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격변기의 국내외 정세, 절망하는 청년들에게 희망은 있는가
[전국노동자정치협회 대내외 당면 정세토론 자료4]
강태영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 단테 알레기에리, <지옥편> 중
새해 아침부터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는 소식이 쉬지 않고 쏟아졌다.
먼저 북에서는 조선로동당 전원회의 결과 남북 관계를 적대 관계로 규정하며, ‘대한민국’을 제1주적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기존 (연합)연방제를 상정하고 남북관계 개선, 평화통일 등을 위한 대남, 해외 연대 기구를 정리한다고 곧바로 발표했다. 이에 따라 남측의 6.15남측위, 범민련 남측본부 등도 현재로서는 존재 의의를 상실함에 따라 숙고에 들어갔고, 결국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온 상태다. 통일운동 진영에서도 어느 정도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한 진영도 있겠지만, 적지 않은 진영이 큰 충격을 받은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새해 첫날이 지나자마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백주대낮에 정치테러를 당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도 정치권과 언론 등은 그 테러의 위험성을 축소 발표하기에 급급하며, 심지어 의사로서의 윤리를 준수해야 하는 의사단체 혹은 개인조차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그 위급함을 애써 부인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박근혜의 문구 칼 테러와 비교하고 있는데, 해당 사건은 표피가 찢어진 열상(裂傷)이고 이재명 대표는 간발의 차이로 경동맥이 빗나갔으며, 그나마 경정맥에 일부 출혈이 일어난 자상(刺傷)이다. 일반인보다 더 잘 알 의사가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지지를 위해 물타기로 호도하고 있다. ‘이러다 또 다른 백색테러가 터졌을 때 목숨을 믿고 의사한테 맡길 수는 있겠냐’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심지어 진보당 강성희 국회의원은 자신의 지역구 행사에서 대통령과의 공식 인사 때 ‘국정 기조를 전환하지 않으면 국민이 불행해질 것’이라고 직언했다는 이유만으로 짐짝처럼 사지를 잡힌 채 질질 끌려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끝까지 부인하면서 고성, 악력 등의 핑계를 대기에 급급하다.
‘오늘’도 사람이 죽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노동자가 죽었다. 심지어 안전 규칙에서 금지하고 있는 굴착기에 올라탔다가 추락사로. 이런 상황에서도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중대재해처벌법이 모든 사업장에 적용되면 사업주는 폐업해야 한다며 공갈 마케팅을 하고 있다.
현세에 지옥이 존재한다면 바로 한국을 말하는 게 아닐까.
이처럼 전쟁 위기, 정확히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오히려 비정상적인 대외 정세와 노골적인 파쇼 행보로 치닫는 정권이라는 대내 정세에 대한 민중의 분노도 뜨거운 것처럼 보인다. 윤석열 정권 퇴진을 목표로 공동행동, 촛불행동 등도 매주 꾸준히 투쟁 중이다.
그런데, 모든 민중이 그 분노를 공유하고 있는 걸까?
So What
이처럼 북의 대남 정책 전환, 야당 대표에 대한 정치테러, 야당 국회의원에 대한 노골적 폭력 등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정작 광장을 빠져나와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주변은 무서우리만치 무심하다는 게 필자의 경험으로 내린 결론이다. 여기서 잠깐 필자의 경험을 말하자면 지난 9월부터 현재까지 주로 무대 설치, 철거를 중심으로 하는 행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채용 공고에 지원하던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또래 청년을 많이 만났고, 대화를 많이 못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이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들을 기회가 많았다.
이런 사회정치적 위기 앞에서도 다수의 또래 청년은 무덤덤하게 넘어가기 일쑤였다. 청년을 분류할 때 직간접적으로 투쟁에 결합 중인 경우(안타깝게도 아직은 소수)를 빼면 크게 두 부류다. 이미 룸펜으로 간주해야 하는 ‘인셀’의 영역이던가, 아니면 제 한 몸 챙기기에도 버거워서 거들떠볼 겨를조차 없거나.
