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엘살바도르 친미정부의 학살과 테러

김남기(《반공주의가 외면하는 미국역사의 진실》 저자)

 

반미시위에 자주 참가하는 필자는 집회에서 친미·반공주의자들에게 온갖 욕설과 험담 그리고 야유를 자주 듣는다. 지난 8월 아는 동지랑 집회에 참가했을 때도, 태극기 집회 측 참가자가 와서 온갖 욕설과 비방을 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들었다. 한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미국이 있기 때문에 지금 자유 대한민국이 있다.” 혹은 “6.25 전쟁 때 우리를 도와 자유를 준 미국에 대해 어디 함부로 모욕하냐”는 식이 발언을 무지성으로 쏟아냈다.
당연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지만, 이 소리를 들은 필자는 “그럼 6.25때 미국이 무차별 폭격을 가해서 100~200만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것도 자유를 위한 것이냐”라고 말하고 싶은 충돌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었다. 필자가 [노동자정치신문]에 여러 글을 기고하면서,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작위적인지를 정말 많이 얘기했다. 필자는 앞으로도 미국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리는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꺼리거나 외면하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후예들이 퍼뜨려 놓은 온갖 말이 안 되는 반북·반공주의는 최소한의 상식마저도 부정하는 현재의 사회를 만들었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이 자행한 온갖 제국주의적 폭력에 대해선 자유롭게 언급치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전쟁 당시 미국의 참전을 미화 및 옹호하며, 이에 대한 제대로 된 비판조차 하기 힘들다. 우리가 그토록 북한이 침략이라고 강조하는 한국전쟁에 대한 국내의 주류적인 평가들을 보면, 미국이라는 존재는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미화되고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 미국이 타국에서 벌인 행위들을 보면, 그러한 관점들은 비현실의 극치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광적인 폭력성은 미국 영토와 인접한 라틴아메리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를 자신들의 자본과 기업의 식민지로 만들었고, 부패한 친미 독재자들을 내세웠으며, 보다 자주적이고 사회적 평등을 바라는 지도자나 세력들을 가차 없이 암살하고 죽이고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테러리즘을 자행해왔다. 1970년 칠레에서 국민투표로 탄생한 아옌데 정부가 미국이 사주한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불과 3년 만에 무너지고, 칠레에 17년간의 군부독재가 들어서서 수만 명을 죽이고 수십만 명이 감옥 및 강제수용소에 구금된 역사를 생각해보면, 소위 미국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민주주의나 인권 등은 자신들의 폭력 수단과 자본팽창을 합리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비단 칠레뿐만이 아니다. 과테말라·니카라과·아이티·콜롬비아·아르헨티나·볼리비아·브라질 등 현재 대다수의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미국의 폭력과 자본에 의해 엄청나게 수탈당해온 역사와 독재와 학살 그리고 폭력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작은 국가 엘살바도르(El salvador)를 어떻게 탄압하고 유린했는지 한번 보고자하며, 이를 통해 소위 한국인들이 믿는 민주주의 수호자 미국의 추악하고 더러운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자 한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사이에 위치한 엘살바도르는 니카라과와 마찬가지로 20세기 초반부터 미국의 경제적 지배를 받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엘살바도르는 쿠데타와 친미 군사독재를 경험했으며, 친미 독재에 대한 반대급부로 민중이 이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였다. 1970년대가 되면서 엘살바도르에선 ‘민중조직’이라는 이름의 농민단체와 조합, 노조 등이 생겨났다. 이와 더불어 교회 소속의 성경연구 모임 등이 성장했으며, 이들은 현재 군부 독재에 저항했다. 이러한 이유에는 친미 정부하의 엘살바도르가 극소수의 부유한 대토지 소유자들에 의해 한 세기가 넘도록 운영되어 왔기 때문이었다. 미국과 결탁한 이 상류 계급은 온갖 수단을 다해 빈곤에 시달리는 대중의 반발을 억눌러왔으며, 특히 1970년대 들어 대중의 저항이 거세지면서부터 살인부대를 동원한 불법 살인과 학살을 자행했다.
이렇게 되자 1980년 말에는 좌파 게릴라 조직들과 대다수 가난한 민중이 참가한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 The Farabundo Martí National Liberation Front)가 창설됐다. 이들은 1979년 혁명을 통해 집권한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FSLN: The The Sandinista National Liberation Front)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도 하며, 친미정부의 부패한 계급에 맞서 총기를 들고 맞서 싸웠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엘살바도르의 상황은 혁명을 통해 타파되어야 하는 사회였고, 실제로 이들이 총을 들고 저항할 정도로 엘살바도르 친미 정부와 미국이 자행한 테러와 학살은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부터 미국이 지원한 엘살바도르 친미 정부와 상류 계급들이 어떠한 짓을 벌여왔는지 낱낱이 파헤치겠다.
사실 한국에서 소위 인권 대통령으로 알려진 지미 카터(Jimmy Carter)는 1970년대 당시 니카라과의 부패한 소모사 3대 세습 정권과 엘살바도르의 친미 군사독재 정권을 지원했다. 카터 이후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또한 이들에 대한 군사적 지원과 경제적 지원을 아끼질 않았다. 로널드 레이건은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을 공산주의의 위협으로 간주하고 엘살바도르 우익독재정권에 대한 군사원조를 급격히 늘렸으며, 이에 따라 테러가 동반됐다.
엘살바도르에서는 1980년 3월 7일 발효된 계엄령으로 인해 자유롭게 연설을 하고 집회를 열 권리가 법적으로 중단됐다. 12월 3일 공포된 법령 507호는 증거나 혐의가 없어도 180일 동안 시민을 감금할 수 있는 권한을 군에 부여함으로써 사법체계의 뿌리를 송두리째 흔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1982년 3월에 선거가 시행되기 이전의 30개월 동안, 그리고 1984년에 선거가 시행되기 직전에 수천 명의 시민이 붙잡혀 감금, 고문, 강간, 그리고 살해당했다. 시민들을 억압하기 위해 벌인 계엄령은 지속적으로 발효됐고, 당연히 국민들은 말할 권리를 잃어버리게 됐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1980년 2월 엘살바도르의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에게 자국을 통치하고 있는 군사혁명위원회에 군사 원조를 보내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서신을 보냈는데, 몇 주 뒤에 그 대주교는 대중 앞에서 설교를 하던 중 친미 정부에 의해 암살당했다.


