 명령과 업무명령 불응자에 대한 대대적 고소고발, 파업 노동자 구속, 언론을 동원한 악선전 등 전방위적 탄압으로 인해 눈물을 머금고 파업을 중단해야 했습니다.
윤석열 정권은 기세를 몰아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초공세를 가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화물연대 투쟁도 정권퇴진 투쟁과 같이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습니다.
게다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노조의 회계 투명성 운운하며 ‘노조 깜깜이 회계 방지법’이라며 악의적 의도로 가득 찬 작명의 법발의로 노조를 음험한 범죄집단, 부패집단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이는 검경을 내세워 정권이 노조를 쥐락펴락하며 지배개입하여 자주성을 말살하려고 하는 저의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노총, 민중운동 단체 차원의 정권퇴진 결의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시민들은 정권퇴진을 내걸고 정치투쟁에 나서고 있는데 이 투쟁을 주도할 노동자·민중진영이 이 투쟁에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머뭇거리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들이지만 운동진영 상당수의 사고와도 유사합니다. 이 주장들을 모아보면 대체로 이렇습니다.

첫째 이 투쟁이 민주당이나 그 지지·외곽세력이 주도하는 투쟁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민주당에게 투쟁성과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임기 초에 아직 시기상조라는 것입니다.
네 번째 첫째, 둘째 문제의식과 연관돼 있는데 투쟁 이후 새로운 정치적 대안, 전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투쟁이 민주당이나 민주당 지지자, 세력들이 주도하는 투쟁이라면 그건 이 투쟁에 기권하거나 소극적인 진보진영이 반성하고 더 적극적인 결합을 해야 하는 계기인 것이지 불참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퇴진이 평화다”, “퇴진이 추모다”라는 요구가 과연 진보진영이 배척하고 방관해야할 요구입니까?
현재 정권퇴진 투쟁의 요구와 내용이 부족한 점이 있다면 노동자 민중의 대대적 참여로 더 전진적으로 그 기조를 바꿔낼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권 퇴진 투쟁은 다른 누구도 아닌 노동자들과 민중 자신이 사활을 걸고 추진해야할 과제이기도 합니다. “노동자계급은 민주주의 투쟁의 전위다”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과연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심 계급인 노동자계급과 기층 민중이 민중의 피맺힌 절규를 방관해서 되겠습니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이 그러하듯, 희생자 가족들의 피맺힌 절규에 노동자 민중이 정권퇴진 투쟁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부작위에 의한 살인죄”를 저지른 권력이 이 참혹한 죽음의 책임을 전가하고 진상규명을 외면, 방해하고, 심지어 가족들에게 망언을 일삼는 작태들을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당에게 성과가 돌아가서는 안 된다, 이른바 “죽 써서 개준다”는 논리에는 박근혜 퇴진투쟁의 결과 등장한 문재인 정권이 촛불의 ‘적폐청산’ 요구를 외면하고 급기야 윤석열 정권을 등장시킨 것에 대한 분노가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면 박근혜 퇴진 촛불투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투쟁인가요? 촛불을 애초에 들지 말았어야 하나요?
세월호 학살, 내란공작, 통합진보당 해체, 반노동 공세에 맞서는 두 차례의 백만 민중총궐기와 백남기열사 투쟁은 이루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투쟁인가요?
촛불투쟁의 한계가 분명하다고 해도 이는 필연적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투쟁이었습니다.
이 투쟁은 권력을 내 손으로 끌어내린 투쟁입니다. 이 투쟁으로 백남기 열사에 이어 파시즘으로 치닫는 정권이 자행하는 또 다른 희생을 막고 이 사회의 더 극심한 반동적 퇴보를 막은 것만으로도 지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투쟁으로 정권퇴진 투쟁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가진 것도 성과입니다. 이 자신감으로 노동자 조직률이 대폭 늘어나게 된 것도 성과입니다.
민주당의 권력장악과 문재인 정권의 실정은 민주당을 대체하는 정치적 전망을 마련하지 못한 운동진영의 근본한계이지 이것이 노동자 민중이 정권퇴진 투쟁에 나서지 말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그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주도해서, 성과가 민주당으로 갈까봐 정권퇴진 투쟁에 전면 나서지 않는다면 그것은 종파주의적 태도입니다. 참여하여 싸우기도 전에 누가 주도권을 가져갈지 다투거나 자신들의 요구를 그 참여의 조건으로 내걸고, 성과의 귀결을 논하는 것은 “우물 앞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며, 지레 논공행사를 하는 격입니다.
우리 자신이 절박한 투쟁의 문제를 그 누구 때문에, 그 누구의 성과로 돌아갈까봐 나서지도 않고 미리 주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투쟁에 기권할수록 이 투쟁은 실제 민주당식 요구만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고 민중의 사활적 요구가 빠지게 되면서 지리멸렬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펼쳐지고 있고 앞으로 윤석열 정권의 반민중성이 거세질수록 더 확대될 것이 분명한 투쟁을 방관하고 동참하지 않는 것은 자주성과 계급성으로 포장한 기권주의의 발로이기도 합니다. 또 다시 “죽 써서 개 줄 수 없다”며 당면의 절박한 윤석열 정권퇴진 투쟁에 소극적인 것은 또한 이번 투쟁도 그럴 것이라는 패배주의와 낙담, 체념의 모습입니다.
