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스딸린 거짓선전에 대한 반격에 나선 국제공산주의자들

사회주의에 대한 착취자들의 거짓말을 꿰뚫어보는 법을 제대로 배웠을 때라야 비로소 노동자들은 자기 자신의 힘 속에서 용기를 낼 수 있다.

영국맑스레닌주의공산당(CPGB-ML)

번역: 김규상(캐나다 교포)

https://thecommunists.org/2020/01/08/news/international-communists-attack-anti-stalin-lies-ussr-socialism-media/

요제프 스딸린은 15세 이후 평생을 인민들을 위해 복무하기 위해 쉼 없이 일했다. 제국주의자들은 그를 혐오하고 그가 남긴 유산을 두려워한다. 착취 없이 번영하는 평화로운 삶을 건설하는 데서 노동자계급을 이끈 이가 바로 스딸린이기 때문이다.

2019년 12월 15일 벨라루스(Belarus) 민스크(Minsk)에 모인 여러 공산당과 노동당들은 다음과 같이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

반스딸린주의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현시대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한 사상적 조건이다

우리 공산당 및 노동당 대표들은, ‘반스딸린주의에 대한 단호한 대응은 현시대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한 사상적 조건이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요제프 스딸린 동지 탄생 14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회의를 위해 영웅도시 민스크에 모여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I

요제프 스딸린은, 레닌이 죽고 나서, 그의 충실한 제자로서, 쏘련공산당과 프롤레타리아국가를 이끄는 최고지도자가 되었다. 이후 29년간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였던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을 레닌의 과학적 원칙에 따라 지도했다.

그는 쏘비에트인민들이 인정한 지도자였다. 그의 지도 아래 쏘련에서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진짜 사회주의가 수립되었고, 그것은 공산주의로 가는 첫 단계였다. 즉, 승리한 사회주의를 뼈대로 삼은 헌법인 스딸린 헌법이 채택되었고, 노동자들을 노예로 삼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의 지원을 받은 히틀러 독일과의 싸움에서, 그리고 제국주의 일본과의 싸움에서도 영웅적으로 승리했다. 전쟁 후에는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국가경제가 회복되었으며, 쏘련은 공산주의 건설을 향한 이행작업에 들어갔다.

스딸린의 지도 아래, 성공적인 사회주의적 발전에 이르는 과정에서의 주요 장애물들이 제거되었다. 즉, 쏘비에트정부가 취한 조치들을 거부하고 이에 항거하고자 했던 유해하고 적대적인 세력들은 물론이요, 쏘비에트국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던 트로츠키주의자들과 우익변절자들의 활동도 색출, 진압했다. 민족주의에 맞서는 단호한 투쟁을 벌였고, 평화와 사회주의를 위한 반제국주의투쟁의 과정에서 국제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강력한 지원이 이루어졌다.

스딸린의 활동으로 인해 사회주의의 국제적 기틀을 마련하기 위한 조건이 창출되었고, 지구상에서 자본주의가 더 이상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책무들을 완강히 견지한 채 스딸린은, 이전 시기의 모든 착취사회에 존재했던 상황에 반대하여, 사회 전반의 활동을 과학적 토대 위에서 관리하면서 사회주의사회의 창조를 이끌었고, 공산주의로 가는 이행기를 현실 속에 구축하는 길을 쏘련사회에 이론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적 요건에 걸맞은 맑스레닌주의적 과학을 발전시켰다. 또한, 그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업적을 이뤘다.

– 사회주의 기본 경제법칙의 기초를 정식화하고, 과학적인 계획 및 ‘스딸린경제’의 원칙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의 물질적, 기술적 토대를 창출했다. ‘스딸린경제’ 원칙에는 사회적 생산력이 증가할수록 끊임없이 봉급을 올리고, 생산비용이 감소할수록 가격을 낮추는 것을 사회적 지향으로 삼고 있는 것도 포함된다.

– 집단농장의 확대, 그리고 협동조합 재산의 국가재산화 (이를 위해 초기엔 기계트랙터사업소와 기타 국가기관을 복원시켜야 했다)를 토대로 해서, 한 사회가 공산주의로 이행해가면서 어떻게 점진적으로 상품생산, 시장, 그리고 각 계급을 없애는가를 보여주었다.

