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과 천지대란, 그리고 한국의 미래
이범주
* 이 글은 지난 11월 12일 전국노동자정치협회 주최 국내외 정세 관련 토론회에 제출된 토론문입니다. 이 날 토론회에는 일각에서 주장하는 ‘평화군축론’에 대한 비판 및 이후 정세 전망,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와 그것의 국내적 영향을 주제로 두 명의 발제가 있었습니다. 이 주제에 더해 당면한 정권퇴진 투쟁을 포함해 폭넓은 주제와 실천과제가 활발하게 다뤄졌습니다.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소련의 몰락 이후 나토는 부단히 동진해서 폴란드까지 가입시킴으로써 우크라이나만이 러시아와 나토 사이의 완충지대로 남게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민족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동부의 러시아계 우크라이나와 서부의 서구 친화적 우크라이나로 내부적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미국 CIA의 공작으로 친서방계 세력이 친러시아계 집권 세력에 대해 쿠데타(마이단)를 일으켜 권력을 잡은 후 동부 러시아계를 노골적으로 탄압해 왔다. 네오나치가 정치세력으로 조직되고 동부에서 러시아어 사용을 금지시켰다. 오데사에서는 합법적으로 시위하는 노동자들을 화형 시켰다. 2014년 이후 키에프 정부가 러시아인이 압도적으로 많은 돈바스 지역을 지속적으로 포격하는 내전이 8년 동안 진행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14,000명의 돈바스 군인, 인민들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대러시아 침공을 위한 군비(軍備)를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해 왔으며 개전 8일 전부터 우크라이나 공군은 동부 우크라이나를 공습하고 폭격했다. 이런 정황이 올해 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선공한 배경이다. 겉으로는 러시아가 침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에서도 실제적인 전쟁은 짧게는 2014년부터 시작되었고 길게는 1991년까지 소급될 수 있으며 더 길게는 소련시절 우크라이나가 탄생될 때까지 소급될 수 있다.
2014년 우크라이나 키예프 마이단광장에서 벌어진 시위 장면과 폐허가 된 광장 모습 |
전쟁의 실제적인 주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라 말하지만 전쟁을 기획하고 무기와 보급품 장비 등을 공급하며 군의 지휘, 작전 등에 결정적으로 참가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따라서 이 전쟁의 실제 주체는 러시아와 미국(그리고 미국 통제 하의 나토국들)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전쟁의 대리인이다.
전쟁의 의도
미국은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을 러시아의 수렁으로 만들어 러시아를 약화, 해체시켜 러시아의 자원, 에너지, 식량….등을 약탈하려고 하였다. 미국이 부단히 나토를 동진시키며 러시아 압박해 온 것도 이런 의도이다. 반면 러시아 지도자 푸틴은 처음에 클린턴에게 러시아의 나토가입을 제안하면서 미국 중심의 유럽에 편입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거부당하면서 나토가 지속적으로 러시아를 압박하며 동진하는 것을 목격하고는 결국 서방 유럽에의 지향을 버리고 동쪽의 유라시아 지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이번의 우크라이나 전쟁도 이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후방을 안정시키려는 게 핵심 목적이라 할 수 있다.
전쟁에서 드러난 사실들
1) 강력한 군사력의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압도적인 패배: 대부분 국내 매체에서 말하는 내용과는 달리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7~10대 1의 비율로 우크라이나 병력이 살상되고 있으며 장비도 급속하게 소진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하여 지금은 미국과 나토국들의 돈과 장비, 탄약의 지원이 없으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이 전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으로 되었다. 합리적으로 추정할 때 우크라이나 병력 손실이 이미 40만 내외에 이르렀다고 본다.
2) 미국과 나토국들의 전쟁수행 능력 한계 노출: 미국의 경우 제조업 기반이 공동화되어 탄약, 무기, 장비 등의 생산이 곤란해져 무기고가 비어가는 상황이다. 미국은 최고급 사양의 비행기, 항모 등에 몰두해 온 반면 전쟁의 기본으로 되는 재래식 군비는 매우 취약하다. 예컨대 M777 야포와 탄약, 하이마스 로켓, 155밀리 포탄 재고가 거의 소진되어 가고 있으며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나토국들의 군비도 마찬가지다. ‘생각보다 그들의 군사력이 허접하다!!’
3) 미국의 군사패권 약화 경향 뚜렷: 극초음속 미사일 시대에 미국의 항모는 관짝으로 취급된다. 반면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하고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한 이란과 대륙간 탄도탄,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생산하는 조선의 등장과 기존 군사강국인 러시아, 중국…등으로 인해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력 우위가 현격하게 기울어가고 있다. 미국 패권의 한 축인 군사패권이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개전 이후 진행양상
1) 대러 봉쇄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세계의 극히 일부분: 러시아에 대한 경제봉쇄에 참여하는 나라들은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한국, 일본, 대만에 한정되어 인구로 보면 전 세계의 10~15%에 불과하다. 나머지 85~90% 심지어 이스라엘까지 봉쇄에 불참하고 있는데 자원, 인구, 인구, 식량 대국들이 거의 모두 봉쇄에 불참하는 셈이다.