그렇기에 그들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그래서 어쩌라고’다. 전자는 가령 최근 추가된 배현진에 대한 테러 등을 들먹이거나, 앞서 언급한 의협의 발표 등을 복사, 재생산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커뮤니티에 공유, 확산한다. 또래 사이에서 여론은 그렇게 규정되고 만들어진다. 후자의 반응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래서 돈 주냐?’에 가깝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도 버거운 후자에게 정치테러이니 뭐니 하는 건 물 건너 남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니까. 오히려 군필남성에게 더욱 와 닿는 건 언론에서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북의 적대 국가 규정이다. 소셜 미디어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른바 일부 페미니스트라고 한들, 크게 다른 건 아니다. 친미반공 매체에서 ‘주작’해내는 북의 이른바 봉건성 등을 들먹인다. 이미 아프가니스탄 해방 때 본 풍경이다. 분명히 탈레반은 민주적이지 않은 권위주의 집단이지만, (이 때문에 정황상 러시아를 거쳐 타지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탈레반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또 다른 세속주의 반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서방 언론에서는 그들이 친서방이라고 호도하지만, 타지크가 언제부터 친러 노선을 버리고 친미로 갈아탔던가?) 그 전쟁은 엄연한 반미해방전쟁이었는데도.
변혁운동의 주력이 되어야 할 청년은 대격변기의 정세에서도 반동의 전위대가 되어가고 있다.
꿈을 꾸는 동안
조선로동당 전원회의의 결정과 총선을 앞두고 정치 위기가 날마다 터지면서 통일운동 진영의 대응도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건 맞다. 1월 4일에는 남측위에서, 1월 8일에는 한반도평화경제회의에서, 1월 24일에는 국회에서 제 단체 공동주최로 꾸준히 토론이 진행되고 있으며 필자도 일하는 사이 짬을 내서 유튜브로 시청했다. 그런데, 소름이 돋는 토론 발언과 귀를 의심케 하는 소감을 들었다.
미국이란 벽을 넘어서려는, 아니 그 벽에다 낙서라도 해보려는 노력조차 없었다. 미국 앞에 당당히 할 말 하는 정치인은 전대협 세대에서도 나오지 못했다.
그 결과 남쪽에는 통일을 고민하고 추진할 세력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믿었던 전대협 세대도 결국 헛방이었다. 그들의 자식 세대라 할 MZ세대에서는 북에 대한 멸시, 조롱, 증오만 커지고 있다. 이들은 친북 보다는 차라리 친일이 낫다고 여긴다. 중국과 미국 사이의 균형보다는 아메리칸 스타일을 선호한다. 과연 그들만을 탓할 수 있을까? – 안영민 평화의길 사무처장
지극히 맞는 말이다. 비록 청년 세대에 대한 분석은 오류가 있지만 (이는 후술하겠다) 이제는 북 바로 알기를 넘어, 미제 바로 알기를 해야 한다는 일갈은 현장이었으면 박수가 나올 발언이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또래로 보이는 활동가의 질문은 이 감탄을 경악으로 바꿔버렸다.
“청년 세대가 실리 중심이며 탈이념적이고, 분단이나 전쟁 상처에서 자유롭다는 점, 특히 저희 또래를 보면 미국의 부당한 개입에도 분노하고 있는 만큼 말씀하신 점에 동의하고요…”
미안한데, 어떤 청년 집단을 봐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 되물어보고 싶었다. 선배 활동가들이야 냉정하게 말해서 통일운동 조직 중 대중적이지 못한 곳은 고령화되고 있으므로 오류가 불가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청년 활동가가 그래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본 청년들은 ‘그래서 돈 주냐’와 같은 실용(?)적인 건 맞았지만, 여전히 반공이라는 암묵적 국시는 반북, 반중, 반러 등으로 변용되어 있고 분단의 상처는 징병의 상처로 변형되는데 그들의 분노와 혐오 대상은 군 상층부와 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적’인 북이다. 미국의 부당한 개입에 대한 분노라, 팔레스타인이야 워낙 이스라엘이 제2의 나치라서 할 말이 없겠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미제의 부당한 개입에 분노한 적이 있던가? 멀리 갈 것도 없이 해마다 치솟는 방위비 분담금 앞에서 (이는 어느 부문이건 세금으로 돌아오는데) 분노하는 (조직과 직간접적 연계가 없는) ‘개별’ 청년을 필자는 만난 적이 없었다.
