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민족과 계급에 대해
이범주
* 한국에서 민족문제 해결은 변혁을 위해서 중요한 문제이다. 다소 논란이 될 부분이 있지만 저자의 깊은 사색과 역사의식이 담겨 있는 이 글은 민족문제를 다양한 관점으로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 (편집자 주)
원래 ‘민족’은 좌파에게 그리 달가운 말이 아니었다. 자본주의가 형성되던 시기의 자본가계급은 자신들의 이윤실현을 위한 배타적인 영역으로서의 국민국가를 만드는 데 민족을 활용했다. 혈통개념으로서의 민족은 국가 간 경계를 넘어 존재했다. 그리하여 당시의 맑스는,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했던 것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계급을 위한 국가의 한계를 넘어 국제적 연대를 모색했다. 주로 유럽적 조건에서 생긴 상황이다.
또한 민족은 엄존하는 계급분열을 은폐하는 기만적인 개념으로 활용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때 각국의 자본가들은 노동자들더러 적대관계에 있는 인접국의 공격에 대응하는 애국전쟁에 참가할 것을 선동했다. 이 기만적인 애국심 선동에 넘어가 노동자들은 인접국의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과 살육전을 벌였다.
맑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을 민족 혹은 국가의 이름으로 거부한 것이다. 이로 인해 서유럽 사회주의 운동은 개량화 되었고 제2 인터내셔널은 붕괴되었다. 반면, “전쟁을 내전으로!!” 슬로건을 내걸고 노동계급으로 하여금 전쟁에 참가할 대신 국내의 자본가 계급을 타도할 것을 주장한 러시아 레닌이 이끄는 사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했다.
한편 독일과 일본 이탈리아의 극우 파시스트들은 민족 사이에 우열을 두고 우월한 민족이 열등한 민족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하며 민족의 이름으로 이웃나라를 침략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진보 좌파세력에게 있어서의 ‘민족’은 대외적으로 매우 공격적이고, 내부적으로는 국가에 대한 추상적 환상적 공동체 이미지를 유포시켜 노동계급의 계급의식을 마취시키는 기만적 개념으로 보았다. 좌파는 ‘계급’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면서 ‘민족’개념을 배타했다. 반면, 자본가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우익 정치세력은 ‘민족’을 근거로 계급 분열을 은폐하는 애국심을 선동하려 했다. 그러므로 유럽적 상황에서 ‘민족’은 전통적으로 우파, 보수주의자들을 위한 용어였다.
그런데 이 ‘민족’이 자본주의 체제의 생산력이 극도로 발달된 제국주의단계에서는 의미가 달라지게 된다. 특히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인해 식민지로 전락한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민족’개념이 가해자의 입장에 있는 유럽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된다. 유럽의 ‘민족’이 공격적이고 계급모순을 은폐하는 성격을 지닌다면, 식민지 처지에 있는 나라들에서는 그 ‘민족’이 ‘정의로운 저항’,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군사적 영토적인 직접적인 지배를 벗어났지만, 정치, 경제적인 영역에서 간접적으로는 여전히 예속상태에 있는 신식민지 처지에서는 민족이 갖고 있는 그 성격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예속은 반항을 부른다. 신식민지 상태의 나라들은 민족해방의 이름으로 예속에 여전히 저항하고 해방을 모색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미국을 생각한다.
미국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맹주가 되어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그리고 극동의 한국을 식민지적으로 지배하는 극강 제국주의 국가다. 미국이 가는 곳마다 전쟁과 내전으로 인민들의 피가 강을 이뤄 흘렀다. 전 세계를 지배영역으로 삼으려는 미제국주의에게 ‘민족’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민족은 거북하다. 미국과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내매판집단을 거부하는 자주적 세력이 ‘민족’의 이름으로 그들의 지배를 거부하고, ‘민족’의 이름으로, 상품과 노동의 무제한적 이동을 꾀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저항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런 민족적 저항에다가 빨갱이, 공산주의자라는 계급적 낙인을 찍어 그들의 대리인 정치세력을 앞세워 사정없이 탄압하고 학살했으니, 피가 강물을 이루는 학살이 실로 전 세계에서 일어난 것이다. 중남미,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중동, 동남아시아 그리고 한국에서의 피의 전쟁과 내전이 모두 그렇게 일어났다.
그러므로 신민지적 처지에 있는 제3세계 나라들에게 있어서의 민족주의는 유럽의 민족주의와는 달리, 민족해방, 계급해방의 전망을 갖는 진보적 가치가 된다. 예속에 반대하는 제 3세계 나라들의 사회주의자, 민족주의자, 양심적 지식인, 중소부르조아지, 중소지주, 청년학생….등 광범한 세력이 민족해방의 기치 아래 통일전선을 이루어 제국주의와 국내 부역세력에 저항했다. 민족주의라도 유럽의 민족주의와 제 3세계의 민족주의의 내용과 의미가 전적으로 다른 것이다.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도 그렇다.
