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왜 양두구육식 적폐청산론을 내걸고 신적폐 문재인 정권과의 대결을 회피하는가?

1. 문재인 정권은 적폐에 몸을 담그고 입으로만 적폐청산을 외쳤다

2. 부르주아 양당은 적폐를 떠받치는 좌우 대들보다

3.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척결할 전투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1. 문재인 정권은 적폐에 몸을 담그고 입으로만 적폐청산을 외쳤다

 

적폐는 우리사회의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말한다. 적폐청산은 이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척결하여 새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구조적 모순은 자본주의 모순을 말하는 것이고, 역사적 모순은 미제의 지배와 분단, 이를 기반으로 하는 반공주의 체제이다. 이 두 가지 모순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로 통일돼 있는 모순의 두 개의 측면이다.

맑스가 “자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땀구멍에서 피와 오물을 흘리면서 태어났다”며 영국을 비롯한 유럽 자본주의의 탄생사에 대해 폭로했는데, 한국 자본주의 탄생과 성장도 미제국주의의 지배하에 노동자 인민에 대한 집단 살육과 반공주의 백색테러체제와 장시간, 저임금, 무권리한 노동체제에 기반을 한 것이었다. 한국의 역대 국가권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처럼 노골적인 파쇼테러 권력이든, 김대중, 노무현처럼 완화된 ‘민주’권력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인 권력으로 자본의 억압과 착취, 제국주의 지배체제의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유지, 강화하는데 복무해 왔다.

우리사회 노동자 인민의 권리와 삶, 민주주의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것이 있다면 노동자 인민들이 목숨 바쳐 투쟁하고 피땀 흘려 노동했기 때문이다.

문재인정권은 ‘촛불혁명정부’를 자처했으나 그것은 기존 생산관계를 철폐하고 새로운 정치권력을 세우는 혁명을 희화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권은 혁명정부는 고사하고 촛불정부도 아니었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구조적, 역사적 모순에 깊게 몸을 담그고 입으로만 적폐청산을 외쳤다. 문재인 정권은 국내외 재벌과 손잡고 노동존중을 외쳤다. 문재인 정권은 전쟁동맹 한미동맹을 우상숭배하며 민족의 대단결과 평화와 통일을 외쳤다. 문재인 정권은 토지의 사적소유와 독점, 인간의 거주가 목적이 아닌 상품화된 주택의 매매와 투기체제 하에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외쳤다.

그 결과 노동존중은 현실에서는 만연한 대량실업과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산, 저임금, 참혹한 죽음의 일터, 노동3권의 무력화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국회 180석을 가지고도 정리해고법, 파견법, 기간제법이라는 반노동자적 비정규직 양산 상부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외치는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었다.

노동자들의 끔찍한 일터에서의 사망은 ‘죽음의 외주화’ 때문이라고도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도 예외는 아니지만, 무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집중적으로 한층 더한 끔찍한 재해에 빈번하게 노출된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은 ‘죽음의 외주화’를 그대로 둔 채 죽음을 막아보겠다 하니 노동자들의 끔찍한 중대재해는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중대재해 처벌법에서는 전체 사업장의 80프로를 차지하고, 노동자 4명 중 1명꼴로 600여만 명에 해당되며 산재사망 25프로가 발생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은 적용대상에서 빠져버렸다. 작년 중대재해 80%가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했는데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이들 사업장에서 법적용은 3년 유예했다. 이 말은 곧 3년 동안 50인 미만 사업장들에서 노동자들은 중대재해로 죽어나가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법에 대해서조차 자본가단체들은 “과도한 처벌로 기업에 부담을 가중한다”며 ‘보완 입법’을 요구해 왔다. 손경식 경총 회장은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법이 만들어져 기업규제 법안이 무분별하게 많이 생기는 경향이 있다”며 “정부가 이 문제에 신경을 써달라”고 조세 부담 완화, 부당 노동행위 시 사용자 형사처벌에 대한 보완 입법, 반(反)기업 정서 해소 사업 협조 등을 함께 청와대에 건의했다. 청와대 이호승 정책실장은 “법 제정 과정에서 경총이 전달한 요청사항을 잘 알고 있다”며 “시행령 제정 등의 과정에서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언론기사를 보면 중소기업연합회에서는 집단소송법 제정 반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반대, 주 52시간제 한시적 유예와 함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건네자 청와대에서는 여기에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노동자들의 일터에서의 끝없는 죽음의 행렬과 특히 2018년 청년 김용균의 참혹한 사망 이후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요구가 터져 나왔고, “지난 국회에서 논의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2020년 10만 국민동의운동의 힘으로 국회 논의를 강제했다. 이어진 산재재난 피해가족들의 농성투쟁, 비정규직들과 유가족들의 단식투쟁, 노동자들의 민주당사 점거투쟁, 시민들의 동조단식으로 2021년 1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의결되었다.(권미정 김용균재단 사무처장, “2명 이상이 죽어야 적용? 중대재해처벌법이 위태롭다 [주장] 7개 경제단체들이 제출한 ‘보완입법안’이 위험한 이유”, 오마이뉴스, 21.04.06.)