필자 또한 미제가 몰락하고 반제자주 다극화의 시대 속에서 통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굳은 확신이 있다. 장기적, 혁명적 낙관주의라고 부르겠다. 그러나 그게 오늘내일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설령 단기적으로 비관주의라는 소리를 들을지라도.
모든 청년 활동가의 인식이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오늘도 지역에서 줍깅을 하고, 현장에서 또래 청년들과 소통하면서 당으로, 조직으로 안내하는 동지들이 많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누군가는 자신의 눈만으로 어느 정도 편중된 청년 집단을 만나면서 장밋빛 꿈을 꾸는 동안 그 눈에 들어오지도 못하는 청년들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다시금 돌격대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한편, 일부 통일운동가는 통일대전을 찬성하며 염원한다는, 대중적으로 볼 때 경악할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번 전원회의 결정은 걸어오는 전쟁을 더는 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응전하여 궁극적으로 승리하여 통일하겠다는 것으로 독해하는 것이 옳지, 민족 공멸의 길로 가는 선제 개전(소위 통일대전)으로 읽는 것은 엄청난 오류이며, 이런 인식은 대중적으로도 극히 부정적인 반응만 낳을 뿐이다. 이루어지면 안 되는 꿈을 꾸지 말고 하루빨리 깨어나야 할 것이다.
(23말 24초의) 파노라마
‘날리면’이 맞다 생각하고, 이재명 대표 테러에 대한 후속 조치가 부당하며, 강성희 의원에 대한 대처가 정당했다, 등등의 집단은 한국에서 고정적으로 30%를 차지하고 있다. 반대편(?)에는 조국 등 (친)민주당 인사의 (공안 탄압에 대한 부당함이 아닌) 도의적 책임조차 부정하는 30%가 대립하고 있다. 그 사이에는 자신을 중도라고 자처하는 30%가 언제나 존재하는데, 여기서 특징인 것은 과거와 달리 자신이 중도임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중도는 반동 국민의힘과 중도 유사 자유주의(그들이 미제의 통치 수단인 국보법은 둘째치더라도 차별금지법이라도 진심인 적이 있던가) 민주당 사이의 ‘중도’다.
이게 23말 24초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그러나 앞서 말한 청년의 실태와 비교하면 차라리 이건 나을 지경이다. 두 자리 비율도 될까 말까 하는 투쟁하는 집단을 빼면 아무리 높게 쳐도 5대4에 가깝지 않을까. ‘중도’에 대한, 이준석 등 제3지대 신당에 대한 2~30대 특히 남성의 반응을 보면, 그들이 즐겨 찾는 커뮤니티의 여론과 온도를 보면 5대4조차 확신할 수 없다. ‘중도’의 물망에 오르는 이준석, 이낙연, 류호정 등을 보면 그 중도에 ‘민중’이 갈망하는 진보의제는 없다. 반국힘 비민주에서 심지어 이제는 반민주 비국힘으로, 약간의 ‘콩고물’만 보일 뿐.
그러나, 자주의 관점으로 변혁을 준비하는 활동가라면 냉정하게 분석하되, 통일대전을 바란다는 골방에 치우친 반응을 치우고, 궁극적으로 상생할 수 있는 길로 민중을 변혁의 동력과 함께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가장 먼저 필요한 건 상황을 올바르게 독해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조선로동당의 전원회의 결정은 다음과 같이 독해해야 한다.