이 투쟁에서 정권을 퇴진시키며 승리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지 죽도 쓰지 않고, 죽을 쓸 의지, 전망도 없으면서 누구를 주니 마니 지레 논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는 정세를 고정적으로 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윤석열 정권퇴진 투쟁은 박근혜퇴진 투쟁 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들로서는 두 번 정권을 뺏기지 않으려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날 박근혜 퇴진경험을 겪고도 도리어 총공세로 나오는 이유일 것입니다.
미제국주의는 쇠퇴하는 자신의 처지를 모면하기 위해 한층 더한 대북적대시 정책, 대만 분쟁 유도, 남중국해에서의 중국 포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공급망 독점을 통한 중국고립화, 우크라이나 전쟁 연장과 대러시아 포위, 한미전쟁동맹 강화, 일본군국주의화를 통해 일본을 행동대장으로 삼고 한국과 대만을 졸개로 내세워 동북아시아에서 조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로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략적 의도가 현재 윤석열 정권의 정치적 행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의 퇴진과 패배는 미국 의도가 실패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퇴진 투쟁은 죽 써서 누구를 주는 것이 문제 보다도 그 험난한 투쟁을 승리할 수 있는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아주 험난한 투쟁이 될 것입니다. 이 투쟁이 험난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역경이지만 이를 뚫고 승리했을 때 기층 노동자 민중의 정치의식도 훨씬 더 높아지고 사회적 발언권과 힘도 더 세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투쟁의 역동성 속에 기존 정치질서 양당체계가 균열이 생길 수 있습니다. 민중의 새 지도자가 각광 받으며 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투쟁의 한계로 인해 설사 민주당이 권력을 잡는다 하더라도 두 번의 기만을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원칙적으로 분명히 하면서도 보다 면밀하게 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권력의 본질적인 속성상,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퇴진투쟁이 더 거세지고 격렬해질수록 기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민주당과 정치적 대안이 없어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열망하면서도 민주당을 현실적 대안으로 간주하며 동요하는, 그리고 이 엄동설한에 윤석열 퇴진투쟁에 앞장서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대중들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이들을 민주당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합니다.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는 4.27판문점 선언과 같은 남북문제에서 한시적으로 상층통일전선이 가능합니다. 다만 이때에도 자주성이 생명인데, 정상회담만 보지 말고 유리한 국면을 활용해 국가보안법 철폐, 미군철수 평화협정 같은 요구를 전면에 내세웠어야 했습니다.
민주당이 권력을 잡았을 때 정권과의 투쟁을 회피하고 국힘을 일차 투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주성의 상실이자 우편향입니다. 민주당 권력 하에서 국힘지지자들은 일반적으로 말하면 우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파시즘을 향해가는 윤정권에 대해서는 이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정치세력들을 총결집시켜 싸워야 합니다. 민주당도 이 투쟁에 동참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본주의 반대로 정권과의 투쟁을 소홀히 하는 것도 근본주의 태도입니다. 정권퇴진 투쟁 속에서 양당체제의 기만성을 폭로하고 자본주의 문제를 폭로할 수 있습니다.
이 사회가 자본주의니만큼 자본주의와 연결되지 않을 문제는 하나도 없지만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에서 볼 때, 구체적 사안을 멀리하고 무매개적으로 자본의 문제, 신자유주의 문제를 내걸면 도리어 진상규명에 혼란을 초래합니다.
이태원 참사 투쟁도 무매개적으로 자본주의를 내걸 문제가 아닙니다. 권력의 “부작위에 의한 살인”이 이 사건의 성격이고, 이 과정에서 살인정권 패륜정권의 문제를 폭로하고 싸워야 합니다. 임기 초반이라 정권퇴진 투쟁을 머뭇거릴 때가 아닙니다. 임기 초에 파시즘이라는 괴물이 더 자라나서 우리 모두의 목을 조르기 전에 괴물의 싹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이 괴물이 더 자라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을 부를 것인지 소름끼칩니다.
동요와 낙담, 냉소, 머뭇거림, 패배주의를 딛고 윤석열 정권퇴진투쟁에 적극 떨쳐 일어납시다. 더 늦기 전에 전면적인 투쟁의 봉화를 올립시다. 
노동권 말살과 노조법 말살을 막고 노조법 2, 3조 개정 등 노동자의 제반 권리를 쟁취합시다.
윤석열 정권의 법인세 인하와 규제 완화, 상속세 유예로 부자감세를 골자로 하는 노골적인 친기업정책과 바로 그 자본을 위해 기도하는 민중 복지의 전반적 후퇴, 의료 공공성 폐기 기도와 사유화 기도를 막아 냅시다.
전쟁을 막고 분단을 깨고 평화와 통일로 나아갑시다.
세월호,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책임자 엄중 처벌로 살인정권을 단죄합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민주적 권리를 쟁취합시다.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승리가 될 것이겠습니까?
이것만으로도 거대한 역사적 진보입니다.
승리를 마다할 순 없습니다. 노/정/협

이 기사를 총 454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