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치적으로 지체되는가?

2019년 1월 16일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채만수 소장(대행)이 신년사에서 올해의 정세를 예상하고 노동자계급의 당면과제를 제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했다.

“지난 한 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던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 역시, 그것이 갖는 객관적인, 그러니까 저들의 의도 밖의 의의나 효과를 별개로 하면, 철저히 미제국주의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기획된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무엇보다도, 어떻게 미제의 깡패논리 그대로 미제의 수천 개 핵무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않으면서 북에게만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북이 핵무장을 한 것은 바로 그 미국의 핵위협 때문인데 말이다. 그리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님께서 그 대북 접근의 내심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우리가 연결하게 될 철도와 도로는 남북을 잇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 저는 자주 지도를 펼쳐 동북아 지역을 들여다보곤 합니다. 요녕, 길림, 흑룡강의 동북 3성은 지금 중국 땅이지만, 장차 한반도와 하나의 생활권으로 연결될 것입니다. 바다로, 하늘로, 그리고 마침내 육지로 … 2억이 훌쩍 넘는 내수시장이 형성되는 것이고, 육로를 통해 대륙으로 사람이 나가고, 대륙의 에너지망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것”이라고!5) 저들에게 있어 대북정책은, 따라서 ‘통일’은 자본의 ‘내수시장’의 지리적 확장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정세 깊어지는 위기, 노동자계급 정치운동의 지체 ― 신년사를 대신하여, 정세와 노동)

채만수 소장의 글 대부분이 그러했지만 이 신년사 글도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인식을 높이는 훌륭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미제가 북의 비핵화를 겁박하는 깡패논리란 언급을 한 것도 좋다.
그러나 남북관계, 조미관계의 변화와 조미관계의 전환을 “저들에게 있어 대북정책은, 따라서 ‘통일’은 자본의 ‘내수시장’의 지리적 확장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라고 한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이러한 입장은 한국사회 대다수 이른바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권의 대북정책이 “철저히 미제국주의와 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기획된 것”이라는 주장에 일면 동의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러면 이러한 인식 중 어떠한 부분을 비판하는가?
촛불투쟁 당시 그 투쟁을 재벌이 기획, 연출한 투쟁이라는 ‘재벌기획론’에 이어 이번 주장도 노동자 민중주체적 관점이 빠져 있다. 그리하여 자칫 촛불투쟁 때처럼 이러한 남북, 조미관계의 급변상황에서 노동자 민중이 이러한 역사적 국면 앞에서 기권을 유도하거나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시켜 반대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주장은 정세의 하나의 측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남북, 조미관계는 말그대로 하나의 관계, 거대한 상호 관계다. 이 변화를 추동한 것은 미국이나 문재인 정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조선이다. 미제의 핵독점 전략 하에 북에 대한 경제봉쇄, 군사적, 정치적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북이 미국본토까지 위협하는 핵전략 국가가 되고 경제봉쇄를 이겨냈을 뿐만 아니라, 레짐체인지(정권교체) 공세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공고한 단결을 구축해 왔기 때문이다.
남북, 조미관계의 변화에 있어서 주동적인 변화요인을 간과하고, 또는 주목하지 않고 오로지
“저들에게 있어 대북정책은, 따라서 ‘통일’은 자본의 ‘내수시장’의 지리적 확장의 문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라면 자본이 북을 흡수하거나 흡수까지 아니더라도 시장화해서 통제할 것인데 이 논리대로라면 이 변화상을 적극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물론 채소장은 “정권의 대북정책 역시, 그것이 갖는 객관적인, 그러니까 저들의 의도 밖의 의의나 효과를 별개로 하면”이라는 제한을 두고 있기는 하나, 그 측면은 별개로 할 것이 아니라 가장 중대한 측면이다.
남북, 조미관계의 변화로부터 미제와 문정권과 자본은 내수시장을 지리적으로 확장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겠으나 그건 일측면에 불과하다. 만일 그렇다면 북의 비핵화를 강변할 것이 아니라 하루속히 자본의 진출을 앞당기기 위해서 정전협정, 평화협정을 맺어서 북을 베트남식이든 중국식이든 시장화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왜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시한 독점자본, 대다수 언론, 펜타곤 등은 트럼프의 발목을 끊임없이 잡고 조미관계 개선을 반대하고 나서고 있는가?
남북, 조미관계의 변화는 미국 군산복합체 이익을 침해하고, 평화협정은 미군철수를 압박해 오키나와 필리핀 호주 등 전 세계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하라는 압박을 가져와 미제의 패권을 위협할 것이기 때문이다.
전쟁동맹을 본질로 하는 한미일 동맹도 약화시킬 것이다.
국내적으로도 미군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사드철수를 포함해 한미군사동맹 폐기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다. 반북 종북몰이가 누그러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제국주의로서는 자신들의 핵독점 전략이 무너지고 미국본토까지 위협받게 되는 핵전략 국가인 북을 이대로 인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핵보유국에 대한 군사침공을 하기도 어렵고, 비핵화를 하자니 정전협정과 불가침협정으로 나아가면서 미군철수까지 내몰리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 조미관계의 급변 상황은 별개로 하고 언급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과제로 삼아야 한다.
내수시장의 지리적 확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관점조차도 말 그대로 자본의 관점으로만 본 것이다.
북에 대한 경제봉쇄 완화는 북이 오히려 자주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번영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북으로서는 핵무장해서 경제제재를 집요하게 무너뜨리려고 하고 조미관계 개선에 필사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내수 시장의 지리적 확장”이라는 자본의 관점에 대한 채만수 소장의 관점은 경제제재가 무너지고 경제교류가 활성화 되면 필시 자본이 진출할텐데 그건 북이 시장사회주의 노선을 가다가 종국에는 자본주의로 전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북은 1950년 중반부터 흐루시초프 수정주의 노선에 맞서왔고 쏘련 붕괴 이후부터 지금까지도 사회주의 노선을 강화하고 이번 신년사에도 나왔지만 자력갱생으로 사회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이 전략적 목표인데 자본을 통제없이 받아들이겠는가?
북에 대한 제재가 완화되면 자본과 교류할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고 계획체제를 약화시키고 신용국유화나 산업국유화 농업협동농장 등을 사유화 하기라도 하겠는가?
결국 남북, 조미관계의 변화상에 대해 오로지 저들의 시장의 지리적 확장만 주목하는 것은 미제와 독점자본의 의도만 전일적으로 보면서 북이라는 상대방의 의도, 의지 계획, 그리고 남쪽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투쟁의 측면이 가져올 변화 없이 저들은 자신들이 의도한데로 무엇이든 상황을 만들 것이라고 피동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는 곧 제국주의나 한국 자본의 힘을 지나치게 보고 그 상대방이나 노동자 민중의 힘과 가능성은 간과하는 숙명주의, 패배주의의 발로이다.
채만수 소장이 신년사 말미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체 상태를 극복해야 하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우선 지금 조성되는 상황에 대해 일면성에 빠지지 말고 다양한 측면으로 봐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주체적 관점으로 능동적 개입을 강조해야 한다.
반공주의를 깨고 북의 역사성과 실상을 알아가는 것도 필요하다.
국가보안법은 폐지시켜야 하지만 그전이라도 무력화 시켜야 한다. 그것의 존재이유인 반북주의를 깨고 북을 있는 그대로 과학적으로 보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남북, 조미관계의 변화는 노동자 민중이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하고 철폐할 중대한 기회를 가져다 준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지체를 극복할 중대한 기회를 준다. 자본과 제국주의 지배에 대한 숙명적이고 패배주의적 태도를 극복하고 이 정세변화를 능동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는 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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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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