1. 이제 ‘대한민국’ 정부는 그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
2. (이미 북을 적대하고 있던) ‘대한민국’ 정부는 교전 중인 적대 국가다.
3. 그러나 선제공격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더는 전쟁을 피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북은 수구정권은 물론이고 이른바 민주정부에 대해서도 기대를 접은 것이다. 진보정권의 수립 또한 가능성이 낮다는, 매우 뼈 때리는 분석과 지적을 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알면서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라고 꿈을 꾸던 것에 대한 일침일 수도 있다. 또한 총선 직전의 정세는 이런 북의 결정과 연계하여 바로 봐야 한다.
1. 이미 정권의 북풍 공세는 현재진행형이다.
2. KBS의 박민 등을 통해 언론으로도 총공세 중이다. KBS 등 어용 언론만 보면 지금이 ‘윤평성대’이며 이 평화를 위협하는 건 ‘북괴’이므로 이에 공동 대응하는 미국, 특히 일본과 손잡고 전쟁에 나서야 한다. 밖으로는 중국, 러시아 등이 미국이 주도하는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므로 대만, 우크라이나 등에 대해서도 적극 지원해야 하는 것이다.
3. 이 평화를 안에서 위협하는 건 민주당 등 좌파와 진보당, 민주노총 등 상종할 수 없는 극좌 공산주의라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지난 8.15 경축사를 참고할 것)
바로 이런 논지로 청년들이 즐겨 찾는 커뮤니티에서 여론이 만들어지고 있고, ‘중도’ 또한 현 정권과 일정 수준에서 대립만 할 뿐 1~3의 명제에 대한 동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언론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보도도 크게 다르지 않으나 이에 대한 의문이 전반적인 판을 크게 뒤흔들지는 못하고 있는데, 이는 ‘이스라엘은 미국조차 (돈으로) 휘두르는 독불장군’이라는 인식이 대중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이건 미국도 어쩔 수 없는 예외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아직 팔레스타인에 대한 인식이 우크라이나 등 다른 전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정당과 조직은 이런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대외 정세도 ‘대한민국’ 이라는 체제가 존재하는 이상, 단기적으로는 위기이고 대내 정세도 미래의 주역이 될 청년층의 실태가 장기적으로도 위기이다. 정치적 인식도 그렇거니와 앞서 말했듯 경제적 상황도 위기다. 돈이 없어 끼니를 거르고, 대출을 돌려막으면서 이제는 추억이 되어야 할 전당포, 심지어 사채까지 끌어 쓰고 있다. (고백하자면 필자 또한 적지만 꾸준한 적자 때문에 대출이 있다.)
통일이 가까울 것이라는 꿈이 아닌, 눈앞의 밤을 봐야 할 때다.
이미 24일 회의에서 언론소비자주권행동의 정성혜 선생은 이런 꿈에 대해 일갈을 날렸다.
“여러분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금강산 한 번 못 가볼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간 필자는 정세를 잘못 분석했다가 광야에서 40년을 방황하고 끝내 탈출 세대는 살아서 약
속의 땅에 가지 못한 (심지어 가장 젊은 정찰병이었던 여호수아조차 마침내 입성할 때는 100
세 무렵이었다) 성경의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는, 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오류의 후과는 우리 청년 세대가 청춘이 다 지나고 나서야 처음부터 나온 답을 뒤늦게 깨닫자마자 다음 세대에게 넘겨줘야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언젠가 우리의 밤도 지나 가겠죠
‘통일’이 사라진 젊은 세대들 내에 ‘반전평화’의 화두를 새롭게 심어야 한다. 추상적인 ‘통일’보다 ‘평화’ 의 구체성이 그들에게는 더 와닿을 수 있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그들과 공감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영역을 새롭게 구축해야 한다. 영화도 만들고, 웹툰도 만들고, 다큐도 찍고, 노래도 불러야 한다. 여기에 다시 사람과 돈을 모아야 한다. – 안영민 평화의 길 사무처장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주문하고자 한다.
