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청문회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분석 – 재벌 청문회가 보여주는 것! 보여주지 않는 것!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

재벌 청문회가 보여주는 것

1988년 5공 청문회 이후 28년 만에 열리는 재벌 청문회에 노동자 민중의 관심이 집중됐다. 재벌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서비스, 삼성 백혈병 피해자 단체, 현대차,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 유성기업과 갑을기업 노동자들은 재벌들의 청문회 출두 현장에서 격렬하게 울분을 토해내며 항의했다. 이러한 재벌 청문회를 열리게 한 것도 박근혜 퇴진 투쟁 속에서 “재벌도 공범이다”를 외치며 투쟁한 노동자 민중의 힘 덕분이다. 이 재벌 청문회를 통해 노동자 민중은 재벌의 부패와 비리, 정치권력과의 연계가 끊어지고 재벌이 처벌받고 구속되기를 염원했다, 그러나 “이러려고 청문회 했나”라는 개탄이 나오는 것처럼, 재벌 청문회는 재벌의 뇌물공여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재벌 청문회 이후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재벌 기업의 주가가 올라가기도 했다.

무엇 때문인가?

의원 일인당 질의시간이 7분에 불과한 청문회 진행 방식의 한계와 의원들의 재벌 봐주기 솜방망이 질문, “대가성 없다”는 재벌들의 책임성 회피와 불성실 답변, 모르쇠로 버티며 시간 끌면 그만인 청문회의 한계 때문에 그런가?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재벌 청문회는 이렇게 또 다시 별다른 성과가 없이 끝나고 이제는 특검이 청문회의 한계를 해결해야 한다며 국민적 관심은 특검으로 향하고 있다. 이제 청문회가 끝나면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 현장에서 자본의 폭력은 계속될 것이다. 또 다시 재벌의 기업과 전체 사회에 대한 지배는 계속된다. 노동자 착취와 민중수탈도 계속된다.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설령 범죄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지고 재벌이 구속된다손 치더라도, 정몽구, 김승연, 최태원처럼 금방 풀려나 재벌총수로 복귀하고 그 자식새끼들한테까지 대대손손 부와 권력과 영광이 세습된다.

박근혜 퇴진 투쟁을 통해 우리는 권력의 신비가 벗겨진 자들의 추악한 몰골을 보았다. “국정 농단”의 주역 최순실이 소환되고 구속되면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자들이 권력을 배후에서 움직이며 농단을 자행했는지를 봤다. 더욱이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박근혜는 보잘 것 없는 것을 넘어 얼마나 파렴치하고 가증스러운 인간인지, 얼마나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고 인간적 감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비인간적 속물인지를 봤다.

마찬가지로 청문회는 보여줬다. 한편으로는 노동자 민중이 투쟁하면 재벌들이 청문회에 끌려나와 추궁당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정치인 일부는 재벌 봐주기로 일관하여 재벌의 장학생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리고 재벌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재벌의 일단을 봤다. 이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재벌들의 면모를 봤다.

박근혜-최순실 같은 쓰레기 같은 작자들이 우리를 지배하며 우리를 비참과 고통으로 몰아넣었던 것에 그랬던 것처럼, 청문회에서도 비굴하게 굴신하고, 말을 더듬거리고 눈알을 굴리며 거짓말로 일관하는 이런 하찮은 작자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자들이라는 현실에 분개해야 했다.

재벌 청문회가 보여주지 않는 것

도대체 무엇이 저런 추악하고 보잘 것 없고, 양심이라는 건 털끝마저도 없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타락과 부패로 일관하는 자들을 우리의 삶을 좌우하게 하는 절대자로 만드는가? 그리고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주무르며 이 사회의 실질적 지배자로 만드는가?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흑인은 흑인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 그는 비로소 노예가 된다. 면방적기는 면방적을 하는 기계이다. 일정한 관계들 속에서만 그것은 자본이 된다.(맑스, 「임노동과 자본」, 박종철출판사 선집 1권, 555쪽)

