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주관세계에서는 노동운동가지만 객관세계에서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복무하는 주구들이다

노동의 이름을 내걸고 중립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의 앞잡이 매일노동뉴스가 좌담회를 열었는데 그 제목부터가 참으로 괴이하다.

[긴급좌담회-임금동결론 논쟁] “노동이 가진 강력한 무기 ‘임금’ 쓰러져 가는 노동자 위해 쓸 때”(2020.06.22)

매일노동뉴스 편집진들의 구미에 제일 잘맞는 이러한 괴상한 주장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담대한 임금양보’를 주장하는 이남신 씨의 발언에서 따왔다.
이남신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이남신 : 임금동결 주장이 재벌과 자본에 면죄부를 준다는 비판은 아팠다. 면죄부라는 주장은 얼토당토않다. 재벌자본 책임은 대단히 무겁다…
재벌자본을 압박하는 총파업도 나쁘지 않다. 그렇게 안 될 바에는 노동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임금이다. 이것은 양보가 아니다.

궤변 중 최고의 궤변이다. 이남신에게 노동이 가진 무기는 파업도 아니고 투쟁도 아니다. 이남신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임금이다.’ 그런데 이남신은 이 무기를 담대하고 선제적으로 건네주자고 한다. 그럴 때만이 자본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남신은 이것이 양보가 아니고 오해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남신 : 오해가 있더라. (임금동결 주장에) 최저임금 동결이냐고 묻던데, 절대 아니다. 최저임금은 다른 문제다. 오히려 최저임금은 적정 수준으로 오르거나 위반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저임금 동결에 무게가 실려선 안 된다.

이남신은 이처럼 궤변론자에다가 지극히 주관론자다.
이남신은 정규직의 임금양보가 최저임금 동결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최저임금은 적정하게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남신의 주관적 생각도 아니고 선의 여부도 아니다. 이남신 씨의 주관과 선의는 비정규직 노동자, 취약한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선의와 동정심과 연민과 ‘연대감’으로 가득차 있을런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남신 씨는 ‘선의로 제안된 임금동결’이고, ‘임금동결이 초점이 아니라 사회연대가 초점이다’라고 완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자신의 제안이 ‘자기 현안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의 힘을 빼는 논의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런 취지로 주장한 게 절대 아니다’며 ‘그 부분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강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남신 씨의 주관적 제안에 대해 재벌들과 자본의 나팔수들인 조중동을 위시로 한 자본가 언론들은 어떻게 반응을 보이고 있는가?
이들 자본과 자본의 무리들도 이남신 씨의 선의에 선의로 답하고 있는가? 천부당 만부당하다.
재벌들은 담대하고 선제적 임금양보를 대신 총고용 보장을 하라는 요구에 대해 선의로 답하지 않았다.
한석호는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선제적 제안에 대해 당황해 한다고 하지만 이러한 발상은 지극히 유치하고 주관적이다.
자본은 임금삭감 외에 최저임금 인상이나 총고용 보장에 대해서 사회적 대화 의제로 올릴 생각이 꿈에도 없다.
게다가 자본과 자본가 언론에서는 궤변적 주관론자들의 선제적 양보 제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정규직 정리해고를 남발하고 있고 경제위기니 코로나위기니 운운하며 인상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다.
현실, 특히 노동자와 자본가와의 문제는 개인적 주관 보다는 첨예한 이해관계가 우선적으로 작동한다. 뿐만 아니라 법칙이 작동하는데 특히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는 노동자에 대한 정리해고와 임금삭감과 복지의 축소 같은 적대성이 강제적 지상명령으로 첨예하게 작동한다.
노동이 죽어야 자본이 산다는 살기어린 경제적 법칙이 작동하여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게 된다.
자본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면, 투쟁으로 자신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절대로 양보도 상생도 하지 않는다.
이남신, 한석호 식 주관과 선의는 결국 객관적으로는 탐욕에 빠진 자본가들의 이해에 복무하게 된다.
이남신의 완강한 거부와 상관 없이 이미 ‘싸우는 노동자의 힘을 빼는 논의가 되’면서 전열을 무너뜨리고 있다. 앞으로 사회적 대화 운운하며 무쟁의 무파업 노사상생 임금양보가 판칠 것이다.
투쟁전선이 무너지면 최저임금은 더 삭감될 것이며 비정규직 정리해고는 더 만연할 것이며 빈곤은 더 확대될 것이다. 반면 자본은 노동운동 내 자본의 앞잡이들이 파놓은 양보의 길을 따라 더 공세를 취하고 탐욕을 채울 것이다.
이남신과 그 자본의 선제적 무리들은
주관과 그 주장의 현실에서 객관적 작동을 철저하게 ‘혼동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관의 세계에서 당신들의 노동운동은 객관적으로는 자본의 착취에 복무하는 자본운동이다.
이미 당신들의 주관은 현실에서 파괴되고 있다. 더불어 당신들의 자본과의 상생과 협조의 세계도 여지없이 폭로되고 파괴당할 것이다.

신간
<한국사회와 변혁의 길>이 인터넷 서점 인터파크, 예스24, 알라딘에 등록됐습니다.

* 사진: 매일노동뉴스

이 기사를 총 421번 보았습니다.

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