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화폐론: 마법의 돈나무란 게 있는가?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이 부르주아 주술에 대한 해독제임을 먼저 인식해야만 한다

 

하르팔 브라르(Harpal Brar)
맑스레닌주의영국공산당(CPGB-ML)
2020년 10월 22일(목)
번역: 이한결(학생)

 

‘현대화폐론(MMT)’은 미국 민주당 내 ‘좌파’들과 영국 제러미 코빈 지지자(Corbynistas) ‘좌파’들이 내세우고 있는 최신 유행 중 하나인데 자본주의 근본 문제에 대한 손쉬운 해결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소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를 위해 영국을 재건하자”는 구호 아래서 연설 중인 제레미 코빈. 현대화폐론을 수단으로 낡은 영국자본주의를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수정해서 다시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 유행은 “당신의 지출 계획을 위해 지불할 돈은 어디에서 오는가?”라는 질문으로 그들을 괴롭히는 보수 반대파를 잠재울 수 있는 아주 용이한 무기를 제시한다.
누군가가 ‘마법의 돈나무magic money tree’라고 재치 있게 묘사한 현대화폐론에서, 그 지지자들은 세금을 올리거나 계급투쟁과 같은 사소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구입 품목에 있는 자금 전부를 조달하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정부 지원의 국민건강보험, 무상교육, 저렴한 공영주택, 대규모 녹색에너지 투자 등 ‘좌파’의 요구가 비현실적이고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현대화폐론은 화폐 인쇄기로 간단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현대화폐론은 현대적이지도 않고 이론적이지도 않다. 사실 케인스주의의 실패한 처방의 재탕에 불과하다.
현대화폐론 추종자들은 부주의하고 잘 속는 이들에게 이미 죽은 경제학자 케인스의 이론을 새로운 만병통치약인양 늘어놓으며, 케인즈의 이런 인상적인 말에 아주 잘 사로잡힌다.

“자신이 누군가의 지적 영향력에서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믿는 실무가들도 항상 어느 죽은 경제학자의 노예다. 헛소리를 듣는 미친 당국자들이 몇 년 전의 탁상공론의 글쟁이에 열광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강타했던 최악의 공황(2007~2008년) 이래로 노동계급이 긴축과 (역자: 임금과 복지 등) 삭감을 당하는 동안, 자본주의 세계는 빌 클린턴 시절 미국 재무장관이자 이후 버락 오바마의 고문이었던 래리 서머스의 적절한 용어를 사용하면, “장기침체” 상태에 빠졌다.
이 시기는 성장이 정체되고 투자가 침체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존경받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 종종 변종 케인스주의자들까지도 긴축과 균형 예산 요구와 지난 30년간 대세였던 신자유주의적 합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강력한 세력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불가침으로 여기는 성직자들에 대항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그리고 이 성직자들은 구소련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 이후 감히 그 앞에서 모든 것을 휩쓴 시장근본주의 합의의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모욕함으로써 반격하고 있다.
긴축정책이 실패하고 금리가 마이너스에 달한 상황에서 부르주아 정부가 사용 가능한 다른 도구들은 무엇인가?
세계 자본주의 경제는 값싼 신용과 막대한 정부 부양책의 끝없는 투입으로 사업을 지속해 왔다. 노벨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의 연설에서 솔직하게 시인했듯이 부르주아 경제 사상가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
그는 런던 경제대학(LSE) 청중과의 담화에서 “지난 30년 동안 거시경제학 연구 대부분은 기껏해야 쓸모없었고, 최악에는 해로웠다.”라고 말했다.(“우울한 과학”, 〈이코노미스트〉, 2009.6.11.)

 

현대화폐론이란 무엇인가?