‘흑인’은 노예적 소유관계 속에서 노예로 된다. 기계는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속에서 자본이 된다. 신하가 있기 때문에 왕이 있고, 한 인간을 신하와 인간으로 나눌 수 있는 것도 봉건적인 소유관계와 그 소유관계의 상부에 있는 권력관계 때문이다. 따라서 이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걷어내면 왕은 보잘 것 없는 육신과 정신을 가진 한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게 된다. 신하는 굴신을 접고 독립적 주체가 될 수 있다. 권력의 신비는 권력의 전능을 가능하게 했던 사회적 관계들을 벗겨내면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저 보잘 것 없고 파렴치한 인간 군상들이 거대한 부와 사회 전체를 쥐락펴락하는 권능을 가지게 된 것도 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가 가져다준 힘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지배할 수 있는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다. 바로 생산에 대한 지배권 때문이다. 토지, 공장, 기업, 기계, 원료 등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노동자를 고용해서 착취할 수 있는 권리 때문에 자본가는 자본가가 되는 것이다.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경제적 힘을 가지게 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 헌법이 부과한 사적소유권, 일정한 지분만으로도 기업 전체를 지배할 수 있는 사기적, 마법적 제도인 주식회사 제도라는 삼위일체와 기업의 권리, 소유권을 보호하는 국가권력의 공인된 폭력이 합쳐져서 기업은 절대권력자가 되는 것이다. 특히 재벌은 거대 자본의 지배자들로 자본가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왕중왕이다. 따라서 이 사회적, 정치적 관계를 박탈하면 재벌 놈들은 평범한 일개 개인이 된다. 이 힘들이 일시적으로 박탈당한 특정한 공간, 즉 깜빵에서 만난 재벌들은 제 손으로 똥 닦고 밥 처먹는 거 빼놓고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보통 이하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재벌 청문회가 보여주지 않으려는 것 : 착취와 수탈의 종식

재벌 청문회 이후 다시 재벌의 사회 지배와 부패와 비리의 고리, 정경유착을 끊어놔야 한다는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 다시 재벌개혁, 경제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이 논의를 해 왔던 김상조 교수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상조 교수는 어떻게 재벌개혁을 하겠다고 하는가? 김상조 교수는 과연 재벌의 이 사회에 대한 지배 자체를 끊어놓을 방편이 있는가? 김상조 교수는 민주 대 반민주의 싸움에서는 전선이 명확한데, 경제민주화에 대해서는 자신도 의문이 든다고 말하고 있다.

그 20년 전, 10년 전만 해도 경제민주화 내지는 재벌개혁, 경제개혁의 의미가 굉장히 분명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경제민주화가 도대체 뭐지, 나 자신부터 그런 의문이 듭니다. 경제민주화의 내용과 방법 자체가 결코 자명하지 않은 그런 시대에 들어온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김상조, [공화국을 묻다-김상조] “경제민주화 조항을 다시 쓰자”, 경향신문, 2016.12.07.)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의 내용과 방법 자체가 결코 자명하지 않은 그런 시대에” 구체적인 재벌 개혁 방안은 무엇인가?

그럼 망국의 정경유착 사슬을 끊으려면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가. 정치개혁이 근본적 과제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토요일 100만 촛불집회의 열망, 밑으로부터 끓어 넘치는 그 에너지를 담아낼 합리적 정치제도와 현명한 정치지도자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솔직히 큰 기대를 걸지는 않는다. … 부작위를 빌미로 ‘삥’을 뜯어갈 소지가 없는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지배구조 개선이고, 재벌개혁이며, 경제민주화다.([김상조의 경제시평]재벌도 공범이다, 경향신문, 김상조|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경향신문, 2016.11.14.)

“기업 지배구조 개선”,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이 바로 부패와 비리,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어낼 수 있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경제민주화의 핵심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은 무엇인가? 바로 전경련 해체와 지주회사로의 전환이다.

최근 정치권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관련 논란이 그 단적인 증거다. 재계 단체의 ‘맏형’이라는 전경련은 마치 일수 수금하는 사채업자처럼 기업들을 들쑤시고 다녔고, 한국을 대표한다는 53개의 대기업들은 전전긍긍하면서 줄을 서서 돈을 냈다. 이런 아수라장에서 무슨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것이며, 이런 무법천지에서 무슨 기업지배구조 장치가 작동하겠는가.([김상조의 경제시평]전경련, 해체해야, 김상조|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경향신문, 2016.10.03.)