‘보완 입법’? 노동자 민중의 대대적인 투쟁으로 어쩔 수 없이 최소한 수준으로 제정된 법률을 자본가들이 반격으로 무력화 하는데 사용되는 악법이다. 자본가들의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입법은 노동자 살해요건을 완화하여 합법적으로 노동자를 대량 살해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천인공노할 범죄적 요구이다.

“시행령 제정 등의 과정에서 잘 살펴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이 범죄적 보완 입법 요구와 함께 시행령은 법률개정의 효과를 무력화 시키는 권력의 상투적인 수법이다. 시행령은 “어떤 법률을 실제로 시행하는 데 필요한 상세한 세부 규정”으로 명령의 한 종류인데, 이는 행정부의 대통령, 총리, 장관 등이 제정할 수 있다. 그런데 부르주아 체제에서 헌법에 명시된 인민의 일반적인 권리는 유보조항이나 상충되는 법률로 박탈당하고,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국가보안법 같은 사실상 무소불위의 상위법으로 무자비하게 침해당한다. 게다가 시행령으로는 법률개정 효과를 무력화 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권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2021년 현재 최저임금은 8천 720원에 불과하다. 2018년 최저임금 16.4프로 인상이 2019년 10.9프로, 2020년 2.9%로 사실상 실질최저임금 후퇴로 된 것은 자본가들이 대거 반발에 직면하여 최저임금보완입법, 즉 산입범위확대로 최저임금인상을 무력화 시키고 급기야 역대급 최저한도의 인상, 실질적 삭감을 했기 때문이다.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조차도 노동자들과 산재사망가족들의 처절한 투쟁 때문인데 자본가들의 요구에 맞춰 다시 정권은 노동자살해요건을 완화하고 주 52시간제조차 한시적 유예를 검토하고자 한다. 자본가들의 이러한 요구는 즉시 6개월 탄력근로제 시행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권이 처음에 내걸었던 노동존중 구호가 무력화 되는 과정을 보면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구조적 모순이 어떻게 완강하게 지속되는지, 정권은 어떻게 그 구조적 모순이 유지되는데 필요한 자기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권력은 부르주아 독재체제를 영구적으로 재생산하기 위해 존재하는 자본의 집행위원회라는 본질적 규정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문재인 정권은 자본의 구조적 모순의 해결자이기는 커녕 구조적 모순의 유지, 강화의 집행자였다. 노동존중이라는 구호는 이러한 권력의 본질과 성격을 은폐하고 노동자들을 혼란케 하여 저항을 막아보고자 하는 가림막에 불과했던 것이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을 거치면서 노동자들은 매번 정권에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그러면서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고 최악이 아닌 차악을 강요받아왔다.

역사적 모순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다. 북의 핵무력 완성과 제재에도 굴복하지 않는 자력갱생의 승리라는 요인도 있지만, 문재인 정권은 2018년 4.27판문점 선언과 9.19평양선언을 통해 남북의 민족대단결 원칙에 합의하고 남북 교류와 소통, 평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데 노동존중 구호처럼, 남북이 합의한 선언들은 이제 사실상 폐기됐다. 문재인 정권이 미국 눈치를 보며 이 선언의 이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사드배치를 시작한 것은 박근혜 정권이었지만 사드발사대 추가 도입을 완료한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문재인 정권은 남북의 화해와 민족단결을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북에 대한 제재에 앞장서고 한미연합훈련을 지속하고 수십조의 전쟁무기를 수입하고 북을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존속시키고 있다. 이로써 오늘날 남북관계는 파탄상태에 이르고 있다.