암살 사건 2주일 전, 엘살바도르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자국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을 개시했는데, 최초의 공격은 리오삼풀(Rio Sumpul)의 대규모 학살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작전은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의 군대가 합동으로 벌인 작전으로 최소 6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학살 수법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당시 학살로 죽은 갓난아기들은 정부군이 휘두른 마체타칼에 의해 온 몸의 마디마디가 잘렸고, 마을 여자들은 군인들에게 폭행 및 성폭행 당한 뒤에 강물에 던져져 익사했으며, 이 시신들은 사건 이후에도 며칠 동안이나 동강난 민간인들의 시신들이 강물 위를 떠다니는 지옥이 펼쳐졌다.

당연히 이런 천인공노할 학살은 서방 언론에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으며, 은폐됐다. 심지어 엘살바도르 정부군이 저지른 두 번째 대학살은 더 끔찍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엄 촘스키와 에드워드 허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0년의 억압은 첫 번째 대학살을 크게 능가하는 수준에 달했고 로메로 장군의 통치하에서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지독했다. 그해 말에는 희생자의 수가 적어도 9000명에 이르렀다. 매일 팔다리나 머리가 잘려나간 시신이 쇼핑센터 뒤에서, 부대자루 속에 쑤셔 박혀 흙먼지 나는 시골길에 버려진 채로, 혹은 계곡 낭떠러지에 내던져진 채로 발견되었다.”