김상조 교수는 재벌의 집결체인 전경련과 재벌들을 분리하는 유체이탈식 희한한 논리를 구사하며 재벌들을 피해자인 냥 감싸고 있다. ‘재벌 저격수’라는 김상조 교수가 겉으로는 재벌 저격수를 자처하고 있으나 뒤로는 재벌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재벌에게 온전히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게 합리적인 기업지배 구조를 갖추는 것이 경제 민주화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경제민주화의 첫 걸음을 재벌 스스로가 떼고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 삼성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 등 오너(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해 안정적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 전환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삼성이 이재용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궁극적인 도달점이 지주회사 전환”이라며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도 하고 싶고, 시장도 기대하는 것이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방안”이라고 말했다.(정성호 기자, 삼성전자, 지주사전환 검토 첫 공식화…지배구조 개편 시동(종합2보), 연합뉴스, 2016/11/29)

태산명동서일필이라더니! “태산(泰山)이 떠나갈 듯이 요동 하더니 뛰어나온 것은 고작 쥐 한 마리뿐”이라는 사전적 설명처럼 “예고나 시작은 떠들썩하고 거창하였으나 뒤는 흐지부지 하거나 결과는 보잘 것 없”지 않은가?

2016년 박근혜 게이트는 재벌들이 박근혜에게 돈을 찔러주고, 박근혜가 국민들 호주머니를 털어 재벌들의 곳간을 채운 사건입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298억 원의 수수료를 주고 박근혜-최순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국민연금 6000억 원을 털어먹고, 수 조원의 부당이익을 이재용에게 안겨줬습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박근혜-최순실의 재단에 128억, 최순실 광고회사와 정유라 친구 부모 회사에 73억 등 201억의 공금을 건넸습니다. 그 대가로 정부는 노동개악을 강행하고, 쉬운 해고, 성과연봉제, 임금피크제로 직장인들 호주머니를 털어갔습니다. 10년 넘게 범죄를 저지른 불법파견 범죄에 면죄부를 받았고, 현대글로비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정의선 경영승계의 탈‧불법 행위도 모두 눈감아 주었습니다.(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 집행위원, 정몽구 지키는 괴한들을 찾아내다, 한 달 넘긴 캠핑촌, 공장 담벼락을 넘어야 할 민주주의, 광장편지)

노동자들이 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재벌이 권력에 뒷돈을 주고 그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것에 분노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권력에 의한 재벌의 삥 뜯기 같지만 본질은 재벌들이 권력과의 결탁, 매수로 막대한 이득을 챙긴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도 공범이다”라며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청문회 출석날조차도 정몽구는 평소에 그랬던 것처럼, 기업 구사대 깡패들을 동원해 기아차 비정규직 노동자를 폭행하는 만행을 태연하게 자행하고 시치미를 뗐다. 더욱이 권력은 재벌로부터 사적 이득을 챙긴 대가로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개악을 강행했다.(물론 자본가 국가는 재벌의 매수가 아니더라도 전체 자본을 위한 집행위원회로서의 국가 본연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삼성 이재용과 현대 정의선은 탈‧불법으로 경영권을 세습 받았다.

이 모든 일들의 밑바탕에는 노동자들에 대한 자본의 착취가 있었다. 이 착취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구속 해고 수배당하고 손배‧가압류로 고통당했다. 심지어 자본이 동원한 구사대와 용역깡패에 의해 머리통이 깨지는 유혈이 낭자한 잔학한 폭행을 당했다. 민주노조 파괴 공작이 자행되고 죽음으로 저항하는 열사도 생겨났다. 2016년 9월 현재 ‘반올림’에 제보된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는 223명이고 사망자 수는 76명이나 된다. 한 마디로 삼성에 의한 대량 살상인 것이다.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고통은 위에서 말했듯, 자본의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권이 있기 때문에 자행된다. 지난 6일 재벌 청문회에서 황유미 씨 백혈명 사망 피해 보상금으로 삼성이 500만원을 지급한 사실에 대해 묻자 이재용은 “저도 아이 둘 가진 아버지로서 가슴 아프다.”라고 답변했다. 두 아이를 가진 아버지로서 이재용은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일 수도 있으나, 이윤을 추구하는 삼성의 대자본가로서는 집단 살상을 자행하고도 보상과 책임을 거부하는 냉혈한 자본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김상조 교수는 “재벌도 공범이다”라면서도 그 범죄의 우두머리인 이재용이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는 “지주회사 전환”을 제시하고 있다. 이로써 전환과정에서 상속세를 더 낼 수 있고 지분 확보비용이 더 들고 정교하고 복잡한 절차를 필요로 하겠지만 지주회사 전환이 완료되면 이재용은 그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으로의 3대 세습을 완료하게 된다. “삼성이 이재용 체제를 완성하기 위한 궁극적인 도달점”이자 “삼성도 하고 싶고, 시장도 기대하는” 지주회사 전환이 과연 노동자의 이해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지주회사 전환은 오랫동안 재벌개혁의 핵심 요구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도 순환출자 금지, 상호보증 금지 같은 재벌개혁 정책이 진행됐다. 이 정책은 재벌지배 구조를 합리화 하여 자본의 지배를 더 안정화 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순환출자란 한 그룹 안에서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이 C기업에, C기업은 A기업에 다시 출자하는 식으로 그룹 계열사들끼리 돌려가며 자본을 늘리는 것”(네이버 지식백과)을 말하는데, 이 방식으로 자본은 자본금을 늘리고 계열사에 대한 지배를 강화했다. 그러나 이 순환출자는 가상의 자본이 늘어나는 것으로 이 순환출자 기업의 한 기업이 부도가 나면 이 순환출자의 연쇄고리가 끊어지면서 계열사 자본 전체가 부실해지게 된다. 개별 기업들은 순환출자를 고집하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전체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는 재벌개혁으로 합리적인 자본주의, 투명한 자본주의를 만들어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했던 것이다.