검찰개혁은 노동존중, 남북관계 개선이 파탄에 이르자 여전히 자기들이 진보적이며 개혁적인 정권이라고 위장하기 위해 내걸었던 마지막 개혁 요구다. 그런데 검찰개혁은 인민의 삶을 개선하는 것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권력기관 내부의 싸움으로 전락했다.

 

2. 부르주아 양당은 적폐를 떠받치는 좌우 대들보다

 

다당제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 부르주아 독재 양당지배체제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허울 좋은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다. 정권교체는 계급지배체제의 교체가 아니라 계급지배자들의 교대에 불과했다. 그 교대는 실제로는 2교대 체제이다.

보통선거제는 과거에는 민중의 투쟁의 성과였지만 지금은 누가 몇 년에 한 번 민중을 지배할지를 둘러싸고 펼치는 민중기만책으로 전락했다. 1번 권력의 위기는 체제의 위기가 아니라 특정 순번의 위기고 2번 교대권력은 그 위기를 무마하는 돌려막기에 불과한 것이다.

구조적, 역사적 모순이 적폐라면 양당지배체제를 통해 모순의 해결이 제어, 통제되면서 적폐는 지속, 심화 되어 왔다. 국민의힘은 구적폐이고 민주당은 신적폐이다. 전자는 구악이고 후자는 신악이다. 이 둘은 적폐를 떠받치는 좌우 대들보에 불과하다. 그 둘이 차이가 있다면 국민의힘은 노골적이고 뻔뻔한 강도들이라면, 민주당은 사기를 치며 교묘하게 강도짓을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적폐를 구조적, 역사적 모순으로 이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적폐청산에 앞장서야할 진보정당, 진보세력들이 국민의힘만을 적폐로 규정하면서 신악, 신적폐인 현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 대한 폭로와 투쟁을 회피하고 심지어는 적극적 옹호자로 나서는 개탄스러운 일들이 벌어졌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이 권력을 잡고 심지어는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는 구조적, 역사적 모순의 해결을 가로막고 있는 상황에서도 오로지 국민의힘에 대해서만 비판하며 정권을 비호하기에 앞장섰다.

국민의힘을 먼저 청산해야지만 나중에 민주당도 비판할 수 있다는 논리로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을 옹호한 결과 진보정치세력들은 독자성과 자주성을 상실하고 민주당의 친위세력이 되버렸다. 그런데 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의 입지강화는 이들의 예상과 달리 이번 서울, 부산시장 선거처럼 다 죽은 것 같았던 국민의힘을 부활시켰다.

“야당 복 타고났다”는 문재인 정권은 아무리 잘못을 해도 국민의힘의 반동적 행태들 때문에 반사이득을 취했는데 이제는 여당 복 때문에 “막대기만 꽂아 놓아도 승리하게 된다” 할 정도로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압승을 거두게 되었다.

문재인 정권은 세월호 진상규명 하나만 제대로 했어도 국민의힘을 해체시켰을 것이다. 천안함 침몰의 진실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 개선 하나만 제대로 했어도 분단체제 하에서 종북몰이를 통해 유지되는 국민의힘을 치명적으로 약화시켰을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말할 것도 없다. 박근혜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의 간첩조작과 북 식당여종업원 유인납치 진상규명을 비롯해 사법부의 통합진보당 해체 공작 전모와 전교조, 쌍용자동차, KTX승무원 재판거래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일망타진했어도 권력기구는 상당부분 민주화 되고 현 국민의힘은 치명적으로 약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두 당은 현 권력기구를 지배수단으로 삼고, 자본의 지배와 분단체제 하에서 기생하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정당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권과 국민의힘은 서로 싸우고 대립하는 체하면서도 반인민적 입장으로 자본주의의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수호하는데 있어서는 양자가 보완관계이자 공생관계이다.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의 반노동성, 반민중성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진보정당과 진보정치 세력들은 동시에 대중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이로써 적폐를 청산시킬 주체인 진보정당은 문재인 정권과 같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는 세력이 되거나 무기력하고 존재감 없는 존재로 전락돼 버렸다. 이는 적폐청산을 내걸고 실제로는 적폐를 온존, 강화시키는 양두구육식 적폐청산론이다.