즉, 1980년이 끝날 때까지, 최소 9,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이 끔찍하게 학살당한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이 훈련시킨 아틀라카틀(Atlacatl)은 1981년 엘 모소테(El Mozote)라는 마을에서 최소 1,000명 이상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아틀라카틀이라는 조직은 1981년 3월에 미 육군 특수부대 학교가 반게릴라전 전문가 15명을 엘살바도르에 파견함으로써 창설되었는데, 창설된 시점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대대적인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셈이다. 당연히 이들은 미군에게 훈련받고 미군 장비로 무장한 엘살바도르 정부군이었다. 학살당한 희생자 중 358명은 13세 미만의 어린이었던 것으로 알려지며, 희생자들은 정부군이 휘두른 칼에 찔리거나 목이 잘리며 죽었다. 혹은 기관총에 난사당해 죽기도 했다. 마을에 있던 소녀와 성인 여성들은 정부군에게 강간당했다.
이런 학살을 벌인 부대에 대해 심지어 미군 교관들조차 이들에 대해, “유별나게 잔인하며 우리 교관들은 포로들의 귀만 잘라오지 말고 산 채로 잡아오라고 설득하는 데 항상 애를 먹었다”고 증언할 정도였다. 이 아틀라카틀은 1980년대 내내 수많은 마을들을 폭격하고, 민간인에게 총을 쏘거나 물속에 빠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또 다른 수백 명의 민간인을 죽였다. 이들에 의해 희생된 희생자 대부분은 여성과 어린이 그리고 노인들이었다.
<뉴욕 타임스> 특파원인 레이먼드 보너는 실상을 폭로하려고 애썼지만 <월 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한 친 레이건 성향의 신문들은 보너 기사의 신빙성을 맹렬히 물고 늘어졌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학살극을 은폐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줬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인권담당 국무부 차관인 엘리엇 에이브럼스는 이 학살 자체가 공산주의자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비난했지만, 1990년대 내전이 끝난 이후 한 진실규명위원회가 파견한 과학수사대는 이 학살이 모두 미국이 자행한 학살임을 밝혀냈다. 엘살바도르에서 일하던 가톨릭 신부 다니엘 산티아고(Daniel Santiago)가 예수교 잡지 <아메리카>에 엘살바도르 군사훈련의 결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엘살바도르에서는 살인 특공대가 사람을 그저 죽여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베어내어 창에 꽂아 놓고 토지의 경계 표시로 사용하였다. 엘살바도르 재무 경찰도 남자들의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놓았을 뿐만 아니라, 생식기를 잘라내어 시체들의 입에 물려 놓기까지 했다. 방위군들은 여자들을 강간하고 난 다음 자궁을 베어내어 그것으로 그녀들의 얼굴에 덮어 놓았다. 그들은 어린이들까지도 단순히 죽이는 데 만족치 않고, 시체의 살이 뼈에서 다 떨어져 나갈 때까지 철조망 위로 질질 끌고 다니면서 부모들에게 그 광경을 지켜보도록 강요했다.”

