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실습생들의 연이은 참담한 죽음에 대하여

_ 빈곤과 죽음의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앞장서서 착취체제를 철폐하자!

* 이 글은 [현장실천 사회변혁 노동자전선] ‘정치선동연단’에 실린 글입니다.

* 사진은 한겨레신문 여수/김명진 기자

 

산업재해를 당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노동자들의 죽음 가운데 비통하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만, 그 중에서도 청년 노동자들, 특히 젊디젊은 고교 실습생들의 죽음은 무엇보다도 더 우리를 사무치게 가슴 아프게 한다. 청춘의 꿈과 희망을 안고 삶을 살아가야할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애통한 마음이야 말해야 무엇 하겠는가?

또다시 발생한, 지난 10월 6일 여수 소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3학년 홍정운 학생의 사망 사례는 안타까움을 넘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홍정운 학생은 당시 여수 요트 작업장 현장실습에서 관광객 음식제공, 안내 업무만을 수행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업체 요구로 잠수작업을 하다가 이러한 참변을 당했다. 업체 사장은 잠수자격증도 없고 2인 1조도 아닌 상태에서 물을 무서워하는 고3학생에게 어두컴컴한 물속으로 강제 잠수토록 해서 버스만한 크기의 요트 밑바닥에 붙은 이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시켰다. 특히 허리에 찬 12키로 짜리 납벨트를 풀지 못해 익사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까지 종합해면 이 사건은 단순하게 업무상 실수나 의도치 않고 터진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수장을 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자본가들이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잔혹한 살인범죄다.

왜 잠수가 필요한 작업에 실습생을 강제 투입시켰을까? 보통 1년에 두세 번씩 이 작업이 이뤄지는데, 원래는 전문 잠수부가 하는 작업이며 이 일은 20만원에서 100만 원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 드는 비용과 억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한 청소년의 고귀한 목숨을 맞바꿔치기 한 것이다.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현실이 실습생들의 처지도 악화시켰다

국가인권위 송두환 위원장은 “우리 사회를 돌이켜 보면 현장실습을 나간 청소년이 사망하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2012년 울산 신항만 공사 작업선 전복, 2014년 울산 자동차 하청업체 공장 지붕 붕괴, 2017년 제주 생수공장 안전사고 등으로 청소년이 현장실습 도중에 생명을 잃었다”며 이러한 죽음에 대해 개탄했다. 인권위는 청소년 실습생들의 죽음에 대해 동정하며 “근본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국가인권위의 동정은 실습생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안 되며 심지어 그 인식은 대단히 잘못되기조차 하다.

국가인권위원회 송두환 위원장은 이 사망 사고가 “현장실습생을 학생이 아닌 저임금 노동자로 취급하고 이들의 안전과 인권을 경시하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도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의 “개선”은 인권위가 실제적으로 노동자 인민의 인권을 해결하는데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공허한 인식에 불과하다. 무한착취가 행해지는 주어진 경제적 사실, 안전 보다는 비용절감이 우선인 자본주의 사회와 그 제도, 법을 개선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그릇된 인식”이 개선될 리가 없다. 그리고 그러한 “안전과 인권을 경시하는” 것은 “우리사회” 모든 이가 떠안아야할 문제가 아니다. 바로 실습생들을 저임금 초과착취 노동자로, 무권리 상태의 노동자로 내모는 자본주의 현실과 탐욕의 자본가들, 지금 떠들썩하게 정권을 연장 또는 교체해보겠다며 요란법석을 떠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같은 여야 정객들, 그리고 이러한 체제를 영속적으로 보전하기 위해 첨예한 이해가 걸릴 때마다 자본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는 자본가 언론들, 그리고 이들 계급들 전체의 이해를 법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으로 감싸 뒷배를 봐주는 법조 카르텔 등이 지탄을 받고 직접적으로 책임져야할 문제다.

송두환 위원장은 “인권위는 이번 사건의 관계기관 등을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시행하고, 우리 청소년들이 더 이상 위험하고 부당한 현장실습을 하지 않도록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실태조사를 시행해 정책•제도 개선 방안 검토 등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실습생들의 중대재해가 있을 때마다 그러한 조치가 부랴부랴 취해지지 않았던 적이 있는가? 그러나 그러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실습생들은 번번이 중대재해를 당하고 참담하게 죽어나가고 있다.

2016년 5월 28일 구의역에서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은성PSD 소속 현장실습생 김군이 스크린 도어를 수리하다가 역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에 사고를 당하고 죽었을 때도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에서도 저마다 2인 1조 작업이 문제고, 외주화가 문제고, 규정위반이 문제라며 연일 떠들어댔다.

