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정치신문] 노동자의 세상읽기 2호 노동자가 양보하면 실업문제가 해결될 것인가?/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노동자가 양보하면 실업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일자리 문제’는 곧 실업문제이다!
‘일자리 문제’가 첨예한 사회적 쟁점이다.
6월 12일 국회에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관련 추경 예산 확보를 위한 국회 연설을 했다. 민주노총에서도 지난 6월 8일 중집논의를 통해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런데 ‘일자리 문제’라고 하면 교묘하게 현실을 왜곡하게 된다. 왜냐하면 마치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일자리 문제가 생겨난 것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문제’는 사실은 실업 문제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문제가 심각하고 한국에서도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그중 청년 실업 문제 역시 심각하다. 공황 시기에는 자본은 기존에 취업된 노동자들을 대량으로 축출하고 신규 노동력 고용을 최소화함으로써 실업문제는 훨씬 더 심각해진다.
맑스는 실업자의 문제를 상대적 과잉인구(산업예비군)라고 했다. 실업자들이 상대적 과잉인구인 것은 절대적으로 노동자들이 남아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본이 더 커질수록 노동자의 고용을 계속적으로 줄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아도는 과잉인구가 생기는 것이다. 일례로 삼성의 자본성장 규모에 비해 고용은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그 자리는 비정규직 고용으로 채워졌다. 결국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윤을 위해서 자본규모가 점점 더 확대되는 데도 불구하고 고용을 점점 더 줄이기 때문에 실업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의 자동화, 기계화, 합리화는 점점 더 실업문제를 심각하게 만드는 직접적인 원인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동화, 기계화는 인간을 위험하고 힘든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를 쫓아내는 수단이 될 뿐이다.
현재의 자본주의 발전 수준에서라면 4시간 여 노동만으로도 인류 전체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생산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노동시간만큼 다른 노동자들이 고용되어 일하게 된다면 현재 수준의 생산물과 서비스를 공급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실업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자본은 오직 이윤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절대 그렇게 하지 않으려 한다.
자본주의에서 기계의 사용은 대량으로 인간노동력을 축출하는 계기를 만들면서도 축출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더 많은 일을 하게 하는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업 노동자들의 대량산출과 취업 노동자의 장시간 노동, 노동강도 강화가 동시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상대적 과잉인구, 즉 산업예비군의 존재는 취업 노동자를 극도의 경쟁으로 내몰면서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임금을 삭감시키는 원인이 되게 만들기도 한다.
양극화를 “소득 불평등”이라며
자본의 책임을 회피한다!
민주노총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은 “현실의 양극화 문제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이다.”라며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정당화하고 있다.
노동연구원 홍민기의 ‘소득불평등 현황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체 개인소득자 2천664만명 가운데 연평균 소득 1천만원 미만이 38.4%인 1천22만명이나 된다. 1천만원 이상 2천만원 미만은 21.1%였다. 59.5%가 1년에 2천만원을 벌지 못했다. 6천만원 이상이면 10% 안에 들었고, 8천만원 이상이면 5% 안에 들었다. (한석호, 민주노총이 일자리위원회에 참여한다, 매일노동뉴스, 2017.06.12.)
이 양극화는 무엇이고 그 원인은 무엇인가? 양극화는 한쪽에서는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를 쌓아 가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절대 다수의 노동자들이 실업으로 고통 받고 저임금과 복지의 후퇴로 빈곤으로 고통 받는 것을 말한다. 자본이 실업자를 양산하고 이윤을 늘리기 위해 복지를 줄이고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하기 때문에 이 사회는 80대 20의 사회도 모자라 90대 10의 사회, 1%대 99%의 사회로 점점 더 첨예하게 양극화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전문가 집단은 양극화에 대해서는 은폐하면서 “소득불평등”이라고 하자고 제안한다.
양극화의 의미가 계층 간의 갈등을 야기시키려는 의도로 사용되는 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여기에서는 이후 소득양극화라는 용어 대신 소득불평등을 사용하고자 한다. (유경준 선임연구위원, 한국개발연구원(KDI) <소득양극화 해소를 위하여>,KDI FOCUS, 2012년 4월 23일(통권 제15호))
그런데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역시 자본에게 이 양극화의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내부의 “소득불평등”을 말하면서 정규직의 양보를 주장한다. 자본가들은 이 주장에 대해 얼싸 좋다 환영하고 나서고 있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변화의 목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한석호 사회연대위원장이다. 한 위원장은 이날 “갈수록 확대되는 사회적 격차는 노사정 모두에 책임이 있다”면서 “노조가 임금을 동결하고 임금인상분을 기금으로 만들어 비정규직, 중소·영세 하도급과 청년, 노인 등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 전체가 참여하는 대타협 기구를 통해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기존 노조원의 임금을 동결하고 그 상승분을 비정규직 청년 등에게 나누자는 의견이다.
(나현준 기자, “기득권 내려놓자” 민노총 변화의 바람 “고소득 노조원 임금동결, 여윳돈으로 비정규직 지원…사회 대타협기구 만들어야”, 매일경제, 2017.04.21.)