인민대중들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을 대신할 정치적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고 누구는 아예 국민의힘을 찍고, 누구는 그래도 국민의힘은 지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민주당을 찍는 것으로 양당체제의 포로로 전락했다. 이것이 아니면 누구는 기존 부르주아 정치에 대한 환멸과 냉소에 사로잡혀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정치적 기권을 하는 것으로 양당체제의 영속화에 기여하게 되었다. 문재인 정권에 대한 극렬지지자들이 ‘대깨문’이라고 하여 조롱당하고 있지만, 사실 이들도 정치적 대안과 전망이 없는 가운데 양당체제 속에서 국민의힘 보다는 민주당이 더 낫다는 차악론에 사로잡혀 선택지를 상실한 정치적 피해자들에 불과하다. 결국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 사회의 구조적, 역사적 모순은 더 깊어졌다.

 

3.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척결할 전투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잘못된 통일전선관의 문제인가?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근원적으로 척결시킬 전략적 전망의 부재 때문인가? 둘 다다. 통일전선의 기초는 자주성과 독자성인데 잘못된 통일전선관은 부르주아 정당의 한 축을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우경노선을 낳았다.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근원적으로 척결할 혁명적 전망이 없는 의회주의 진보정치세력들은 부르주아 체제 내에서 기존 양당체제의 들러리, 부속물이 될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전 세계에서 사민주의 정당이나 사민주의 정당이나 다를 바 없이 타락하여 기존 체제를 떠받치는 지주가 되었던 유로꼬뮤니즘 공산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 호주 노동당, 그리스 사회당이나 치프라스의 급진좌파연합을 보더라도 이들은 보수당 대 노동당 새 양당체제로 체제의 들보로 전락한지 오래다. 게다가 천황제를 지지하고 반북주의에 빠진 일본 공산당의 모습을 보라.

약간의 변동은 있겠지만 문재인 정권이 사실상 30%대의 지지를 받으면서 ‘레임덕’에 빠지고 있다. 레임덕은 부르주아 정치의 고유한 현상이다. 이는 부르주아 정치가 항상 민중에 대한 환상과 기대를 고조시켰다가 다시 그 반노동자적이고 반민중적 본질이 드러나고 민중들의 환멸을 사게 되면서 통상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통과의례가 되었다. 비극적인 죽음으로 ‘노무현 신화’가 유포, 조장되며 까맣게 잊고 있지만, 이명박의 등장은 노무현에 대한 대중적 기대가 분노와 실망으로 바뀌며 ‘샐러리맨 신화’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레임덕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정치가 영속화 되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를 대신하는 정치적 전망이 없는데다, 인물의 교체로 새로운 정치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환상이 매번 조장되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언론은 새로운 권력자들을 부각시키면서 이 환상과 기대를 유포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결합” 운운하며 전태일 열사를 모욕하고 부르주아 정치인과 부르주아 정치와의 연합으로 통합진보당이 탄생됐다는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이 만나 통합진보당이라는 새로운 몸을 하나 받았다. 통합진보당은 꽁꽁 얼어붙은 겨울공화국의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광화문(光化門)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의 빛을 발하며 광장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40년 전,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과 `한미FTA 폐기하라! 민중생존권 보장하라!’고 숨가쁘게 외쳤던 허세욱 열사의 싸늘한 주검을 삼킨 그 광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피눈물과 피울음을 토하며 얼음 꽃으로 태어났다. 노동자가 인간임을 확인시키며 자신의 몸을 민중의 제단에 바친 분과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며 반칙 없는 사회를 꿈꾸었던 분이 이제 땀이 존중받는 자유롭고 평등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결의에 찬 출발을 선언한 통합진보당의 길을 열어주었다.”(정호 <민주노동당 환경위원장>, “전태일과 노무현의 만남”, 광주드림, 2011.12.07.)

