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가며 세상을 이끄는 진보 대학?
유금문(한신대 사회복지학과)
“시대를 앞서가며 세상을 이끄는 진보 대학” 한신대학교 포털 전면에 걸린 슬로건과 “참여와 도전정신으로 더불어 가는 실천지성인 양성”이라는 학교의 목표는 과거 독재정권과의 치열한 투쟁의 결과인데.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한신대는 소위 ‘진보의 요람’이라고 불린다. 정확히는 그랬었다.
2015년 온갖 비민주적 학사개편과 독단적 행정으로 대학을 갈등 속에 밀어 넣었던 당시 총장이 한 교회 목사로 ‘야반도주’하면서 총장직선제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염원은 더욱 커졌다. 지난한 투쟁의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은 실제 ‘총장후보자 추천 투표’를 실행하기도 했고, 총장서리를 기독교장로회총회(이하 기장총회)에서 인준을 부결시키며 총장직선제를 위한 발판을 만들어나갔다. 또한 이사회를 모두 개편하는 기독교장로회총회의 결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2017년 연규홍 현 총장은 이미 기장총회에서 그 적법성을 박탈당한 이사회가 강행하는 비민주적인 총장선출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민주주의에 대한 학내 염원을 짓밟았고 결국 총장으로 선출되었다.
이에 반발해 30여 명의 신학과 학생들은 자퇴서를 제출하였고, 3명의 학생이 16일 동안 단식투쟁을 전개했는데, 연규홍 총장은 취임 직전 학생들과의 협의 과정에서 직접 ‘임기 중 총장 신임평가’를 내걸었다. 이후 18년부터 19년까지의 투쟁은 총장신임평가 시행을 위한 투쟁이었다. 18년엔 부총학생회장이 약 1주일간 단식, 복지국장이 18일간 고공·단식농성을 전개했고, 19년엔 5명의 학과 대표자들이 12일간 단식, 2명이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 집행부가 5일간 단식·단수, 10명의 학생과 1명의 교수가 총 18일간 단식을 전개했다. 학생들에게 취임 이후 연규홍 총장의 독단적 행보는 ‘죽음으로의 행진’이었다.
10인의 학생과 1인의 교수가 18일간 단식을 끝낸 지 2달이 조금 넘은 시점, 또 다시 장공관 앞에 천막이 세워졌다. 2020학년도 1학기에 진행되고 있는 사회복지학과 신임교원 임용 절차에서 학과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후보가 3배수인 면접심사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에 대하여 학교당국에 점수공개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것이다. 연규홍 체제에서 대학의 기본인 교육권의 기반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실 한신대가 ‘시대를 앞서가며 세상을 이끄는 진보 대학’이 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2015년 총장이 사임하고 학내 구성원이 민주적으로 선출한 총장후보자가 이사회에서 통과되었을 때와 이사회가 비민주적으로 선출한 총장서리가 기장총회에서 부결된 직후가 그 시기이다.
당시 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한신대 구성원들이 요구한 ‘총장직선제’는 선도적이었으며, 2:1:1(교수:학생:직원)의 투표 반영비율은 현재까지도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비율이다. 이사회가 학내 구성원의 민주적 의사를 짓밟은 후 꺼져가던 민주주의의 불씨는 연규홍이 본인이 직접 비판했던 이사회의 총장선출과정에 참여함으로써 사라졌다. 지금의 한신대는 그저 매 학기 갈등과 분란이 이어지는 비민주적인 경기도내 많은 대학 중 하나에 불과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임용과정으로 다시 돌아와서, 사회복지학과 학생회와 동문회는 학과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은 후보가 면접심사에도 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데, 한신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교원 신규채용 시행세칙에 따르면, 적성심사위원은 내부심사위원과 기획처장, 교무처장, 대학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학과의 우수한 평가가 묵살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학교 측 위원의 점수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학칙에 따르면 “학생들의 평가의견을 참조하도록 한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이러한 결과는 학생의 평가 역시 참조되었는가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게 한다.
점수에 관한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중요한 것은 교육의 현재 교원임용 절차에서 주체인 학생의 의견이 ‘참조’된다는 것인데, 이는 학생의 의견이 참조 될 수도, 참조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이 시점에서 대학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데, 대학은 배우고자 하는 학생과, 가르치고자 하는 교수가 있음으로서 존재한다. 따라서 임용 역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교육의 주체인 학과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의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불렸던 교육과 연구기관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하고 급변하는 자본주의 노동시장에 필요한 노동자를 양산하는 기관으로 바뀌었는데, 그러자 대학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자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융복합 교육’을 하는 공간이 되었을 뿐이다. 위의 연장선상에서 ‘교육서비스를 구매’하는 대학생들은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발언권과 결정권을 잃어가고 있으며, 대학의 재정을 책임지는 소비자로 전락하고 있을 뿐이다.
총장직선제 투쟁, 임용투쟁 등 학내 민주주의 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에 잠식되어가는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본래적 가치를 회복하는 과정이라는 점과 학내 민주주의의 확립이 곧 대학의 자본주의화에 대항할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2015년 말과 2016년 초 한신대에서 제안되었던 총장직선제는, 비록 학생 반영비율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2016년 말 이후 전 대학 학생사회를 아우르는 사회적 의제가 되었고, 선도적인 몇몇 대학에서 실제 시행되고 있다. 앞으로 대학에서의 중요한 투쟁은 학사운영 전반에서 학생이 교육의 주요한 주체로서 서고 직접 개입하는 것이다.
현재 한신대학교 학생들의 주요 투쟁인 총장신임평가와 임용절차에 대한 투쟁은 각각 학내 최고권력에 대한 직접 평가하는 직접민주주의와 학사운영에 대한 개입이라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현재 한신대에서 전개되고 있는 투쟁이 외화 되어 전 대학 학생사회에서의 투쟁으로 번지는 신호탄이 되길 희망한다.
이 기사를 총 333번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