노동운동을 분열시키고 양극화 책임을 자본이 아닌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지우려 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투쟁성을 없애고 “대타협 기구”로 노동운동을 노사협조주의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노동자의 양보를 요구하는 일자리위원회 참여가 아니라 정규직 비정규직이 단결하여 자본의 지배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조선업종에서 그 동안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으로 대량으로 잘려 나갔다. 노동자를 자르는 구조조정을 즉각 중단하고 구조조정으로 길거리에 내몰린 조선업종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복귀해야 한다. 쌍용차, 아사히글라스, 동양시멘트, 콜트콜텍, 동진오토텍 등 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이 전원 복직되어야 한다. 대량 정리해고를 하게 만드는 정리해고제를 철폐해야 한다. 실업의 한 형태인 불안정노동자층인 비정규직이 철폐되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파견법이 철폐되어야 한다. 실질노동시간을 대폭 단축시키고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들의 실업 대책이 되어야 한다. 노/정/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쿠바가 ‘장수 국가’로 떠오르고 있다.
“쿠바 보건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현재 쿠바의 100세 이상 노인은 2천153명으로 집계됐다”(연합뉴스, ‘장수국가’로 부상하는 쿠바…100세 이상 노인 2천153명, 2017/06/05).
현재 추세대로라면 “2050년께 세계 9위의 고령화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같은 기사)고 한다. 그런데 쿠바 노인들의 장수의 특징은 대체로 건강하다는 것이다.
“쿠바의 100세 이상 인구 중 대부분은 치매에 걸리지 않은데다가 거동도 자유로워 주위에 의존하지 않고 있다”(같은 기사).
무엇 때문에 쿠바 노인들은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가?
“세코 국장은 ‘고령 인구 증가는 출산율 하락과 전 연령대에 걸친 사망률 하락이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모든 쿠바인은 사회보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무상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같은 기사).
이처럼 사회보장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무상의료 서비스가 쿠바 노인들의 장수 비결이다. 이러한 각종 무상서비스는 노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쿠바인에게 적용된다.
1959년 1월 1일 쿠바혁명의 성공 이후 미제국주의의 말살공세와 포위공세라는 극도의 곤란과 제약 속에서도 사회주의 생산관계를 강화했기 때문에 쿠바의 성취가 가능했다.
반면 자본주의 노인들의 상태는 어떤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인들 평균 수명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사회도 평균 수명 70대 노인 사회를 넘어 80대 노인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그런데 노인들 상당수는 빈고, 병고, 고독고, 무연고에 시달리고 있다. 노인들 자살자수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노인 빈곤률과 노인자살률이 1위다. 빈곤, 병고, 고독고, 무연고는 빈곤사, 병고사, 고독사, 무연고사를 부르고 있다.
자본주의에서 노인들의 부양책임은 주로 가족들에게 전가된다. 자식들도 부모부양으로 고통 받고 있다. 부모와 자식들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또 자식들 간에도 부모 부양을 둘러싸고 갈등이 심각하다.
이 때문에 부모와 자식들 간, 자식들 간 애정은 사라지고 서로 상처와 반목만이 남게 된다. 이 속에서 부모를 살해하는 패륜적인 범죄도 흔히 일어난다.
자본주의에서는 가족애가 강조되지만 이는 가족 간 갈등을 은폐하고 국가의 책임 대신 자식들에게 부모 부양책임을 전가하는 프로파간다로 작용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도 대표적인 장수 국가다. 그런데 “70세 이후 건강 ‘복병’ … 의료비 폭탄에 눌린 일본 노인들”(중앙일보, 2017.04.21) 기사처럼 일본 노인들 역시 병고에 시달리고 의료비 폭탄에 고통 받고 있다.
“돈 없고 외로운 일본 노인들…오래 사는 게 무서워'”(한국경제, 2016-03-03)라는 기사 제목만 봐도 일본 노인들이 얼마나 끔찍하게 고통 받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자본주의 노인들의 평균 수명 증가는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생산력 발전의 결과다. 먹거리의 증가, 질 좋은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발전 등으로 노인들의 평균 수명이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자본주의 노인들의 건강 악화는 바로 이 생산력 발전에도 불구하고 이윤추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 빈곤이 심각하고 복지가 열악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한평생 자식들을 키우고, 이 사회의 생산과 서비스에 종사하고 이 사회 발전에 헌신한 노인들은 최대의 가족들 사랑과 최고의 사회적 존경을 받아야 한다. 건강하고 최고로 품위 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마땅하다. 행복으로 가득한 여생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사회 전체가 노인들에게 취해야 하는 의무다. 노인들은 마땅하게 이 존엄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현 자본주의 발전한 생산력, 물질적 풍요 정도면 노인들이 이러한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윤체제는 젊어서는 착취 받는 노동과 멸시와 억압으로 보내게 한다. 늙어서는 사회적 학대를 당하도록 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노인들은 혐오 대상으로 취급된다. 폐품처럼 방치되고 버려지고 있다. 그러나 노인을 위한 나라들은 있다. 노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자본주의 착취사회를 철폐해야 한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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