엘살바도르 친미 정부는 노동자에 대한 탄압도 빠지지 않고 자행했다. 1979년 후반 이후부터 이들은 대중 및 시민단체를 격감시키기 위해, 노동 파업을 주도한 주동자 수천 명을 살해했으며, 수많은 단체를 붕괴시키거나 지하로 쫓아냈다. 교원 노조의 경우 수백 명의 회원이 살해되면서 그 수가 크게 감소했고, 군대의 점령으로 짓밟힌 대학은 문을 닫았으며, 학생과 전문직 단체는 체포와 살해로 붕괴되었다. 심지어는 AFLCIO(미국노동조합총연맹-산업별회의)의 지원을 받는 농민조합마저 주동자 100명 정도가 1979년과 1982년 3월 사이에 살해되었을 정도다. 사실 미국 지도부는 베트남 전쟁 이후 엘살바도르를 반정부 게릴라를 소탕하는 새로운 전술의 시험 무대로 삼아 미군의 개입을 최대한 줄이면서 민중봉기를 진압하는 전략을 추진했는데, 이에 따라 미국은 엘살바도르 친미 정부의 군대의 규모를 키우고 장비를 현대화했으며, 1983년에 이르러 병력의 정부군 병력의 규모가 5만 3,000명으로 증강됐다.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엘살바도르의 암살단은 군대와 비밀경찰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유롭게 활동했다. 1981년 레이건 행정부로 넘어오면서 엘살바도르 친미 정부에 의한 인명 피해는 13,000명을 초과했을 정도였으며, 1982년 선거가 시작되기 이전의 30개월 동안 살해된 민간인은 매달 평균 7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엘살바도르 정부군의 폭력은 심지어 자기들의 아군이나 동맹세력도 가리지 않았다. 1980년 12월 미국에서 온 수녀 4명이 엘살바도르 방위군에게 납치되어 성폭행당하고 살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한 엘살바도르 정부 측의 만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으며, 1989년 미국으로부터 훈련받은 엘살바도르 육군 대대가 예수회 신부 6명과 가사도우미, 그리고 가사도우미 딸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전쟁 당시 이 희생자들 중 다수가 강간, 고문 신체 절단을 당했는데, 법의 심판을 받은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유일하게 4명의 미국인 여성을 죽인 사건만 미 의회의 압력에 못 이겨 모종의 법적조치가 취해졌다. 심지어는 미국 자유노동발전연구소에 몸담고 오랫동안 미국의 엘살바도르 정책을 지지해온 윌리엄 도허티 (William Doherthy)조차 의회의 한 위원회에서 “이 나라에는 제대로 돌아가는 사법체계가 없다고” 발언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미국의 대외원조를 통해 엘살바도르는 무려 50억 달러 가까이를 지원받았다. 내전은 1992년 멕시코시티 차풀테펙(Chapultepec) 성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종결됐는데, 전쟁 기간 동안 친미정부의 이러한 만행으로 최소 7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학살당했고, 50만 명에 가까운 엘살바도르 국민이 미국 이주를 시도하기까지 했다.
반면 친미정부에 맞서 싸우던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이 저지른 소위 테러는 말 그대로 미미한 것으로 들어난다. 심지어 유엔조차도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이 내전 기간 동안 민간인 살해의 5% 정도의 책임이 있는 반면에, 모든 민간인 살해의 약 85%는 엘살바도르의 정부군과 암살단에 의해 저질렀다고 추정했을 정도다. 1948년 4.3일 제주도에서 일어난 제주 4.3항쟁에서 학살의 90%가 서북청년단과 경찰 그리고 군인들에 의해 자행된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엘살바도르에서 미국과 엘살바도르 친미 정부가 저지른 만행은 천인공노할 범죄고 테러며 학살이었다. 현재 한국의 극우파들이 존경하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런 나치와도 같은 귀축 같은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이에 대해 단 한 번도 반성이나 사죄한 적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자유니 민주주의니를 외치며 이런 파시즘적 만행을 합리화했다. 미국은 항상 그래왔다.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자행한 전쟁범죄에 대해 단 한 번도 반성한 적이 없다.
그러나 이런 테러리즘의 본산이 미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들은 마치 미국이라는 나라가 남한을 북한의 공산주의로부터 구해준 구원자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도대체 이러한 학살 짓거리를 저지르는 미국이 어떻게 합리화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그리고 분명히 말하겠다. 소위 엘살바도르의 학살 만행도 미국이 자유니 민주주의니 민주화니 등의 말을 떠들며 자행한 일이었다. 미국이 자행하는 온갖 색깔혁명과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의 대리전쟁 등은 미국 제국주의라는 큰 틀의 그림에서 해석해야할 문제다. 또한 이로써 미국은 타국에 대해 인권침해니, 침략을 규탄한다느니 할 권리가 단 1%도 존재하지 않음이 역사를 통해 입증된다.
미국은 민주주의의 수호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파괴자이며 테러리즘 국가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그러한 사실을 분명히 인식하길 바랄 뿐이다.

이 글은 노엄 촘스키·에드워드 허만의 《미국 대외정책론》(일월서각, 1985), 《여론조작 – 매스미디어의 정치경제학》(에코리브르, 2006), 노엄 촘스키의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한울, 1997), 하워드 진의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다른, 2008) 올리버 스톤·피터 커즈닉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II》(들녘, 2015) 그리고 비자이 프라샤드의 《워싱턴 불렛》(두번째테제, 2022)을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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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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