2) 유럽, 미국, 한국, 일본 등의 봉쇄 참여국들의 수난: 봉쇄하는 측의 국가들이 오히려 광물과 중간재 특히 에너지 공급이 불안정해지면서 공급부문의 문제로 인한 급격한 물가인상과 경기침체로 고통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에서 나토 탈퇴, 대 러시아 봉쇄에서 이탈 등을 주장하는 민중들의 시위 확산되고 있으며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는 정권이 교체되었다. 나토 내부에서의 갈등도 확산되고 있어 헝가리, 터키, 세르비아 등은 제재 대열에서 이탈하려 한다. 영국이 노르드스트림 2 해저 가스 운송로를 파괴하면서 영국과 러시아의 갈등도 내연하고 있다. 제조업이 위기에 처하면서 독일은 중국에 대한 접근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숙적인 중국의 실력을 높여주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당초에는 러시아를 제재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유럽 등의 제재국들이 오히려 제재를 당하는 흐름이다. 모두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로지 제재에 참가하는 나라들만 어려움에 봉착한 것이다.
3) 러시아와 중국, 인도의 초접근; 러시아가 석유와 가스 등의 판로를 유럽에서 인도와 중국으로 돌리면서 전쟁 중인데도 러시아의 무역수지 흑자가 급증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도 호황이다. 결국 고통 받는 것은 제재에 동참하는 나라들로서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격이다. 핵, 에너지, 자원, 식량대국이자 전략국가 러시아는 점차 자립적인 경제구조를 정착해가고 있다.
4) 미국 일극체제에 대한 대항체제로서 브릭스(BRICS) 등장; 브라질, 러시아, 인도(실 구매력 3위), 중국(실 구매력 1위), 남아프리카…가 연합세력으로 등장하고 이에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베네수엘라, 알제리…등이 새로 가입하는 흐름을 보이니 식량, 자원, 에너지, 핵…등의 핵심 국가들이 미국에 대한 대항체제에 합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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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페트로 달러 붕괴 흐름: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 협력기구가 결성되어 달러체제에 대한 대안화폐 강구하고 있다. 한편 사우디는 석유 결제대금으로 중국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하고 석유회사 지분 1%를 중국에 매각하기로 결정했으며 미국의 페트리어트 미사일 구입을 포기하고 중국의 대공 미사일 구입하기로 결정했다. 사우디 왕세자가 미국의 바이든을 박대하고 러시아 푸틴을 극히 환영한 것, 러시아와 군사협력 하기로 결정한 것도 모두 페트로 달러 붕괴 흐름을 보여준다. 결국, 미국의 달러패권이 붕괴되는 흐름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다.
6) 푸틴의 자주화 시대 선언: “이번 전쟁으로 미국 같은 강대국이 좌지우지하는 일극 패권시대는 종식되고 자주적인 국가들이 평등하게 만나는 다극화 시대가 오게 될 것이고 지금 세계는 이 거대한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이번 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의 세상의 이전의 세상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모두 제국주의 초강대국 미국의 일극 패권시대가 종식될 것임을 선언하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
1) 근린동맹의 빈곤화: 이해영 교수는 ‘근린동맹의 빈곤’라는 개념을 사용하며 미국이 동맹의 희생을 대가로 자신의 생존과 달러패권 유지를 도모하는 행태를 설명한다. 달러 패권을 유지 하기 위해 달러강세를 유지하고 금리를 급격히 인상하며 한국, 대만의 반도체 공장, 자동차 공장 등을 미국으로 옮길 것을 강요하여 자국의 제조업 공동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태가 그것이다. 모두 동맹의 이익을 희생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꾀하는 행태다. 반도체 칩 4동맹, 가치 동맹…등을 명분삼아 한국을 중국 경제권에서 떼어내려 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흐름은 한국으로서는 엄청난 재난적 상황이니 러시아, 중국 시장을 상실하고, 중간재 원료 연료 공급처를 잃으며 국제수지 적자는 폭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맹국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발판으로 혼자 생존하려는 미국의 행태는 결국 엄청난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2) 미국 자체의 문제 심화: 그러나 미국 내부사정도 쉽지 않은 상황이니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국내 불평등은 극심해지고 경기침체로 인해 미국 서민들은 궁핍해지며 채권 이자율 향상으로 채권판매 곤란 및 이자 지불액 급증으로 인해 정부의 재정적자가 급증하는 것이다. 이런 정황으로 미국도 장기적으로 고금리를 지속할 수는 없다.
