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학술회의 임명 거부문제1)가 제기한 과제 학원 내에 저항해야 하는 조직의 사상을

일본학술회의 임명 거부문제1)가 제기한 과제

학원 내에 저항해야 하는 조직의 사상을

 

일본활동가집단<사상운동>(월간신문) 2020년 11월 1일

후지와라 아키라(藤原 晃) 교육노동자

번역: 김다은(리츠 메이칸대학교 학생)

 

교육의 부자유

고등학생이 (대학)진학을 희망하고 있으면 공부를 잘하는지 하고 싶은지는 두 번째고 먼저 가정 수입이 넉넉한지 부터 확인한다. 먼저, 100만 엔은 첫 해 납입금(입학금과 수업료)으로 합격 발표 1, 2주 내에 입금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후로 매년 수업료만으로도 60만 엔부터 150만 엔이 필요하다. 그 후에도 다양한 교재나 실습비 그리고 수업료는 매년 올라가기 시작한다. ‘장학금’이라는 명목의 고리(高利)교육 대부금(은행론) 또는 엄격한 조건이 붙는 수학지원금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르바이트에 정력을 쏟을 수밖에 없지만, 학습시간은 줄어든다. 그리고 돈이 없어 고생하지 않는 주변 친구와의 격차를 볼 수 있다.

졸업할 때에는 수백만 엔의 대출금을 짊어진다. 대학졸업시의 취직활동의 어려움은 수십 개 회사에 취직시험을 보는 대학생의 모습이 자주 보도되고 있는 대로이다. 그것을 모두 혼자서 감당해야 한다. 한편 고등학생의 취직활동이라면 고등학교가 직업안정소의 파견기관이 되어, 교원이 (학생에게) 회사와 연락조정, 구인표 보는 방법, 회사견학, 이력서 쓰는 방법, 면접 보는 법 등을 하나하나 지도한다. 그리고 대부분 전원이 정규고용을 얻는다.

본인이 진학을 희망하고, 그것에 합당한 학력이 있어도 진학을 포기하게 하는 것은 당연히 많이 있다. 그처럼 잔혹한 선택을 권장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나도 이전에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은 익숙해져 버렸다. 그것은 ‘자유의사’을 무시하는 인권무시의 지도인 걸까? 돈이 없으면 교육이나 학습의 자유도, 더 배우고자 하는 ‘학문의 자유’ 등도 없는 것이다.

학문의 부자유

그러면 운이 좋아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경우는 어떨까? 내가 대학원생이었던 20년 전은 ‘산학공동’이라는 말을 자주 듣기 시작했던 때였다. 한 친구는 기업과의 ‘공동연구’를 졸업논문으로 했지만, “좋은 실험결과가 나오면 특허 절차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험은 중지’, ‘실험데이터는 회사 소유로 된다”고 그 기업이 파견한 ‘연구원’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비싼 학비를 지불하고 기업 하청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푸념을 늘어놨다. 기업에게 있어서 연구개발부문은 밑 빠진 독이다. 실험결과가 히트상품으로 연결되는 것은 극히 소수이고 특허신청에서 경쟁상대에게 패하면 방대한 투자가 수포로 돌아간다. 그러나 대학에 맡기면 그 위험성을 줄일 수 있다.

당시 나는 (낡은)기숙사폐지 반대 운동을 한창 할 때였다. 전국에서 진행되었던 자치기숙사폐지 배경에는 정부와 문부성(文部省)의 학생운동 말살, 교수회의 유명무실화가 있었다. 그것은 ‘대학자치’를 파괴하고 대학을 장악하려고 하는 일본 자본가 계급의 요구로 진행됐던 것이다. 그리고 ‘경쟁적 환경 속에서 개성이 빛나는 대학’(1999년 대학심의회답신))의 결과 계속에 이어서 국립 학교 설치법의 개악(1999년), 특히 국립대학의 독립행정 법인화(2004년)에 의해 “대학 자치“를 내걸고 저항할 수 있는 대학내부조직은 거의 무너져(스스로 팔아넘긴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버렸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대학으로부터의 학생 공간이나 게시판 등이 축소, 철거되며 학생운동 이외에서도 자주적 활동 전반이 축소되었다. 2004년 이후 국립대학대한 운영 교부금은 매년 약 1%씩 삭감되어 1조2400억 엔에서 1조 100억 엔이며 이 15년간 약 1400억 엔이 삭감되었다. 더욱이 국립대학의 약 90개 학교 중 겨우 2곳 학교(도쿄대학과 교토대학)로 전교부금의 13%가 집중되고 있다.

사립대학 운영 보조비 실태는 더욱 심각하다. 국립대학과 비교하면 한 학교당 평균 계산하면 국립의 약 35분의 1도 되지 않는다. 이 30년간 대학본부 교원은 약 40%부터 25%까지 삭감되고 교수, 준교수는 매년 100개 이상 항목이 조정되어 급여가 정해지게 되었다.