 

이 절충주의 이론에는 수많은 버전이 있으며, 그 신봉자들은 왜곡과 정신훈련을 통해 상대방에 대한 기만을 시도하여 경제사상을 왜곡하고 독자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현대화폐론 지지자들과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공이 정지해 있고, 경기장과 골대를 포함한 경기의 다른 모든 요소가 그 주위를 움직인다고 주장하는 친구들과 축구경기를 보는 것과 같다.”(“현대화폐이론은 비정상인가 아니면 필수적인가?”, 2019.5.14.)고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현대화폐이론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독자 주권의 ‘독립’ 통화를 발행하는 정부는 일정 양의 돈을 찍어냄으로써 어떠한 부채도 상환할 수 있으므로 돈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2. 정부가 무차별적으로 돈을 쓰고 적자재정을 운용한다고 하더라도, 경제가 예비 생산능력이 있는 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3. 정부는 공공지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을 올리는 대신, 먼저 지출하고 경제 수요 관리를 위해 세금을 조정한다.
당연히 현대화폐론은 소부르주아 ‘좌파’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는데, 그것은 즉 정부가 청구서 지불을 위해 항상 돈에 접근할 수 있으므로 장부 균형을 맞추는 데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화폐론 옹호자들의 문제는 화폐의 본질이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화폐가 수행하는 역할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그들은 화폐가 정부의 창조물이며 그 가치가 법정지폐로서의 지위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이 화폐론은 ‘차탈리즘chartalism’으로 알려져 있다.) 국가가 화폐를 만들어내고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이 화폐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화폐가 동의나 합의로 도입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발전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사용된다는 것이다. 이는 “교환 발전의 최고 산물”이다.(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칼 맑스>, 제3장: ‘맑스의 경제 교리’, 1914)
화폐는 소규모 상품생산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본은 먼저 화폐형태에서 나온다.
화폐는 보편적인 등가물, 즉 가치의 구현이자, 추상 노동의 구현이다. 그것은 시장이 상품에 사회적 승인의 표식을 달고 사적 노동생산물에서 사회적 노동생산물로 변형시키는 도장이다.

 

화폐의 기능

 

칼 맑스가 설명했듯이 화폐는 상품 경제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한다. 상품은 일정 금액을 받고 판매되는데, 이 합계를 상품 가격이라고 한다. 이 가격은 화폐로 표현된 가치다. 이 역할에서 화폐는 가치척도로 기능을 한다.
가치척도가 되려면 화폐 자체가 상품이어야 하고 가치를 소유해야 한다. 가치척도역할을 하기 위해 화폐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관념적인 화폐로서 가치척도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상품가격이 책정된 후에는 판매되어야 한다. 즉, 화폐로 교환되어야 한다. 이 교환을 상품유통이라고 하며, 이는 화폐 자체 유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여기서 화폐는 유통의 매개체 또는 상품회전 수단으로 역할을 한다.
유통수단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화폐가 실제로 존재해야 하지만, 그 자체의 가치를 가질 필요는 없다. 따라서 완전한 가치의 화폐(금)는 이 기능에서 대체품이나 그 자체의 상징(예: 지폐, 은 또는 구리 동전)으로 대체될 수 있다. 금에 대한 이들 대체물은 가치가 전혀 없거나 그들이 표현하는 가치보다 훨씬 낮다.

가치법칙은 자본주의 상품생산 운동 법칙이다. 일정한 순간에 유통되는 데 필요한 화폐의 양은 유통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 총계에 의해 정해진다. 대신에 가격 총계는 유통되는 상품 양과 개별 상품의 가격에 의해 정해진다.
또한, 가령 1년 동안 필요한 화폐의 양은 화폐 유통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 유통에 시간이 덜 걸리면 유통 과정에 필요한 화폐가 줄어들고, 그 반대의 경우는 늘어난다.
부(가치)의 저장 기능으로서 화폐는 축적된 부의 유지 및 보존을 쉽게 한다. 지불수단 기능으로서 화폐는 부채를 청산하거나 세금을 내는 데 사용된다. 다시 말해 화폐는 상품 생산과 교환 발전의 산물이다. 맑스가 강조했듯이 화폐는 상품 생산과 교환의 기나긴 발전 과정에서 비롯된 사회적 관계이며 종국에는 자본주의 발전을 이끈다. 화폐는 상품생산에 내재한 모든 모순을 극한으로까지 악화시켰다.
무엇보다도 화폐는 보편적인 등가물로, 가치와 추상노동의 구현체이다. 맑스는 화폐를 “물질적 부의 보편적 상징”이라고 말한다.(자본론, 1867, 제3장)