반면 지주회사는 무엇인가?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사업활동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사업으로 하는 회사”(네이버 지식백과)이다. 이 지주회사 제도는 상호 출자의 고리는 끊어졌지만 여전히 모회사-자회사-손회사로 이어지는 수직적 지배구조는 계속된다.

지주회사는 피라미드형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며, 소자본을 가지고도 거대한 생산과 자본에 대한 독점지배망을 넓힐 수 있다. 이는 콘체른 형식에 의한 독점의 형태로서,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정치까지도 지배한다.(네이버 지식백과)

레닌은 <제국주의론>에서 지주회사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미 앞에서 간략히 언급했던 ‘지주제도’이다. 이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먼저 주의를 기울였던 독일의 경제학자 하이만은 그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콘체른 수뇌부는 주요회사[문자 그대로는 ‘모회사’]를 통제하고, 모회사는 또 종속회사[‘자회사’]를 지배하며, 그 자회사는 다시 다른 종속회사[‘손회사’]를 지배한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그다지 많지 않은 자본으로도 광범한 생산영역을 지배할 있다. 사실상 하나의 회사를 통제하는데 50%의 자본만 있으면 손회사의 8백만 마르크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쇄’가 좀 더 확대된다면, 1백만 마르크를 가지고 1,600만 마르크, 3,200만 마르크 등등의 자본을 통제할 수도 있을 것이다.”(레닌, 제국주의론, 남상일 옮김, 백산서당)

레닌도 언급하듯이 기업을 통제하기 위한 주식 보유한도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2016년 현재 삼성 이재용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후 삼성전자 지분율은 0.57%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재용이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사 16.50% 지분보유를 하고 있고, 이 합병사가 삼성생명을 19.34%로, 다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7.21%,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사가 삼성전자를 4.06%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재용은 이런 식으로 전체 삼성계열사를 지배하며 이건희에 이어 재벌총수가 된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주식회사 제도 자체가 최소한의 자본으로 타인의 주식 투자를 통해서 전체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사기제도이기도 하다.

도대체 지주회사에 어떤 진보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가? 과연 이 방식으로 재벌의 기업에 대한 지배력은 약화되는가? 재벌의 이 사회 전체에 대한 지배가 훼손되는가? 지주회사는 합법적으로 재벌의 기업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지배 형식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는 지식백과 설명에도 있는 것처럼, 콘체른(우리 식으로 말하면 재벌)이 “경제영역뿐만 아니라 정치까지도 지배”하도록 한다. 이 기업지배가 주된 목적인 지주회사를 통해 자본은 “소자본을 가지고도 거대한 생산과 자본에 대한 독점지배망을 넓힐 수 있”게 된다.

재벌의 대한 사회적 반발이 일자 시민사회단체에서 경제민주화 요구를 내걸고 정권에서조차 이 정책을 실시했다. 박근혜도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필연적이다. 어떤 정책으로든, 독점금지법 같은 법률로도 자본의 집적과 집중으로 독점이 생겨나고 이 독점기업이 이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힘을 막지 못한다.

자본이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을 제거하고 이 자본을 위해 폭력적이고 물리적인 수단을 사용하여 노동자 민중을 억압하는 국가권력을 그대로 두고서는 재벌은 개혁되지 않는다. 재벌은 규제되지 않는다. 1인 1표의 정치 민주화가 금권정치에 의해 무력화되듯, 자본의 독점법칙이 작동하는 자본주의에서 경제는 민주화되지 않는다.