젊은 연구자의 고용형태는 대부분 비정규직이며 2, 3년 후의 신분보장도 없다. 당연, 대학에 남는 학생, 원생은 매년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발표논문의 양과 질이 같이 떨어지며, 인용되는 빈도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曽根康弘)2) 장례식에 모두 조기(弔旗)를 달자고 문과성(文科省)에서 온 ‘통지’에 대해 국립대 82개 학교(대학원대 제외) 중, 56개 학교(약 70%)가 조기(弔旗)나 반기(半旗)를 달았다고 한다. 나카소네는 임시교육심의회(臨教審)를 만들고, 교육 민영화론을 앞장서 제창하면서 현재 대학이 망가지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그 장례식에 반기(半旗)를 걸었던 것에서 ‘대학자치’의 비참한 실태가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학문의 자유’는 사실상 붕괴되고 있다. 이번 일본학술회의에 대한 스가정권의 공격은 그 예산이 연간 10억 엔 정도라고는 하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앞에서 말했던 상황 아래에 있는 일본의 학자, 연구자들에 대한 협박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일본학술진흥회(JSPS)’에는 연간 약 2600억 엔이, ‘과학기술진흥기구(JST)’에는 연간 1000억 엔이 주어지고 있다. 임명거부 같은 명목으로 연구비의 ‘효율화’가 보다 가속화 될 것이다. 그러나 ‘산학공동’은 일반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군학공동(軍学共同)’3)은 생각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방위성(防衛省)의 조성제도는 지금은 약 100억 엔이 예산화 되어있지만, 대학의 응모는 적다고 한다. 군대만해도 기업 특허경쟁의 비밀성과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 일본학술회의 사건에서, 세계적 시장경쟁이나 군비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것에 대한 일본자본의 초조함이 보인다.

우리들의 약점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학문의 자유’란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천황제 국가의 군국주의체제 하에 있어서 교육기관이나 연구기관이 국가권력에 의해 장악되며, 그를 통해 대자본에 장악되며, 전쟁정책의 수행에 절대적인 역할을 짊어져왔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국가권력이나 대자본으로부터의 교육, 연구기관의 독립이 선언되었다. 그것이 전후 열망하고 있었던 ‘학문의 자유’ ‘교육의 자유’다. 일본학술회의만이 아니고 대부분의 여러 학회, 학술단체가 지속적으로 학문과 군대의 결합에 대해 반대를 해왔던 것이나, 이번처럼 학자에게 국가권력에 추종을 강요하는 노골적인 책동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학자나 단체가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올리는 등 이 전쟁협력에 대한 반성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 한편에서 일본학술회의 임명거부에 대한 반대 논조에는, 헌법의 곡해, 국회무시의 부당성, 그리고 “학문 자유를 지키자”가 주요한 논조가 되고 있다. 그 주장은 옳지만 앞에서 말했던 대학이나 교육현장의 절실한 현실과 대조해보면 애매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70년 전, 일본학술회의가 발족할 당시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전쟁정책, 침략전쟁에 일본의 학자들이 추종했던 책임을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방향이 확인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 통절한 반성은 “이제까지 우리나라의 과학자가 추종해온 태도에 대해서 강하게 반성하고…”(1949년 1월 [일본학술회의의 발족에 즈음하여 과학자로서의 결의표명])라고 하는 애매한 표현에 멈춰버렸다.(자전적전후사[自伝的戦後史] 하니고로[羽仁五郎]) 이 태도의 애매함이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들의 약점으로 극복할 수 없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주적인 방침을 유지하려면, 국가로부터 일절 자금지원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위해 도움이 되는 연구(여기에서는 군사연구 대해서)를 왜 솔선해서 하려고 하지 않는 겁니까.”(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위선자들에게])라든지, “학문의 자유와 독립을 외치기에 앞서 먼저 금전적으로 자립해라’(하시모토 토오루橋下徹 10월 16일 트위터)4) 라는 말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 현상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수익자 부담’을 자명하다고 강요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부자유를 받아들이게 하고 있는 층은 그 부자유함을 가져오는 원인이나 그것에 저항하는 수단부터도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생존이 위협당하고 자유로부터 배제되었던 사람들의 눈에는 ‘자유’의 주장이 특권으로 보인다. “당신은 자유를 말할 수 있는 입장이네”라고.

‘학문’이란 무엇인가를 논할 생각은 아니지만 적어도 ‘특별한 존재’의 부정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편으로 지배계급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특별한 존재’를 조작한다. 그것이 왕이나 신(神), 그와 비슷한 것이다. 과학의 역사가 종교와의 투쟁, 국가권력에 대한 저항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근거다. 즉 ‘학문의 자유’, ‘인민의 자유’다. 오늘날의 좌파의 주장 대부분은 ‘학문의 자유’와 ‘인민의 자유’를 함께 맺고 있지 않다. 즉 눈앞에 있는 계급 대립을 인식할 수 없는 약점을 적으로부터 떠밀려지고 있는 것이다. 지배계급과 그 대변자들은 우리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의 과제는 바른 것을 말하는 것만이 아닌 반동을 뒤집을 만한 현실적인 역량을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을 것인가이다. 70년 전의 반성의 애매함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때 ‘학문의 자유’가 일부 학자만의 자유라고 하는 인식은 부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에서 말할 것처럼 학교, 대학의 억압적 현실과 투쟁을 외쳐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원죄적 착취와 빈곤과의 투쟁을 외쳐야 한다. 이를 위해 학원 내에서 저항할 수 있는 여러 단체가 다시 조직되어야 한다. 저항운동을 통한 내부 논의해 의해 약점을 의식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리고 논의는 우리들의 의지의 문제이다.

역자 후주

1)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학자들을 학술단체 <일본학술회의> 회원으로 임명하는 것을 거부한 것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판 블랙리스트라 불리며 스가 일본총리의 취임 후 첫 시험대다.

2) 자민당 출신으로 1982년 11월부터 5년간 일본 총리로 재임한 정치인, 1987년 국철 분할 민영화를 강행해서 일본사회당을 해체했다.

3) 일본은 군국주의 시절 대학교가 전쟁 수행에 가담한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다. 2017년 교수들은 방위성의 ‘군학공동’ 압력에 전후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대학 및 연구 기관은 평화적 목적임을 밝히며 반대서명을 했다.

4) 일본 변호사이자 전 오사카시장을 역임하고 전 유신회의 대표였다. 재일조선인 지방참정권 반대, 헌법 개정과 핵무장에 찬성 하는 등 우익적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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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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