“교환과 상품생산 발전의 최고 산물인 화폐는 개인적 노동의 사회적 성격, 시장이 결속시키는 다양한 생산자 간의 사회적 유대를 가리고 숨긴다.”(레닌, 앞의 글)

현대화폐론의 지지자들은 상품생산과 교환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주의 본질과 그 안에서 화폐의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화폐론의 옹호자들은 국가가 화폐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정 조건이 있으면 맞는 얘기다. 그것이 할 수 없는 것은 이 화폐가 어떤 가치를 갖도록 하는 것인데, 생산적인 경제의 뒷받침 없이는 화폐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가치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의 적용을 통해 생산에서 만들어지며, 화폐는 그렇게 만들어진 가치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국가가 만들어낸 화폐는 그것이 경제에서 유통되는 가치를 반영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
화폐가 유통되는 모든 상품의 가격 합계를 넘어서는 방식으로 국가가 시장을 넘치게 한다면 인플레이션과 경제 불안정을 야기하게 될 뿐이다.
게다가 현대화폐론의 신봉자들은 국가가 화폐 수요를 창출한다고 잘못 주장한다. 자본주의 상태에서 유통되는 화폐의 대부분(경제 전체 화폐의 95% 이상)은 정부가 아닌 은행예금과 대출을 통해 민간은행에서 만들어진다.
이 화폐는 신용과 대출 형태로 소비자와 투자자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다. 감소하는 소비자 소비나 기업 투자(또는 둘 다)가 이 수요를 고갈시킨다면 화폐 수요도 함께 줄어들어야 한다.
국가는 화폐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이 돈이 사용된다는 보장은 없다. 2008년 자본주의 공황 이후 제국주의 국가들이 시행한 대규모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08년 이후 중앙은행이 경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투자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좀 순화해서 표현하자면 여전히 침체상태에 있다. 생산설비에 대한 투자 대신 엄청난 양의 주식이 주식시장으로 흘러 들어갔고 투기꾼들은 대박을 거둔 반면에 노동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따라서 화폐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요란 것이 분명하다. 자본주의 생산은 오로지 이윤에 의해 움직인다. 자본가는 이익을 낼 수 없다면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화폐론의 지지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원동력인 이윤에 대해 거의 할 말이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경제의 실제 역학을 설명하지 못한다.
현대화폐론 옹호자들의 주장 중 하나는 자체 ‘독자적인’ 명목 화폐를 운영하는 정부가 파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중앙은행이 통화 공급을 늘릴 수 있는 미국과 같은 나라의 정부는 항상 인쇄기에 의존하여 부채를 탕감하고 재정 적자를 메울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독자적’이고 주권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달러를 자국 화폐로 사용하는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정부는 없다. 이 범주에서 제외되는 유로존 회원국들은 재정정책이 유럽 중앙은행의 지배를 받는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피억압 국가들도 제외되며, 이들 중 여러 나라가 제국주의 열강에 빚을 지고 있고 그들의 부채는 달러화로 표시되어 있다.
영란은행이 이자율을 설정하고, 화폐를 발행하고, 자국 통화로 정부에 대출할 수 있는 영국 같은 나라조차도 독립은 망상과 같다. ‘좌파’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여 국유화라는 대규모 의제와 적자 재정 및 완화된 통화정책으로 지급되는 공공 계획은 결국 시장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기관들은 화폐를 다른 나라로 옮기고 자본은 파업에 들어갈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거세지고 통화는 가치가 없게 될 것이다. 이 다음에는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와 투자 유치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도록 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상상이 아니다. 두 가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해럴드 윌슨(Harold Wilson)은 1974년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당시는 수십 년 동안 케인스주의를 채택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불황과 인플레이션이 혼합된)으로 나타나는 위기로 인해 세계 자본주의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었다. 긴축정책과 지출 삭감에 대한 대중들의 거센 반대로 인해 그는 권력에서 쫓겨났다.
그의 뒤를 이어 제임스 캘러건(James Callaghan)이 집권했다. 파운드화 가치하락을 우려하여 새 총리는 굴욕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에 39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신청해야 했다. 이는 당시 IMF에 요청한 최대 금액이었다.
모두에게 알려진 바와 같이 IMF 대출에는 조건이 붙는다. 노동당은 영국의 상위 25개 독점기업을 국유화한다는 약속으로 1974년 선거에서 승리했다. 이제 노동당은 긴축 조치를 추진하는 IMF의 도구 역할을 하게 되었다.

