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앞에 소중하고 멋진 한 사람 잃어 슬픕니다
석권호 아들 올림
어렸을 때 저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1~2주에 하루씩만 집에 들어오셨고, 들어와서는 빨래를 맡기고 짐을 챙겨 제가 일어나기도 전에 다시 떠나셨습니다.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지 궁금해서 따라가 보기도 했습니다. 시위 현장을 보며 자랐습니다. 세월호 참사처럼 가슴 아픈 사건들의 현장에도 아버지는 늘 계셨습니다.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의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할아버지는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셨고, 간첩으로 조작되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청소년기를 방황하며 보내셨습니다.
간첩이라는 낙인으로 가족은 사회로부터 버려졌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좌절하지 않으셨습니다. 할아버지의 석방운동에 나서셨고, 그 길에서 노동운동을 만나셨습니다. 아버지가 30년간 노동운동에 헌신하고, 집을 비우면서까지 현장을 지키신 이유를 알게되었습니다. 약자를 위해 권력과 싸워왔던 아버지가 아들로서 존경스러웠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으셨습니다. 며칠 밤을 잠 못 이루시던 아버지는 결국 평생 헌신했던 조직을 떠나셨습니다. 조직에 해를 끼칠까 봐서였습니다. 30년 동안 정의를 위해 싸우신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할아버지 세대의 가정을 파괴했던 바로 그 국가보안법이었습니다.
할아버지 사건은 결국 조작 사건으로 밝혀졌습니다. 재심을 통해 29년만에 무죄판결을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고문했던 가해자, 방관했던 판사와 검사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시간들 역시 찾을 수 없습니다. 권력에 의해 악용되어온 국가보안법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피해자를 만들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아버지 사건에 대해 2심에 선고한 무거운 형벌을 그대로 확정했습니다.
법 앞에 소중하고 멋진 한 사람 잃어 슬픕니다. 한 가정의 비극은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이상의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국가보안법 폐지에 함께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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