“`한미FTA 폐기하라! 민중생존권 보장하라!’고 숨가쁘게 외쳤던 허세욱 열사의 싸늘한 주검”은 노무현 정권의 한미FTA추진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권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던 전태일 열사의 외침”을 외면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에 대해 “분신을 투쟁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나갔다”며 열사들을 짓밟았다. 고임금론, 노동귀족론으로 노동자들을 매도하고 비정규직법 개악으로 비정규직을 확산시켰다. 김대중 정권이 정리해고제, 파견제를 입법화 했다면,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법 개악으로 비정규직을 대거 양산했다. 노무현 정권은 한미동맹을 숭배하며 이라크 파병을 했다. 이명박은 노무현의 반노동자성, 반민중성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한미 FTA는 노무현의 작품이고 이명박은 그 충실한 계승자다. 노무현이 살아있다면 투자자 국가 소송제 등 독소 조항의 삭제 또는 변경을 요구할 수 있었을까. 분명한 것은 그가 대통령으로 있을 때도 이런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때는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돌아보면 노무현이 직면했던 가장 큰 과제는 설비투자와 고용 확대를 통한 내수 창출이었다. 노무현의 패착은 양극화의 딜레마를 재벌 대기업과 시장의 힘으로 넘어서려고 했다는데 있다.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건 위선이고 자가당착이다. 이명박의 FTA를 반대하려면 먼저 노무현의 FTA를 넘어서야 한다.”(이정환 기자, “노무현의 FTA와 이명박의 FTA는 과연 다른가 [기자수첩] 노무현을 넘어서야 이명박을 이긴다”, 미디어오늘, 2011.10.29.)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킨 뒤 들어선 문재인 정권도 임기 말에 접어드는 시점까지 노무현 정권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제 문재인 정권의 반노동자성, 반민중성, 반통일성, 반민족성, 민주성이 극에 달하자 누구는 이재명에 지지를 보내고, 누구는 윤석렬에게 지지를 보내며 다시 끝없이 부르주아 정치의 노예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재명이든, 윤석렬이든 미제국주의와 한미일 전쟁동맹에 맞서 투쟁할 수 있겠는가? 미군철수를 단행하고 남북의 대립과 분단체제를 끝장내고 통일로 나아갈 수 있겠는가? 재벌을 위시로 한 자본가들의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권을 통제, 몰수할 수 있겠는가? 정리해고제, 파견제 같은 노동악법을 철폐하고 노동3권을 온전하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실업을 척결할 수 있겠는가? 무상의료, 무상주택, 무상교육, 무상보육 같은 무상체제를 수립할 수 있겠는가? 거주용이 아닌 수십 채, 수백 채 주택을 보유한 투기자들을 일망타진하고 몰수하여 무주택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는가?

코로나19를 명목으로 발생하는 소상공인들의 파산과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막고 벼랑 끝에 내몰린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겠는가? 탐욕에 빠진 거대 건물주들의 월세와 인민들에게 멍에와 같은 은행부채를 탕감할 수 있겠는가? 국내 농업을 보전하고 농민들을 해외 자본으로부터 보호하여 인민들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보장할 수 있겠는가? 여성 차별과 억압을 근원적으로 없앨 수 있겠는가?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가정보원 같은 파쇼기구들을 분쇄할 수 있겠는가? 조중동 같은 극우파쇼 언론을 박살내고, 한경오 같은 소부르주아 신문의 위선을 폭로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조족지혈의 정책으로 우리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이 있겠는가? 문재인을 대신해서 누가 되든 부르주아 정치인들한테 이러한 한국 자본주의의 적폐, 즉 구조적, 역사적 모순의 청산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진보정당, 진보정치세력들도 이러한 요구를 걸고 투쟁하지 않으면 기존 부르주아 양당체제의 부속물이 될 수밖에 없다.

전략적, 전술적으로 심각한 오류에 빠졌던 그 동안의 잘못된 노선과 행보를 청산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적, 조직적 독자성을 분명하게 세워야 한다. 의회주의가 아니라 혁명적 사상으로 무장해야 한다. 노동자 민중이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정치적 전망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우리 안의 국가보안법인 반공주의, 반북주의를 척결해야 한다. 혁명적 사상으로 한국사회의 구조적, 역사적 모순을 과학적으로 통찰하고 새로운 사회 건설에 대한 현실적 계획과 근본적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양당체제에 갇힌 인민대중들에게 새로운 정치적 희망을 주어야 한다. 기존 진보정당이 의회주의, 민주당 비판적 지지노선을 벗어나 전투정당으로 근본적으로 쇄신하도록 투쟁해야 한다. 이와 함께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기치로 한국 운동진영의 분열상을 극복하고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할 전투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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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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