대중의 인식과 달리, 케인스적 합의의 종료를 선언한 사람은 마거릿 대처가 아니었다. 제임스 캘러건 노동당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총리의 펜의 수완, 세금 삭감, 적자 지출로 지속적으로 완전고용이 보장되는 편안한 세상은 사라졌습니다.”(1976)

결국 미국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달러의 지배 -세계 통화로서의 역할-는 미국 자본주의의 힘과 안정성, 그리고 자본주의 세계 전반을 지배하는 지배적인 제국주의 세력으로서의 미국의 지위에 달려 있다. 미국 경제의 힘이 시장에 의해 의심을 받게 된다면 달러 패권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조차도 최근 “달러 지배가 무한정 지속되지는 않는다”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많은 정부들이 더 많은 부채를 짊어질 수 있다. 그것이 부채를 짊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9.5.16.)
결국 이것은 1930년대 초에 “파운드화 가치가 그 우위를 상실”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GDP 대비 부채 비율이 150%를 넘는 영국은 당시 외환위기에 직면했다. 미국 자본주의와 달러가 같은 운명에 처해지지 않을 이유는 없다.
두 번째 사례는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정부는 1981년 케인스주의 프로그램에 따라 선출되어 최저임금 인상, 주당 39시간 근무, 대규모 국유화를 약속했다. 취임 2년 만에 자본 도피와 프랑스 산업 경쟁력 하락으로 미테랑은 180도 방향전환을 하고 긴축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내에서 화폐 독립은 환상이다.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수립, 계획적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통해 자본주의의 족쇄에서 벗어나야만 대중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증가해야 할 것은 화폐 공급이 아니다.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게 자본주의 생산 체제를 끝장내는 것이 우리 자신이 처한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유통기한이 훨씬 지났고 실업, 빈곤, 무주택자, 빈곤, 기아 및 파괴적인 전쟁을 통해 전 세계 수억 명의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엄청난 불행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악마가 성수를 피하는 것처럼 현대화폐론 옹호자들이 꺼리는 것이다. 그들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인쇄했다고 퍼뜨리는 거짓말이야말로 동화 같은 얘기다.

 

자본주의와 공황

 

그 전신인 케인스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화폐론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하에서의 생산문제와 그것을 지배하는 법칙과 대결하는 것을 피한다. 케인스주의와 마찬가지로 현대화폐론 분석은 그 용어를 그러한 돌팔이에게 적용한다면 사회의 화해할 수 없는 두 적대 계급, 즉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관계를 전혀 다루지 못한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적인 모순, 즉 사회적인 생산력과 반복되는 과잉생산 공황을 낳는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을 다루지 못한다.
레닌의 말에 따르면, “거대한 붕괴는 가능하고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강력한 사회적 생산력이 오로지 이윤 창출에만 관심을 두는 부자 집단에 종속되었기 때문이다.”(위기의 교훈, 1901년 8월)
이윤을 위한 경쟁에서 자본주의는 생산의 무제한 확장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자본주의 관계의 움직일 수 없는 장벽과 만난다. 이러한 장벽은 자본에 의한 착취 때문에 광범위한 대중의 소비능력이 제한된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자본주의는 초기부터 과잉생산 공황으로 특징지어졌다. 이것이 프리드리히 엥겔스 하나의 공황에서 다음 공황으로 나아가는 자본주의 경제발전 과정을 설명한 방법이다.