– 쏘비에트사회의 반혁명적 퇴행 가능성을 확실히 차단하기 위해, 쏘련공산당의 지도 아래 최고수준의 민주주의로서의 노동자계급독재를 발전시킴으로써, 공산주의적 공공자치정부로의 이행의 길을 확정지었다.

– 인류를 파멸에 이르게 할 능력을 갖춘 대량살상무기를 완비한 제국주의자들 때문에 오늘날 특히 중요한 문제지만, 스딸린은 인류를 위해 전쟁을 없애는 유일한 방도를 제시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전쟁 필연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제국주의를 끝장내야 한다.”

따라서, 스딸린의 이론과 실천을 두고 맑스레닌주의의 스탈린식 발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응당한 일이다. 맑스레닌주의가 발전해가던 이 시기에 목표로 삼은 것은, 자본가 착취와 전쟁을 종식시키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계급의 혁명적 승리였다.

II

이 모든 것들을 살펴보면, 왜 제국주의자들이 맑스레닌주의를 상대로 투쟁하면서, 스딸린에 대한 인신공격을 했는지, 스딸린이 지도력을 발휘하는 기간에 이루어진 사회주의 건설 작업들을 부당하게 비방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런 범죄적 정책에 대해 니키타 흐루시쵸프도 일조했는데, 그는 1956년 제20차 쏘련공산당전원회의에서 이른바 “개인숭배” 문제를 제기했다. 그 이후로, 반스딸린주의자들은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스딸린의 이론적 유산들을 상대로, 그리고 쏘련 사회주의건설 과정에서의 스딸린식 지도력에 맞서 싸워왔다.

인류의 미래는 바로 이 싸움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즉, 인류는 사회주의혁명을 통해 제국주의를 분쇄하고 그 족쇄를 깨뜨리든가, 아니면 제국주의 체제의 전반적 위기가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핵무기 재앙으로 파멸할 것이다.

전 세계 제국주의를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고, 세계 최초로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이었던 <위대한 10월 혁명>을 지속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을 살펴보면,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에 충실했던 제3국제공산당(1919-1943)의 정치노선을 계승하는 새로운 국제 프롤레타리아 조직으로서의 국제공산당이 그 관건임을 알 수 있다.

이제 그런 방향에서 준비작업을 적극적으로 벌여나가야 하는데, 각 나라에서 자국의 자본가계급을 상대로 투쟁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일국 차원의 활동과, 세계금융독점자본가들을 상대로 투쟁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연대활동을 결합시켜나가는 조직을 꾸려야 할 필요가 있다.

III

스딸린에 대항하여 싸우면서 반동세력들은 개인숭배를 스딸린 탓으로 돌리는 비열함을 보였고, 스딸린이 근로인민들 속에서 최고의 존경을 받으며 권위를 유지했던 사실에는 침묵했다. 인민들은 기억한다. 스딸린의 활동과 그의 지도력에 힘입어 쏘련의 노동자들과 전 세계 노동자들, 그리고 민족해방운동이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스딸린 탓으로 돌리는 이른바 ‘대규모 정치적 탄압’이라는 것으로 스딸린의 모든 활동을 비방중상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과 지주계급의 독재를 전복시킨 프롤레타리아계급독재가 쏘비에트권력에 저항하는 적들과의 싸움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반쏘비에트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부하린주의자들, 블라소프(Vlasov, 역주: 1944년 11월 14일 히틀러 권력 돌격대장이라 불리는 괴링이 주도하여 스탈린 쏘비에트 권력을 전복하고 새로운 러시아 건설을 목표로 러시아해방군을 만들었는데, 나찌는 적군의 고위급 군인이었던 블라소프를 지휘관으로 임명했다.), 반데라(Bandera, 역주: 나찌와 협력해 우크라이나 독립을 외치며 반쏘비에트 활동을 전개했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조직이 파시스트 지도자로 유태인들과 폴란인들을 학살한 범죄자다.) 등과 같은 쏘비에트 조국의 배신자들, 중앙아시아의 바스마치(Basmachis, 역주: 러시아 혁명 직후부터 중아아시아에서 벌여진 반쏘비에트 무력투쟁을 전개했던 민족적 이슬람주의 운동이다), 그리고 발트해 연안 국가들(역주: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인 소위 ‘숲속의 형제들’(forest brothers) 같은 쏘비에트 조국의 배신자들, 그리고 쏘비에트정부가 추구하던 정치적, 경제적 발전 노선을 악의적으로 거부하던 세력들, 그 모두가 그런 적대세력이었다.