각주구검도, 청산도 아니다. 지난 시대(6.15시대라고 부르겠다)의 성과와 한계를 계승해서, 희망을 잃고 절망하는 청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딱 잘라서 말하겠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안 된다고 외쳐야 한다. 그러면서 이 전쟁의 근원을 폭로해야 한다. 정치권이 떠들고 언론이 키우는 북이 아니라,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이라는 것을. 열쇠는 주어졌다. 팔레스타인이다. 아직 다른 전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전술했지만, 열쇠조차 없던 때보다는 나아졌다.
평화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가짜 평화가 아니라 모든 국가가 평등한 진짜 평화가 필요하다고 이제는 힘있게 말해야 한다. 다극화 시대는 평화를 거부하는 혼란과 권위주의 정권의 난립이 아니라 가짜 평화가 사라졌을 때 나타날 수밖에 없는 일시적 과도기라고. 반제투쟁은 궁극적으로 각 나라 안에서도 민주주의 쟁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요즘 청년들이 좋아하는 것, 즐겨 찾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미 조직적 여론 형성의 온상이 된 커뮤니티야 그렇다 치자. 하지만 통일운동 제 단체는 청년이 즐겨보는 소셜 미디어에, 그들의 일터에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였는가. 진보정당과 노조를 중심으로 비정규직 사업장에도 연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러나 그런 사업장이 사각지대였다면, 최악의 처지에 놓인 청년들이 모이는 일용직은 그 사각의 사각이다. 이곳에서 여론이 생성, 교환, 배포된다. 하루 일하고 끝나는지라 물리적 난관이 있지만, 일용을 거듭하는 청년도 있는만큼 사각의 사각에 대한 손길도 필요하다. 당과 노조, 제 단체의 관심이 필요한 때다.
이제 한국에 고난의 행군이 올 수도 있다. 미제의 쇠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미 드러났다. 우크라이나는 그 발악이며 결국 결전장이 한(조선)반도가 될 것임은 명확하다. 북 또한 미제를 철거하겠다고 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결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정세는 오히려 다극화 진영의 편이 될 수 있는 북의 편이다. 북미, 유럽, 범호주, 한국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계는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고 있고, 북, 중, 러는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란 등이 함께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는 반미 투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록 아르헨티나에서 트럼프 판박이인 극우 밀레이가 당선되었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도의 패배이자 극우의 발악으로 보는 게 맞다. 중도의 모호한 대처가 불러온 참사인 것이다.
불리한 건 한국이다. 러시아는 각종 유화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거부하는 건 한국이고, 최대 교역국 중국은 미시적인 영역까지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 모든 건 한국의 선제적 적대와 혐오로 정당화될 것이다. 이처럼 정권의 폭주는 경제의 폭망으로 이어지고 있고, 인구절벽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자연 소멸 위기까지 만들고 있다.
자본주의는 그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공황과 전쟁을 불러온다. 하지만 그게 자연스럽게 변혁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변혁 역량이 존재해야 한다. 체제에 숨통을 끊을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지 그렇지 않으면 파시즘으로 넘어가는 걸 우리는 2차대전을 통해 배웠다. 한국의 위기는 기회지만 위험이기도 하다. 통일운동에 종사하는 진보 진영만이 해결할 수 있는데, 고난 속에서 민중을 희망의 길로 함께하도록 할 때 비로소 반전의 길이 열릴 수 있다.
청년을 돌격대로 방관할 것인가, 전위대로 각성하도록 할 것인가.
이 물음에 정답을 내놓아야 비로소 우리의 밤도 지나가고, 오랜 기다림을 끝내 활짝 기지개를 켤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다. 어떤 기다림인가, 마지막 한 마디로 줄이겠다.
“남북이 하나가 되는 순간 전 세계 모두가 주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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