“처음으로 전반적 공황이 발생한 1825년 이래로 산업계와 상업계 전체, 모든 문명화된 민족들과 그들에게 종속된 덜 발전한 민족의 생산과 교환은 대략 10년에 한 번꼴로 실제적인 파탄을 맞고 있다.

거래가 정체되고, 시장이 과잉되고, 팔리지 못한 생산물이 넘쳐나게 되고, 현금은 자취를 감추고, 신용이 두절되고, 공장은 멈추고, 노동자들은 식량을 너무 많이 생산했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해지고, 파산과 강제 경매가 줄을 잇는다.

침체는 수년간 지속되고 생산력과 생산물이 대량 낭비되고 파괴되다가 축적된 대량의 상품들이 어느 정도 값싸게 팔리게 되면서 생산과 교환이 점차로 다시 시작된다.

이 걸음은 점점 속도가 빨라져 속보로 되고, 산업적 속보는 질주로 넘어 가고, 그 리고 질주는 다시 완전한 산업, 상업, 신용 및 투기적인 장애물 경주의 광란적 돌진으로 되면서, 결국 아주 맹렬한 속도로 솟구쳐 오른 뒤에 공황의 수로에 처박히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이 순환을 반복한다.
이러한 위기에서 사회적 생산과 자본주의적 전유 사이의 모순이 격렬하게 폭발한다. 상품유통은 우선 최저한도로 감소한다. 유통수단인 화폐는 유통에 장애가 된다. 상품생산과 상품유통의 모든 법칙이 뒤집혀 있다.

경제적 충돌이 정점에 이르렀다. 생산방식은 교환방식에 반란을 일으킨다.”(프리드리히 엥겔스, 《반뒤링론》, 1877, 제24장)

과잉생산 위기 동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전체 메커니즘은 [자본주의] 자체가 창출한 생산력의 압력 아래 무너진다. 더 이상 이 대량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전환할 수 없다. 이것들은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이 때문에 산업예비군도 일을 못하고 쉬어야 한다.
생산수단, 생계수단, 가용 노동자, 생산의 모든 요소와 일반 부의 모든 요소가 풍부하지만 ‘풍요는 결핍이라는 고통의 근원이 된다.’(푸리에)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것은 바로 풍요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은 먼저 자본으로, 즉 인간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연적으로 자본의 형태를 취하는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은 노동자와 노동자 사이에 유령처럼 서 있다.
그것은 생산의 물질적 수단과 개인적 수단의 결합을 막는다. 그것은 생산수단이 작동하고 노동자가 일하고 생활하는 것을 금지한다.

따라서 한편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더 이상 이러한 생산력을 통제할 수 없다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 생산력 자체가 모순을 끝장내기 위해 더욱 힘차게 전진한다. 자본으로서의 성격을 없애고 사회적 생산력으로서의 성격을 실제로 인정하는 것이다.”(같은 책)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자본주의 공황 동안, “이전의 모든 시대에는 불합리하게 보였을 전염병, 즉 과잉생산의 전염병이 발생한다.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상태로 되돌아간다. 기아와 전면적인 재난의 전쟁이 이 사회로부터 모든 생활수단들을 공급을 중단시키고, 공업과 상업이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왜 그런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너무 많은 생활수단, 너무 많은 산업과 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처분에 맡겨져 있는 생산력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관계들의 발전에 봉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력들은 이 관계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력해져 있어서 이 관계들에 의해 방해받는다. 그리고 생산력들은 이 방해를 극복하자마자 부르주아 사회 전체를 혼란으로 끌고 가며, 부르주아적 소유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부르주아 사회의 상태는 그들에 의해 창출된 부를 포용하기에는 너무 협소해져 버렸다. 그러면 부르주아지는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가? 한편으로는 대량의 생산력을 부득이 파괴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시장을 획득하고 기존 시장을 더욱 철저히 착취하면서 극복한다.