그 어느 나라도 스스로를 지킬 권리를 갖는다. 그리고 쏘련은 특히나 많은 적들을 두고 있었다. 유해하고 적대적인 세력들을 쏘비에트 국가기관으로부터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창조적인 승리나 군사적인 승리, 그 어느 것도 달성할 수 없었기에 숙청작업이 필요했다.

부당한 억압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법 집행기관 등을 포함한 국가기관 내에 파고든 트로츠키주의자들, 그리고, 쏘비에트권력에 손상을 입히거나 붕괴시킬 목적으로 암약하던 반쏘비에트 경력의 사냥꾼들이, 고의적으로 획책한 것이었다. 그런 부당함이 생겨난 것은 또한 정치적으로 무지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리고, 명예욕으로 국가기관에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에 의해서였다.

스딸린 시절, 그런 부당행위들을 색출, 근절시키며, 억압받은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바로 쏘비에트국가였다. 더러운 반역행위에 대한 책임을,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상대로 승리한, 스딸린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시도는, 세계금융자본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세력들의 사악한 전술이다.

쏘련에 대한 국내외 적대세력들은 그런 억압의 전체적인 모습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 스딸린이 근로인민대중의 적들을 공정하게 처벌하는 것을 지지했으며, 모든 부당한 억압을 단호하게 물리쳤다는 사실을 대중들이 알지 못하도록 고의로 감췄다.

또한 트로츠키주의를 패퇴시키는 데서 스딸린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 그리하여 부당한 정치적 억압이 사라지도록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 역시 감춰졌다. 또한, 바로 스딸린의 문제제기를 통하여 쏘련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었다는 사실 역시 감춰졌다.

스딸린의 적들은, 쏘련이 히틀러의 침략을 격퇴하기 위한 ‘준비가 부족’했다는 주장을 펼치며 비난했다. 하지만, 쏘련인민들이 야수적 나찌세력에 맞서 싸워 이긴 것을 보면, 독일을 물리치기 위한 준비가 유례없이 강력한 것이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그런 준비 속에 포함되는 것으로는, 쏘비에트국가의 급속한 산업화, 농업의 집단화, 문화혁명, 전 영역에 걸친 군대의 강화, 실질적 반혁명 세력 퇴치 등이었다. 이것은 집단주의적 계급이 주도하고, 도덕과 정치가 통일된, 인민들 간 우애 있는, 시민들이 열성적으로 노동과 사회활동을 하는, 노동자계급 전위들과 근로대중이 결합된 요새로 구축된, 사회주의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현대식 무기로 붉은군대를 재무장시키는 정책, 그리고 쏘련 동부지역에서의 군수산업의 발전 등 구체적인 조치들이 긍정적으로 기여했다.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쏘련은 방어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었고, 쏘련을 겨냥한 독일과 이태리, 그리고 그들 뒤에 버티고 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세력들을 상대로 형성된 뮌헨전선을 분할할 수 있었다.

서부 벨라루스와 벨라루스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간의 통일, 그리고 동시에 서부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쏘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간의 통일로 인해, 이들 국가의 국경이 서쪽으로 이동했다. 루마니아가 불법적으로 점령했던 베싸라비아(Bessarabia)와 쏘련 간의 통일, 그리고 핀란드와의 새로운 국경선 설정 또한 쏘련의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스딸린이 제국주의국가들 간의 모순을 능숙하게 이용했다는 것, 그리고 타협을 위한 레닌의 전술을 계승한 것 또한 특별히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 덕분에 소위 ‘민주적’ 제국주의국가들이 쏘련과 함께 반히틀러연합에 참여해서 히틀러진영의 국가연합에 맞서 싸우게 되었던 것이다.

스딸린의 지도 아래에서 쏘련이 전쟁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다는 주장은, 객관적인 사실, 즉, 나찌세력에게 동조하는 유럽의 집중적 공격을 쏘련이 패퇴시켰다는 사실에 비추어보면 터무니없는 것이다.