대한민국에서의 미국과 민족을 생각한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빼놓고 해방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을 설명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이 나라를 만들고 유지해온 가장 강력한 물리력이다.
한국에서도 ‘민족’은 위험하고 불온한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예를 들어 사회주의 혁명을 지향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던 사노맹의 사례를 보자. 그들은 상당히 관대한 처분을 받아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배해제 되었고 소수는 약간의 감옥생활 후 풀려나자마자 유명한 정치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반면, 민족의 이름으로 평화통일을 말했던 진보당의 조봉암은 사형 당했다. 자주와 통일을 지향했던 통합진보당은 국정원 공작으로 해산 당했다. 이석기는 아직도 감옥에 있다. 사회주의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도 되지만 결국 언젠가는 더불어 살아야할 같은 민족 조선에 대해 이야기하면 당장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잡혀가 잔혹하게 처벌받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민족’이 담고 있는 역사적 함의(含意)에 너무나도 치명적이고 아픈 사연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쟁, 학살, 연좌제, 미군주둔, 굴욕적인 한미동맹, 예속, 국가보안법, 민주주의의 거듭된 좌절, 친일부역매국세력의 엄존(嚴存), 조선에 대한 동족 적대의식 유포, 노동자계급운동의 제한, 대외 의존적 기형적 경제구조, 민족문화의 쇠락, 천박 양키문화의 범람…
이 모든 것들이 크게 보면 민족문제인 분단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계급모순조차도 분단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왜 그러한가. 민주주의의 발전과 건강한 노동자 계급운동이 분단으로 존재하는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끊임없이 좌절되어 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국가보안법이 엄존하고 조선으로 인한 빨갱이 콤플렉스가 여기 사는 대부분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조건에서 어떻게 사회주의 혁명,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자유롭게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분단은 사람들의 의식을 반편이로 만든다.
미국은 이 땅에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당시 인민들의 압도적 다수가 사회주의 체제의 통일된 자주국가 건설을 간절히 원했다. 압도적 다수 인민의 시대적 요구를 한 줌 일제부역매판 세력을 내세워 학살로 뭉개 좌절시키고 중국, 소련 등의 사회주의세력 확장을 막기 위한 군사기지로 쓰기 위해, 반공을 국시로 하여 미국이 만든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70년 세월이 지난 지금이라고 한국이 크게 다른가. 이 나라를 운영하는 고급관료, 고위 장교들이 자국 이익보다 미국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고, 군대의 작전지휘권도 미국에 맡겼으며, 미국이 원하는 곳이면 이 땅 어디에든 군사기지를 공짜로 만들어 바치고 그것도 모자라 매 년 수조 원씩 방위비 분담금을 현금으로 내줘야 하는 처지다. 미군이 온갖 범죄를 저질러도 속수무책으로 처벌도 못한다. 막대한 돈을 들여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기를 미국에서 사고 그걸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돈을 지출해야 한다. 나라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의사결정도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미국의 한 관료는 한국을 들어 ‘full spectrum dominance’가 가능한 경이로운 곳이라 했다. 이런 처지를 식민지라는 말 말고 달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참담한 현실은 민족해방의 문제가 흘러간 과거의 것이 아니라 당면한 절박한 과제임을 자각하게 한다. 이 역시 ‘민족’이라는 창을 통해서야 설명할 수 있는 현실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한국의 일부 진보진영에서 계급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면서 통일운동과 반미투쟁, 미군철수투쟁의 중대한 의미와 필요를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일제시대 민족해방운동과 1945년 8월 15일 이후 한반도 전체 역사흐름에 대한 깊은 성찰도 없고, 문제 풀어나가는 순서에 대한 감각도 없으며, 역량을 광범하게 묶어세우는 통일전선에 대한 기본적 인식도 갖추지 못한 협량한 견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들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을 이해한다. 비록 한국이 신식민지 처지이지만 자본주의 국가로서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조건에 있으니 만큼, 기본모순인 계급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계급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라도 분단과 예속으로 나타나는 민족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의 지배세력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무엇을 가장 숨기고자 하는가. 말도 안 되는 야만적 악법인 국가보안법으로 무엇을 은폐하고자 하는가. 이 비밀이 그들에게는 가장 치명적이고 아파하는 급소다. 그들의 급소가 우리에겐 가장 선차적으로 돌파해야하는 주공방향이 된다. 그들의 급소는 정확히 민족문제인 분단, 조선의 실상과 관련된다.
변혁운동에서 노동계급이 선진적인 이유는 그 시대에서 가장 절박하고 한 발자국 전진을 위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먼저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은 연대가능한 모든 부문운동, 정치세력과 더불어 노동자의 이름으로 주한미군철수, 한미동맹철폐, 자주적 평화통일,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계급적 관점만을 고집하면서 민족문제 해결을 멀리하는 협량함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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