따라서 더 전면적이고 더 강력한 공황을 예비하고, 그 공황을 막을 수단을 감소시킴으로 써다.”(칼 맑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선언》, 1848, 제1장)

현대화폐론주창자들은 자본주의 하에서 만연한 생산조건과 이러한 조건의 불가피한 결과인 과잉생산 공황에 대해 전혀 할 말이 없다. 현대화폐론은 국가를 계급 위에 서 있는 일종의 자비로운 중립 기관인 것처럼 말한다. 그 주제를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든 학생은 모든 국가가 필요하다면 무력으로 피지배계급을 종속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지배계급의 수중에 있는 도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본주의 상황에서 맑스와 엥겔스는 “현대국가의 행정부는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업무를 관리하는 위원회에 불과하다”고 생생하게 표현했다.(같은 책)
대중의 이익을 위해 일할 정부를 수립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현대화폐론에서는 부르주아 국가를 분쇄할 필요성에 대한 암시나, 그 과업을 수행하고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들의 공동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프롤레타리아 국가로 대체하는 노동계급의 역할조차 허망한 일로 볼 것이다.
현대화폐론의 지도적 인물들과 추종자들은 자본가 계급의 권력에 조금도 도전하지 않고 자본주의 경제관계를 없애지 않으면서 ‘변혁적 정책’을 성취하고자 한다. 그들에게 모든 보통의 부르주아 급진주의, 사유 재산과 함께 시장의 무정부 상태는 절대적이고 신성시되며 불가침의 것이다.
현대화폐론의 선두주자인 리처드 머피(Richard Murphy)는 우익 비판자들을 달래기 위해 현대화폐론 지지자들은 “민간 부문을 없앨 계획이 없다”고 보증했다. 또 다른 현대화폐론주의자인 빌 미첼(Bill Mitchell)은 “생산 수단을 장악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대신 “노동계급이 장악하는 것은 화폐 생산수단”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급의 역사적 역할은 화폐 생산수단을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상품생산과 화폐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케인스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현대화폐론 지지자들은 역사적으로 낡은 이 체제를 없애는 대신 자본주의를 구하고 보완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고 있다. 현대화폐론의 강조점은 ‘수요 관리’이며 대공황기에 미국 경제성장을 촉진하기 위한 공공사업에 중점을 두고 전적으로 케인스주의 노선을 내세운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을 모델로 한다.

1935년 5월 6일 미국의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공공사업진흥국Works Progress AdministrationWPA)을 만들고 사업현장을 방문 중인 루즈벨트, 1936년 6월 8일

이 상황을 잘 아는 사람들은 모두 뉴딜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뉴딜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 실업률과 불완전 고용은 계속해서 상승세를 이어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고 수많은 노동자가 군대와 군비 산업에 투입되자 실업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몇 년 뒤에도 노동예비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자본주의하에서 실업이 참을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케인스 자신도 “전쟁 상황이 아니라면 자본주의 민주주의에서 내 주장을 입증할 거대한 실험을 충족할 만큼의 지출은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것 같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뉴딜 정책이 미국, 영국이나 다른 곳에서 더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점은 두말하면 잔소리다.(CLR 제임스, 산업전환Reconversion-1, 뉴 인터내셔널New International, 1945년 3월에서 인용)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과잉생산 공황은 너무나 명백하다. 시장은 철강과 자동차에서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생산물로 넘쳐난다.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실업, 불완전 고용 및 0시간 계약에 시달리는 동안 산업 기업들은 사용되지 않고 있다.