결국 흐름을 정리하면
1) 군사패권, 달러패권의 종식 경향으로 인한 미국의 위기: 독일, 프랑스, 호주 등의 사례에서 보듯 미국을 옹호하던 동맹국들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는 달러패권, 군사패권이라는 패권의 두 축이 흔들리는 미국의 위기를 반영한다.
2) 우크라이나의 서방 수렁화: 당초에는 러시아의 수렁으로 삼으려 했던 우크라이나가 되치기 당하면서 미국과 나토국들을 약화시키는 수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아무리 돈을 쓸어 넣어도 우크라이나가 이길 희망은 없다. 우크라이나의 패배는 곧 미국의 패배로 된다.
3) 유라시아 세력권의 등장: 미국과 유럽 중심의 해양 세력권 중심시대가 종식되고 유라시아 세력권이 대안세력으로 등장하는 흐름을 보인다.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인디아와 터키로의 남진 등에서 명백하게 보이는 흐름이다. 특히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유라시아로 운영 방향을 확실하게 바꾸었다. 중남 아메리카의 핑크 타이드(브라질의 룰라 당선)에서 보듯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미국의 일방 패권에 저항하는 자주화 경향도 뚜렷하다. 이 대안적 경향에 동참하고자 하는 인구가 전 세계의 85~90%를 점하는데 85~90%의 수중에 에너지(사우디, 베네수엘라, 이란, 러시아), 식량(러시아, 베트남, 중국…), 자원(러시아, 아프리카, 중남아메리카…)이 집중되어 있다. 누가 소수인가, 누가 제재 당하는가, 누가 왕따를 당하는가. 바로 미국과 나토가 제재당하고 왕따 당하고 있다!! 미국과 서방 해양세력의 500년 동안의 헤게모니 몰락하면서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 고통 받았던 舊 식민지 국가들이 자주적으로 굴기하는 세상이다.
지금 한국 윤석열 정부의 이에 대한 대응은?
1) 미국에 대해 거의 무조건적으로 추종하고 있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추구하고 그 일환으로 일본 관함식에도 참가했다. 북, 중국, 러시아에 적대하는 군사동맹이다.
2) 러시아에 대한 직, 간접적 적대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폴란드에 전차, 자주포, 포탄, 경공격기를 수출하는 것, 체코에 무기 수출해서 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로 전달하고자 하는 것, 미국에 155mm 포탄 십만 발 수출하는 것….모두 러시아에 적대하는 것이니 이상의 무기들이 결국은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푸틴은 한국을 비우호 국가로 이미 지정한 바 있다.
3) 자해적인 대중국 포위 전선에 참가하고 있다. 칩 4 동맹과 미국 중심의 타국 특히 중국 배제하는 가치동맹에 합류해서 중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봉쇄에 동참했다. 이는 변해가는 외부의 거대한 흐름을 외면하고 고립, 몰락해 가는 유럽과 패권 상실하는 미국의 편에 서는 것이다. 이는 스스로를 백인국가라고 생각하여 미국의 이익을 우리나라의 이익이라고 착각하는 데서 오는 비극이다. 이는 결국 나라 경제의 연료, 식량, 자원, 중간재 등의 공급처와 판매처를 상실하고 성장동력을 상실하는 방향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쟁에 말려 이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정치세력이 전무하다. 정쟁에 휘말린 국힘당, 민주당뿐만 아니라 정의당, 노동당…모두 마찬가지다.
지금의 각 영역에서의 위기는 통상의 일반적인 경기순환의 불경기와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보인다. 세계사적인 차원에서의 힘의 축이 해양세력에서 유라시아 대륙세력으로 옮겨가는, 판이 바뀌는 천지대란의 과도기라고 보인다. 이 흐름을 타지 못하면 회복 불가로 몰락할 가능성도 있다.
활로는 어디에 있는가?
–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주적 입장에서 상황변화에 탄력적으로 민활하게 대응해야 한다. 즉 새로 등장하는 유라시아 세력의 흐름을 타야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고작 10~15%에 해당되는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것도 미국에게 부단히 착취, 수탈당하면서.
– 미국이라는 일극 패권적 중력장에서 벗어나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대북 적대의 한미일 동맹 체제로는 불가능하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 그 방향으로 합류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인 정부 수립해서 통일 지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노동계급도 자주성을 지향하며 반제, 반미, 통일 지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내 차원에서의 계급모순 극복’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지금의 현실에 대한 해석이 곤란하고 적절한 해결책도 모색 곤란하다고 본다. “자주 없이 민주 없고 자주 없이 계급해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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