공장장님 파렛타이저 혼자 보고 있습니다한 명 더 부탁드립니다.

2017년 11월 9일, 제주 구좌읍 소재의 음료업체 ㈜제이크리에이션에서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 이민호 군 역시 적재업무 중 적재기에 목이 끼여 사망하였는데, 이때도 공장장에게 2인 1조 작업이 필요하다는 메신저를 보낸 것이 알려져서 떠들썩하게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에도 역시 2인 1조 문제니, 인권 경시의 문제니 하는 무성한 대책들이 나오고 있다.

“현장실습생을 학생이 아닌 저임금 노동자로 취급하고 이들의 안전과 인권을 경시하는”이라고 국가인권위원장이 진단했을 때, 이러한 진단은 얼마나 위선적이고 안이한가? 현장실습생들이 학생이 아닌 ‘저임금 노동자’로 취급당했다고 하는데, 대다수 노동자들이 처지가 저러할 진데, 이 보다도 더 무방비 상태인 학생들의 ‘안전과 인권’은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단 말인가?

실습생들뿐만 아니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김용균, 그리고 제2, 제3의 김용균 같은 청년 노동자들이 참담하게 비참한 죽임을 당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수많은 중장년, 심지어 노년 노동자들도 여전히 집으로 퇴근하지 못하고 매일같이 일터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거나 직업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

2011년 8월 말부터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고교 실습생 김군이 스프레이 도장 및 재연마 작업을 하다가 과로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이때 김군은 현장 실습생은 주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지만 무려 주70시간이나 초과근무를 하다가 쓰러지게 된 것이다. 기아자동차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초과노동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실습생도 마찬가지의 노동조건을 강요당하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현장실습생들의 무권리의 노동, 위험천만한 노동은 사실 ‘안전과 인권을 경시’당하고 있는 ‘저임금 노동자’가 겪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없고, 노동경험이 부족하며 노동이 익숙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사고 위험에 더 노출된다. 또한 수습에 대해 그러한 것처럼, 아직 실습생이라는 처지 때문에 종종 최저임금조차도 받지 못하고 근로기준법 위반을 수시로 당하면서도 참고 견뎌야 하는 등 더더욱 무권리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게다가 실습생을 내보낸 학교에서는 취업률에만 신경 쓰며 실습생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도리어 처지를 개선하고자 노력하는 학생들에게 후배들의 취업을 가로막는다며 불이익을 주는 사례도 있었다.

이처럼 실습생 제도 폐지는 과거 아동에 대한 노예적 노동이 폐지됐듯이 당장 필요하다. 그러나 실습생 제도의 폐지는 그 자체로 답이 되지 못한다. 미봉책에 불과하다.

실습생 제도가 폐지된다면, 학교 측은 더 이상 일자리 알선책임을 지지 않을 것이며, 가난한 노동자들의 자식들은 실습생 처지가 아니라 몇 달 뒤 학교 졸업 이후에 다시 실업자 처지가 되어 일자리를 찾아 전전하게 될 것이다. 또 그러한 이유로 열악하고 저임금의 위험한 사업장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또는 경력부재, 학력차별 등의 이유로 또다시 실습생 당시의 처참한 노동조건으로 빨려들어 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 장시간 노동, 위험하고 불안정한 노동이 폐기되고 생존의 권리, 노동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누더기가 된 기업살인법이 제대로 제정되어야 한다. 이윤에 눈이 멀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자본가들에게 거기에 상응하는 중대한 책임을 지게하고 법적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그럴 때 자본주의 사회에 노동자로서 첫걸음을 떼는 청소년, 청년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도 더 나아지게 될 것이다. 비참하게 죽지 않고 지금 보다는 더 건강한 노동과 나은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이해를 전적으로 대변하는 부르주아 정치권, 언론, 관료들, 제도 및 법률들이 지배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체계적으로 박탈하고 무권리를 조장하며 악선전으로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자본주의 착취 체제 하에서 누가 권력자가 되든 노동자들의 처지의 개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목숨 걸고 위험천만한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공장과 기업 운영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당하는 반면, 죽음의 노동, 힘겨운 노동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본가들이 기업과 공장에 대한 절대적 지배권을 발휘하는 자본주의에서, 이윤에 눈이 멀어 사람의 생명을 파리목숨처럼 생각하는 이 체제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들은 착취체제의 개선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해방된 노동을 해야 한다.

빈곤과 죽음의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앞장서서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철폐하자!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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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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