이건희와 이재용은 불법‧탈법적 방법을 총동원한 사기적 방법으로 기업을 상속받았다. 삼성의 애초 시초적 자본의 형성자인 이병철은 악질 친일 지주에서 해방 후 친미 자본가로 변신하여 적산을 불하받고 미국 원조 물자와 배당, 불법 정치자금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조세포탈과 사카린 밀수 등 범죄 행위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노동자 착취가 삼성자본에게 거대한 이윤을 만들어주고 그를 통해 오늘날 거대 삼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현대자본의 축적도 추악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이병철과 다르게 정주영의 회고에 따르면, 최초 자본은 고향에서 몰고 온 소를 팔아 번 돈과 쌀집 운영으로 벌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최초자본은 남의 노동을 착취해서 벌어들인 자본이 아니라, 정주영의 아버지와 정주영이 땀 흘려 일해 벌어들인 자본이므로 이 시초자본은 정주영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자본의 거대한 축적은 바로 노동자들의 노동을 착취했기 때문에 이루어졌다.

삼성과 현대의 거대 생산수단도 과거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물이다. 자본가들의 감독노동조차도 현대 자본주의 주식회사에서는 자본가들의 몫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고용한 감독자들의 몫이다. 감독자들은 바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감시 노동, 관리노동을 한 대가로 이윤의 일부를 보상받았다. 결국 이 감독노동은 바로 노동자 착취를 극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독노동의 성과라는 것도 바로 노동자들의 과도한 노동에서 나온다.

현대 자본주의 기업은 사회적으로 생산을 한다. 자본도 주식회사에서 보듯 대다수가 다른 사람의 몫이고 자기 자본조차도 애초 자본을 빼면 남의 노동의 성과를 가로 챈 결과다. 결국 그렇기 때문에 기업은 자본가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운영되고 사회적으로 성과를 나눠 가져야 한다. 기업은 전체 사회의 소유여야 하고, 집단적 노동자가 기업의 소유자, 운영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서는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가 이 기업의 소유자이다. 이 기업 소유권으로 자본가들은 자본가가 된다. 자본가들 중에서 가장 거대한 자본가들인 재벌로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데 비해 전체 노동자 민중은 절대적, 상대적으로 빈곤해 진다. 재벌이 이 사회의 성과물을 독점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한 쪽에서는 한 줌도 안 되는 자본가들의 부와 영광과 권력이, 바로 그것 때문에 다른 한 쪽에서는 절대 다수 노동자 민중이 빈곤과 실업과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 받고 산재와 직업병으로 죽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재벌의 생산에 대한 지배권을 박탈해야 한다. 생산수단을 몰수해 집단적 소유 즉 국유화해야 한다. 재벌몰수와 국유화는 노동자들이 무뢰배라서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도덕적으로, 정치경제학적으로 지극히 정당한 행위이다. 원래 재벌의 것이 아닌 것을 원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가령 현대를 몰수한다 하더라도 소를 판 돈과 쌀집 운영으로 번 현대가의 시초자본은 노동자 권력이 정당하게 보상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을 위해 폭력적 힘으로 무장한 국가권력은 결코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몰수와 국유화를 위해서는 자본가들의 소유권을 보호하는 자본가들의 국가를 분쇄하는 정치혁명을 먼저 해야 한다. 재벌의 지배를 분쇄하고 착취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노동자들의 진정한 해방이다. 과학적 사상으로 무장하고 이 해방을 위해 일관되게 투쟁하는 전투적 혁명정당이 필요하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퇴진 투쟁은 박근혜 권력의 폭압적 통치를 중단시키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투쟁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민주주의를 넘어 반자본 투쟁을 강조한다. 그러나 오늘날 민주주의 투쟁은 반자본 투쟁의 걸림돌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넘을 게 아니라 아직 해결해야 할 중대한 당면 과제다.

사상의 자유, 결사의 자유,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 노동3권의 확립, 통제 없는 언론의 자유 같은 정치적 자유의 획득은 해방을 위한 토대를 제공한다. 노동자 민중의 정치의식의 형성을 가로막는 지배계급의 지배 사상인 종북몰이를 분쇄해야 한다. 국가보안법을 철폐하고 국정원을 분쇄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박근혜 권력을 타도하는 투쟁에 앞장서면서 민주주의 투쟁을 주도하고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협소한 경제주의를 넘어 민주주의 전위가 되고 민중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확고한 민주주의 투쟁의 기초 위에서 해방의 길을 가야 한다.

이것이 재벌 청문회가 보여주지 않으려는 착취와 수탈을 종식시키는 확실한 길이다.

노/정/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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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협

전국노동자정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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