현대화폐론 옹호자들이 산업 능력의 최소 활용과 항상 존재하는 노동예비군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기업이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유효수요 부족’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시 케인스는 자본가들이 ‘사업적 확신’으로 움직인다고 답했다.
자신감에는 물질적 기반, 즉 생산의 수익성이 있어야 하기에, 자본주의 활력에 대한 이러한 기원은 과학이 아니라 마법이다. 자본가가 이윤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자신감이 넘치고 투자와 생산을 열심히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비관과 낙담에 사로잡혀 불황이 발생한다.
충분한 이윤 획득 전망은 활력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약탈적이고 범죄적인 정신을 불러일으킨다. 자본가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무슨 범죄라도 저지른다.

“오지에Augier에 따르면 화폐가 ‘한쪽 뺨에 핏자국이 묻은 채로 세상에 나온다’면,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의 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뚝뚝 흘리며 세상에 나온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자본주의의 피에 굶주린 본성을 드러낸다며 각주에서 한 말이다.

“<계간 비평가Quarterly Reviewer>은 자본이 소란과 분쟁을 일으키고 소심하다고 말했는데 이는 매우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질문을 아주 불완전하게 진술하고 있다. 일전에 자연이 진공을 싫어한다고 말했듯이, 자본은 이윤이 없거나 아주 작은 이윤을 피한다.
적절한 이윤이 있으면 자본은 아주 대담해 진다. 10퍼센트 이윤이 확실하면 어디든지 자본을 투자한다. 이윤이 20퍼센트라면 자본은 활기를 띠며, 50퍼센트라면 훨씬 더 과감해지고, 100퍼센트라면 전 인류의 법을 짓밟으며, 300퍼센트라면 교수형에 처해질 위험이 있어도 마다할 범죄가 없다.
소란과 분쟁이 이익을 가져다준다면 둘 다 거리낌 없이 장려할 것이다. 밀수와 노예무역은 여기에 말한 모든 것을 충분히 입증했다.”(더닝T. J Dunning, 칼 맑스, 《자본론》, 1867, 31장에서 인용)

자본주의의 기본모순, 즉 사회적 생산과 사적 소유 사이의 모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사이의 모순이다. 이 모순은 자본가들이 잉여 가치를 추출하기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기들이 생산하는 생산물을 구입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의 생산능력은 시장이 생산물을 흡수하는 능력을 훨씬 능가한다.
필시, 자본주의는 과잉을 새로운 생산수단에 투자하고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신용에 의존함으로써 이러한 한계를 일시적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미봉책은 “앞으로 더 광범위하고 파괴적인 위기”를 위한 길을 열 뿐이다.(《공산당선언》, 앞의 책)

2008년의 붕괴는 그러한 과정이 정점에 달한 사례로, 케인스주의 정책의 적용과 신용의 급격한 팽창으로 수십 년 동안 지연된 결과 발생했다. 목전에 닥친 공황에 대해 케인스의 추종자들이나 현대화폐론의 추종자들이나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맑스주의만이 공황의 원인을 설명하고 공황 탈출구를 제시할 수 있다.
현대화폐론의 지지자들은 경제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가지려 하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정부가 시장에 명령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속이고, 시장법칙이 어떤 정부나 부르주아 의회에서 제정한 법안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본주의 하에서 정부에 명령하는 것은 시장과 그 법칙이다.
따라서 현대화폐론은 오류일 뿐만 아니라 해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환상을 심어 실망, 환멸, 냉소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만이 우리가 처한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경제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해방을 달성할 것이다. 맑스의 말을 빌리자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먼저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맑스가 이미 150년 전에 이 진리를 그렇게 명확하게 서술했는데도 이를 반복해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노동계급 운동은 기회주의의 철저한 파괴행위로부터 극심한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기본 진리를 다시 말해야 한다. 노/정/협

《민족과 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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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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