스딸린이 쏘련에서 전체주의 체제를 수립했다고 사람들은 비난한다. 그러나, 그렇게 스딸린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쏘련사회가 관료화되는 것, 그리고 그 결과 자본가계급이 되살아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스딸린이 노력했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스딸린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비판 및 자기비판을 증진시킴으로써, 공산주의 건설의 모든 면에서 노동자들의 활동을 강화하고자 했다.

쏘련에서 적대적인 계급들을 제거함으로써 1936년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헌법에서 스딸린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정치적 지위를 보장하도록 했는데, 이는 일찍이 그 유례가 없던 것이었다. 이 헌법에서는 쏘련의 모든 시민들이 선거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고, 당, 노동조합, 공산주의청년동맹, 집단농장 등의 구성원을 대의원후보로 추천할 권리를 부여했다.

공산당의 지도 아래에서의 이런 조치들로 노동자계급 독재를 확고히 하고, 국내에서의 반동화와 국외로부터의 위협으로부터 쏘비에트 권력을 보호할 수 있었다.

IV

스딸린 사후에, 공산주의를 향한 운동의 과학적 경로를 수정하고, 그 길을 정반대로 변경하고, 모든 부문에서 무위로 돌려버린 사람들은, 스딸린의 반대자들이었다.

그런 기회주의로 인해 사회주의가 왜곡되기 시작했고, 자본주의적 관계가 복원되고 민족주의가 되살아나게 되었으며, 뒤이어 사회주의 상부구조가 붕괴하고 쏘련이 패망하게 되었다.

스딸린의 이론적, 실천적 유산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전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던 시대의 맑스레닌주의다.

따라서, 스딸린에 대한 비방에 맞서 노동자 대중의 의식을 바로잡는 것은,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 공격에 맞서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서, 쏘련, 동유럽 국가들에서의 반혁명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 위한, 그리고 각 나라별로, 전 세계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을 성공시키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조건이다.

오늘날 스딸린이란 이름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사상과 실천의 선구자들인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과 함께, 정통 맑스레닌주의의 반열에 나란히 서있다.

쏘비에트인민과 전세계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위대한 지도자, 스딸린 동지에게 영광과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맑스레닌주의와 스딸린의 유산이여 영원하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최신 과학기술의 성과물들을 이용하고, 국가에 의한 생산수단의 전일적 소유 하에서 공동번영하며, 고도로 조직화되고 창발적인 집단노동에 의해 계급과 사회적 착취가 없는 사회를 일궈내는, 전 세계 공산주의의 승리 만세!

공산주의만이 인류를 핵으로 인한 파멸로부터 구할 수 있는, 그리고 인류를 진보와 번영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스딸린에 대한 공격을 물리치고, 맑스, 엥겔스, 레닌, 스딸린의 대의를 위한 투쟁을 이어나가자!


회의에서는 다음 사항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했다.

– 몰도바 대표단의 제의에 따라, 회의는, 많은 나라에서 쏘비에트시대의 기념물들을 파괴하는 것, 그리고 공산주의 상징물들을 금지하는 것에 반대하는 문서를 조직위원회가 작성하여 출판하도록 지시했다.

– 불가리아 대표단의 제의에 따라, 회의는, 제국주의와 파시즘에 대항하는 국제적 전선을 형성하는 것을 지지하고, 히틀러 독일이 이끈 유럽파시즘에 대한 승리 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들을 적극적으로 개최할 것을 요구했다.

– 벨라루스 대표단의 제의에 따라, 회의는, 국제적 인민운동인 ‘불멸의 연대’를 지지하고, 1941년 나찌 독일과 그 위성국가들이 쏘련을 공격한 날인 6월 22일을,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파시즘에 대한 투쟁의 날로 선포하고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것을 지지했다.

– 터키 대표단의 제의에 따라, 회의는, 반스딸린주의에 대한 투쟁의 기조를, 그 세부적인 방법과 관련한 경험들을 종합하는 것을 포함하여, 계속 발전시켜가기로 결정했다.

– 우크라이나 대표단의 제의에 따라, 회의는, 공산주의 건설을 위한 스딸린의 계획, 특히 가장 중요한 경제문제에 대한 계획을 계속 발전시켜나가기로 합의했다.

– 회의는, 스딸린을 충실한 계승자로 두었던 레닌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토론했다.

영웅도시 민스크에서 2019년 12월 15일.

회의 조직위원회 /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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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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